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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20221113] 불의한 청지기의 탁월한 선택 (눅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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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span><span><a href="http://thegreen.or.kr/./files/attach/images/59/837/060/4bf60428c83dfcb1691d31eca6b8ddb8.jpg" class="image-placeholder">1113.jpg</a></span></span></p>

<!-- paragraph:p0002 -->
<p> </p>

<!-- paragraph:p0003 -->
<p><strong><span><span>&lt;온라인 예배 기도문&gt;</span></span></strong></p>

<!-- paragraph:p0004 -->
<p> </p>

<!-- paragraph:p0005 -->
<p><span><span>주님, </span></span></p>

<!-- paragraph:p0006 -->
<p><span><span>오늘도 주일 아침,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자 저희 가족이 주님 앞에 고개를 숙였습니다.</span></span></p>

<!-- paragraph:p0007 -->
<p><span><span>분명 &lt;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다&gt;고 하셨사오니 이 시간도 저희와 함께 하사 이 조촐한 가정 예배가 저희에게는 축복이 되고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게 해주시옵소서.</span></span></p>

<!-- paragraph:p0008 -->
<p> </p>

<!-- paragraph:p0009 -->
<p><span><span>환절기에 감기를 비롯해 이런저런 환자들 있사오니 찾아 가사 안수해 주시고, 이 깊어가는 가을과 다가오는 겨울에도 모두 탈 없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성령으로 따뜻하게 지켜주시옵소서. </span></span></p>

<!-- paragraph:p0010 -->
<p> </p>

<!-- paragraph:p0011 -->
<p><span><span>주님, </span></span></p>

<!-- paragraph:p0012 -->
<p><span><span>벌써 11월 중순입니다. 저희들 더욱 세월을 아끼며 올해도 주님과의 아름다운 연말결산을 위해 끝까지 성실히 살게 하시고 힘껏 기도하며 많은 수확을 볼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span></span></p>

<!-- paragraph:p0013 -->
<p> </p>

<!-- paragraph:p0014 -->
<p><span><span>오늘도 주의 가정들의 형편과 사정을 헤아리사 온라인 예배조차 여의치 않은 가정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어떤 경우에도 주일예배만큼은 꼭 드릴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span></span></p>

<!-- paragraph:p0015 -->
<p> </p>

<!-- paragraph:p0016 -->
<p><span><span>이제 말씀을 상고할 때 주님의 육성을 듣게 하시고 저희 가족 모두가 그 말씀 앞에서 자신을 살피고 결단할 수 있도록 성령으로 충만케 해 주시옵소서.</span></span></p>

<!-- paragraph:p0017 -->
<p> </p>

<!-- paragraph:p0018 -->
<p><span><span>언제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를 찾아 하늘의 신령한 복을 베푸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span></span></p>

<!-- paragraph:p0019 -->
<p> </p>

<!-- paragraph:p0020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a href="https://www.youtube.com/embed/x3qufBCQs4o" title="미디어 원본"></a></span>

<!-- paragraph:p0021 -->
<p> </p>

<!-- paragraph:p0022 -->
<p class="p1"><span><span>20221113</span></span></p>

<!-- paragraph:p0023 -->
<p class="p1"><span><span>눅 16:1-9</span></span></p>

<!-- paragraph:p0024 -->
<p class="p1"><span><span>불의한 청지기의 탁월한 선택</span></span></p>

<!-- paragraph:p0025 -->
<p class="p2"> </p>

<!-- paragraph:p0026 -->
<p class="p1"><span><span>1 <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span></span></p>

<!-- paragraph:p0027 -->
<p class="p1"><span><span>2 <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span></span></p>

<!-- paragraph:p0028 -->
<p class="p1"><span><span>3 <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span></span></p>

<!-- paragraph:p0029 -->
<p class="p1"><span><span>4 <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span></span></p>

<!-- paragraph:p0030 -->
<p class="p1"><span><span>5 <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span></span></p>

<!-- paragraph:p0031 -->
<p class="p1"><span><span>6 <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span></span></p>

<!-- paragraph:p0032 -->
<p class="p1"><span><span>7 <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span></span></p>

<!-- paragraph:p0033 -->
<p class="p1"><span><span>8 <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span></span></p>

<!-- paragraph:p0034 -->
<p class="p1"><span><span>9 <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span></span></p>

