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18] 추수 때까지 두라! (마 13: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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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예배 기도문>
주님,
오늘도 저희 가정 온라인 예배를 드리며 이렇게 주일을 지키고자 합니다.
예배의 영이신 성령으로 함께 하사 신령과 진정의 산제사를 드리기에 부족함이 없게 해주시옵소서.
주님,
이제 이른 추석이 지나고 곡식들이 더욱 알차게 익어가는 가을에 들어섰습니다.
저희들의 믿음도 이 추수의 계절을 맞아 풍성하게 열매 맺으며 더 깊이 성숙해 가도록 역사해주시옵소서.
말씀과 기도를 가까이 하는 일에 태만하지 않도록 늘 성령으로 깨우쳐 주시옵소서.
오늘도 환자들을 찾아 가사 안수해 주시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가정예배 조차 함께하지 못하는 성도들을 기억하사 위로하시며 격려해 주시옵소서.
지난 번 태풍으로 수해 당한 이웃들도 불쌍히 여기사 하루 속히 복구하고 회복할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말씀을 상고할 때 주님의 뜨거운 육성을 듣게 하사 큰 은혜와 깨달음을 얻게 해주시옵소서.
언제나 저희 가정을 돌보시며 하나님을 예배하므로 아름다운 축복을 누리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20918
마 13:24-30
추수 때까지 두라!
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여러분, 선하신 하나님 아니 절대 선하시다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에 왜 이렇게 악이 넘쳐나고 말도 안 되는 부조리가 횡행할까요? 일찍이 구약의 하박국 선지자도 바로 그런 모순 때문에 참 많이 힘들어 했죠. 뭐라고 했죠? 하나님, 하나님은 온 세상과 이 우주를 가장 아름답게 가장 완벽하게 가장 선하게 창조하시고 지금도 역사의 주인으로서 친히 이 세상을 통치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또한 하나님이야말로 절대 공평하시고 공의로운 분 아니십니까? 그런데 어째서 세상에는 불의가 넘쳐나고 의인들은 고난을 당하는데 악인들은 도리어 득세하며 영화를 누리는 겁니까? 그런데도 하나님은 어째서 이런 불의하고 모순의 찬 세상을 심판하시지 않고 그냥 지켜만 보고 계십니까?
이게 바로 하박국 선지자의 탄원이요 하소연이었는데 욥기도 그렇습니다. 특히 욥의 아내는 대놓고 하나님을 비웃으며 자기 남편에게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했습니다. 왜요? 하나님이 선하시다면 어째서 동방의 의인이라는 당신에게, 하나님조차도 의인이라고 공인한 당신에게 이럴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욥은 당시로서는 재벌이었습니다. 그런데 갈대아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을 다 약탈해 갔습니다. 열 명의 자녀들도 태풍에 집이 무너져 한 자리에서 다 죽었습니다. 욥 자신도 머리에서 발끝까지 종기가 나서 기와 조각으로 그 피부를 긁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절규하며 하나님은 선하시기는커녕 잔인한 신이라며 욥에게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강요한 겁니다. 그러고 자기는 가출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원한 수수께기입니다. 또 그동안 철학과 신학과 문학이 수없이 제기해온 참 오래된 주제입니다. 특히 비극적인 자연재해나 코로나 같은 치명적인 감염병 재앙이 닥치거나,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말도 안 되는 살상 사건이 터질 때면 더욱 집중적으로 제기돼 온 문제였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지금 어디 계시며, 왜 이런 비극과 모순을 그냥 지켜만 보고 계시느냐는 겁니다.
이것을 우리가 교리적으로 신정론이라고 합니다. 신정론(神正論), 영어로는 Theodicy, 독일말로는 Theodizee라고 하는데, 이것은 다 하나님을 뜻하는 헬라어 데오스와 정의, 의로움을 뜻하는 디케이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변증하는 학문, 그게 바로 Theodizee라고 하는 신정론이라는 겁니다.
오늘 본문도 보십시오. 27절입니다.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나이까” 농장 주인은 분명 최고로 좋은 종자를 사다가 밭에 뿌렸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종들이 보니까, 뿌리지 않은 가라지가 알곡과 함께 자라고 있더라는 거죠.
