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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20220821] 주님이 보이신 본 (요 1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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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span><span><a href="http://thegreen.or.kr/./files/attach/images/59/686/060/de85e150ceb0281157b3b97213afd4d7.jpg" class="image-placeholder">0821.jpg</a></span></span></p>

<!-- paragraph:p0002 -->
<p> </p>

<!-- paragraph:p0003 -->
<p><span><span><strong>&lt;온라인 예배 기도문&gt;</strong></span></span></p>

<!-- paragraph:p0004 -->
<p> </p>

<!-- paragraph:p0005 -->
<p><span><span>주님, 주일 아침입니다.</span></span></p>

<!-- paragraph:p0006 -->
<p><span><span>오늘도 저희 가정 온라인 예배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자 하오니 성령으로 함께 하사 이 예배가 신령과 진정을 다하는 산제사가 되게 해주시옵소서.  </span></span></p>

<!-- paragraph:p0007 -->
<p> </p>

<!-- paragraph:p0008 -->
<p><span><span>올해는 무더위도 길게 이어지고, 집중 호우도 여전히 계속 되고 있어 수해 당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환자들, 수해 당한 이웃들을 위로하사 오늘도 이 땅의 모든 가정들이 주님의 도우심으로 치유와 회복과 평안의 은혜를 누리기에 부족함이 없게 해주시옵소서.</span></span></p>

<!-- paragraph:p0009 -->
<p> </p>

<!-- paragraph:p0010 -->
<p><span><span>주님,</span></span></p>

<!-- paragraph:p0011 -->
<p><span><span>저희 가족들의 안전도 책임져주시고, 늘 주 안에서 온 가족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 강건하게 하시옵소서. </span></span></p>

<!-- paragraph:p0012 -->
<p> </p>

<!-- paragraph:p0013 -->
<p><span><span>오늘도 말씀을 상고할 때 큰 깨달음을 얻게 하시고, 주님의 육성을 통해 뜨거운 격려와 위로를 체험하게 해주시옵소서.</span></span></p>

<!-- paragraph:p0014 -->
<p><span><span> </span></span></p>

<!-- paragraph:p0015 -->
<p><span><span>언제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를 찾아 하늘의 만복을 베푸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span></span></p>

<!-- paragraph:p0016 -->
<p> </p>

<!-- paragraph:p0017 -->
<p> </p>

<!-- paragraph:p0018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a href="https://www.youtube.com/embed/d7EqEl5WLgw" title="미디어 원본"></a></span>

 

 


<!-- paragraph:p0019 -->
<p class="p1"><span><span>20220821</span></span></p>

<!-- paragraph:p0020 -->
<p class="p1"><span><span>요 13:1-17</span></span></p>

<!-- paragraph:p0021 -->
<p class="p1"><span><span>주님이 보이신 본</span></span></p>

<!-- paragraph:p0022 -->
<p class="p2"> </p>

<!-- paragraph:p0023 -->
<p class="p1"><span><span>1 <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span></span></p>

<!-- paragraph:p0024 -->
<p class="p1"><span><span>2 <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span></span></p>

<!-- paragraph:p0025 -->
<p class="p1"><span><span>3 <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span></span></p>

<!-- paragraph:p0026 -->
<p class="p1"><span><span>4 <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span></span></p>

<!-- paragraph:p0027 -->
<p class="p1"><span><span>5 <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span></span></p>

<!-- paragraph:p0028 -->
<p class="p1"><span><span>6 <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span></span></p>

<!-- paragraph:p0029 -->
<p class="p1"><span><span>7 <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span></span></p>

<!-- paragraph:p0030 -->
<p class="p1"><span><span>8 <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span></span></p>

<!-- paragraph:p0031 -->
<p class="p1"><span><span>9 <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span></span></p>

<!-- paragraph:p0032 -->
<p class="p1"><span><span>10 <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span></span></p>

<!-- paragraph:p0033 -->
<p class="p1"><span><span>11 <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span></span></p>

<!-- paragraph:p0034 -->
<p class="p1"><span><span>12 <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span></span></p>

<!-- paragraph:p0035 -->
<p class="p1"><span><span>13 <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span></span></p>

<!-- paragraph:p0036 -->
<p class="p1"><span><span>14 <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span></span></p>

<!-- paragraph:p0037 -->
<p class="p1"><span><span>15 <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span></span></p>

<!-- paragraph:p0038 -->
<p class="p1"><span><span>16 <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span></span></p>

<!-- paragraph:p0039 -->
<p class="p1"><span><span>17 <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span></span></p>