<!-- paragraph:p0035 -->
<p class="p2"> </p>

<!-- paragraph:p0036 -->
<p class="p2"> </p>

<!-- paragraph:p0037 -->
<p class="p1"><span><span>여러분은 제가 오늘 소개한 말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8절을 보면 이 옳지 않은 청지기라는 말이 나오죠.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세상에 이렇게 고약한 이렇게 불리한 청지기가 또 있을까요? 이미 주인에게 큰 손해를 입혔기 때문에, 막대한 손실을 끼쳤기 때문에 해고하려고 하는데, 마지막 결산을 앞두고 또다시 황당한 짓을 합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38 -->
<p class="p2"> </p>

<!-- paragraph:p0039 -->
<p class="p1"><span><span>어떻게 했습니까? 자기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다 불러다가 일방적으로 그들의 빚을 탕감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기름 백 말 빚진 자에게는 오십 말, 밀 백석 빚진 자에게는 팔십 석, 그것도 한두 사람이 아니라 5절을 보면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일일이 불러서 다 그렇게 했다는 거예요.<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40 -->
<p class="p2"> </p>

<!-- paragraph:p0041 -->
<p class="p1"><span><span>그 규모도 장난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기름 백 말을 오십 말로 탕감했다고 하는데, 한 고대 문서에 의하면 올리브 나무 146그루에서 백 말, 백 바트의 기름을 짰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십 말의 올리브유를 얻으려면 이런 73그루의 올리브 나무가 필요하다는 얘기니까 얼마나 대단한 규모입니까?<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42 -->
<p class="p2"> </p>

<!-- paragraph:p0043 -->
<p class="p1"><span><span>좋습니다. 그동안은 실수로 본의 아니게 주인께 많은 손해를 끼쳤다고 칩시다. 그럼 그가 마지막으로 택한 이건 또 뭡니까? 왜 그랬을까요? 어차피 자기는 쫓겨날 몸이니까 마지막으로 남에게 선심이나 한번 왕창 쓰자는 얘기입니까? 아니면 자기를 해고하려는 주인에게 그런 식으로 보복이라도 한 겁니까?<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44 -->
<p class="p2"> </p>

<!-- paragraph:p0045 -->
<p class="p1"><span><span>아닙니다. 본문 3절 이하를 보면 그 이유가 이렇습니다.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그러니까 나름 실직한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서 주인의 재산으로 그렇게 자선을 베풀었다는 겁니다. 어처구니가 없습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46 -->
<p class="p2"> </p>

<!-- paragraph:p0047 -->
<p class="p1"><span><span>그런데 더 당황스러운 것은 이 불의한 청지기에 그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짓에 대해 주인이 보인 리액션입니다. 뭐라고 했죠? 8절입니다.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이를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48 -->
<p class="p2"> </p>

<!-- paragraph:p0049 -->
<p class="p1"><span><span>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요? 이미 자기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혀서 해고하려는 청지기가 막판에 또다시 그것도 계획적으로 아주 교활한 속셈을 가지고 대형 사고를 쳤는데도 당장 요절을 내는 대신 뭐라고 했다구요? 지혜롭다며 칭찬을 했다는 겁니다. 참 헷갈립니다. 너무 난해하고 어이가 없습니다.</span></span></p>

<!-- paragraph:p0050 -->
<p class="p2"> </p>

<!-- paragraph:p0051 -->
<p class="p1"><span><span>이어지는 마지막 9절 말씀은 우리를 더 난감하게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직역하면 불의한 돈으로 친구를 사라.<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52 -->
<p class="p2"> </p>

<!-- paragraph:p0053 -->
<p class="p1"><span><span>여러분, 이게 무슨 뜻이죠?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는 말입니까? 목적이 좋으면 수단이나 방법이나 과정은 좀 불의해도 용납된다는 뜻입니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입니까?<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54 -->
<p class="p2"> </p>

<!-- paragraph:p0055 -->
<p class="p1"><span><span>물론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여기서 주인이 그 불의한 청지기를 평가하고 칭찬한 것은 곧 쫓겨날 신세임에도 끝까지 자신의 실직 이후를 준비하는 그 비상하고도 필사적인 모험이 가상하고 또 인상적이라는 겁니다. 사실 주님이 오늘 이 난해한 비유를 말씀하신 목적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본문 8절 하반절입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 여기서 말씀한 이 세대의 아들들이란 바로 이 시대 세상 사람들을 말하고, 빛의 아들들이란 바로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믿는 자들을 가리킵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56 -->
<p class="p2"> </p>

