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7] 아름다운 소식 (사 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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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예배 기도문>
주님,
올해도 어느덧 성탄을 기다리는 대강절이 왔습니다.
더욱 자신을 살피며 비우고 또 내려놓게 하사 주님 오심을 진심으로 고대하고 준비하는 저희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아직도 이 땅에는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힘들고 어려운 처지로 인해 고통하는 이웃들이 많사오니 올해도 주님의 성탄을 통해 그들이 모두 평안을 되찾고 회복되고 또 새로워지는 큰 역사가 있게 해주시옵소서.
온라인 예배조차 드리기가 여의치 않은 가정들도 있습니다. 그 사정과 형편을 헤아리사 언제 어디서나 주일을 성수할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이 시간 말씀을 상고할 때 깨달음을 주시고, 주님의 따뜻한 육성을 듣기에 부족함이 없게 하사 모두가 자신을 성찰하며 결단할 수 있는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언제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를 찾아 하늘의 만복을 베푸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21127
사 61:1-3
아름다운 소식
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 이사야 61장은 유명한 메시아 장이죠. 그래서 대강절 첫째 주일에는 언제나 이 본문으로 설교하는 게 교회의 오랜 전통입니다. 왜냐하면 이사야 선지자가 주님의 실제 탄생보다 690년 앞서서 메시아의 탄생을 구체적으로 예언하고 있을 뿐 아니라, 또 그 메시아가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실 중요한 사역들을 미리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이 예언이야말로 인류에게 가장 복되고 아름다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4장 16절 이하를 보면 주님이 나사렛 회당에서 바로 오늘 본문인 이 이사야 61장 1절 이하를 읽으시고 이 말씀이 오늘 너희에게 응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심으로써 690년 전 이사야의 예언이 그대로 주님에게서 성취 됐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하셨습니다. 주님이 바로 이사야가 예언한 그 메시아시고, 또 주님의 사역이 690년 전 아름다운 소식을 전한다며 선포한 이사야의 예언의 성취라는 겁니다.
그럼 이사야가 예언하고 또 주님이 그 성취를 확인하신 그 아름다운 소식에 구체적인 내용을 한번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뭐라고 했습니까? 아름다운 소식의 첫 번째 메시지는 1절 중반절입니다.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그러니까 마음 상한 자를 고치시는 게 바로 메시아가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실 첫 번째 사역이라는 겁니다. 정말 사람 사는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이게 지금으로부터 벌써 2,700년 전 말씀 아닙니까? 그런데 그때도 이미 세상에는 마음의 모든 상처와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죠. 그래서 주님이 성탄하시면 제일 먼저 그 마음 상한 사람들부터 고쳐주신다고 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이사야서 1장 6절 이하를 보면, 그 시대 사람들의 상처와 아픔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온 머리는 병 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끝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매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그런데 여러분, 이게 어찌 그 옛날 이사야 시대만이겠습니까? 그대로 오늘 우리들의 실상이고 적나라한 이 시대의 아픔 아닙니까? 우리의 자화상 아닙니까? 여러분들은 지금 마음의 상처나 아픔이 없으십니까? 남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멀쩡한 척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정말 눈물 흘리지 않고, 피 흘리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더구나 지금은 지구촌 전체가 지난 몇 년간 계속된 코로나로 다 우울증에 빠져 극심한 고통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너나 할 것 없이 다 마음에 큰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도 주님이 이 땅에 새롭게 오시면 바로 그렇게 마음 상한 사람들부터 고쳐주신다고 하니까, 성탄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 소식입니까? 이게 바로 올해도 우리가 주님의 성탄을 반드시 기다리고 준비해야 할 필연적인 이유입니다.
이 이사야서는 42장에서도 이 땅에 오실 메시아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강대는 나약한 잡초인데 그게 또 상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더 쓸모가 없습니까? 우리 같으면 그걸 다시 싸매고 고쳐야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마저도 절대 꺾거나 포기하시지 않고 다시 싸매사 고쳐주신다는 겁니다.
사실 그 상한 갈대가 바로 오늘 우린데, 금방이라도 꺼질 듯 가물거리는 등불이 바로 오늘 우리인데, 주님은 그런 우리를 다시 고치시고 싸매서 되살리신다고 합니다. 얼마나 고맙고 눈물 겨운 말씀입니까? 세상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약하고 상한 자는 절대 용납하지 않습니다. 결국은 소외시키고 왕따시켜서 배제하고 도태시킵니다. 그게 약육강식이고 적자생존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절대 그렇게 하시지 않는다는 겁니다. 여러분, 진심으로 여러분의 그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하고 싶으십니까? 올해도 꼭 성탄하실 주님을 만나 뵙기 바랍니다. 이 대강절을 통해 더욱 자신을 비우고 낮추셔서 반드시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시는 주님을 만나 뵙고 마음의 그 모든 상처들을 다 치유하셔서 보다 밝고 건강한 심령으로, 또 늘 따뜻한 가슴으로 살아가시는 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습니다.
