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221231] 요셉의 송구영신 (창 45:1-11)

1231.jpg

 

 

<온라인 예배 기도문>

 

주님,

막 묵은해가 가고 2023년 새해가 왔습니다.

지난해는 참으로 힘들고 고단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새해를 맞았사오니 2023년은 저희에게 한결 복되고 형통한 해가 되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모든 게 회복되고 정상화되고 잃었던 많은 것들을 다시 되찾는 축복이 있게 해주시옵소서.

 

가족들이 모두 안전하고 건강하게 하시고, 생업을 도우사 경제적으로 곤란당하지 않게 하시고, 환자들을 안수하사 온전케 해주시옵소서.

 

저희 가족 모두가 늘 주 안에서 몸도 마음도 영혼도 강건하게 하시옵소서.

자녀들의 학업과 이런저런 계획과 사회생활 해외생활이 다 복되게 하시옵소서.

 

새해에는 저희 모두가 더욱 믿음으로 살고 기도하며 승리하고 좀 더 사랑하고 용서하고 서로를 위하며 살아가도록 성령으로 격려해 주시옵소서. 

 

이제 푸른교회 성도들이 모두 새로운 믿음의 공동체를 찾아 나서야 합니다.

가장 아름답고 건강하고 복된 교회를 만나 정착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친히 이끌어 주시옵소서.

 

오늘 이 송구영신예배, 신년주일예배, 고별예배가 저희 가정에 소중한 은혜와 축복의 시간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언제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를 찾아 하늘의 신령한 복을 부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21231

창 45:1-11

요셉의 송구영신

 

1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 때에 그와 함께 한 다른 사람이 없었더라

2   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3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9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아뢰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지체 말고 내게로 내려오사

10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머물며 나와 가깝게 하소서

11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족과 아버지께 속한 모든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나이다 하더라고 전하소서

 

 

잘 아시는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특히 오늘 이 장면은 요셉이 형들에게 버림받은 지 13년 만에 애굽에서 자기를 죽이려다 다시 애굽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아버린 그 비정한 형제들과 기적같이 상봉하는 아주 극적인, 아주 드라마틱한 대목인데, 오늘 한 해를 마감하고 다시 새해를 맞는 우리들에게 또 그간의 푸른교회 시대를 마감하고 새해부터는 다시 새로운 길을 가야 하는 우리들에게 아름다운 모범을 제시하고 또 큰 깨달음을 얻게 하는 복된 말씀이라는 확신이 들어서 잠시 이 말씀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우선 요셉은 지나간 시간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절대 과거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무엇보다도 이걸 오늘 우리가 꼭 배워야 하겠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인성이 훌륭한 요셉이라 할지라도 왜 그 가슴에 맺힌 한이 없었겠습니까? 아버지인 야곱의 11번째 아들인 요셉만을 편애 한다며 평소에도 형들이 그를 미워하고 왕따시켰는데, 결국은 어떻게 했죠? 

 

집에서 멀리 떨어진 들판에서 양을 치다가 요셉이 나타나자 무차별로 폭행하고 죽이려고 옷을 벗기고 깊은 구덩이에 던졌다가 다시 끌어올려서 애굽 상인들에게 돈을 받고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자기들 동생을 인신매매 한 겁니다. 얼마나 비정하고 엽기적입니까? 그때 요셉의 나이 겨우 열일곱이었습니다.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하고 형들이 원망스럽고 또 두려웠겠습니까? 당시 요셉이 겪었을 배신감, 절망감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런데 애굽에 팔려가 노예살이를 하다가 다시 누명을 쓰고 수년간 억울한 옥살이까지 하지 않습니까? 시편 105편 18절을 보면, 요셉이 그때 “발이 차고에 상하고 혼이 쇠사슬에 매여 있었다”고 진술하는데 그 감옥살이가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으면 자기 영혼이 쇠사슬에 매여 있었다고 했겠습니까? 생각할수록 견디기가 힘들지 않았겠습니까? 형들이 그를 버리지만 않았던들 그가 왜 그 만리타국까지 노예로 팔려가서 그런 처절한 수모와 고통을 겪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거의 천지개벽 수준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방인 노예요 성폭력범으로 몰려서 억울한 옥살이를 하던 요셉의 신분은 일약 대애굽의 총리대신이 됐고, 형들은 이스라엘에 닥친 살인적인 흉년 때문에 양식을 구하기 위해 애굽까지 내려온 떼거지, 떨거지 신세입니다. 그런데 그 둘이 외나무다리에서 딱 마주친 겁니다. 요셉으로서는 통쾌하게 원수를 갚고 그간 모든 한을 일거에 풀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입니다. 