<!-- paragraph:p0057 -->
<p class="p1"><span><span>그런데 문제는 세상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훨씬 더 용감하고 적극적이라는 것, 얼마나 자신의 미래에 대해 악착같고 전투적이냐 하면, 그게 악한 짓이냐 선한 짓이냐, 무슨 정당하냐 부당하냐, 그게 주인에게 손해가 되냐 이득이 되냐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지르고 본다는 겁니다. 그런데 실은 자신의 미래나 장래를 위해 그런 식으로 필사적이고 호전적이어야 할 사람들은 오히려 우리 빛의 아들들이어야 한다는 겁니다.</span></span></p>

<!-- paragraph:p0058 -->
<p class="p2"> </p>

<!-- paragraph:p0059 -->
<p class="p1"><span><span>그건 왜 그럴까요? 빛의 아들들, 믿는 사람들은 현재보다 미래에 사는 사람들이고 현세보다는 내세, 이 세상보다는 오히려 천국에 더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을 종말론적 실존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 세상 종말을 의식하며 늘 깨어 영생을 준비하며 사는 존재들이라는 뜻입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60 -->
<p class="p2"> </p>

<!-- paragraph:p0061 -->
<p class="p1"><span><span>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인생이 전부이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면 그들에게는 내일이 없고 오늘 뿐입니다. 미래나 내세보다도 현재나 현세가 전부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장래를 준비하는 일에 비상하고, 정작 미래에 살고 천국을 준비하며 산다는 믿는 사람들은 너무도 현실 안주적이고 미래에 대해 폐쇄적이고 천국과 영혼을 준비하는 일에 무심하고 소극적이고 태만하다는 겁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62 -->
<p class="p2"> </p>

<!-- paragraph:p0063 -->
<p class="p1"><span><span>오늘 본문의 이 불의한 청지기를 보십시오. 제 돈도 아닌데 주인의 돈으로 몰래 자기의 장래를 준비하고 자신의 미래를 사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내가 직분을 빼앗긴 후에 이 사람들이 나를 자기들의 집으로 영접하리라. 그게 비록 터무니없고 악하고 교활한 짓이지만 이렇게까지 실직 이후 자신의 삶을 준비하고 예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는 거예요.<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64 -->
<p class="p2"> </p>

<!-- paragraph:p0065 -->
<p class="p1"><span><span>물론 우리는 천국을 가고, 영생을 얻기 위해 자선을 하고 구제를 하고 탕감을 해주고 친구를 사귈 필요는 없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은혜와 주님의 성량으로 가는 거지 우리의 선행이나 자선이나 무슨 공덕으로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나그네 생활을 끝내고 천국에 들어가서 누릴 영원한 영광은 철저하게 내가 이 땅에서 미리 준비하고 투자한 만큼만 보장된다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오늘 본문의 이 불의한 청지기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비상한 노력과 결단으로 최선을 다해 준비한 자에게만 영원한 상금이 주어진다고 했습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66 -->
<p class="p2"> </p>

<!-- paragraph:p0067 -->
<p class="p1"><span><span>따라서 오늘 주님의 이 비유는 영생을 소망하며 산다는 사람들이 자신의 영원한 장래를 준비하고 투자하는 일에 오히려 세상 사람들만도 못하고 소극적이고 무책임하다는 사실을 주님이 준엄하게 비판하고 신랄하게 책망하신 말씀이라고 봐야 옳습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68 -->
<p class="p2"> </p>

<!-- paragraph:p0069 -->
<p class="p1"><span><span>고린도전서 15장은 분명 훗날 우리가 천국 가서 누릴 영광이 다 다르다고 했습니다. 해의 영광 달의 영광 별의 영광이 다르고 별과 별의 영광도 다 다르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빛의 아들들의 미래를 위한 준비, 영원한 삶을 위한 투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70 -->
<p class="p2"> </p>

<!-- paragraph:p0071 -->
<p class="p1"><span><span>그 점에 대한 답이 바로 오늘 본문 마지막인 구절입니다. 다시 한 번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72 -->
<p class="p2"> </p>

<!-- paragraph:p0073 -->
<p class="p1"><span><span>우선 여기서 말씀하신 불의한 재물이란 뭘까요? 어떤 재물을 가리킬까요? 무슨 절도나 강도나 뇌물이나 도박이나 투기를 해서 번 돈을 말씀하는 게 아니라 불특정 재물 일반, 즉 이 세상 모든 재화를 뜻합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74 -->
<p class="p2"> </p>

