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걷기> 미학

제게 <걷기>란 <자유>입니다.

몸과 마음과 생각이 가장 자유로워지는 시간입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일이 있어도 걷는 시간만큼은 한없이 평안하고 행복합니다.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걷는 것은 자신을 활짝 열어 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발로 걸어가는 인간은 모든 감각 기관의 모공을 최대한 열어 능동적 형식의 명상에 빠져든다. 그래서 돌아올 때는 가끔 사람이 달라져 당장의 삶을 지배하는 다급한 일에 매달리기보다 시간을 그윽하게 즐기는 경향으로 바뀌곤 한다.>

 

뇌 박사요 <뇌는 춤추고 싶다>의 저자인 장동선도 <당신이 뇌에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지금 당장 일어나 걷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걸으면 호흡이 변하고 고요했던 심장의 박동 리듬이 활성화되면서 두뇌 활동도 그만큼 왕성해진다는 것입니다. 

니체는 <사람은 걸으며 생각한 것만 가치가 있다>고 했고, 히포크라테스는 <걷기야말로 가장훌륭한 약>이라고 했는데 실제 우울증 치료와 치매 예방에 걷기보다 더 좋은 처방은 없다고 합니다. 

 

걷기는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유산이요 원초적인 축복입니다. 

인류는 직립보행을 하면서 문명을 일으켰고, 멀리 내다보며 걷는 동안 동물과는 다른 발상과 사고를 발전시키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스크린샷 2022-09-30 09.29.46.jpg

 

 

저는 하루 만보 이상을 걸은 지가 올해로 7년째입니다.

당연히 건강을 위하고 체중 관리를 위해 시작한 것이지만 걷기의 묘미를 알고부터는 안도감과 평안함에서 오는 희열과 전율을 느끼기도 하고, 또 그것이 뜻밖에도 독서와 습관, 철학, 문학, 음악, 신학과도 연결되는 퍽이나 인문학적이고도 신앙적이기까지 하다는 사실을 깨닫고부터는 더욱 감사하며 즐기게 되었습니다. 

 

걸으며 자연과 계절을 느끼고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되새김질하기도 하면서 금주 주보에 실릴 칼럼 주제며 설교 제목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발상이 떠오르면 즉각 휴대폰 메모장에 기록도 하고, 음성 녹음으로 담아뒀다가 필요할 때 재생하기도 합니다. 

 

저는 걸으며 수없이 하늘을 쳐다봅니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부터 솜처럼 떠 있는 하얀 구름이며 한 무더기 탐스럽게 피어오르는 뭉게구름, 잔뜩 석양빛을 머금은 붉은 구름, 때로는 온통 검은 먹구름까지를 다 즐기며 거의 날씨와는 상관없이 걷습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기꺼이 우산을 쓰고 걷는데, 또닥또닥 우산에 비 떨어지는 소리조차 도 마음을 한없이 아늑하게 합니다.

 

다비드 르 브로통은 걷는 사람에게는 인생이 진지하다고 합니다. 

지금은 진지하지 않은 한 누구도 걸어야 할 이유가 없는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그 옛날 아테네의 <테스형>도 주로 제자들과 함께 걸으며 사색하고 토론했는데, 사람들은 그들을 <소요학파>, 즉 <페리파토스 학파>라고 불렀습니다. 

<페리파토스>란 그리스말로 <산책길>이란 뜻입니다.

주님의 가장 빼어난 가르침도 <산에 올라가사...>(마5:1)로 시작되는 <산상수훈> 아닙니까? 

 

매일 오후 5시면 산책에 나섰던 칸트의 걷기도 유명합니다. 

너무도 규칙적이어서 그가 살던 쾨닉스베르그 사람들이 그의 산책 시간에 시계를 맞췄다고 하잖습니까? 

아인슈타인도 하루에 꼭 2.4km를 걸었고, 우리나라의 퇴계 선생도 당시의 양반 문화와는 달리 걷기를 즐겼는데, 안동시가 그가 걸었던 퇴계 종택에서 봉화 청량산 방향으로 뻗은 길을 <퇴계 오솔길>로 지정해 잘 조성해 놓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정말 걷기 좋은 천혜의 환경을 가졌습니다.

전국 어디서나 20-30분이면 산이나 숲, 강, 바다 같은 자연에 가 닿을 수 있는데, 최근에는 동해의 해파랑길, 남해의 남파랑길에 이어 서해랑길까지 열려 삼면에 푸른 바다를 품은 한반도를 한 바퀴 빙 둘러 걸을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행여 생활이 지루하거나 일상이 권태롭고 하루하루의 삶이 고단해 지치셨다면 걸으십시오. 

하늘이 티 없이 맑고 햇볕에 영근 가을이 성큼 당신 앞에 다가와 있으니 그저 집을 나서 걷기만 하면 됩니다. 

어제와 오늘이 또 다른 계절의 변화도 감상하시고, 탄천이든 지천이든 물 흐르는 소리며 맑고 파아란 하늘빛도 만끽하시며 자신에게 보약 같은 가을 산책을 꼭  선물하십시오. 

 

아름다운 믿음의 여정인 순례도 걷기를 통해 드리는 가장 맑고 순수한 기도에 다름 아닙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 이미지: 원래 주소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