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id": "xe-60702",
  "title": "[20220828] 네 소원대로 ! (마 15:21-28)",
  "authors": [],
  "category": "sermon",
  "dates": {
    "registered_at": "2022-08-27T20:30:23",
    "original_updated_at": "2022-08-27T20:31:01",
    "published_on": null,
    "delivered_on": null
  },
  "tags": []
}
---
<!-- paragraph:p0001 -->
<p><span><a href="http://thegreen.or.kr/./files/attach/images/59/702/060/23c0ccd3f6b9236ef8eb5ba04f3d4981.jpg" class="image-placeholder">0828.jpg</a></span></p>

<!-- paragraph:p0002 -->
<p> </p>

<!-- paragraph:p0003 -->
<p> </p>

<!-- paragraph:p0004 -->
<p><strong><span>&lt;온라인 예배 기도문&gt;</span></strong></p>

<!-- paragraph:p0005 -->
<p> </p>

<!-- paragraph:p0006 -->
<p><span>주님, 오늘이 벌써 8월 마지막 주일이고, 저희가 이렇게 온라인 예배로 주일을 지킨 지도 한 달이 넘어 어느새 5주차가 되었습니다. </span></p>

<!-- paragraph:p0007 -->
<p><span>이 시간도 저희 가정과 함께 하사 조촐하나마 신령과 진정을 다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복된 예배가 되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span></p>

<!-- paragraph:p0008 -->
<p> </p>

<!-- paragraph:p0009 -->
<p><span>입추와 처서가 지나면서 이제 기온이 조금 내려갔습니다. </span></p>

<!-- paragraph:p0010 -->
<p><span>이 환절기에도 저희의 건강을 지켜 주사 계절의 변화에 잘 적응하게 하시고, 여전히 확진자들이 발생하고 있는 &lt;코로나19&gt;로부터도 보호하사 모쪼록 하루하루를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시옵소서. </span></p>

<!-- paragraph:p0011 -->
<p><span>환자들을 불쌍히 여기사 안수해 주시고, 수해 당한 이웃들도 돌보사 모두가 하루 속히 본래의 삶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은혜 배풀어 주시옵소서. </span></p>

<!-- paragraph:p0012 -->
<p> </p>

<!-- paragraph:p0013 -->
<p><span>주님, </span></p>

<!-- paragraph:p0014 -->
<p><span>이제 기도의 계절인 가을이 머지않았습니다. </span></p>

<!-- paragraph:p0015 -->
<p><span>저희들 더욱 자신을 살피며 주님과 깊이 교감할 수 있도록 각별히 기도의 은사를 더해 주시옵소서. </span></p>

<!-- paragraph:p0016 -->
<p><span>오늘도 말씀을 상고할 때 주님의 육성을 듣게 하시고, 뜨거운 성령의 위로와 격려를 체험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span></p>

<!-- paragraph:p0017 -->
<p><span>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span></p>

<!-- paragraph:p0018 -->
<p> </p>

<!-- paragraph:p0019 -->
<p> </p>

<span><!-- paragraph:p0020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a href="https://www.youtube.com/embed/p7iT2XFT_5M" title="미디어 원본"></a></span></span>

 


<!-- paragraph:p0021 -->
<p class="p1"><span>20220828</span></p>

<!-- paragraph:p0022 -->
<p class="p1"><span>마 15:21-28</span></p>

<!-- paragraph:p0023 -->
<p class="p1"><span>네 소원대로 !</span></p>

<!-- paragraph:p0024 -->
<p class="p2"> </p>

<!-- paragraph:p0025 -->
<p class="p1"><span>21 <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span></p>

<!-- paragraph:p0026 -->
<p class="p1"><span>22 <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span></p>

<!-- paragraph:p0027 -->
<p class="p1"><span>23 <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span></p>

<!-- paragraph:p0028 -->
<p class="p1"><span>24 <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span></p>

<!-- paragraph:p0029 -->
<p class="p1"><span>25 <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span></p>

<!-- paragraph:p0030 -->
<p class="p1"><span>26 <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span></p>

<!-- paragraph:p0031 -->
<p class="p1"><span>27 <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span></p>

<!-- paragraph:p0032 -->
<p class="p1"><span>28 <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span></p>

<!-- paragraph:p0033 -->
<p class="p2"> </p>

<!-- paragraph:p0034 -->
<p class="p1"><span>본문 2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여기 주님이 들어가셨다는 두로와 시돈은 어딥니까? 지금은 레바논 땅인데 팔레스틴 북쪽에 있는 지중해 연안 도시들이죠. 그런데 그곳이 주님이 주로 활동하시던 갈릴리에서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이 가끔 가셔서 전도를 하셨는데, 이번에도 역시 전도를 하시기 위해 잠시 그곳에 들르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서 누구를 만났다구요?</span></p>