<!-- paragraph:p0040 -->
<p class="p2"> </p>

<!-- paragraph:p0041 -->
<p class="p1"><span><span>본문 15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주님이 최후만찬 석상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인데 뭐라고 하셨죠? 내가 너희에게 본을 보였다. 너희도 나처럼 행하게 하려 하여, 너희도 나처럼 살게 하기 위해 모범을 보였다는 말씀인데, 그럼 주님이 여기서 보이셨다는 그 본이란 대체 어떤 것이었는지 한번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span></span></p>

<!-- paragraph:p0042 -->
<p class="p2"><span><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43 -->
<p class="p1"><span><span>먼저 사랑입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44 -->
<p class="p1"><span><span>본문 1절을 보십시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여러분, 이게 바로 주님의 사랑, 하나님 사랑의 가장 큰 특징 아닙니까. 끝까지 가는 사랑,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사랑, 쉽게 말하면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고 울며불며 원망을 해도, 우리가 아무리 시험에 들어서 나는 더 이상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겠노라고 선언을 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겁니다. 아무리 내가 지금까지 붙잡고 온 하나님의 손을 놓는다 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붙잡고 가신다는 겁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45 -->
<p class="p2"> </p>

<!-- paragraph:p0046 -->
<p class="p1"><span><span>이처럼 하나님의 사랑, 주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존재, 주님의 존재만큼이나 영원하고 절대적이고 변함이 없으십니다. 자식은 부모를 버려도 부모는 끝까지 자식을 사랑하지 않습니까? 하기야 요즘은 꼭 그렇지만은 않죠. 부모를 살해하는 자식도 있지만 또 자식을 버리는, 자식을 살해하는 부모도 없지는 않습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47 -->
<p class="p2"> </p>

<!-- paragraph:p0048 -->
<p class="p1"><span><span>사실은 이게 다 인간적인 사랑의 한계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그게 아무리 숭고하다고 해도, 아무리 부모의 사랑이고, 자식 사랑, 부부 사랑, 형제 사랑이라고 해도 다 한계가 있습니다. 끝까지 가지는 못합니다.</span></span></p>

<!-- paragraph:p0049 -->
<p class="p2"> </p>

<!-- paragraph:p0050 -->
<p class="p1"><span><span>그래서 이혼도 하고 의절도 하고 근친 살인, 존속 살인도 합니다. 인간의 사랑은 다 상대적이어서 그렇습니다. 인간의 사랑은 그게 어떤 사랑이든 다 절대적이지 않고 조건 반사적이고 계산적이어서 그렇습니다. 편협하고 선택적이고 이기적이어서 그렇습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51 -->
<p class="p2"> </p>

<!-- paragraph:p0052 -->
<p class="p1"><span><span>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끝까지 하는 사랑이고, 영원한 사랑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이고, 초월적인 사랑입니다. 이게 불가사이하다는 겁니다. 이게 정말 믿기 어려운, 실감하기 어려운 사랑이라는 겁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53 -->
<p class="p2"> </p>

<!-- paragraph:p0054 -->
<p class="p1"><span><span>그럼에도 여러분, 이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이 사랑을 반드시 확신하셔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다 나를 버리고 배신해도 하나님은 영원히 나를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끝까지 내 편이 되어 주시고 영원히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을 절대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55 -->
<p class="p2"> </p>

<!-- paragraph:p0056 -->
<p class="p1"><span><span>그래서 하나님의 선택은 영원한 선택이고, 하나님의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고, 한 번 하나님의 자녀면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이고,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 아니지만, 한 번 하나님의 백성이면 영원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span></span></p>

<!-- paragraph:p0057 -->
<p class="p2"> </p>

<!-- paragraph:p0058 -->
<p class="p1"><span><span>오늘 이 본문도 보십시오. 이때 이미 마귀가 가룟 유다의 마음에 주님을 팔 생각을 넣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마태복음을 보면 이때 이미 가룟 유다는 대제사장들에게 주님을 팔고 은 삼십을 챙긴 후입니다. 그러고 나서 이 최후 만찬장에 나온 겁니다. 그렇게 돼있습니다.</span></span></p>

<!-- paragraph:p0059 -->
<p class="p2"> </p>

<!-- paragraph:p0060 -->
<p class="p1"><span><span>주님도 그걸 이미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배신한 자기를 은 삼십에 판 그 가룟 유다의 발까지 씻기셨습니다. 사람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해보이신 겁니다. 그런데 주님이 왜 그런 본을 보이셨다구요? 너희도 이를 행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61 -->
<p class="p2"> </p>