 

그러나 그건 우리의 생각이고, 정작 요셉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모든 아픈 과거를 쿨하게 다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님의 섭리로 돌렸습니다. 자신의 모든 슬픈 과거사를 다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4절 이하를 보십시오.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이곳에 보내셨나이다”

또 8절입니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오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에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에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그는 추호도 형들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았고 또 어떤 책임도 묻지 않았습니다. 보십시오. 그 모든 것을 형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다고 하잖아요. 형들은 지금 무서워서, 겁에 질려서 완전히 그 자리에 얼어붙었는데 요셉은 그 형들을 붙잡고 방성대곡을 하며 오히려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며 형들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올해도, 그동안도 많이 힘들었습니다. 개인에 따라서는 큰 상처와 아픔을 겪으신 분도 계실 테고, 배신이나 모함을 당하신 분, 실직을 하시거나 사업에 실패하신 분, 또 그런 과정에서 큰 빚을 지거나 많은 손해를 입으신 분도 없지 않아 계실 겁니다. 또 그 모든 게 생각하면 할수록 억울하고 분해서 마음에 큰 상처를 지고 계신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요셉의 송년 자세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에게는 이미 모든 게 다 과거지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들도 묵은해와 함께 모든 아픈 기억들을 다 접고 잊으시기 바랍니다. 가슴이 쓰리고 억울하고 서럽지만 그러나 거기에도 내가 미처 헤아리지 못하는 어떤 하나님의 뜻이 있고 승리가 있다고 믿으시고 다 털어버리십시오. 지난 시간, 지난 세월에 발목이 잡히면 새해가 와도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요셉은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극복할 수 없는 과거였지만,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승리로 믿고 도리어 형들을 붙잡고 방성대곡을 하며 그간의 모든 앙금을 훌훌 털어버렸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형들과 함께 새 출발하며 새해로 미래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겁니다. 

 

다음 요셉은 현재 혹은 오늘에도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현재에 안주하는 사람이었다면 아마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에 넘어갔을 겁니다. 그러나 그는 과거에 대해서도 단호했지만 현재의 유혹도 가차 없이 뿌리쳤습니다. 

 

창세기 39장 7절 이하입니다.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동참하기를 청하니 요셉이 거절하여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오직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이니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까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참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하루는 요셉이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그 여인이 집사람들을 불러서 이르되 보라 히브리 사람이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를 질렀더니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였느니라”

 

여러분, 이게 바로 당시 요셉이 당했던 집요하고도 간악한 현재의 유혹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당시 요셉은 혈기 왕성한 20대 초반의 청년이었습니다. 또 홀로 만리타국에 팔려와 노예살이를 하는 외로운 이방인이었습니다. 또 바로 왕의 친위대장이었던 그 집주인 보디발은 지금 장기 출장중입니다. 따라서 요셉이 그 여인과 동침을 한다고 해도 감쪽같이 그 모든 비밀이 보장될 수 있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결코 그 현재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현실에 매몰되거나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현실과 타협하거나 거기에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절대 현실안주형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현실의 유혹을 거부한 데 따른 대가는 참으로 혹독했습니다. 노예 주제에 하늘같은 주인나마님을 그토록 무안하게 했으니 어찌 무사할 수 있었겠습니까? 당장 보복을 당해 되레 자기를 성폭행하려다 소리를 지르자 옷을 벗어 던지고 도망쳤다며 신고를 해서 결국 감옥에 갇히잖아요. 

 

여러분, 현실이, 현재가 아무리 좋아 보이고 유혹적이어도 거기에 만족하며 타협하며 주저앉는 사람은 결코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애굽에서 보면 가나안은 위치가 동북쪽인데 하나님은 그 반대 방향인 동남쪽 시내 광야로 그들을 인도하셔서 굳이 홍해를 건너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가거나 과거를 돌아보지 못하게 하기 위한 배수의 진이었습니다. 더 이상 과거에 붙잡히거나 과거에 미련을 갖지 말라는 겁니다. 

 

그리고 맨 앞에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백성들을 친히 이끄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든 구름기둥이나 불기둥이 움직이면, 쉬다가도 다시 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군에 나서야 했습니다. 피곤하거나 지쳐서 앉고 싶어도 혹은 엘림 같은 오아시스가 너무 좋아서 거기에 계속 머물고 싶어도 절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현실 안주는 용납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앞서가시며 그들을 강제하셨기 때문에 그저 모두 열심히 따라가야지 그 광야에 안주하거나 누구도 거기에 그냥 뿌리를 내릴 수는 없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다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요셉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렇게 과거와도 결별하고 현재와도 수작하지 않고 부단히 걷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셉의 생애야말로 우리 믿는 자들의 삶의 모범이요 귀감이요 전형이라는 겁니다. 