<!-- paragraph:p0035 -->
<p class="p2"> </p>

<!-- paragraph:p0036 -->
<p class="p1"><span>본문 22절을 보십시오.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여기 가나안 여자란 가나안 원주민의 후손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이방 여인이 주님의 뒤를 따라오면서 내 딸이 흉악한 귀신에 들렸다면서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했습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37 -->
<p class="p2"> </p>

<!-- paragraph:p0038 -->
<p class="p1"><span>가나안 족속은 원래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던 원주민들이었습니다만,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을 정복하면서 죽임을 당하거나 쫓겨났죠. 지금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서로 감정이 험악합니다만 주님 시대에도 역시 그랬습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39 -->
<p class="p2"> </p>

<!-- paragraph:p0040 -->
<p class="p1"><span>그러나 결국 주님이 그 가나안 여인에게 놀라운 은혜를 베푸십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본문 마지막 절인 28절을 보십시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세상에 이런 찬사와 축복이 또 있을까요. 이것은 제자들조차도 평생 들어보지 못한 말입니다. 제자들은 믿음이 크다는 칭찬은커녕 툭하면 믿음이 없다 혹은 믿음이 작다는 책망만 들었죠.<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41 -->
<p class="p2"> </p>

<!-- paragraph:p0042 -->
<p class="p1"><span>오늘 본문이 15장인데 바로 앞장인 14장 31절을 한번 보십시오. 주님이 제자들을 대표한다는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인데 뭐라고 하셨죠?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또 오늘 본문 다음 장인 16장 8절도 한번 보십시오. 역시 주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인데 이렇습니다.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논의하느냐” 이렇게 제자들은 앞뒤로 다 믿음이 없다 혹은 믿음이 작다는 책망만 듣고 있는데, 이 가나안 여인, 이방 여인은 주님께 네 믿음이 크다는 칭찬과 함께 네 소원대로 되라는 놀라운 축복의 말씀을 들었습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43 -->
<p class="p2"> </p>

<!-- paragraph:p0044 -->
<p class="p1"><span>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마지막 28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그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주님이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시며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축복하시는 순간, 그녀의 딸이 실제로 흉악한 귀신으로부터 놓여나 온전해졌다는 겁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45 -->
<p class="p2"> </p>

<!-- paragraph:p0046 -->
<p class="p1"><span>여러분, 올해도 우리는 다 각자 마음의 간절한 바람과 소망을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 또 국가적으로도 꼭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간절한 기도 제목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이 가나안 여인처럼 주님으로부터 네 소원대로 되리라는 말씀을 듣는다면 얼마나 복될까요. 얼마나 감사하고 기쁠까요.<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47 -->
<p class="p2"> </p>

<!-- paragraph:p0048 -->
<p class="p1"><span>그런데 늘 말씀드리지만 주님은 절대 은혜를 거저주시지는 않습니다. 아니 거저주시기 때문에 은혜인데, 값없이, 대가 없이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은혜라고 하는데, 거저주시지 않는다니, 그게 무슨 뜻일까요?</span></p>

<!-- paragraph:p0049 -->
<p class="p2"> </p>

<!-- paragraph:p0050 -->
<p class="p1"><span>그렇습니다. 주님은 그게 분명 은혜지만 그러나 절대 함부로 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무슨 대가를 바라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반드시 그 은혜를 감당할 만한 준비가, 채비가 됐는지를 확인하신 다음에 주신다는 겁니다. 그것은 은혜가 화가 아니라 은혜가 되고, 축복이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 되게 하기 위해 꼭 우리가 주님의 은혜와 축복을 감당할 만한지 그렇지 못한지를 시험해 보신 후에 그 시험을 통과한 사람에 한해서, 은혜를 담을 만한 그릇이 준비된 사람에 한해서만 축복을 베푸신다는 겁니다. 여러분, 주님이 왜 우리를 복권에 당첨시켜주시지 않을까요? 그 돈벼락이 우리에게 축복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불행이 되고, 저주가 되고, 멸망이 될 게 뻔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51 -->
<p class="p2"> </p>

<!-- paragraph:p0052 -->
<p class="p1"><span>그런데 오늘 이 본문의 여인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사람도 아니고 조상 대대로 이스라엘을 철천지 원수로 여겨온 팔레스타인 여인임에도 주님이 네 믿음이 크도다 그러시면서 네 소원대로 되라고 하셨습니다. 축복을 선언하신 겁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53 -->
<p class="p2"> </p>