다음은 1절 하반절입니다.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주님이 오시면, 포로된 자,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신다고 합니다. 해방을 주신다고 합니다. 실제 이사야가 이 말씀을 선포할 때는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앗수르의 포로로 잡혀가 노예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또 그로부터 690년이 지나 실제 주님이 성탄하셨을 때는 로마 식민지로 온갖 수탈과 억압을 다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메시아가 오시면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고, 갇힌 자에게 놓임을 주신다는 이 말씀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고 희망이 됐겠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떨까요?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물론 지금 우리는 종도 아니고 노예도 아니고 식민지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내가 정말 자유인인가? 더 이상 그 어떤 것의 종도 아닌가? 하는 물음 앞에 선다면 아마 누구도 선뜻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하실 분들이 흔치 않을 겁니다. 왜 그럴까요?
그게 우리의 엄연한 실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중 과연 몇이나 돈으로부터, 명예로부터, 권력으로부터, 탐욕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우리 중 과연 몇이 두려움으로부터, 온갖 걱정과 염려로부터 ,악습이나 옛 삶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하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또 지금 이 순간에도 병마의 포로가 되어 고통을 겪고 계신 분도 계시지 않습니까? 실은 이게 다 오늘 우리 믿는 자들의 현실적인 아픔이고 모순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신분은 분명 자유인인데 실제로는 결코 자유하지 못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올해도 우리는 꼭 성탄하시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오직 주님만이 나를 그 모든 것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장 36절입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저는 이 말씀을 굳게 믿습니다. 그게 무엇이든 내 삶을 속박하는 악습이든 내 육신과 정신을 결박하는 병마든 주님은 일거에 그 모든 것을 다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또 주님이 우리를 그렇게 자유케 하시면 우리는 누구나 다 진정한 자연인이 됩니다.
부디 올해는 반드시 주님을 만납시다. 그래서 꼭 갇힌 자에게 놓임을 베푸사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게 하시는 주님의 그 아름다운 성탄의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는 성도들 되시기를 진심으로 빌어마지 않습니다.
하나 더 있습니다. 본문 2절 하반절 이하입니다.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죄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슬픈 자들을 위로하시되 화관을 씌워주시고 또 슬픔 대신에 기쁨을 주시고 근심 대신에 찬송을 주신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인생은 참 슬픈 존재입니다. 다들 기쁨 속에서, 보람 속에서 행복하게 웃으며 살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언제나 그 반대지 않습니까 늘 눈물이고 한숨이고 낙담입니다. 정말 단 하루도, 단 한 순간도 근심 없이 슬픔 없이 아픔 없이 사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불행이 뭐라구요? 이제는 어디에서도 위로받을 데가 없다는 겁니다. 살다보면 누구나 때로 슬픈 일을 당하고 절망스러운 일을 겪을 수도 있죠. 그러나 위로받을 데가 있고 또 누군가가 내 곁에서 진심으로 나를 이해해주고 나를 받아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래도 견딜만하고 또 버틸만한데 갈수록 그 부분이 더 어려워지고 더 난감하다는 게 절망스러운 부분이라는 겁니다. 자살하는 사람도 그 마지막 순간 누군가가 곁에서 단 한마디만이라도 진정으로 위로해주고 그걸 이해해주면 극적으로 그 최악의 위기를 넘길 수도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제는 모든 걸 다 자기 혼자서 삭혀야 하고, 자기 혼자서 당해야 하고, 죽도록 모든 걸 자기 혼자서 다 지고 가야 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이토록 각박하고 삭막한 세상에서 누가 과연 우리의 진정한 격려자가 될 수 있을까요? 누가 과연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줄 최후의 위로자가 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은 메시아가 오시면, 주님이 성탄하시면 우리의 그 모든 처지와 아픔을 반전시키사 슬픔을 기쁨으로 근심을 찬송으로 바꿔주신다고 합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을 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보아라.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님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주리라.
여러분, 올해도 성탄하실 주님을 만나시면 누구나 이렇게 근심 대신에 찬송을 하고, 슬픔 대신에 기쁨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성탄의 은총을 베푸시면, 우리도 얼마든지 새로워질 수 있고 또 새 출발할 수 있습니다.
부디 과거 그 어느 해보다 더 간절하고 더 절실한 심정으로 주님의 성탄을 고대하시고 또 준비하셔서 꼭 약속하신 이런 모든 치유와 회복의 은총을 듬뿍 누리시는 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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