 

과거에도 미련이 없고 현재에도 안주하지 않으며 또 어떻게 했습니까? 늘 미래에 살았습니다. 요셉은 지독한 미래형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그랬습니다. 늘 꿈을 먹고 살았습니다. 요셉의 별명이 뭐였습니까? 꿈쟁이 아니었습니까? 

 

요셉은 실제 꿈을 잘 꿨습니다. 한번은 형제들의 보릿단이 다 자기의 보릿단에 절하는 꿈을 꾸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해와 달과 11개의 별이 자신의 별에 절하는 꿈을 꾸기도 했는데, 철없이 그가 그 꿈 내용을 그대로 얘기하는 바람에 형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게 된 겁니다. 

 

그때부터 형들이 그를 꿈쟁이라며 늘 시기하고 경멸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꿈이 후에 다 그대로 이루어지잖아요. 요셉이 처음 꿈 얘기를 했을 때, 우리가 모두 너에게 엎드려 절이라도 하려느냐며 불쾌해했던 열한 형제들이 실제 사시나무 떨듯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 요셉 앞에 다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지 않았습니까?

 

이렇듯 요셉은 어릴 때부터 이미 비전 속에서 살았습니다. 언제나 희망 속에서 살았습니다. 언제나 앞만 바라보며 미래의 빛 속에서 살았지 뒤를 돌아보거나 아래를 내려다보며 살지 않았습니다. 

 

본문 5절 하반절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 가족의 생명을 구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7절도 보십시오.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이 세상에 두시려고 당신들보다 나를 먼저 이리로 보내셨나이다”

 

그는 늘 이렇게 앞을 향해 가는 사람이고 미래를 산 사람이지 결코 과거에 살거나 뒤를 돌아보거나 현재에 안주하거나 타협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사실은 그가 애굽에서 감옥살이를 하던 중에 졸지에 벼락출세를 하게 된 것도 다 꿈 때문이었잖아요. 누구도 풀지 못했던 난해한 바로의 꿈을 명쾌하게 풀어주며 왕국의 미래까지도 예언했기 때문에 이방인 죄수가 하루아침에 애굽에 총리대신이 되어 앞으로 수년간 지속될 그 땅의 대흉년을 대비하는 막급한 책임 총리 자리에 오르게 된 겁니다.

 

심지어 요셉은 죽으면서도 뭐라고 했습니까? 너희가 훗날 이 애굽을 떠나 하나님이 허락하실 가나안으로 갈 때 꼭 나의 유골을 챙겨가서 그곳에 나를 장례해달라고 유언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지독하고 철저한 미래형 인간입니까? 

 

십계라는 영화를 보면, 그로부터 400년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영도로 애굽을 탈출할 때 실제 그의 유언을 받들어 두 사람이 요셉의 유골함을 메고 나갑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 꿈에 살았던 미래에 살았던 이 요셉의 후예들입니다. 우리는 요셉에게서 바로 이런 삶의 자세, 이런 송구영신의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과거도 현재도 아닙니다. 미래입니다. 어제보다 지난 세월보다 오늘보다 현재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십시오. 과거에 붙잡히지도 마시고, 오늘에 주저앉지도 마시고, 오직 내일을 바라보시며 기대하시며 희망을 품고 사십시오. 

 

어제까지 살았던 지난 430년을 살았던 애굽은 깨끗이 잊으시고, 푸른교회도 잊으시고, 조성노 목사도 이제는 잊으시고, 이 광야 세상에 현실에 안주하지도 마시고, 오직 우리의 희망이요 젖과 꿀이 흐르는 미래인 가나안을 향해, 천국을 향해 더욱 힘차게 진군하십시오. 

 

그 옛날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애굽으로, 과거로 돌아가자며 작당하고 선동했던 사람들 또 가나안 원주민들은 기골이 장대한 거인들이고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떼에 불과하다며 가나안 정복을 마다하고 그냥 광야에서 살자며 앞으로 나아가기를 거부했던 세력들은 다 탈락했습니다. 그들은 다 객사했습니다. 

 

부디 다가온 2023년 새해와 미래를 향해 더욱 담대하게 진군하심으로 일찍이 요셉이 체험했던 놀라운 삶의 반전과 풍성한 축복을 누리며 사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