<!-- paragraph:p0062 -->
<p class="p1"><span><span>부디 주님이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것 같이 우리도 그렇게 끝까지 주님을 사랑할지언정 주님의 사랑을 의심하거나 주님의 사랑에 회의를 품거나 주님의 사랑을 배신하거나 저버리는 배은망덕한 성도가 없으시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습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63 -->
<p class="p2"> </p>

<!-- paragraph:p0064 -->
<p class="p1"><span><span>다음은 또 뭡니까? 그 최후 만찬 석상에서 주님이 보이신 두 번째 모범, 섬김입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65 -->
<p class="p1"><span><span>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드시고 그 자리에서 떡과 포도주로 이것은 너희를 위해 찢기는 내 살이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라 하시며 성찬식을 제정하시고 나서 또 어떻게 하셨죠? 또 뭘 하셨죠?<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66 -->
<p class="p2"> </p>

<!-- paragraph:p0067 -->
<p class="p1"><span><span>4절 이하를 보십시오.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팔레스틴은 건조하고 또 맨발에 샌들을 신고 다녔기 때문에 남의 발을 씻기는 행위 자체는 전혀 이상할 게 없습니다. 주님 당시만 해도 그게 그들의 일상적인 문화고 관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은 당연히 그 사회의 최하층이었던 종들, 노예들이 담당했습니다. 반드시 종이나 노예가 주인이나 그 가족, 또 멀리서 온 손님들의 더럽고 냄새나는 발을 닦고 씻겼습니다. 그게 일반적인 관습이었습니다.</span></span></p>

<!-- paragraph:p0068 -->
<p class="p2"> </p>

<!-- paragraph:p0069 -->
<p class="p1"><span><span>그런데 여기서는 주님이, 선생님이 남의 발을, 그것도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또 닦으셨기 때문에 충격적이었다는 겁니다. 이처럼 주님은 남을 섬기는 종의 도, 노예의 도덕을 친히 실행해 보이시면서 너희도 이렇게 하라, 이렇게 살라고 하셨습니다. 13절 이하입니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으니라”<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70 -->
<p class="p2"> </p>

<!-- paragraph:p0071 -->
<p class="p1"><span><span>여러분,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주님이 이렇게 직접 시범을 보이시고 모범을 보이신 것처럼 정말 남을 섬기며 마치 종처럼 남의 발을 씻기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만 섬기면 그것으로 내 할 일을 다 했다가 아니라, 이웃도 그렇게 섬기며 살아야 그게 옳다는 겁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72 -->
<p class="p2"> </p>

<!-- paragraph:p0073 -->
<p class="p1"><span><span>지금 우리의 사정과 형편을 한번 보십시오. 지금까지는 무조건 그렇게 을이 갑을 섬겨야 했습니다. 그게 견고한 우리 사회의 질서고 오랜 위계 문화고 관행이었습니다. 학생이 선생을 섬기고, 부하가 상사를 섬기고, 사병이 장교를 섬기는 그게 당연지사이고 또 순리였습니다. 그래야 살아남고 성공하고 출세하고 진급하고 졸업도 하고 학위도 받는 세상이었습니다.</span></span></p>

<!-- paragraph:p0074 -->
<p class="p2"> </p>

<!-- paragraph:p0075 -->
<p class="p1"><span><span>그러나 이제는 아닙니다.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패러다임이 바뀌었습니다. 지형이 바뀌고 구도가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갑이 을을 섬겨야 살아남는 세상이 됐습니다. 선생이 제자를 섬기고, 상사가 부하를 섬기고, 장교가 되레 사병들을 섬겨야지 괜히 섬김을 받으려 하고 섬김을 강요했다가는 큰 코 다칩니다. 이제는 갑의 시대가 아니라 을의 시대입니다. 갑이 을을 섬겨야 합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76 -->
<p class="p2"> </p>

<!-- paragraph:p0077 -->
<p class="p1"><span><span>그런데 사실은 이게 바로 성서적이라는 겁니다. 주님을 보십시오. 벌써 이천 년 전에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갑이 을을 섬기는 본을 보이시지 않았습니까? 그러시면서 너희도 이렇게 하라, 이렇게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서야 겨우 그쪽으로 눈을 돌리며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멀었습니다. 갈 길이 멉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78 -->
<p class="p2"> </p>

<!-- paragraph:p0079 -->
<p class="p1"><span><span>기독교는 분명 갑의 종교가 아니고 을의 종교입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발을 씻기는 게 아니라,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며 그들을 섬긴 종교입니다. 그런데도 아직 교회 안에 권위주의는 하늘을 찌릅니다. 목회자들을 보십시오. 입으로는, 말로는 다 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행동은, 삶은 언제나 종이 아니라 주인입니다. 상전입니다. 제왕입니다.</span></span></p>