가라지란 벼와 함께 자라는 피나 보리와 함께 자라는 깜부기 같은 겁니다. 종들이 주인에게 당장 저 못된 가라지를 뽑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주인이 뭐라고 했습니까? 뽑지 말고 둘 다 추수 때까지 가만 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추수 때에 가서 내가 종들에게 명하여 알곡은 곳간에 넣고 가라지는 베어 불속에 던지겠다고 했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은 30절로 끝나지 않고 36절 이하에서 다시 이어지는데, 거기 보면 제자들이 주님께 아까 그 가라지 비유를 설명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주님은 좋은 씨를 뿌린 이는 인자, 곧 주님 자신이고, 밭은 이 세상이고, 좋은 씨란 천국의 아들들이고, 가라지란 악한 자의 아들들이고, 가라지를 뿌린 원수란 마귀요, 추수 때란 세상 끝, 또 추수꾼은 천사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40절 이하에서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이 세상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그리고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니 귀 있는 자들은 들으라” 그러니까 지금은 함께 섞여 사는 알곡과 가라지의 운명이 추수 때 가서는 극명하게 갈린다는 겁니다.
그럼 여기서 이제 몇 가지 중요한 수수께끼를 한번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왜 밭에는 심지도 않은 가라지가 나고 또 이 세상에는 선보다 악이 득세하는가 하는 겁니다. 실제 밭에서 작물을 재배해 보신 분들은 다 압니다. 잡초들 등살에 농사 짓기가 쉽지 않습니다. 심지도 않은 잡초들이 정성스럽게 심고 가꾸는 작물보다 훨씬 더 잘 자라고, 뿌리도 더 깊고 더 넓게 뻗습니다. 잡초들의 생명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농사는 그야말로 잡초들과의 전쟁입니다.
그런데 세상도 마찬가집니다. 악이 선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파괴적이고 공격적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루가 멀다 하고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지금도 어디선가 말도 안 되는 부조리한 일들이 끊임없이 발생하면서 우리 사회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주 좌절하고 회의에 빠지고 또 시험에 들기도 하면서 계속 그런 의문을 품게 되지 않습니까? 진짜 하나님이 계실까? 정말 하나님은 잔인한 분이 아니시고 선한 분이실까? 정말 공명정대하시고 공평무사하신 정의로운 신이실까? 세상이 갈수록 부조리해지고 불합리해지니까 자꾸만 그런 회의가 드는 겁니다.
제가 전에도 그런 예화를 들지 않았습니까. 제가 잘 아는 교회 얘깁니다. 평생 예수를 잘 믿고 그날도 교회 주방 봉사를 한다며 일찍 교회에 가시던 장모님이 그만 교회 앞 사거리에서 뺑소니 사고로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결국 사위가 그 교회를 떠났습니다.
원래 하나님이 처음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는 보시기에 좋았더라며 매우 감탄하실 만큼 정말 완벽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뿌리지도 않은 가라지가 나고 독하고 악한 잡초들이 득세하면서 이렇게 모순의 찬 세상이 되고 말았느냐는 거죠.
그 물음에 대해 주님이 뭐라고 답하셨습니까? 본문 25절입니다.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그러셨습니다. 28절에서도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그러셨습니다.
그런데 알곡 가운데 그렇게 몰래 가라지를 뿌리고 간 원수의 정체가 뭐라구요? 39절을 보면 마귀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마귀가 바로 주인의 아름다운 밭에 가라지를 뿌린 주범입니다. 마귀가 바로 좋은 씨만 뿌린 주인의 밭에 몰래 와서 가라지를 뿌려 불신과 아픔을 조장하고 온갖 부조리와 모순을 야기한 진정한 원수입니다.
맞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알곡을 뿌리시듯 마귀도 주인의 밭에 몰래 가라지를 뿌립니다. 이제 왜 심지도 않은 가라지가 나고 코로나며 전쟁 같은 독초 잡초가 나는지 아시겠습니까? 마귀가 알곡들을 해치고 이 세상에 평화를 유린하며 자신의 어두운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그렇게 계속 모순과 부조리와 온갖 비극과 아픔의 씨앗을 뿌리는 겁니다. 그게 바로 이 세상 악과 모순의 기원이자 비밀입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가라지에 대한 주인의 대응, 주인의 처분을 한번 보겠습니다. 종들이 당장 저 못된 가라지들을 다 뽑아버리겠다고 하자, 주인이 뭐라고 했다구요? 놀랍게도 그렇게 하라가 아니라 추수 때까지 가만 두라였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그것도 하루 이틀도 아니고, 추수 때까지, 즉 세상 끝날까지 그냥 두라고 합니다.
실은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고 이해하기 어렵게 하고 시험에 들게 하는 게 바로 이 대목 아닙니까? 아니 당장 뽑아버려도 시원치 않을 마당에 추수 때까지 다른 알곡들과 함께 자라도록 두라니요? 도대체 그 이유가 뭡니까?
