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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땅에 남은 자들 (왕하 25:18-30)

유다 땅에 남은 자들
왕하 25:18-30

<유다 땅에 머물러 있는 백성은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남긴 자라 왕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달리야가 관할하게 하였더라>(22절).
본 절 이후로부터는 느부사라단에 의해 유다 땅에 남겨진 자들에 대한 역사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앗수르와는 달리 바벨론은 정복지에 자국민의 이민정책을 펴지 않고 그 현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통치할 수 있는 자치제를 실시해 세금과 조공을 챙겼습니다. 
그래서 유대인 가운데 명문 출신인 그달리야를 총독으로 세우고 새로운 형태의 행정을 유다에 도입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처사에 대해 그 땅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불만을 품어 그달리야를 몰아내고 다른 유다인으로 총독을 삼기 위한 시도가 발생했습니다. 이때 유다에 계속 남아 있던 백성들은 어떤 특정한 기술도 없고 바벨론에 전혀 유익하지 않다고 판명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외에도 상류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도 상당수가 있었는데 그들은 유다 각지에 숨어 있던 사람들로서 예레미야와 바룩, 그리고 몇몇 왕족이 있었습니다. <그달리야>는 예레미야의 충고에 따라 바벨론을 섬기는 길만이 살 길임을 굳게 믿고 있었으며 그러한 충고를 하는 예레미야 선지자도 보호해주었습니다. 

당시 바벨론이 유다 땅에서 실시한 정책은 남아 있는 유다인들의 감정과 정서를 최대한 손상시키지 않는 온건한 방식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유력한 증거가 바로 사반의 손자요 아히감의 아들인 그달리야로 총독을 삼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달리야의 조부인 사반은 서기관 출신으로 요시야 왕 때에 큰 명성을 떨쳤던 사람이며 그의 부친 아히감도 왕의 사절단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즉 그는 상당한 명문가 출신으로 유다 백성들의 신임을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이러한 사람을 총독으로 내세워 유다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회유했던 것입니다. 그달리야도 그러한 바벨론의 유화정책에 순응하여 그 땅 백성들을 잘 화합시켜 실질적인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의 후환이 두려워 국수주의자들은 암몬으로, 그리고 또 다른 무리들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데리고 애굽으로 도망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다 신명기에서 예언한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적용>
<그달리야>의 할아버지 <사반>에 대해 22:3절과 예레미야 26:24을 참고해 소개해보십시오.
당시 식민지를 관리하는 바벨론의 정책에 대해 당신의 견해를 간략히 적어보십시오.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다 사람의 수를 예레미야 52:28-30을 참고하여 확정해보십시오.

<기도>
주님, 유다가 결국 그들의 어리석음과 불순종으로 옛 종의 모진 멍에를 다시 쓰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 쉽고 가벼운 하나님의 은혜의 멍에를 거부하면 죄와 사탄의 무거운 멍에를 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부디 저희로 하여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9-30)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고 그 말씀 앞에서 바르게 판단하고 결단하는 성도들이 되게 해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