우물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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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삭은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나 그의 아들 야곱에 비해 강렬한 인상이나 이렇다 할 특징을 남겼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아브라함은 히브리 민족의 원조이자 최대 족장으로 히브리 신앙의 독보적인 위상을 가진 인물이고, 야곱도 그의 굴곡 많은 인생역정을 통해 마침내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얻음으로써 히브리 민족의 뼈대를 세운 빛나는 이력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삭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그의 생애나 신앙을 통해 히브리 민족의 운명이 결정적으로 변화된 예를 기억해 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가령 <여호와 이레>로 유명한 모리아산 사건만 해도 엄연히 그가 직접적인 당사자였음에도 스스로 어떤 주체적인 역할을 했다기보다 아무 영문도 모른 체 그저 아버지 손에 이끌려 산에 오른 것 뿐이었습니다. 이렇듯 이삭은 아버지와 아들의 쟁쟁한 명성 사이에서 단지 아브라함과 야곱을 잇는 계보상의 고리 쯤으로 인식되기가 쉬워 보입니다.
그러나 그건 오해입니다. 이삭의 인생행로 속에 남겨진 소중한 신앙 유산이 없었던들 아마도 그 이후 히브리 신앙의 아름다운 전통은 상당 부분 다른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만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라 히브리 신앙의 대하를 이루는 굵은 물줄기 가운데 하나로 당당하고도 독자적인 자리매김을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창세기 26장에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이삭이 그동안 살아온 블레셋 땅에서 졸지에 내쫓기는 황당한 일이 벌어집니다. 세상은 워낙이 그렇습니다. 내 잘 되는 꼴을 못 봐주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데 블레셋 사람들이 바로 그랬습니다. 이삭의 눈부신 성공을 시기해 그의 우물들을 모조리 메워 버린 것입니다. 우물이란 한 공동체의 생명줄입니다. 따라서 우물을 메우는 행위야말로 이삭뿐 아니라 그가 속한 공동체의 생존까지도 말살하려는 만행입니다. 어디 그뿐이었습니까? 그 땅의 지배자까지 나타나 <이곳을 떠나라!>며 거역할 수 없는 퇴거명령을 내렸습니다. 고대 농경사회에서 지금까지 내가 일궈놓은 터전에서 나가라는 것은 곧 죽으라는 말에 다름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삭은 울분에 휩싸여 이성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누려온 부와 안정이 자신의 능력과 노력의 산물이었다고 생각했다면 그도 아마 허탈하고 망연자실하여 깊은 좌절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성공과 열매의 밑바닥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졸지에 메워버림을 당하고 내어 쫓김을 당한 자리에서도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었고, 또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철석같이 믿었기에 빈손으로도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리를 옮겨 다시 우물을 팠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또 빼앗았습니다. 이삭은 이번에도 낙망치 않고 다른 곳으로 옮겨 또 우물을 팝니다. 그리고 또 빼앗깁니다. 그러나 이삭의 우물파기는 계속됐고, 마침내는 승리했습니다. 결국 블레셋 사람들이 승복하고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노라>(창 26:28)며 평화협정을 제의해왔기 때문이었습니다.
혹 시련이 왔다고, 파 놓은 우물을 빼앗겼다고 함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애써 파 놓은 우물을 누군가가 메워버렸다고 분노하지 마시고 허탈해하지 마십시오. 우물 자체가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물이 메워졌다고, 그것을 빼앗겼다고 죽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우물을 파 내려갈 의지와 기운을 잃었을 때 우리는 죽습니다. 언제나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가능성이 닫히면 그게 곧 내일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시작임을 깨닫는 지혜가 있으시길 기도합니다. 우리 역시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은혜를 믿으며 우물파기를 중단하지 않는 한 언젠가는 보다 넓은 곳에 이르러 큰 우물을 얻게 될 것입니다.
굴함 없는 우물파기, 이삭에게서 배웁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