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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0] 스스로 속이지 말라! (갈 6: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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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예배 기도문>

주님, 

저희들 비록 온라인 예배로 각자 가정에서 주일을 지키지만 올 역시 이렇게 추수감사절을 맞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올해도 많은 아픔과 시련이 있었고 또 위기와 좌절과 큰 시험도 있었습니다. 

각 개인도 가정도, 교회도 사회도 아니, 이 지구촌 전체가 온갖 고통을 다 겪으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저희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어도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고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주님에 대한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과 감사의 고백만큼은 잊지 않도록 성령으로 도와주시고, 슬픔과 고통 속에서 힘들어 하는 이웃들과는 함께 울며 슬퍼할 수 있도록 저희를 주님의 사랑과 연민의 마음으로 가득 채워주시옵소서.

 

주님,

오늘도 환자들을 찾아 가사 안수해 주셔서 모두가 하루 속히 쾌차하게 하시옵소서.

슬픔 당한 자들을 찾아 가사 위로해 주셔서 그 모든 아픔을 잘 이길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온라인 예배조차 여의치 않은 가정들의 사정을 헤아리사 어떤 경우에도 주일만큼은 꼭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말씀을 상고할 때 깨달음을 주시고 주님의 따뜻한 육성을 듣게 하사 말씀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며 결단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언제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를 찾아 하늘의 만복을 베푸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21120

갈 6:6-10

스스로 속이지 말라!

 

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오늘 본문 7절 말씀은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없인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여기 나오는 업신여김이라는 말씀을 전에 개역성경에서 보면, 만홀히 여김이라고 했죠.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말의 원어인 그리스어 “뮈크테리제타이”라는 말은 업신여김이라는 말보다도 어감이 훨씬 더 강합니다. 속이다, 경멸하다, 기만하다, 농락하다, 멸시하다, 우롱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이 말씀의 의미는 자기도 속이지 말고 하나님도 기만하거나 우롱하지 말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무리 교묘하게 하나님을 속이려 해도 하나님은 결코 우리에게 당하실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기만에 빠져서도 안 되지만 절대 하나님도 속이려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사는 게 자신을 속이고 또 하나님을 기만하는 행위라는 것인지 한번 확인해보겠습니다. 

먼저 심은 대로 거둔다는 자연의 법칙,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삶이라고 합니다. 

7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자기가 심은 만큼 거두고 또 뿌린 만큼 수확합니다. 이게 바로 수학불변의 법칙 아닙니까? 또 우리는 이걸 흔히 인과의 원리, 인과의 법칙, 인과율이라고도 합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둔다는 이 인과의 법칙이야말로 성서 이전에 자연의 순리고 또 인간 사이에 가장 보편적인 삶의 원리입니다. 

 

그럼에도 문제가 뭡니까? 현실은 어떻습니까? 모두가 심은 대로 거두고 뿌린 대로 수확한다는 이 자연의 법칙과 창조의 질서를 비웃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심지도 않고 거두려고 하고 또 자기가 심은 것보다 수십 배, 수백 배, 수천 배나 더 거두려고 하고 또 팥 심어놓고 콩을 거두겠다, 콩 심어놓고 팥을 거두겠다며 온갖 편법과 억지를 다 동원한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로소득을 바라고 또 일확천금을 노립니까? 우리 사회에 넘쳐나는 투기꾼 사기꾼 도박꾼들이 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이 수확불변의 원칙을 비웃는 한탕주의자들 아닙니까? 

