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221204] 이마고 데이 (창 1: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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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예배 기도문>

 

주님,

12월 첫 주일 아침입니다.

대강절 둘째 주일이자 인권주일이기도 한 오늘도 저희 가정과 함께 하사 이 조촐한 온라인 예배가 주님께 영광이 되고 저희 가족에게는 은혜와 축복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주님,

이제 이 12월 한 달이 지나면 저희의 거취가 달라집니다.

부디 가장 복되고 선하신 길로 저희를 이끄사 새로운 환경과 조건에서 주님을 예배하기에 부족함이 없게 해주시옵소서.

 

기온이 뚝 떨어져 영하의 날씨가 계속되고 있는 이 12월 초순, 

저희들 더욱 자신을 내려놓게 하사 올해도 새로운 감격으로 성탄하실 주님을 뵙기에 부족함이 없게 해 주시옵소서.

 

이 땅에는 여전히 가난하고 병들고, 또 어려운 사정으로 힘들어 하는 이웃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모두 위로하시고 치유하시며 온전케 해 주시옵소서.

 

여전히 온라인 예배조차 쉽지 않은 가정들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주일을 지킬 수 있는 큰 믿음과 확신을 주시고, 여의치 않은  처지와 환경도 속히 원만케 해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말씀을 상고할 때 깨달음을 주시고 주님의 따뜻한 육성을 듣기에 부족함이 없게 해주시옵소서.

 

언제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를 찾아 하늘의 만복을 베푸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21204

창 1:26-28

이마고 데이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3)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오늘이 12월 첫 주일이자 대강절 둘째 주일이면서 또 세계 교회가 함께 지키는 인권주일입니다. 유엔이 제정한 세계 인권의 날이 매년 12월 10일이어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인권, Human Rights라는 말이 언제부터 이렇게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가치가 되고 또 가장 중요한 시대정신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을까요? 

 

물론 개념 자체는 오래됐습니다. 그러나 인권에 대한 관심과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본격적인 각성은 20세기에 들어와서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고 나서부터입니다. 전쟁으로 지구촌의 수많은 사람들이 무참하게 희생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반성이 일기 시작했고, 또 1948년 유엔이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하면서부터 인권이야말로 전 인류가 함께 추구해야 할 가장 보편적인 가치 또 가장 근본적인 권리라는 인식이 널리 받아들여지게 된 겁니다.

 

여러분, 인권이 뭐죠? 1948년 12월 10일에 발표된 유엔의 인권선언문 제1조에 의하면, 인종, 성별, 언어, 종교, 이념에 따른 그 어떤 차별도 없이 존중되고 촉진되어야 할 전 인류의 기본권이라고 했습니다. 지구촌 모든 인종, 모든 사람의 기본적인 권리, 사람이면 누구나 보호받고 존중되어야 할 권위와 존엄, 이런 게 다 인간의 원초적인 권리인 인권이라는 겁니다. 

 

백과사전에서 인권이라는 말을 찾아보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가지는 당연한 권리, 기본적인 권한이라고 돼 있고, 이를 천부인권이라 한다고 했습니다. 천부인권이란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하늘에 의해 부여받은 인간의 원초적인 권리, 태생적인 권리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권이란 후천적인 게 아닙니다. 경험적인 게 아닙니다. 교육이 가져다주거나 국가가 국민에게 나눠주는 것도 아닙니다. 미국이 주거나 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 혹은 어떤 정치적 이념이 주는 것도 아닙니다. 세계 인권의 날을 제정하고 인권선언문을 채택하고 발표한 UN이 주는 것도 아닙니다. 

 

인권은 그 모든 것 이전에 선험적이고 존재론적인 것입니다. 누구나 엄마 뱃속에서부터 그야말로 천부적으로 이미 가지고 태어나는 가장 원색적이고도 원초적인 축복입니다. 그래서 인권이란 고귀한 것이고 신성불가침이고 따라서 누구나 누리고 절대 침해당해서는 안 되는 인류의 가장 고귀한 가치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런 천부인권사상, 선험적이고 태생적이고 신성불가침이라는 인권 개념의 근거와 기원은 대체 무엇일까요? 이게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요? 

 

여러분, 그 물음에 대한 정확한 답이 바로 오늘 이 창세기 본문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이 말씀이 바로 인류의 인권사상, 인권 개념의 고색창연한 성서적 증빙이자 또 절대적인 근겁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 남자와 여자가 다 라틴어로 Imago Dei, 히브리어로 첼렘 엘로힘이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 태초에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이 우주의 수많은 피조물 가운데서 이마고 데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는 오직 인간이 유일합니다. 다른 피조물들은 다 그냥 빛이 있으라, 나무가 있으라, 별이 있으라, 짐승이 있으라, 새가 있으라, 물고기가 있으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랬지만, 사람만큼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니라 그랬습니다.

