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억새 이야기

최승호 시인은 <억새는 달빛보다 희고, 이름이 주는 느낌보다 수척하고, 하얀 망아지의 혼 같다>고 했습니다.

 

이 가을, 바람과 햇빛에 온몸을 맡긴 채 솜털처럼 마법처럼 가볍게 자유를 만끽하는 5만 평 억새의 군무를 정선의 민둥산이나 포천의 명성산이 아니라 서울 상암동 하늘공원에서 만나고 왔습니다. 

 

자신을 한없이 비우고 중력에서 풀려난 공기처럼 자유롭게 일렁이는 은빛 자태에서 억새가 빚어내는 가을의 진수를 봤습니다.

더러는 빗질을 한 듯 가지런히 눕고, 더러는 산발을 한 듯 헝클어진 억새의 물결이 거대한 무채색의 추상화처럼 눈앞에서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가을하면 누구나 강렬한 원색의 단풍을 떠올리시겠지만 차고 맑은 대기 속에서 피어나는 억새도 있습니다. 

하늘공원의 흰 억새 바다에서 느끼는 가을의 정취도 참 괜찮았습니다. 

마치 은빛 융단을 펼친 듯한 억새 군락이 파아란 하늘과 맞닿아 연출하는 가을 풍경이 한마디로 장관이었습니다. 

 

 

PYH2022102611320001300_P4.jpg

 

 

 

낮에는 눈부신 은빛으로 반짝이지만 일몰 때가 되면 스러지는 햇살을 받아 황금색 자태를 뽐내며 춤추는데 그 순간이 바로 억새가 가장 빛나는 절정의 순간인 듯 했습니다. 

 

가을이 오면 억새도 깃털 같은 이삭이 패고, 바람이 불 때마다 대궁끼리 서로 부대끼며 흐느끼고, 또 멀리 솜털 같은 씨앗을 흩날립니다. 

그런데 시골 출신인 저도 헷갈릴 만큼 갈대와 억새는 비슷합니다.

둘 다 벼과에 속한 여러 해 살이 식물로 갈대는 주로 물가에서 자라고 억새는 대개 산이나 들에 군락을 이룹니다. 

갈대는 보랏빛을 띤 연갈색 솜털 꽃을 피우지만 억새는 좀 더 매끄러운 느낌의 우윳빛 이삭을 가졌습니다.

 

다정한 친구 사이였던 억새와 달뿌리풀 그리고 갈대가 어느 날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 길을 떠났습니다. 

긴 팔로 춤을 추며 한참을 걷다 어느덧 산마루에 이르렀는데 바람이 심해 갈대와 달뿌리풀은 서 있기조차도 힘들어 했지만 억새는 오히려 그런 환경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와, 시원하고 사방이 한 눈에 들어와 참 좋네. 그래, 난 여기서 살래!>

 

그러나 갈대와 달뿌리풀은 <아니야! 추워서 여긴 싫어. 산 아래로 내려갈래!>하며 억새와 헤어져 산을 내려가다 작은 개울을 만났습니다. 

마침 두둥실 떠오른 보름달이 물에 비취자 달뿌리풀이 <여기가 좋겠어. 난 여기서 저 달그림자를 보며 살거야!> 달뿌리풀은 결국 그곳에 뿌리를 내리기로 했습니다.

 

이제 혼자 남은 갈대가 달뿌리풀과 헤어져 다시 아래로 더 내려가다 저 멀리 바다가 보이는 지점에서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되자 그곳 강가에 터를 잡고 살아가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파스칼은 인간이야말로 가장 나약한 갈대 같은 존재지만 생각하는 갈대이기에 위대하다고 했고,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은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아니하시는 자비의 여호와시라>(사 42:3)고 했는데, 그렇습니다.

 

그게 갈대든 억새든 우리는 다 김수영의 시처럼 <바람보다 더 빨리 눕고 / 바람보다 더 빨리 울며> 스러져가는 가을꽃들에 대한 아픔과 상처를 어루만지며 올해도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와 이 청량한 가을의 정취로 충만해야 합니다.

 

지난 화요일 오후 권 권사님과 하늘공원에서 만난 가을빛은 온통 은빛이었습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 이미지: 원래 주소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