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가을 미술관

지난 수요일 권 권사님을 모시고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을 다녀왔습니다.

이번에도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으로 마련 된 <모네와 피카소,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관람하기 위해서였는데, 15일 전에 이루어지는 인터넷 사전 예약을 놓쳐 당일 현장 예약 분을 기대하고 좀 일찍 갔는데 주효했습니다.

 

10:30 커다란 1층 원형 전시실에 들어서자 피카소의 도자기 90점이 전시된 중앙 가장자리에 빙 둘러 가로등이 설치돼 있고, 거기에 노란불이 밝았다 어두웠다를 반복하며 마치 19세기, 20세기 프랑스 파리 거리의 가스등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로등 아래는 당시 위대한 예술가들이 서로 대화하고 사교했던 파리의 노천카페처럼 여러 개의 원탁들이 의자와 함께 놓여 있어서 그림이나 도자를 감상하다 언제든 앉아 잠시 나마 쉴 수 있도록 배려한 점도 인상적이었고, 서양 미술사의 전설 같은 이름들인 모네, 샤갈, 고갱, 피카소 등이 활동하던 시절 안개 낀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도 바로 이런 낭만적인 분위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번 <특별전>은 작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가운데서 마르크 샤갈, 살바도르 달리, 카미유 피사로, 클로드 모네, 폴 고갱,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호안 미로 등의 작품 7점과 파블로 피카소의 도자 90점을 소개하는 전시회입니다.

 

사실 일곱 명의 작가가 겨우 1점씩 회화 7점이 전부라 허전하고 뭔가 아쉽지 않을까 우려 했는데 오히려 여유를 가지고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고, 그림 한 점 한 점 앞에서 뜻밖에도 많은 생각을 하시는 듯한 권 권사님의 관람 모습도 보기가 좋아 모시고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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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는 수적으로 그렇게 제한적이었지만 피카소의 도자 작품은 무려 90점에 달했습니다. 

한 사람이 어떻게 세기적 거장의 이색 도자 작품을 이토록 많이 수집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그저 신기하고 감탄스러울 뿐입니다. 

 

아무튼 이번 전시회의 주인공들인 인상주의의 피사로와 모네, 르누아르, 후기 인상주의인 고갱, 초현실주의인 달리와 샤갈, 미로,  그리고 입체파인 피카소 등이야말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의 서양 근대미술사의 흐름을 주도한 거장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시회는 이들이 파리에서 가졌던 다양한 교류와 인간관계에 초점을 맞춰 동선을 구획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구성을 보면 우선 스승과 제자로 만났던 피사로와 고갱의 관계입니다. 

인상주의 풍경화의 대가였던 피사로가 파리 증권거래소 직원으로 일하며 취미삼아 습작하던 고갱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가 화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 돕습니다. 

이번 전시회에 나온 <퐁투아즈 곡물시장>은 그런 피사로의 전성기 걸작이고, <센 강변의 크레인>은 피사로의 지도로 시작한 고갱의 화가 인생의 초기 작품입니다. 

 

다음은 우정과 존경으로 서로를 빛낸 모네와 르누아르의 관계인데, 이 둘은 인상주의 내에서도 누구보다 각별했던 절친이었고 특히 이번에 전시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과 르누아르의 <노란 모자에 빨간 치마를 입은 앙드레>는 그 두 거장의 예술 세계가 서로 응축된 말년의 역작들이었다는 평가를 듣고도 남을 만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피카소와 미로, 달리의 관계입니다. 

이들은 모두 스페인 출신의 작가들이었지만 정작 이들이 함께 만난 곳은 파리였습니다. 

1920년대 초 이미 대가의 반열에 오른 피카소는 자신을 찾아 파리로 온 미로와 달리를 도와 그들로 하여금 결국 초현실주의의 거장들이 되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피카소와 샤갈의 관계입니다.

그 두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진 곳은 파리가 아니라 피카소가 한창 도자기 작업에 열을 올리던 남프랑스 말로니스였습니다. 

샤갈의 회화는 염소와 물고기, 꽃과 악기 연주 등이 뒤섞여 언제나 몽환적인 풍경들을 만들어내는데 샤갈을 만난 이후 피카소의 도자에도 그런 소재와 주제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음을 보면 삶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포착했던 이들의 예술적 교감이 결코 피상적인 수준이 아니었음을 확인해주고 있습니다.

 

피카소의 다양하고도 풍성한 도자 작품들을 열심히 보다말고 권 권사님이 접시 하나를 가리키며 <여기 온 기념으로 작지만 저거라도 하나 사자!>고 하셔서 하마터면 제가 빵 터질 뻔 했습니다. 

 

미술관은 역시 가을에 가장 잘 어울립니다.

같은 가을이라도 미술관 가는 길에서 느끼는 가을은 왠지 다릅니다. 

같은 하늘, 같은 자연이라도 미술관에서 보면 그 느낌이 다릅니다. 

돌아오는 길 미술관 옆 <쌈이맛>이란 식당에 들러 정갈한 점심을 하고 그날 어머니와의 미술관 나들이를 마무리했는데, 정말이지 생각보다는 예술이었습니다. 

 

전시회는 내년 2월까지지만 기왕이면 올 가을, 길게 숲길로 이어지는 미술관 진입로의 단풍이 가장 아름다울 10월 하순 쯤, 꼭 한 번 다녀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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