 

여러분, 이런 사회는 망합니다. 이런 사람은 결코 성공하지 못합니다. 왜요? 그들은 자신을 속이고 하나님을 업신여기며 심는 대로 거둔다는 자연의 법칙과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유린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절대 복되지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은 망한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우리가 주일을 성수한다든가, 주님 일에 헌신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구제를 하고 자선을 하고 봉사를 하고 희생을 하는 일들은 다 축복의 씨앗을 뿌리는 행위입니다. 그럼에도 그런 기본적인 신앙생활조차도 안 하고 기도도 안 하면서 그저 만사가 형통하기만을 바라고 범사에 복 받기만을 바란다면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을 우롱하는 처사입니다. 공부도 안 하고 수능 1등급을 기대하는 것과 꼭 같은 자기기만이기 때문에 명백히 죄가 된다는 겁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는 하나님이 심은 대로 거둔다는 수확의 원리에 얼마나 철저하신 분인가를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랜 여행에서 돌아온 주인이 종들과 결산할 때 한 달란트 받은 종이 나와서 뭐라고 했죠? 주인이여, 나는 당신이 심지도 않은 데서 거두고 뿌리지도 않은 데서 모으는 자인 줄 알고 두려워서 이 한 달란트를 그냥 땅에 감춰두었다가 이렇게 가져왔나이다. 받은소서.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지 어떻게 심지도 않고 거두고 뿌리지도 않고 거둡니까? 이것은 주인을 완전히 날강도나 무슨 사기꾼, 투기꾼, 조폭쯤으로 앓았다는 얘기인데, 얼마나 어이가 없습니까? 얼마나 모욕적입니까? 

 

그래서 주인이 뭐라고 했죠? 너는 내가 심지도 않고 거두고 뿌리지도 않고 모으는 줄로 알았느냐? 주인으로서는 얼마나 억울하고 견디기 힘든 굴욕입니까? 

 

결국 주인은 그 악하고 터무니없는 황당한 종에게 무서운 선고를 내립니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반면에 두 달란트를 심어서 두 달란트를 거두고, 다섯 달란트를 심어서 다섯 달란트를 거둔, 다시 말해 정직하게 심고 거둔 종들에게는 뭐라고 했습니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면서 축복을 선언했습니다. 

 

부디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씀이 여러분의 삶에 큰 신념이 되고 구체적인 실천 강령이 되어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속이거나 하나님을 우롱하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다음은 육적인 것을 심고 영적인 것을 거두려는 삶의 태도가 바로 자기를 속이고 또 하나님을 기만하는 죄라고 합니다. 

본문 8절을 보십시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이 말씀에 의하면 사람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와 성령을 위해 심는 자, 그런데 중요한 것은 육체를 위해 심으면 반드시 썩을 것을 거두게 되고 성령을 위해 심으면 반드시 영생을 거두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거예요. 육적인 것을 심는 사람은 결국 썩을 육적인 것을 수확하게 되고, 영적인 것을 심는 사람은 반드시 영원히 썩지 않을 영적인 것을 수확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지적하는 육체를 위해 심는 자는 누구고 또 성령을 위해 심는 자는 누굽니까? 육체를 위해 심는 자는 세상 사람들을 가리키고 성령을 위해 심는 자는 그리스도인들을 뜻합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둘 다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가리키는 말씀이죠. 즉 같은 교회 성도인데도 어떤 이들은 날마다 육체를 위해 심고 또 어떤 이들은 날마다 성령을 위해 심는다는 것인데, 그게 엄연한 사실이고 현실이라는 겁니다. 

 