<!-- paragraph:p0054 -->
<p class="p1"><span>여러분, 주님의 은혜를 입으시려면, 올해도 여러분들의 간절한 소원을 이루시려면 반드시 주님께 여러분의 믿음을 인증하셔야 합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의 믿음을 시험해 보시고, 확인해 보시고 나서 비로소 네 소원대로 되라고 하십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55 -->
<p class="p2"> </p>

<!-- paragraph:p0056 -->
<p class="p1"><span>그런 의미에서 네 소원대로 되리라는 말씀은 곧 네 믿음대로 되라는 말씀과 꼭 같습니다. 실제 주님은 네 소원대로 되라고도 하셨지만 더 많은 경우 네 믿음대로 되라 혹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도 하셨습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57 -->
<p class="p2"> </p>

<!-- paragraph:p0058 -->
<p class="p1"><span>그렇습니다. 믿음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제대로 감당하게 하는, 헛되게 하지 않고 잘 보존하게 하는 그릇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늘 믿음을 먼저 확인해 보시고 나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이것이야말로 주님의 축복 공식입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59 -->
<p class="p2"> </p>

<!-- paragraph:p0060 -->
<p class="p1"><span>그러면 이제 이 가나안 여인이 통과한 시험의 과정과 그 난이도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대체 어떤 성적으로 시험을 통과했기에 주님이 네 믿음이 크도다 하시며 축복하셨는지를 실제 확인해보자는 겁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61 -->
<p class="p2"> </p>

<!-- paragraph:p0062 -->
<p class="p1"><span>우선 이 가나안 여인은 주님의 침묵을 끝까지 잘 참고 견뎠었습니다. 본문 22절 이하를 다시 한 번 보십시오.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주님의 뒤를 따라가며 귀신들린 자기 딸을 고쳐달라고 아무리 큰소리로 외쳐도, 절박한 심정으로 아무리 부르짖어도 주님은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63 -->
<p class="p2"> </p>

<!-- paragraph:p0064 -->
<p class="p1"><span>사실 이보다 더 딱한 경우는 없죠. 이보다 더 답답하고 더 막막한 노릇도 없습니다. 이게 바로 늘 우리가 기도하면서 겪는 가장 흔하고 가장 일반적인 시험 아닙니까? 나는 지금 다급해서 발을 동동 구르며 주님 어디 계십니까,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며 부르짖는데, 주님은 아무런 반응이 없으십니다. 아무런 메아리도 없습니다. 정말 이것처럼 힘들고 외롭고 절망스러운 것도 없습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65 -->
<p class="p2"> </p>

<!-- paragraph:p0066 -->
<p class="p1"><span>실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다 이 첫 단계에서, 이 첫 번째 시험에서 거의 실패합니다. 70-80%가 이 단계에서 떨어집니다. 우리는 너무 조급해서 오래 참거나 길게 기다리지를 못하잖아요. 그래서 부르짖다가도 응답이 없으면 쉽게 포기하고 체념합니다. 우리는 내가 주님하고 부르면, 주님이 당장 그래 나 여기 있다 하고 응답을 하셔야 되는데, 우리는 다 그걸 기대하는데, 실제 그런 법은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과 기도의 진정성을 확인하시기 위해 언제나 최대한 침묵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거기에 걸려서 실패하죠.<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67 -->
<p class="p2"> </p>

<!-- paragraph:p0068 -->
<p class="p1"><span>그러나 이 가나안 여인을 보십시오. 어떻게 했다고 합니까? 주님의 묵비권에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주님의 묵묵부답에도 불구하고 절대 포기하지 않고, 체념하지 않고, 우리처럼 낙담하지 않고, 기도를 접지 않고, 오히려 더 크게 소리 지르며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호소했다는 겁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69 -->
<p class="p2"> </p>

<!-- paragraph:p0070 -->
<p class="p1"><span>여러분, 이게 맞습니다. 이게 정답입니다. 응답이 없다고 낙담하거나 포기할 게 아니라, 이 가나안 여인처럼 더 열심히, 더 간절히, 더 처절하게 부르짖는 게 옳다는 거예요. 그게 맞다는 겁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71 -->
<p class="p2"> </p>

