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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토요일(3일) 오후 용산의 삼일교회에서 열린 <웨슬리 웬트워스 선교사 환송예배>에 참석하고 돌아왔습니다.
제가 웨슬리 선교사님을 처음 만난 건 1989년 가을 장신대에서였습니다. 어떤 목사님의 소개를 받았다며 광장동 장신대로 저를 직접 찾아오셔서 영문서적 한 권과 번역서 2권을 건네시며 신학생들에게 꼭 소개해 달라고 하셨고, 주로 기독교 세계관, 역사관에 관한 말씀을 하시며 자신의 연락처까지 또박또박 적어주셨습니다.
그때가 마침 점심시간이라 제가 학교 앞 식당으로 모시려하자 굳이 구내식당에서 학생들과 함께 드시겠다고 해 그렇게 소박한 점심 한 끼를 같이 했는데, 그 후 1995년 제가 푸른교회를 시작할 때도 창립예배에 참석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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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님은 올해 87세시고, 우리나라에서만 57년을 자비량 선교사로 가장 낮은 자리에서 사역하신 진정한 기독 지성인이시자 주님의 참 제자셨습니다.
지난 3일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단상에 서신 선교사님의 모습은 늘 소박하고 검소하고 진솔하셨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낡고 두툼한 수첩을 넣은 오른쪽 윗주머니는 한쪽으로 축져졌고, 오래되어 색 바래고 헤어진 회색 가디건도 늘어질대로 늘어진 모습이어서 몇 년 전 홍대 근처 IVP 사무실을 찾아가 잠시 뵀을 때 오래된 컴퓨터와 헌책 박스 위에 3단 매트를 펴고 생활하시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는데 그때가 생각나 왈칵 눈물이 솟구쳤습니다.
선교사님은 <내가 지금 치매 초기라 매우 잘 잊어버린다. 이해해 달라.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감각을 더욱 키우자>고 하셨고, 이어 <나의 모든 단점까지도 용서하고 너그러이 받아 준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내 정신이 허락하는 날까지 결코 잊지 않고 대한민국과 여러분들의 사역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나그네로 이 땅에 와서 온몸으로, 전 생애를 바쳐 복음을 전하고 다시 나그네로 이 땅을 떠나는 벽안의 노선교사님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고, 저도 그분의 그런 모습을 그날 처음 뵀습니다.
웨슬리 웬트워스 선교사님은 1935년 7월 31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 노샘프턴에서 출생하셨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야구, 농구, 풋볼 등 3가지 종목에서 학교 대표 선수로 활약할 만큼 뛰어난 재능을 보였는데, 버지니아 공대 시절 IVF를 통해 주님을 영접하고 버지니아 공대에서 석사를 마친 후 엔지니어로 일하다 1965년 4월 한국에 대한 미국 정부의 원조 프로젝트에 자원, 입국하여 서울시의 상하수도 시설 설계에 참여하면서 한국에서의 생활과 평신도 자비량 선교 사역을 시작했는데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며 오직 한국의 기독교 지성, 기독교 학문, 기독교 세계관과 역사관 정립을 위해서 헌신하신 분입니다.
제가 느낀 그분의 신앙은 전형적인 미국의 개혁주의 영성, 청교도 영성이셨습니다.
어디에서도 튀는 법 없이 늘 조용히 기도하고 일관되게 생각하고 또 집요하게 일하셨습니다. 독신이셨지만 그러나 수도원주의나 신비주의와는 거리가 먼 분이었습니다. 제 눈에 그분은 늘 지나칠 정도로 근검절약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항상 주님께 순종하려는 의지가 강하셨고, 타국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며 결코 적지 않은 돈을 벌었을 텐데도 그 모든 수입을 문서 선교비로 쓰며 자신의 사생활을 기꺼이 희생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가진 최대 장점인 설득력은 절대 말에 있지 않고 그 고매한 인품과 삶에 있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신자들 가운데는 신앙에 열심을 내면서도 자신의 공부나 전공, 연구 등이 신앙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모르거나 아예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선교사님은 바로 그런 사람들의 정신과 영혼을 일깨우며 신선한 변화를 일으킨 조용한 기적의 주인공입니다. 그래서 아는 사람들은 그를 <한국 교회 지식인들의 멘토요 대부>라고 합니다. 그를 통해 수많은 열매가 맺히고 또 새가 깃들일 만큼의 수풀이 조성됐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워하지 않고 기꺼이 그의 제자임을 밝히는 한국의 크리스천 교수의 숫자가 현재 3, 4백 명에 이른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그분은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요 12:24) 어떤 기적이 일어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 분입니다.
척박한 이 땅에 평생 기독교 문서운동, 지성 운동의 씨앗을 뿌리신 진정한 복음의 선구자,
이제 그분은 이 땅을 떠나지만 앞으로는 우리가 그분의 필생의 비전과 유산을 잘 간직하고 길이 계승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추석을 맞아 고향을 찾아가듯 선교사님도 추석 연휴 첫날이었던 바로 어제(9일) 이 땅에서 보낸 57년간의 긴 나그네 생활을 접고 미국으로 영구 귀국하셨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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