<!-- paragraph:p0075 -->
<p class="p1"><span><span>그렇습니다. 주님은 일단 이 세상 모든 재물을 불의하게 보셨습니다. 불의한 재물로 규정하셨습니다. 물론 재물 그 자체는 악한 것도 선한 것도 아닌 중성적이고 가치중립적인 것이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정의롭게 정당하게 선하게 쓰기보다는 언제나 불의한 방법으로 취하고 불의한 곳에 쓰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칼을 보십시오. 칼 자체는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강도가 남을 해치는 데 사용하면 악한 것이 되고, 의사가 인술에 사용하면 선한 것이 됩니다. 재물도 그런 거라는 겁니다. 나는 아무리 정당하게 벌고 양심껏 부를 축적했다고 해도 이미 이 세상 자체가 구조악이고 나도 그 구조악 속에서 일익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의 도덕성과는 상관없이 이미 이 세상에 유통되는 재화는 다 불의하다는 겁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76 -->
<p class="p2"> </p>

<!-- paragraph:p0077 -->
<p class="p1"><span><span>뿐만 아닙니다. 거기에는 더 본질적인 게 있습니다. 성경은 이 세상 모든 재물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합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빅뱅이 아니라 절대 무로부터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이 세상 모든 재화의 근본과 또 그것에 대한 절대적인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하나님께 이 세상 모든 재물에 절대적 소유권이 있습니다.</span></span></p>

<!-- paragraph:p0078 -->
<p class="p2"> </p>

<!-- paragraph:p0079 -->
<p class="p1"><span><span>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 재물의 주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청지기입니다. 우리는 오너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소유, 하나님의 재물을 시한부로 맡아 관리하는 매니저들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청지기 의식이 없고 오직 주인의식 뿐입니다. 그래서 늘 내 수중의 재물을 내 뜻대로 관리하고 내 뜻대로만 집행합니다. 주인의 뜻을 살피고 주인의 뜻을 물어서 주인의 방침대로 관리하고 써야 하는데 모든 게 다 내 뜻이고 내 마음입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80 -->
<p class="p2"> </p>

<!-- paragraph:p0081 -->
<p class="p1"><span><span>실은 그래서 우리는 오늘 본문의 이 청지기처럼 다 불의한 청지기들입니다. 여러분, 십일조가 뭡니까? 재물에 대한 신앙고백 아닙니까? 내 재물의 십의 십이 다 주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십의 일을 통해 실천적으로 고백하는 행위 아닙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헌금이나 십일조를 바치면서도 마치 내 것을 주님께 적선하듯 합니다. 내 돈으로 주님께 불우이웃돕기 하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는 내 수중의 돈을 결코 주님 뜻대로 쓰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무섭도록 내 뜻대로 씁니다. 그래서 우리는 악하고 불의한 청지기일 수밖에 없고, 우리 수중의 재물도 다 불의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 수중의 재물이 주인의 뜻대로 관리되지 않고 다 내 뜻에 의해, 나의 필요대로 집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82 -->
<p class="p2"> </p>

<!-- paragraph:p0083 -->
<p class="p1"><span><span>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사는 게 미래와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보다 책임적으로 관리하고 천국의 영광을 성실히 준비하는 진정한 종말론적 삶이 될까요? 그게 비록 현실적으로는 불의한 재물일지라도 그것으로 오늘 본문의 이 청지기처럼 친구를 사귀라는 겁니다. 청지기가 채무자들을 불러서 일방적으로 빚을 탕감해준 것처럼 그렇게 모험적으로 자선하며 남을 도우면서 살라는 겁니다. 그리하면 저희가 나중에 너희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고 하는 것은 결국 그게 다 자신의 영원한 삶을 위한 소중하고도 값진 투자가 된다는 뜻입니다.</span></span></p>

<!-- paragraph:p0084 -->
<p class="p2"> </p>

<!-- paragraph:p0085 -->
<p class="p1"><span><span>여러분, 어리석은 청지기는 그냥 날마다 주인의 재물을 허비하지만, 지혜로운 청지기는 그게 비록 교활할망정 주인의 재물로 열심히 친구를 사귑니다.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불러 과감하게 그 부채를 탕감해줍니다. 그 점에서 오늘 본문의 이 청지기는 불의하긴 했지만 지혜로운 청지기였다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은 우리가 다 그렇게라도, 그런 방식으로라도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영생을 준비하는 보다 책임적인 청지기가 되기를 바라신다는 거예요. 주인의 재물을 이용해서라도 자신의 영원한 운명을 보다 모험적으로 비상하게 관리하는 인생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신다는 겁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86 -->
<p class="p2"> </p>

<!-- paragraph:p0087 -->
<p class="p1"><span><span>부디 귀 있는 자들은 들으셔서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께 큰 은혜가 되고 축복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