<!-- paragraph:p0072 -->
<p class="p1"><span>그러나 당시 가나안 여인이 치러야 했던 시험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의 방해도 있었습니다. 23절 중하반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제자들마저도 그녀를 박대했습니다. 주님께 저 여자가 계속 따라오며 시끄럽게 구니까 꾸짖어서 돌려보내라고 했습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73 -->
<p class="p2"> </p>

<!-- paragraph:p0074 -->
<p class="p1"><span>참 기가 막힐 노릇인데, 그러나 이것도 엄연한 사실이고 현실 아닙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면</span></p>

<!-- paragraph:p0075 -->
<p class="p2"> </p>

<!-- paragraph:p0076 -->
<p class="p1"><span>누구나 피하기 어려운 모진 시험이고 또 아픈 시험 아닙니까? 마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여리고의 소경 바디매오도 그랬습니다. 주님의 뒤를 따라가며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며 부르짖는데도 주님은 역시 대답이 없으시고, 제자들은 그를 향해 잠잠하라며 꾸짖었다고 했습니다. 윽박질렀다는 겁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77 -->
<p class="p2"> </p>

<!-- paragraph:p0078 -->
<p class="p1"><span>사람들은 다 그렇게 기대합니다. 제자들이니까, 주님의 측근들이니까, 누구보다도 친절하게, 자상하게, 안전하게 나를 주님 앞으로 인도해주겠지, 내가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장 잘 도와주겠지. 어떻습니까? 그렇습니까? 놀랍게도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겁니다. 오히려 핵심 관계자들이 나서서 내 길을 가로막으며 최대 걸림돌 노릇을 합니다. 주님을 만나려 하는 사람들의 진로를 방해하며 온갖 훼방꾼 노릇을 다 합니다.</span></p>

<!-- paragraph:p0079 -->
<p class="p2"> </p>

<!-- paragraph:p0080 -->
<p class="p1"><span>아닌 게 아니라 지금도 목회자들이 주님을 뵙기 위해 나온 여러분들의 최대 난적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들을 친절하게 주님 앞으로 이끌어주는 가이드가 아니라, 어쩌면 목사들이 여러분들의 최대 천적일지도 모릅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81 -->
<p class="p2"> </p>

<!-- paragraph:p0082 -->
<p class="p1"><span>따라서 누구나 이 제자들의 벽을 넘어야, 핵심 관계자들의 이 방해나 해방을 극복해야 그 너머에 계신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 한국 교회 성도들은 반드시 이 가혹한 목회자의 시험을 넘어서야 비로소 주님을 뵙고 소원을 이루는 일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83 -->
<p class="p2"> </p>

<!-- paragraph:p0084 -->
<p class="p1"><span>그러나 대개는 이 교회에서 목회자에게 상처받고 시험에 들면 피를 질질 흘리며 다시 저 교회로 옮기죠. 그러나 거기는 더 악랄하고 더 무서운 제자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의 침묵은 약과입니다. 제자들의 횡포와 훼방이 훨씬 더 치명적입니다. 따라서 꼭 주님을 뵙고 자신의 소원을 이루려는 사람들은 제자들의 이 역기능을 잘 극복하셔야 신앙생활에 실패하지 않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85 -->
<p class="p2"> </p>

<!-- paragraph:p0086 -->
<p class="p1"><span>여기 가나안 여인을 보십시오. 여리고의 소경 바디매오도 그랬죠. 그들은 자신을 꾸짖고 그냥 돌려보내려는 제자들의 훼방에 굴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며 더욱 열심히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제자들을 붙잡고 시시비비 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만을 상대했습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87 -->
<p class="p2"> </p>

<!-- paragraph:p0088 -->
<p class="p1"><span>여러분, 내 신앙에 장애가 되고, 가시가 되는 제자들을 바라보며 상처받지 마시고, 피 흘리지 마시고, 시험에 들어 괴로워하며 신음하지 마시고 그 사람들 너머에 계신 주님을 향해 나아가십시오. 물론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당장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되지 그들 너머에 계신 주님께 내 눈을 고정하기가 말만큼 쉬운 게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그것만이 살 길입니다. 그게 해답입니다. 여기 가나안 여인과 바디매오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는 주님을 만났고 또 그들 소원을 이루었습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89 -->
<p class="p2"> </p>

<!-- paragraph:p0090 -->
<p class="p1"><span>그런데 당시 가나안 여인이 당한 시험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실은 아직 더 무서운 시험, 더 혹독한 시련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91 -->
<p class="p2"> </p>

<!-- paragraph:p0092 -->
<p class="p1"><span>이번에는 보다 더 직접적이고 보다 더 노골적인 주님의 거절과 모욕이 있었습니다. 본문 24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또 26절입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당연히 이 시험이 가장 절망적입니다. 난이도가 가장 치명적인 시험, 정말 견디기 어려운 굴욕적인 시험입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93 -->
<p class="p2"> </p>