<!-- paragraph:p0080 -->
<p class="p2"> </p>

<!-- paragraph:p0081 -->
<p class="p1"><span><span>마가복음 10장 45절에서 주님은 “내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고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섬기는 종교, 섬기는 신앙, 섬기는 삶이 바로 기독교고,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고, 기독교 신자들의 삶의 참 모습입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82 -->
<p class="p2"> </p>

<!-- paragraph:p0083 -->
<p class="p1"><span><span>이제 마지막으로 주님이 최후 만찬 석상에서 보이신 또 하나의 본을 생각해 보겠습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84 -->
<p class="p1"><span><span>뭡니까? 남에 대한 깊은 배려입니다. 이해입니다. 7절 말씀을 한번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내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당시의 사회적 관습이나 문화로 볼 때,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사건은 확실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다른 제자들은 당혹스러워하면서 주님의 그 퍼포먼스에 의해서 주님 앞에 발을 내밀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완강했습니다. 이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거죠. 6절 하반절입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주께서 제 발을 씻으려 하시나이까” 8절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은 절대 씻지 못하시리이다” 그래서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내가 하는 이 일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알게 될 것이다.</span></span></p>

<!-- paragraph:p0085 -->
<p class="p2"> </p>

<!-- paragraph:p0086 -->
<p class="p1"><span><span>주님은 참으로 남을 많이 이해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당황스러워하고 송구스러워하고 용납이 잘 안 되고 납득이 안 돼서 혹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반발하고 거절하고 거부하고 사양해도 언젠가는 꼭 이해할 날이 올 것이라며 그걸 다 수용하고 포용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반대하거나 거절하며 반기를 들면, 가차 없이 물리치고 짓밟고 아예 싹을 자르려고 하는데 주님은 결코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럴 수도 있다며 상대를 다 이해하셨습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침 뱉고 뺨을 때리고 온갖 모욕과 조롱을 다 하고 심지어는 자기 몸에서 벗긴 겉옷을 서로 갖겠다며 주님의 그 십자가 아래에서 제비뽑기를 하는 로마 군사들에 대해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의 하는 짓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저주하고 욕한 게 아니라, 끝까지 그렇게 이해하시고 용서하시며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다 몰라서 그러는 거니까 저들을 사해달라며 비셨습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87 -->
<p class="p2"> </p>

<!-- paragraph:p0088 -->
<p class="p1"><span><span>마지막 겟세마네에서도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나와 함께 깨어있어 기도하라고 당부하셨는데, 제자들은 깨어있지 못하고 계속 잡니다. 주님이 몇 차례 깨우시다가 나중에는 뭐라고 하셨죠?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더냐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정말 당시 제자들이 마음으로는 그렇게 원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주님은 깨어 기도하지 못하는 제자들을 그렇게 이해하셨습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89 -->
<p class="p2"> </p>

<!-- paragraph:p0090 -->
<p class="p1"><span><span>여러분, 남을 이해하고 포용하고 수용하십시오. 불합리하고 이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이 돼도 일단은 용납을 하십시오. 이건 아니라며 완강하게 반대하는 베드로에게 네가 지금은 모르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라며 베드로의 그 반발을 용납하셨던 주님처럼 남을 좀 그렇게 관대하게 대하십시오. 다 몰라서 그런 거니까 저들을 용서해 달라며 도리어 어리석은 인생들의 사죄를 비셨던 주님처럼 남을 좀 더 많이 용서하며 사십시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91 -->
<p class="p2"> </p>

<!-- paragraph:p0092 -->
<p class="p1"><span><span>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주님께 그런 이해심이 없으셨다면, 남을 불쌍히 여기시는 관대함이 없으셨다면, 오늘 우리가 과연 이렇게 주님 앞에 나올 수 있었을까요? 주님은 우리가 반항하고 범죄하고 실수하고 회개하고 돌아서서 또 똑같은 죄를 짓고 선하고 다짐하고 맹세한 것들도 다 밥 먹듯이 깨도, 그런데도 그걸 이해하시고 다 용서하시고 다 수용해주셨기 때문에, 오늘도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과 지위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닙니까?<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 paragraph:p0093 -->
<p class="p2"> </p>

<!-- paragraph:p0094 -->
<p class="p1"><span><span>부디 주님이 보이신 모범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저 사람도 제 무지를 알고 제 허물이 얼마나 큰가를 깨닫고 제 잘못을 시인하며 회개할 날이 오겠지 하며 남을 좀 더 이해하고 용납하고 포용하며 사시는 보다 관대하고 너그러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span></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