29절 하반절입니다. “괜히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여러분, 절대 오해하지 마십시오. 주인이 가라지를 그냥 두라고 한 것은 결코 가라지에 대한 배려, 가라지에 대한 호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알곡을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왜 주인인들 당장 이 세상 모든 악을 소탕하고 싶지 않으셨겠습니까? 그런 마음은 종들보다도 오히려 주인이 더 간절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다가는 자칫 알곡들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가라지는 알곡보다 더 깊이 뿌리를 내리고 더 넓게 퍼져 있기 때문에, 가라지를 없애기 위해 뿌리 채 뽑다가는 필연적으로 다른 알곡들이 함께 뽑혀서 본의 아닌 큰 피해를 유발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가라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알곡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 알곡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그렇게 둘 다 추수 때까지 가만 두라. 추수 때 내가 추수꾼들에게 명하여 가라지는 거두어 불사르게 하고 알곡은 모아 곳간에 넣게 하리라고 하신 겁니다.
주인의 그런 판단, 주인의 그런 처분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가라지의 운명이나 이 세상 모든 모순과 부조리의 최후는 이미 판결이 났습니다. 그들은 다 추수 때까지라는 시한부입니다. 그러나 추수 때까지는 우리 중 누구도 가라지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마귀의 자식들과 함께, 온갖 모순과 부조리와 함께,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이나 전쟁 같은 죽음의 공포와 함께 부대끼고 경계하며, 서로 갈등하며 때로는 피 흘리며 사는 것, 그것이 알곡의 숙명입니다. 이미 주인이 추수 때까지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게 두라고 하셨기 때문에 더는 어쩔 수 없습니다.
어쨌든 그게 우리를 사랑하시고 늘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입니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의 그 심오한 뜻을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궁극적으로는 그게 보다 우리를 위한 것이고, 보다 우리에게 복이 되는 조치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피할 수 없이 죽을 때까지는 가라지와 함께 살아야 하는 운명이라면 이제 어떻게 해야 내 자신을 지키고 또 가라지로부터 우리 가정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 25절을 보십시오. 원수가 언제 주인의 밭에 가라지를 뿌리고 갔다고 합니까? 사람들이 잘 때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귀는 늘 사람들이 잘 때 나쁜 짓을 합니다. 마귀는 야행성입니다. 항상 어두움을 틈타 사람들이 잘 때 주인의 밭을 유린합니다. 사람들이 잘 때 그 영혼에 악한 가라지를 뿌리고 갑니다. 가족들이 다 깊은 잠에 떨어졌을 때 그 가정에 몰래 가라지를 뿌리고 갑니다.
성도들이 깨어있지 않고 다 잘 때 그 교회에 몰래 가라지를 뿌리고 갑니다. 국민들이, 시민들이 다 깊은 잠에 떨어졌을 때 그 사회, 그 나라에 가라지를 뿌립니다.
그래서 누구나, 어떤 가정이나 깨어 기도하지 않고 깊은 잠에 떨어지면 반드시 당하게 돼 있습니다. 근신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면 무방비로 마귀의 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도적은 사람들이 잘 때 침입하잖아요. 마귀가 바로 그런 도적의 수괴입니다. 성도들이 잘 때 와서 그 영혼을 훔쳐갑니다. 그래서 성경은 늘 깨어 있으라 혹은 깨어 기도하라, 다 성령 충만하여 깨어 기도하면 우리가 무섭고 강해서가 아니라 성령이 무섭고 강하시기 때문에 마귀가 절대 손을 대지 못하고 우리 안에 함부로 가라지를 뿌리지 못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마귀의 목표는 어떻게든 알곡들을 넘어뜨리는 데 있습니다. 알곡을 불행하게 하고 실패하게 해서 하나님의 곳간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잘 기억하십시오. 마귀는 알곡을 가라지가 되게 하지는 못하지만 넘어지게는 합니다. 41절을 보십시오. 주님이 마귀를 모두 넘어지게 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마귀는 치명적인 재앙으로 또 깊은 잠에 빠지게 하여 우리를 넘어지게 합니다. 그래서 늘 깨어있어야 하고, 근신해야 하고,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알곡들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안도할 수 없습니다. 혹 내가 잘 때 도적이 들지 않을까, 마귀가 와서 가라지를 뿌리고 가지는 않을까, 내가 잘 때 내 영혼을 훔쳐가고 우리 가정을 유린하지는 않을까, 늘 경계하고 자신을 잘 관리하며 근신해야 합니다. 어차피 추수 때까지는, 세상 종말까지는 가라지와 함께 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시고 늘 영적으로 긴장을 늦추지 않고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추수 때까지만 견디면 그 다음부터는 가라지 없는 세계, 더는 그 어떤 모순도 부조리도 아픔도 고통도 갈등도 전쟁도 재앙도 없는 아버지 집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영원한 보장이 주어져 있습니다.
부디 그런 천국의 소망을 늘 가슴에 품고 오늘의 시련과 아픔을 다 견디시며 이기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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