그럼 오직 육체를 위해 심는 자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을 가리킬까요?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오로지 자기의 본능대로, 육신의 욕구대로만 사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오로지 육적인 생각과 판단과 삶에만 몰두해서 자기의 모든 시간과 노력과 정력을 다 바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많은 것을 거둡니다. 그래서 겉으로만 보면 대단하고 크게 성공한 것처럼 보이죠. 그러나 그것은 다 육적인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모두 썩고 만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 육적인 그리스도인의 비극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위해 심는 자는 육체의 소욕이 아니라 언제나 성령의 뜻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심습니다. 성령이 주시는 소원과 비전대로 뿌립니다. 그래서 그가 수확하는 것들은 다 영원히 썩지 않을 알곡들이고 또 영생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누구나 날마다 열심히 뭔가를 뿌리고 심습니다. 휴식도 없이 때로는 주일도 잊은 채 몸이 상하도록 애쓰고 수고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꼭 하나 확인해야 할 게 있습니다. 지금 내가 열심히 뿌리고 있는 게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냐는 겁니다. 육체를 위한 것이냐 아니면 성령을 위한 것이냐, 적어도 우리가 믿는 자라면 누구나 이 물음 앞에 한 번쯤은 진지하게 서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훗날 내 모든 걸 다 바치고 수고하고 희생해서 얻은 게 기껏 다 썩어질 것뿐이라면 세상에 그보다 더 허무하고 더 큰 비극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 믿는 자들은 썩지 아니할 영생을 수확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교회 생활을 한다는 것은 곧 더 이상은 육체만을 위하지 않고 영생을 위해 열심히 심겠다고 일종의 다짐을 하고 서약을 한 사람들이라는 뜻 아닙니까? 그렇다면 실제 그렇게 살아야죠. 영생을 거두겠다고 예수 믿으면서도, 여전히 육체만을 위해 심고 육체만을 위해 산다면 그건 전혀 앞뒤가 안 맞지 않습니까? 

 

여러분, 너무 육적인 것, 현세적인 것에 연연하고 오로지 그런 것들만을 거두려 하지 마십시오. 세상을 사는 한 그런 것도 필요한 게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그런 건 아무리 많아봐야 다 썩습니다.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좀 더 영적인 것, 좀 더 영원한 것, 좀 더 신앙적인 것에 눈 뜨시고, 좀 더 영생을 위해 투자하고 심고 뿌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만사는 때가 있는데 그 수확의 때를 무시하고 언제든 거두려 하는 태도가 또한 자기기만이요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무시하는 불신앙적인 태도라는 겁니다. 

본문 9절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게 논농사든 밭농사든 과수 농사든 다 때가 있습니다. 제 철이 있습니다. 그 어떤 작물도 오늘 심어서 오늘 거둘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때를 기다리지 못하죠. 다들 오늘 심고 오늘 당장 거두지 못해서 안 달이고 혈안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하나님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은 엄연히 다릅니다. 우리가 아무리 조급하게 굴어도 하나님의 시간표와 우리의 시간표는 결코 같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조건 하나님의 시간,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시간표대로 움직여주시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시간표에 맞춰야 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시간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내가 일방적으로 정해놓은 시한대로 수확이 안 이루어지면 당장 낙심에 빠집니다. 낙심, 그게 가장 무서운 겁니다. 그래서 본문도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성령을 위해 심는 자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복병이 바로 이 낙심입니다. 여러분들 주변에도 아마 그런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왕년에 한 번쯤 신자 아니었던 사람들 없잖아요. 한때는 누구보다 열심히 믿었는데 지금은 그 사람들이 다 신앙을 떠났습니다. 나름 모두 낙심해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은 분명 그게 성령을 위해 심는 일인데도 때로 낙심이 된다고 합니다. 그게 분명 선한 일인데도 피곤하다고 합니다.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그래서 히브리서는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해 죄인들의 거역하는 일들을 오래 참으신 그리스도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성령을 위해 심는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것은 곧 기약 없는 추수를 위해 외롭게 씨를 뿌리는 행위와도 같습니다. 그러나 그 수고와 희생은 절대 헛되지 않습니다. 때가 이르면 반드시 거두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5장 58절은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여 흔들리지 말며 낙심하지 말고 더욱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의 그 수고가 주 안에서 결코 헛되지 않을 줄을 우리가 앎이라”고 했습니다.

 

부디 외롭고 힘들고 피곤하시더라도 낙심하지 마시고 끝까지 묵묵히 어디서나 성령을 위해 심고 또 기다리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이 예정하신 시간에 모두 값진 보람과 기쁨과 영생을 풍성하게 수확하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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