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다윗과 밧세바

사무엘하 11장은 다윗이 암몬과의 전쟁에 요압을 대신 내보내고 자신은 그냥 왕궁에 남아있었다고 전합니다(1절). 언제나 군대를 진두지휘하며 온 몸을 전장에 던져 온 그였기에 이런 모습은 뜻밖입니다. 승리를 거듭하면서 자만에 빠진 것인지 아니면 슬슬 꾀가 나 몸을 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하여간 이스라엘 군이 랍바를 포위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현장으로 달려가기는 커녕 <저녁 때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의 옥상을 거닐었다>(2절)고 합니다. 문제는 거기서 벌어졌습니다. 자신의 군대는 지금 최전방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데 정작 그는 그 옥상에서 어느 목욕하는 여인의 모습을 훔쳐보며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도 목석이 아닌 바에야 왜 여인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끌리지 않았겠습니까마는 그쯤에서 멈춰야 했을 일을 기어이 사람까지 보내어 그녀가 누구인지를 알아내게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아둘람 굴에서 지낼 때 동지가 되었고 지금은 그의 휘하에서 충직한 지휘관으로 복무하고 있는 우리아의 아내로 밝혀졌습니다. 다윗은 결국 그녀를 자신의 처소로 불러들입니다. 우리아가 전쟁터에서 왕과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을 때 그의 동지요 왕인 다윗은 안락한 왕궁에서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에 대해서도 말이 많습니다. 후에 자신의 소생인 솔로몬을 왕으로 등극시키기 위해 벌인 권력투쟁의 과정을 보면 가히 우리 역사의 장희빈에 비견될만한 인물이었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이미 왕궁 옥상에서 빤히 내려다 보이는 지척에서 왕의 산책시간에 맞춰 목욕을 했다는 자체가 계획적으로 다윗을 유혹했다는 혐의로부터도 자유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다윗과 동침한 후 잉태하자 재빨리 그 사실을 다윗에게 알리는 장면도 용이주도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은 밧세바가 임신한 아이를 우리아의 씨로 위장하기 위해 급히 일선의 우리아를 왕궁으로 불러 어떻게든 집으로 돌아가 아내와 동침하도록 유도하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맙니다. 전선의 동지들과 부하들을 생각해 굳이 가정을 사양하고 왕궁 문간방에서 잠을 청한 우리아의 충정이 다윗의 그 계략을 무산시킨 겁니다. 다윗은 더욱 가공할 음모를 꾸밉니다. 우리아를 홀로 격전지에 내세워 고의로 전사케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그 명령서를 우리아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 전달하게 했고, 요압은 다윗의 살해모의대로 그렇게 우리아를 희생시켰습니다. 훗날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질타 앞에서 처절하게 회개하므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은 면하지만 그러나 값비싼 대가는 치러야 했습니다. 불륜으로 얻은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죽었고, 딸 다말은 이복 오빠인 암논에게 겁간을 당했으며, 또 아들 압살롬의 쿠데타로 피난길에 나서며 피눈물을 흘렸는가 하면 말년에는 아들들끼리 벌이는 골육상쟁도 수습하지 못한 채 가버린 무력한 아버지로서의 인생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사람이란 때로 욕망에 불탈 수도 있습니다. 해가 기울면 남의 눈을 피해 음모에 가담하고 싶은 충동에 붙잡힐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어두움이 깔리기 시작하면 숨겨져 있던 죄의 본능이 꿈틀거리며 화려한 저녁 불빛에 속아 덥석 유혹의 덫을 붙잡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기까지도 여전히 그런 어두움의 삶을 고집하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사무엘하 11:14은 <아침이 되매>라고 적으며 다윗이 아침까지도 여전히 우리아 살해음모에 몰두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처서가 지났습니다. 욕망의 계절인 끈적끈적한 여름이 이제 물러갈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한낮의 무더위는 여전하지만 절기는 속일 수 없습니다. 벌써 새벽 공기는 서늘하고 풀섶은 쓰르라미와 귀뚜라미 소리로 가득합니다. 아침이 오듯 그렇게 가을이 다가 온 것입니다. 뜨거움 속에 현혹됐던 지난 여름의 <마법의 주문>에서 풀려나 모두가 새롭게 긴장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