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겪지 않은 허구는 절대 쓰지 않는다

매년 10월은 노벨상 시즌입니다. 

올해도 노벨 문학상 후보는 233명이었는데, 최종 수상의 영광을 안은 사람은 82세의 프랑스 여류작가 <아니 에르노>(Anni Ernaux, 1940. 9. 1 ~)였습니다.

 

스웨덴 한림원은 지난 6일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가 개인적인 기억의 뿌리와 소외, 집단적 사회적 구속을 벗기는 용기와 인상적이고도 꾸밈없는 예리함으로 202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고 그 선정 이유를 밝혔습니다.

 

한림원은 확실히 일반인들의 기대나 문학을 보는 눈과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 노벨 문학상을 받으려면 일단 다음과 같은 조건이 충족돼야 합니다.

즉 무라카미 하루키나 중국의 옌롄커, 미국의 조이스 캐롤 오츠 같이 매년 언론이나 도박사들이 유력하게 점치는 후보들은 배제된다는 것이고, 다음은 대륙 안배 원칙으로 작년에는 아프리카, 재작년에는 미국에서 나왔으니 올해는 유럽이고, 그중에서도 프랑스가 유력했던 이유는 패트릭 모리아노 이후 8년이나 지난 데다 프랑스야말로 역대 노벨 문학상 최대 배출국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면 내년에는 중남미나 이곳 아시아 순인데 저는 이번에도 일본의 하루키에 한 표를 던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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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수상자인 <에르노>는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도 매우 익숙한 작가입니다.

이미 지난 90년대 초부터 민음사, 문학동네, 열림원 등에서 그의 작품들을 꾸준히 번역 출간해 지금까지 무려 17권 이상이나 보유하고 있는, 아마도 노벨상 후보 중 가장 많은 작품이 소개된 작가가 아닌가 싶고, 1995년에는 모 출판사 초청으로 국내를 다녀간 기억도 있습니다. 

 

그녀의 책들은 100페이지 미만 책들이 많고, 1974년에 나온 데뷔작 <빈 옷장>도 200페이지 남짓하여 얇을 뿐 아니라 모든 작품이 다 자신의 체험담이라 독자들의  접근성과 가독성도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벨 문학상 위원회 의장인 안데르스 올손도 <에르노의 작품은 종종 타협하지 않고 평이한 언어로 군더더기 없이 누드처럼 깔끔하게 쓰여진다>고 평했는데, 실제 그녀는 <자신이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는 쓰지 않는다>는 소신 아래 오직 자전적인 탐구와 사회과학적 방식의 글쓰기만을 고집해왔습니다.

 

모든 감정을 배제한 채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마치 남이 객관적으로 분석하듯 담담히 옮기는 게 그녀의 글쓰기 방식입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을 <반감정 소설>이라고도 하고, 또 인간의 욕망과 사회적 편견, 모순을 그 어떤 은유나 가공도 없이 날 것 그대로 전달하는 과정이 때로 너무 선정적이고 적나라해 예술성 없는 <노출증> 환자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으나 이제는 그녀의 이름이 프랑스 문학의 한 장르가 되었습니다.

 

에르노는 1940년 노르망디의 소읍인 이브토에서 태어났고, 루앙 대학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했으며 중등학교 교사를 거쳐 후에는 교수 자격까지 얻어 10년간 대학에서 문학 지망생들을 가르쳤습니다. 

 

프랑스 문학은 참 다채롭습니다. 

베르베르처럼 오직 무한한 상상력만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또 에르노처럼 100% 자신의 체험만을 서사로 엮는 작가도 있습니다.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에르노의 작품만 해도 일곱 권입니다.

 

자기 아버지 이야기인 <남자의 자리>와 <부끄러움>, 자신의 결혼과 이혼 이야기인 <얼어붙은 여자>, 성과 사랑을 독백처럼 얘기한 <단순한 열정>과 <탐닉>, 어머니의 치매와 죽음 이야기를 쓴 <한 여인> 등이 모두 픽션을 거부하고, 오로지 자신의 사회적 경험치와 지극히 사적 체험이 혼합된 자기의 삶을 해부한 글들입니다. 

그래서 <솔직하면 다냐?> <독자들의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열심히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이 무슨 작가냐?>하는 비판도 있고, 저로서도 <문학적 상상력으로 플롯을 창작하는 게 소설이지 철저하게 자신의 경험만을 얘기한다면 그건 소설이라기 보다 에세이라고 규정하는게 더 타당하지 않을까?>하는 의구심도 있지만, 어쨌든  이제 그녀는 인류 문학사의 위대한 작가 반열에 올랐습니다.

 

에르노의 문체는 냉정하고 너무 담담하고 차가워서 꼭 진한 가을을 닮았습니다.

자신의 감정과 서정의 밑바닥까지를 부끄러움 없이 다 드러내는 용기, 마치 어딘가 한 쪽 구석이 텅 빈 것 같지만 또 깊이 사랑하게 되는 묘한 가을이라는 계절처럼 그녀의 삶 역시 쓸쓸하지만 또 처절할 만큼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여정이었습니다.

 

 아직 짙은 가을은 아니지만 곧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을 볼 때쯤이면 에르노를 떠올리며 저도 과연 내 감정에 얼마나 뜨거웠으며 또 얼마나 정직했나를 묻게 될 것 같습니다. 

올 가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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