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10828m: 여호와 라파(출 15:22-27)

2011년 8월 28일 주일낮예배
본문: 출 15:22-27
제목: 여호와 라파

[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26]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불과 사흘 전에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너며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체험했습니다. 검푸른 홍해가 갈라진 겁니다. 그 가운데 고속도로가 났습니다. 그들을 뒤쫓던 애굽의 전차군단은 완전히 수장되는 통쾌한 모습도 목격했습니다. 지금도 그들의 대열 맨 앞에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앞서가며 인도하고 있습니다. 사막은 낮에는 40도를 넘지만, 밤에는 영하로 떨어집니다. 그래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햇볕을 막아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따뜻하게 하셨습니다. 에어컨과 히터로 보호하신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수르 광야는 시내산과 홍해 사이에 있는 광야인데, 거기엔 물이 귀했습니다. 처음에는 홍해를 건넌 감격 때문에 참았습니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지나도 샘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지쳤고 짐승들도 비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도 사흘째 마라라는 곳에 도착했는데 거기에 샘이 있었습니다. 이제 살았다 싶었는데 그 물은 짜다 못해 쓴 물이었습니다. 그 물을 마시면 복통과 함께 죽기까지 하는 물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때까지 참아온 불평과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모세에 대한 원망과 하나님에 대한 원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극심한 기갈과 쓴 물을 통해 시험하십니다. 우리가 오늘 함께 읽은 본문 25절을 보면 ‘거기에서 여호와께서 시험하셨다’고 합니다. 평안할 때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통과 아픔, 시험이 닥치면 그 사람의 진상이 폭로됩니다. 믿음도 불신도 다 드러납니다. 애굽을 극적으로 탈출하고 하나님의 기적으로 홍해를 건너고, 애굽 군대의 수장을 목격하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을 때는 누구나 할렐루야 아멘, 나는 기뻐요 정말 기쁘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흘을 가도 물이 없으면 본색을 드러냅니다. 더구나 천신만고 끝에 마라에 당도하여 물이 있어 반가운 마음에 그 물을 퍼마셨는데 복통이 나 여러 사람이 데굴데굴 구르기라도 하면 온갖 불신과 원망과 행악이 다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랬습니다. 자신들의 불신앙이 얼마나 심각하고 패역한 본성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여지없이 하나님 앞에 다 보여줬습니다. 

여러분, 마라에서 잘 하셔야 합니다. 쓴 물을 만났을 때 믿음을 보이셔야 합니다. 늘 말씀드립니다만, 예수를 믿으면 만사가 형통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넌센스입니다. 그것은 착각입니다. 오히려 더 힘들어지고 잘 안됩니다. 왜 그럴까요? 그동안 하나님이 별로 간섭을 안했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이 일일이 간섭하십니다. 조금만 잘못하면 치시고, 뭔가를 깨닫게 하시려고 자꾸만 시련을 주십니다. 기회만 있으면 어떻게든 시험하시고 연단하시며 훈련하여 어엿한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려고 하십니다. 그래서 때로는 기갈과 기근으로, 때로는 실직으로, 때로는 모진 병으로, 때로는 대학 입시 실패로 아픔을 당하게 하십니다. 복통으로 데굴데굴 구르게도 하십니다. 이게 다 하나님의 시험이기에 그때에 잘 해야 합니다.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함부로 주시지 않습니다. 받을 채비가 되어야 합니다. 받을 자격이 되어야 합니다. 절대 하나님은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지 않습니다. 시험을 해 보십니다. 확인이 되어야 그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가 은혜 되기 때문입니다. 무턱대고 은혜를 주시면 그게 도리어 욕이 됩니다. 예수 믿으면 만사형통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고의로 아픔을 주십니다.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쓴 잔을 마시게 하니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그들은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모세를 원망했다는 얘기는 하나님을 원망했다는 뜻입니다. 사실 이번만이 아닙니다. 그들은 사흘 전 홍해 앞에서도 대대적으로 모세에게 삿대질하면서 대들었습니다. 출애굽기 14장 11절 이하를 보면 홍해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불만을 터트린 사건이 나옵니다. “[11]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12]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이러면서 그들은 홍해 앞에서 모세에게 대들었습니다. 그때 모세가 무엇이라 했습니까? 13절입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이게 안 됩니다. 가만히 여호와의 구원을 지켜보지 못합니다. 조급하고 경박해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여호와가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모습을 못 봅니다. 그러기에는 우리가 너무도 가볍습니다. 가다가 발목만 삐어도 하나님이 이제 나를 버리셨나보다고 생각합니다. 기도를 해도 자기가 생각하는 것보다 응답이 늦으면 생난리를 부립니다. 혼자서 좌절했다, 실망했다, 하나님을 원망했다 그럽니다.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은 유명합니다. 민수기 11장 4절 이하입니다. “[4]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5]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6]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애굽에 있을 때는 종살이를 했을망정 각종 과일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광야에 나오니 만나뿐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상상할 수 없는 불만을 터트렸습니다. 원색적으로 하나님께 대들었습니다. 

