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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span><span>&lt;총구를 고정시키는 일은 언제나 불가능했다. 총을 쥔 자가 살아 있는 인간이므로 총구는 늘 흔들린다.&gt;</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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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 paragraph:p0003 -->
<p><span><span>&lt;오른손 검지 손가락 둘째 마디가 방아쇠를 직후방으로 당겼다. </span></span></p>

<!-- paragraph:p0004 -->
<p><span><span>손가락은 저절로 움직였다. </span></span></p>

<!-- paragraph:p0005 -->
<p><span><span>총의 반동을 손아귀로 제어하면서 다시 쏘고, 또 쏠 때, 안중근은 이토의 몸에 확실히 박히는 실탄의 추진력을 느꼈다. 가늠쇠 너머에서 비틀거리는 이토의 모습이 꿈속처럼 보였다. </span></span></p>

<!-- paragraph:p0006 -->
<p><span><span>하얼빈 역은 적막했다.&gt;</span>(166면)</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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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 paragraph:p0008 -->
<p><span>이 달 3일에 나온, 아직도 따끈따끈한 김훈의 장편소설 &lt;하얼빈&gt;을 손에 넣었습니다. 서점가에 깔리는 족족 동이나 조금은 어렵게 구한 책인데 단숨에 읽었습니다. </span></p>

<!-- paragraph:p0009 -->
<p><span>김훈의 &lt;칼의 노래&gt;가 명장 이순신이 이룩한 업적보다는 인간 이순신의 요동하는 내면세계를 묘사했다면, &lt;하얼빈&gt;은 안중근에게 드리워진 영웅의 신화를 걷어내고 가장 뜨겁고 혼란스런 전율로 가득했을 그의 생애 마지막 일주일을 치열하게 재구성한 작품입니다. </span></p>

<!-- paragraph:p0010 -->
<p> </p>

<!-- paragraph:p0011 -->
<p><span><span>&lt;안중근의 빛나는 청춘을 소설로 써보려는 것은 내 고단한 청춘의 소망이었다. 나는 밥벌이를 하는 틈틈이 자료와 기록들을 찾아보았고, 이토 히로부미의 생애의 족적을 찾아 일본의 여러 곳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러나 원고를 시작도 하지 못한 채 늙었다. </span></span></p>

<!-- paragraph:p0012 -->
<p><span><span>나는 안중근의 짧은 생애가 뿜어내는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했고, 그 일을 잊어버리려 애쓰면서 세월을 보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게으름을 부린 게 아니라 엄두가 나지 않아 뭉개고 있었던 것이다. </span></span></p>

<!-- paragraph:p0013 -->
<p><span><span>... </span></span></p>

<!-- paragraph:p0014 -->
<p><span><span>여생의 시간을 생각했다. 더 이상 미루어 둘 수가 없다는 절박함이 벼락처럼 나를 때렸다.  바로 다시 시작했다. 나는 안중근의 ‘대의’보다는 실탄 일곱 발과 여비 백 루블을 지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으로 향하는 그의 가난과 청춘에 관해 말하려 했다.&gt;</span>(후기인 ‘작가의 말’ 중에서)</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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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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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 paragraph:p0017 -->
<p><a href="http://thegreen.or.kr/./files/attach/images/64/669/060/685a3b854b1ee4e6ee53d8b5f95ffdaa.jpg" class="image-placeholder">x9788954699914.jpg</a></p>

<!-- paragraph:p0018 -->
<p> </p>

<!-- paragraph:p0019 -->
<p> </p>

<!-- paragraph:p0020 -->
<p> </p>

<!-- paragraph:p0021 -->
<p><span>그래서 &lt;하얼빈&gt;은 단순하게 요약되기 쉬운 실존 인물의 삶을 역사적 기록보다 오히려 더 치열한 문학적 상상력으로 직조해놓습니다. </span></p>

<!-- paragraph:p0022 -->
<p><span>소설 속에서는 이토 히로부미로 상징되는 거센 제국주의의 물결과 안중근으로 상징되는 조선 청년의 순수한 열정이 서로 맞부딪치고, 요인 암살이라는 한 인간의 대의와 살인은 중죄라는 인간사의 보편윤리가 서로 맞부딪치고, 천주교인으로서의 안중근의 신앙과 세속적 인간이 지닌 증오심이 서로 맞부딪칩니다.</span></p>

<!-- paragraph:p0023 -->
<p> </p>

<!-- paragraph:p0024 -->
<p><span>그럼에도 다양하게 벌어지는 그 복합적인 갈등들을 날렵하게 다뤄내며 독자들로 하여금 안중근을 바라보는 시야를 한 차원 더 높여주고 있는 &lt;하얼빈&gt;은 작가 김훈의 또 다른 대표작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을 듯합니다. </span></p>

<!-- paragraph:p0025 -->
<p> </p>

<!-- paragraph:p0026 -->
<p><span>오직 동양의 평화를 위해 이토를 저격하며 자신의 희생을 불사했지만 한 집안의 장남이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더욱이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은 기독교 신자라는 정체성으로 인해 힘들어 하며 수시로 머뭇거리는 그의 모습이야말로 그동안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낯선 장면들이었습니다. </span></p>

<!-- paragraph:p0027 -->
<p> </p>

<!-- paragraph:p0028 -->
<p><span>소설에는 안중근과 이토의 갈등만큼이나 치열한 또 하나의 대치 국면이 전개됩니다. 안중근에게 세례를 베푼 빌렌 신부와 조선 천주교회를 총괄했던 명동성당의 뮈텔 주교사이의 긴장입니다. 사형선고를 받은 안중근이 죽음을 앞두고 하느님께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고해성사를 원하는데 빌렌 신부는 이에 적극 응하고자 하나 뮈텔 주교는 반대합니다. 이제 겨우 자리를 잡은 조선 천주교의 뿌리가 다시 흔들릴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안중근과 마찬가지로 빌렌은 뮈텔의 권위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안중근을 만나기 위해 기어이 감옥으로 향합니다. </span></p>

<!-- paragraph:p0029 -->
<p> </p>

<!-- paragraph:p0030 -->
<p><span>김훈이 그린 안중근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를 살며 자신의 온몸으로 길을 헤집고 나아간 사람입니다. 그런데 당시 안중근이 부딪혔던 그 숱한 벽들이 그로부터 백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건재한 것 같습니다. 청년들은 보이지 않는 길을 찾아 악전고투하고 있고, 때로는 시류와 타협하며 자신의 신념을 포기한 체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거대한 세상에 홀로 맞서 싸웠던 안중근의 생애가 새삼 시대를 뛰어넘는 공감과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span></p>

<!-- paragraph:p0031 -->
<p><span> </span></p>

<!-- paragraph:p0032 -->
<p><span>작가가 &lt;독자에게 보내는 편지&gt;라며 책갈피에 꽂아 보낸 엽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span></p>

<!-- paragraph:p0033 -->
<p><span><span>&lt;... 안중근은 살인의 죄명으로 처형당했지만, 나는 그가 신앙하는 평화와 정의의 하느님이 그의 영혼을 안아 거두었을 것이라 믿는다.</span></span></p>

<!-- paragraph:p0034 -->
<p><span><span>나는 그렇게 기도한다.  </span></span></p>

<!-- paragraph:p0035 -->
<p><span><span>안중근은 서른한 살에 죽었다.&gt;</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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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 paragraph:p0037 -->
<p><span>광복 77돌을 맞아 &lt;평화&gt;를 외쳤던 청년 안중근의 절규를 다시 한 번 깊이 되새겨 봅시다. </span></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