<!-- paragraph:p0094 -->
<p class="p1"><span>지금까지 단 한 말씀도 없으시던 주님이 겨우 하신다는 말씀이, 나는 오직 이스라엘만을 위하여 보내심을 받았기 때문에 이방인인 너는 구해줄 수 없다고 하신 겁니다. 그래도 여인이 물러서지 않고 주여 도와주소서 하자 또 뭐라고 하셨습니까? 도저히 참기 어려운 모욕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자녀의 떡을 어찌 개에게 던지겠느냐.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이방인들을 개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타민족과 잡혼을 한다고 해서 붙여진 욕입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95 -->
<p class="p2"> </p>

<!-- paragraph:p0096 -->
<p class="p1"><span>이쯤 되면 누구나 극도로 마음이 상해서 욕이나 저주를 퍼붓고 그냥 돌아서지 않겠습니까? 우리 같아도 펄펄 뛰면서 구원이고 뭐고 그냥 다 던져버리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그가 누구든 내 자존심을 도발하면 절대 못 참잖아요.<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97 -->
<p class="p2"> </p>

<!-- paragraph:p0098 -->
<p class="p1"><span>그러나 여기 이 가나안 여인을 보십시오. 주님으로부터 직접 그렇게 심한 모욕을 당했음에도 의기소침해 하지 않고 오히려 주님의 그 말씀에 맞장구까지 칩니다. 주여 옳습니다. 저는 개입니다. 그러나 개도 제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지 않습니까? 얼마나 놀랍습니까. 주여 당신의 말씀이 옳습니다. 부디 미천하고 불쌍한 개에게 부스러기 은혜라도 적선하사 죽어가는 제 딸을 구해주십시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099 -->
<p class="p2"> </p>

<!-- paragraph:p0100 -->
<p class="p1"><span>여러분, 정말 주님의 은혜를 바라시고 진심으로 사모하십니까? 그렇다면 이 가나안 여인처럼 주님 앞에서 자신을 완벽하게 내려놓으십시오. 자신을 완벽하게 비우십시오. 주님 앞에서 아직도 자기가 시퍼렇게 살아있는 사람은 결코 은혜 받기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자기는 완전히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거기에 주님만 계셔야 합니다. 맞습니다. 저는 개입니다. 저는 벌레고 먼지고 지렁이입니다. 이렇게 주님 앞에서 철저하게 자신을 부인하며 부디 부스러기 은혜라도 좀 주십시오 해야 정말 은혜를 입습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101 -->
<p class="p2"> </p>

<!-- paragraph:p0102 -->
<p class="p1"><span>이렇게 주님 발 앞에 납작 엎드려 저는 주님 말씀하신 대로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이 아니라 저 이방의 개입니다 하며 부스러기 은혜라도 좀 주십시오 했던 가난한 여인에게 주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비로소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그러셨습니다. 주님의 침묵에 인내하고, 제자들의 훼방에도 굴하지 않고, 주님의 노골적인 모욕과 거절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겸손하게 엎드린 그 모든 게 그녀의 믿음에서 온 것이라는 사실을 주님이 공개적으로 인정하시며 높이 평가해주신 겁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103 -->
<p class="p2"> </p>

<!-- paragraph:p0104 -->
<p class="p1"><span>그리고 당장 뭐라고 하셨습니까? 네 소원대로 되라. 그러자 그 시간부로 그의 귀신 들린 딸이 낳았다는 겁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잘 참다가 개라고 하신 주님 말씀에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휑하게 가버렸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딸은 고사하고 자신의 가슴에도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밖에는 뭐가 더 남았겠습니까. 정말 주님의 은혜를 바라신다면 정말 부스러기 은혜라도 진심으로 사모하신다면 올해는 꼭 이 주님의 모든 시험을 다 잘 통과하십시오. 그래서 믿음이 확인돼야, 은혜를 감당할 만한 채비가 검증이 돼야, 비로소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이 준비되었도다 하는 말씀과 함께 네 소원대로 되리라, 네가 바라고 원하는 대로 되리라는 주님의 축복의 말씀을 듣게 될 것입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 paragraph:p0105 -->
<p class="p2"> </p>

<!-- paragraph:p0106 -->
<p class="p1"><span>부디 올해는 여러분들이 다 이 가나안 여인처럼 주님의 칭찬과 함께 마음의 모든 소원을 다 이루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