신자들 가운데도 이런 분들 많습니다. 신앙생활이 너무 단조롭다는 겁니다. 아침에도 만나, 점심에도 만나, 저녁에도 만나라는 겁니다. 다양한 걸 즐기고 싶은데, 항상 기도와 말씀, 헌금, 주일성수라는 겁니다. 단조로움이 견딜 수 없는 겁니다. 이러면 정력이 쇠해져서 아무것도 못한다는 겁니다. 차라리 다양한 걸 먹으며, 여러 문화를 즐기며 종으로 사는 게 낫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왜 출애굽 시켰느냐며 모세에게, 하나님에게 대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스라엘의 모습이 더도 덜도 아닌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탓하고 하나님께 혈기를 부렸는데, 모세는 어떻게 했습니까? 오늘 본문 25절을 보면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다’고 합니다. 삶에 위기가 닥쳤을 때 백성들은 원망과 불평으로 지도자에게 대들었지만, 모세는 기도했습니다.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이게 정답입니다. 우리 삶의 여정에 쓴 물이 닥쳤을 때, 복통이 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최선의 방도가 무엇입니까? 모세처럼 기도하는 겁니다. 남을 탓하고 하나님을 탓하며 애굽을 뒤돌아보며 남을 선동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기도가 열쇠입니다. 기도가 해법입니다. 기도로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응답하십니다. 우리가 경박해서 기다리지 못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이해시키며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십니다. 자기가 플랜을 다 짜놓고 하나님께 윽박지를 줄만 알지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응답하실 때까지 인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 기도가 99% 실패합니다. 어떤 기도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확신으로 기도해야 하는데, 그런 확신이 우리에게 없습니다. 이미 불신으로 패배주의에 가득 차서 기도합니다. 

저는 매주 계수위원들이 건네 준 봉투의 기도제목을 챙겨봅니다. 여러 해 전입니다. 한 번은 어느 분이 감사헌금을 하면서 이사야 38장 17절을 적었습니다.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그 아래에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지 네 돌 째 되는 주일이라고 적었습니다. 이렇게 하셔야 합니다. 

보십시오. 모세가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한 나무를 지시하시며 쓴 물에 던지라 해서 던졌더니 그 물이 단물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이 나무는 무엇을 가리킵니까?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하나님의 처방입니다. 십자가를 잡아야 쓴 물이 단물로 변합니다. 십자가가 옛 사람을 새 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입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죽음에서 우리를 살리신 것이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우리 인생의 쓴 잔을 달게 하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처방입니다.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값없이 마시라.’ 갈증을 생수로 해갈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인 십자가, 쓴 물을 마시고 복통으로 죽어가던 사람을 살리는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본문 26절 하반절을 보면 ‘나는 너를 치료하는 여호와’라고 합니다. <여호와 라파>입니다. 처방을 내리며 해결을 하시는 여호와, 수습하시는 여호와입니다. 십자가로 쓴 물을 단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이것이 여호와 라파의 무한하신 은혜요 권능입니다. 의사가 메스로 죽어가던 사람을 살리듯 하나님이 십자가로 죽어가던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쓴 물을 만날 때 십자가를 붙잡아야 합니다. 쓴 잔이 닥쳤을 때 십자가를 의지해야 합니다. 십자가가 하나님이 주시는 절대적인 처방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라파의 또 하나의 중요한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를 그 고통스러운 마라에서 엘림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엘림은 사막의 오하시스요 파라다이스입니다. 샘이 한 두 개가 아니고 열두 개입니다. 종려나무가 한 두 그루가 아니고 70주입니다. 본문 마지막 27절입니다.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감당치 못할 시험을 당하게 하지 않습니다. 능히 그 시험을 감당하게 하시고,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것 같으면 피할 길을 여십니다. 하나님은 마라의 쓴 물 곁에 이미 한 나무를 준비하셨습니다. 처방이 있습니다. 또 마라 가까이에 엘림을 두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요 <여호와 라파>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다 준비하시고 처방도 있으시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메마른 수르 광야를 걸으며 갈증 때문에 고통하십니까? 마라에서 쓴 물을 마시고 복통으로 고통 중에 계십니까? 하나님을 향해 삿대질하고 계십니까? 혹은 아내와 남편을 핑계하고 탓하며 절망하고 계십니까? 제발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이 베푸신 한 나무인 십자가를 붙드십시오. 그래야 쓴 물이 단물이 되고, 우리의 복통이 치유되고, 마라에서 엘림으로 인도됩니다. 엘림은 마라에서 멀지 않은 곳입니다. 불과 8km, 20리, 한나절 거리입니다. 20리를 기어서라도 못가겠습니까? 목마르다고 물이 쓰다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마라에서 주저앉으면 안 됩니다. 사실 쓴 물은 단물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요, 마라는 엘림으로 인도하기 위한 섭리입니다. 마라에서 쓴 물을 마셔본 사람만이 엘림에서 단물을 마시며 감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눈물에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만이 인생을 압니다. 부디 8km 엘림까지만 가면 거기에 오아시스가 있습니다. 가정마다 고단한 수르 광야의 기갈이 깨끗이 해소되고, 쓴 물이 단물로 되고, 마라가 엘림으로 변하는 은혜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설교영상보기: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l0waNLmxHl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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