 

여러분, 이게 바로 그 누구도 범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권위요 지위요 존엄이요 권세인 인권의 기원이자 인권의 절대적 근거가 되는 말씀입니다. 시편 8편 5절은 인간의 지위와 위상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지으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 씌우셨나이다” 여러분, 우리는 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과장이나 억지가 아니라 허풍이나 허세가 아니라 정말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존재들입니다. 본체가 아니라 본체의 형상이기 때문에 본체이신 하나님보다는 조금 못한 존재지만 그러나 인권이라는 존귀한 관을 쓴 엄연한 하나님의 분신들이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이어지는 시편 8편 6절 이하를 보면, “주의 손으로 만드신 모든 것들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들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28절 하반절도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그러셨습니다. 

 

여러분, 이게 바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진정한 위상이고 지위입니다. 인간 위에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십니다. 그리고 인간의 발 아래에는 모든 만물이 다 있습니다. 소와 양과 들짐승이 있고 공중의 새며 바다의 물고기와 모든 생물이 다 인간 발 아래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인 인간에게 이 우주의 모든 피조물을 다 맡기사 관리하게 하신 겁니다. 이게 바로 성경이 말씀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권리인 천부인권입니다.

 

공자님은 소학에서 자식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부모를 욕되게 하는 으뜸가는 불효라고 했습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자식은 다 부모의 형상이잖아요. 사오십 대 중장년들은 거울 앞에서 자주 깜짝깜짝 놀랍니다. 왜요? 자기 앞에 부모님이 서 계시잖아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이고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왜 그럴까요? 

 

자식은 다 부모의 형상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칼에 손을 베어도 안 되고 심지어는 머리카락 한 올도 함부로 잘라서는 안 된다며 상투를 틀었습니다. 내 몸은 내 것이 아니고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부모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내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은 곧 부모님의 몸을 범하는 것이나 진배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 몸을 잘 지키고 잘 간수하는 일이야말로 최선의 효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형상들이기 때문에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이미 고귀한 인권이라는 표를 다 목에 하나씩 걸고 태어났습니다. 가난한 자도 부자도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어린아이도 어른도 일반 서민도 최고의 권력을 가진 대통령도 흑인도 백인도 다 똑같은 천부인권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따라서 다 똑같이 존중받고 똑같이 보호받고 똑같이 인정받아야 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살인자의 인권까지도 보호하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4장에 나오는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 아시죠? 가인이 자기 동생 아벨을 시기해서 돌로 쳐 죽이고 암매장을 한 사건이죠. 이미 그 모든 사실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시자 가인이 뭐라고 했습니까? 그걸 왜 제게 묻습니까? 제가 제 아우를 지키는 자니까 하며 시치미를 떼고 뻔뻔하게 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누구도 살인자라는 이유로 그에게 보복해서는 안 된다며 인권이라는 표를 목에 달아주셨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그를 해치는 자는 그 칠 배의 벌을 받을 것이라며 엄한 경고까지 하셨습니다. 비록 죄를 범하고 최악의 살인을 저질렀다고 해도 인권은 여전히 존중돼야 한다는 겁니다. 천인공노할 살인자에게 지나치게 관대하시고 심지어는 그를 편 드시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하나님은 특히 죄인들의 인권 보호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500년 전에 이미 도피성 제도를 율법으로 제정하사 살인자들이 피해자 가족으로부터 사적인 보복을 당하는 일 없이 안전하게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시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죄인도 살인자도 다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최대한 그 인권이 존중돼야 한다는 뜻입니다. 

 

자 그럼 이제 인권의 원초적인 근거가 되고 인류 인권사상의 기초가 된 이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의 인간학적 실체를 한번 확인해보고 오늘의 이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 Imago Dei라고 했을 때 그래서 인권이 성립되고 누구도 그걸 함부로 범하거나 침해해서는 안 된다면 그 신성불가침의 천부인권인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뭐냐 하는 겁니다. 사실 하나님은 초월 존재, 초자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형상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이 형상이라는 게 과연 뭘 뜻할까, 뭘 가리킬까 하는 겁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형상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분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그분의 비주얼을 닮았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고유한 성질, 하나님의 고유한 성품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다는 얘기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속성인 지성과 감성과 의지의 형상대로 우리를 지으사 우리도 하나님과 같은 인격적인 존재로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닮은 지성이 있고 감성이 있고 의지가 있습니다. 죄를 범하면서 그 인격의 원형이 많이 훼손되고 변질되고 왜곡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사람은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격적인 존재고 또 그런 한에서는 인권이 있는 존재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의 지성 얼마나 변질됐습니까? 우리의 감성 얼마나 천박해졌습니까? 우리의 의지가 얼마나 왜곡되고 악해졌습니까? 그러나 그렇다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타락했다고 하나님의 형상성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닙니다. 많이 망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고, 많이 천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여전히 인격의 본체이신 하나님을 닮은 인격적인 존재들입니다.

 

부디 남의 인권도 늘 존중하며 사시고 또 자신의 인권도 늘 잘 지키고 관리하며 사셔서 모두가 복된 Imago Dei, 복된 하나님의 형상들로 살아가시는 성도들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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