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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span>세상에서 가장 슬픈 병, 날마다 조금씩 소중한 추억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억에서 지워가는 병, 그리고 마침내는 자신과도 점점 멀어지는 고약한 병.</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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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치매는 누구도 발병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비가역적인 병이어서 무섭고 또 희망이 없습니다. 아직 치료제조차 없고, 다만 비약물이나 혹은 약물 처방으로 다소 그 진행을 늦추고 조금이라도 그 증상을 완화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할 뿐인 병입니다.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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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흔히 사람들은 치매를 &lt;예쁜 치매&gt;와 &lt;미운 치매&gt;, &lt;착한 치매&gt;와 &lt;나쁜 치매&gt;로 구분합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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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젊은 시절 전전두엽을 충분히 사용하고 좋은 경험을 많이 축적한 사람은 순하고 &lt;예쁜 치매&gt;로 가고, 나쁜 기억들이 많고 늘 불안정한 환경에서 지낸 사람들은 화를 잘 내고 툭하면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lt;미운 치매&gt;로 간다고들 합니다. 즉 같은 치매라도 환자 본인도 덜 망가지고, 가족들에게도 피해나 부담을 덜 주면 그건 &lt;예쁜 치매&gt;, 그 반대의 경우면 &lt;미운 치매&gt;라는 것입니다.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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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그러나 어차피 나이든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며 피하고 싶어 하는 불치병인데 &lt;예쁘거나 밉고&gt; &lt;착하거나 나쁘다&gt;는 분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권 권사님의 경우 아직은 전자이신 것 같습니다. 좋은 경험이나 좋은 환경과는 거리가 먼 고되고도 험난한 길을 살아오셨지만 매사에 긍정적이신 성격과 믿음 덕분인지 아직은 예쁘고 착한 수준을 유지하고 계십니다.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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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 href="http://thegreen.or.kr/./files/attach/images/64/755/060/7911544192b8cf4dfa8e4910e29c064b.jpg" class="image-placeholder">dandelion-463928_1280.jpg</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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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권사님은 지금도 매일 새벽 3:30 칼처럼 일어나셔서 무릎을 꿇고(관절에 무리가 가니 그냥 앉아서 기도하시라고 권해도 소용없습니다)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자식들 손주들을 위해 꼭 1시간 반 동안 기도하십니다. 평소 누구보다도 강인하셨고, 홀로 지내시는 데도 익숙하셔서 외로움 따위는 모르고 사시는 분처럼 보이셨을 뿐 아니라 늘 &lt;성경 읽고 기도하는데 뭐가 심심해?&gt; 하셨던 분이셨지만 이제는 하루하루 눈에 띄게 시들어 가고 계십니다.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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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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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그래도 저는 &lt;늙으면 다 그렇지!&gt;라는 말로 퉁치며 권 권사님의 치매기를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제는 꼼짝없이 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단계까지 온 것 같습니다.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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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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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뭐든 꼭꼭 갈무리를 하십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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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마치 두 번 다시 쓸 일이 없다는 듯 깊이 숨기시고 그걸 다시 찾는 일을 날마다 반복하십니다. 어느 샌가 동네 산책도 귀찮아하시며 제 강요에 못 이겨 겨우 30-40분 집 주위를 서성대다 오시는 게 거의 유일한 외부활동이십니다.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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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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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좀 전에 물었던 것을 처음인 듯 돌아서서 다시 묻는 일은 다반사고, 창문을 열려고도 않지만 열린 문은 강박적으로 다시 닫곤 하십니다. 컴컴한 방안에서 혼자 TV를 보시는 게 유일한 낙이 되셨고, TV 출연자들이 하는 말을 자기에게 하는 말로 착각하시며 TV와 대화를 많이 하시기도 합니다.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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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 paragraph:p0024 -->
<p><span>작년에 개봉한 영화 &lt;더 파더&gt;(플로리앙 젤러 감독)는 너무도 충격적인 치매 영화입니다.</span></p>

<!-- paragraph:p0025 -->
<p><span>안소니 홉킨스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영화로 치매 환자의 혼란과 흔들리는 시선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따라간 감독의 연출이 가히 독보적입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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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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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치매에 걸린 아버지는 애처롭고 이를 대하는 딸(올리비아 콜맨)은 안타깝습니다.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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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함께 살 수도, 안 살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span></p>

<!-- paragraph:p0029 -->
<p><span>그 영화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그로 인해 고통 받는 가족들의 모습을 가장 현실적으로 묘사합니다.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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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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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너무도 사랑하지만 미워하게 되는, 미워하고 싶지만 또 그럴 수도 없는 아버지를 향한 가족들의 시선은 따뜻하면서도 또 몹시 차갑고 냉정합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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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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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lt;내 잎사귀가 다 지는 것 같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도통 모르겠어&gt;하며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관객들은 다 가슴이 무너져 내립니다.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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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결국 요양원으로 향하는 아버지, 영화의 엔딩은 요양원 밖의 따사로운 햇살과 푸른 나무를 비춰주며 끝을 맺습니다.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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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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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오늘도 현관 열쇠를 잃어버리고 벌써 몇 시간째 찾고 계시는 권 권사님을 보면서 시간도 공간도 가족도 사람도 모두 헝클어져 뒤죽박죽이 된 현실 앞에서 괴로워하던 영화 &lt;더 파더&gt;의 안소니 홉킨스가 생각나 괴로웠고, 또 이 모든 진행 과정을 빤히 지켜보면서도 마땅히 손 쓸 방법이 없다는 게 더욱 마음을 무겁게 하는 주말입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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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 paragraph:p0039 -->
<p><span>여든 여섯, 저로서는 여전히 안타까운 연세이신 권 권사님을 위해 기도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span></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