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28n: 달음질(빌 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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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28일 주일오후예배
본문: 빌 3:12-14
제목: 달음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어제 대구에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9일간의 열전에 들어갔습니다. 지방에서 개최되는 행사라 그런지 국민적인 성원이 약한 것 같습니다. 사실 이것은 대단한 지구촌 축제인데 대회 위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리 국민의 관심이나 참여가 약한 것 같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육상 종목은 거의 다 달음질입니다. 심지어 높이뛰기나 멀리뛰기도 뜀박질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달음질이 나옵니다. 바울은 주로 헬라문화권에 선교를 했는데, 바울 서신을 보면 여러 군데 달음질 얘기가 나옵니다. 이것은 헬라문화권을 지배하고 있던 고대 올림픽이 그 배경에 있습니다. 헬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달음질을 화제로 복음을 설명했던 겁니다. 본문은 우리 신자를 달음질하는 경주자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달음질과 같은 신앙생활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는가를 본문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선 무거운 것, 얽매이기 쉬운 것을 다 벗어버려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입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고대 올림픽은 주전 776년부터 시작해서 주후 393년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전쟁이나 특별한 사건을 빼면 약 1,200년간 4년마다 개최하여 293회나 열렸습니다. 이 유수한 전통의 올림픽의 특징은 선수들이 나체로 경기에 임했습니다. 이유는 해방이나 자유라는 올림픽 정신의 구현 때문에 그랬다는둥, 여성들을 참석하지 못하게 하려고 그랬다는둥 여러 설이 있습니다. 그러나 육상경기에 나서는 사람은 거의 나체에 가까운 수준으로 임해야 합니다. 뜀뛰기하는 사람이 정장 입고서 좋은 기록을 세울 수 없지 않습니까. 팬티 하나만 걸쳐야 합니다. 요즘은 신발도 첨단 과학으로 만들어 가볍습니다. 하여튼 맨몸으로 달리듯 해야 좋은 기록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영적 달음질도 이래야 합니다. 무거운 것, 얽매이기 쉬운 죄를 다 청산해야 합니다. 헬라 사람들, 로마인들, 유대인들의 복장은 통치마입니다. 그런 복장으로는 달릴 수 없습니다. 달음질하기에 적절하지 못합니다. 그런 옷들을 다 벗어야 제대로 뛸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 5절 이하를 보면, 바울이 그의 화려한 과거 이력마저도 해롭다며 배설물처럼 버린다고 했습니다. 그게 아무리 값진 것이라도 나의 진로를 방해하면 가차없이 버려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앞의 경주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뱃살 가진 육상선수 못 보셨지요? 특히 단거리 선수들은 복근이 좋습니다. 복근에서 폭발적인 힘이 난다고 합니다. 우사인 볼트를 보십시오. 군살이 없습니다. 군살은 장애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자들이 그래야 합니다. 기억합시다. 고대 올림픽 때는 알몸으로 뛰었습니다. 우리도 알몸 수준으로 신앙의 경주에 임해야 합니다.
다음은 푯대를 향해 달려야 합니다. 12절 하반절입니다.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4절도 마찬가지입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달음질하는 바울의 목표의식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 이하를 보면,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라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9장 26절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우리 신자들도 경주의 목표가 정확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의 목적지요 목표입니다. 이게 확실하지 않으면 백날 허공을 쳐봐야 헛수고입니다. 마라토너는 42.195km의 골인 지점까지 달려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6장 12절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우리의 달음질은 영생을 취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 주님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더러 종교적인 문화생활을 하라고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7절이하입니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이것은 사도 바울의 최후 고백입니다.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자기의 최후를 맞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이 목표가 분명하지 않고, 방향감각이 확실치 않습니다. 이게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치명적인 비극입니다. 왜 교회를 다니는지, 왜 자기가 뛰고 있는지 목표나 방향감각이 없습니다. 그저 모든 게 맹목적입니다. 여전히 세상을 향해 뛰고 있습니다. 돈이나 명예, 대학입시, 건강이 목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목표가 아닙니다. 바울이 이런 자들을 향해 말씀한 대목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25절입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맞습니다. 세상이 주는 것은 다 썩습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는 아직 안주할 수 없습니다. 바울처럼 모든 것을 분토처럼 버리고 그리스도를 향해, 영생을 위해, 푯대를 바라보며 맹렬히 달립시다. 그래야 승리의 면류관을 얻습니다. 그래야 바울처럼 최후의 개가를 올릴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1절, 고린도전서 9장 25절, 27절을 보면 인내, 절제, 자기 몸을 친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것은 다 자기와의 처절한 싸움을 의미합니다. 달음질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싸움 이전에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뼈를 깎는 인내, 극기, 자제, 절제, 냉혹한 자기 관리 없이 절대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자기 몸을 혹독하게 쳐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6장 12절에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했는데, 이것은 세상과의 싸움, 마귀와의 싸움도 가리키지만, 자기와의 싸움도 해당됩니다. 특히 운동선수들은 자기 관리에 실패하면 끝입니다. 운동선수들은 그야말로 수도사처럼 자기를 관리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6장은 부 하려는 마음,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피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게 부요 돈인데, 그걸 다 피하라는 겁니다. 정말 예수 믿기 쉽지 않습니다. 달음질에서 이기려면, 영적 경주에서 승리하려면, 부자가 되는 마음,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다 비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게 다 시험이 되고, 내 뛰는 길에 올무가 되어 내 발목을 잡습니다. 우리는 다 달음질 선수들입니다. 먹고 싶다고 다 먹을 수 없고, 자고 싶다고, 놀고 싶다고 마냥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자기 몸을 쳐야 합니다. 그 눈물겨운 자기 관리, 통제, 단속 없이는 안 됩니다. 얼마나 자기 관리에 냉혹한가가 중도 탈락이냐 완주냐를 결정합니다. 자기와의 싸움에 더욱 치열한 성도 되십시다. 올해도 모든 영적 경주의 성도들이 최후의 승자들이 되어 주님이 연말에 주시는 승리의 월계관을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설교영상보기: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ymI9XEhzXz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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