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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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처음 발표된 이상의 연작시 <오감도>(烏瞰圖)는 독자들에게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
띄어쓰기조차 무시된 채 빡빡하게 연이어진 문장 속에서 열세 명의 아이들이 서로 무섭다며 도로를 질주하는데, 결국 그 길의 끝은 막다른 골목이라고 합니다.
원래 이 시는 30편까지 연재하기로 기획되었으나 게재 첫 날부터 <이런 시를 실을 거면 폐간하라> <미친놈의 헛소리를 시라며 발표한 이상을 죽여야 한다>는 등의 과격한 위협과 항의 전화, 편지가 빗발쳐 결국은 15회로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읽어도 난해하기 짝이 없는데 당시 독자들에게는 더더욱 파격을 넘어 희대의 문제작이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이번 이태원 참사를 겪으며 그 어디에도 출구가 보이지 않았을 일제 식민지하의 <아해>들과 이 시대 <청춘>들의 <오감도>적 절망이 겹쳐 보여 몹시 가슴이 아팠습니다.
<빚투>에 쫓기고 <영끌>에 몰리다 결국 이태원 해밀턴 호텔 옆 막다른 골목에 갇혀 끔찍한 참사를 당한 것은 아닌지 2022년을 살아가는 이 땅 청년들의 고달픈 삶을 다시 한 번 뼈아프게 돌아보게 됩니다.
그래도 그렇지 이게 어떻게 21세기 이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사건일 수 있을까요?
어떻게 서울 시내 한복판을 걷다 도로 위에서 그것도 선 채 압사를 당할 수 있을까요?
넘어지고 쓰러져 희생된 사람도 많지만 선 자세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끼어 압박 질식한 여성들도 적지 않다니...
사람은 갈비뼈 사이에서 근육과 횡경막을 움직여 호흡을 하는데 당시 사망자 중 상당수는 그 흉부 운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마저도 확보하지 못해 이미 선 채로 질식했었다니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인터넷에 올라 온 수많은 추모의 글 가운데 어느 나이 드신 분의 글이 저의 가슴을 때렸습니다.
<젊디 젊은 영혼들이여,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이 늙은이가 갔어야 하는데 이 세상을 지키고 바꿀 너희들을 먼저 보내고 나는 이렇게 살아 있다니...
하나님 앞에 죄스럽고, 너희 보기에 한없이 민망하다. 용서해다오.>
박노해 시인이 쓴 <감사한 죄>라는 시가 있습니다.
<새벽녘 팔순 어머니가 흐느끼신다
새벽기도 중에 나직이 흐느끼신다
나는 한평생 기도로 살아 왔느니라
낯선 서울 땅에 올라와 노점상으로 쫓기고
여자 몸으로 공사판을 뛰어다니면서도
남보다 도와주는 이가 많았음에
늘 감사하며 기도했느니라
내 나이 팔십이 넘으니 이제야
내 숨은 죄가 보이기 시작하는구나
내 처지를 아는 단속반들이 나를 많이 봐주고
공사장 십장들이 몸 약한 나를 많이 배려해주고
파출부 일자리도 나는 끊이지 않았느니라
나는 어리석게도 그런 것에만 감사하며
긴 세월을 다 보내고 말았구나
다른 사람이 단속반에 끌려가 벌금을 물고
일자리를 못 얻어 힘없이 돌아설 때도
나는 바보처럼 감사기도만 바치며 살아왔구나
나는 감사한 죄를 짓고 살아왔구나
새벽녘 팔순 어머니가 흐느끼신다>
그렇습니다.
멀쩡한 어느 가을날 생떼 같은 젊은이들을 어이없이 보내고 난 요즘은 시인의 팔순 노모처럼 짧은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 쉰 기억조차도, 오늘 살아 있음을 감사하는 기도조차도 날카로운 칼에 손을 베인 듯 아프게 와 닿습니다.
8년 전 세월호의 상처도 아직 다 아물지 않았는데 무슨 사연인지 대한민국은 돌고 돌아 또다시 그 자리에 왔고,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는 감사절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남이 우는데 나만 감사하면 그게 축복일까요?
삶을 조롱하고 현실을 비웃으며, 시인의 노모처럼 <감사의 죄>를 짓는 것은 아닐까요?
주님은 <애통하는 자가 복되다>(마 5:4), 바울은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고 했는데 그게 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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