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피날레

제게는 다알리아가 아련한 추억의 꽃입니다. 

어린 시절 고향집 울타리 가에 흐드러지게 피어 늦가을까지 장관을 이루던 꽃, 

다알리아는 송이가 크고 탐스러울 뿐 아니라 색깔도 빨강, 노랑, 분홍 등 밝고 다양해 참 화려합니다.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면 고모들이 고구마처럼 생긴 다알리아 구근을 한 바케스씩 캐 집안에 갈무리 했다가 이른 봄에 다시 심어 해마다 여름이면 풍성한 꽃잔치를 벌이곤 했습니다.

그런데 다알리아는 질 때가 참 고약합니다.

아름답게 피어나 한 때 화려함과 풍성함을 향유했으면 질 때는 벚꽃처럼 깨끗하게 산화해야 하는데 다알리아의 마지막은 그렇지 못합니다. 질질 추하고 지저분한 모습을 오래 끌고 갑니다. 그래서 순전히 제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또 다알리아를 나랏꽃으로 삼고 있는 멕시코 사람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저는 다알리아를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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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그렇습니다.

어떤 이는 늙어갈수록 인간미가 풍부해지고 대나무 같은 꼿꼿함과 정갈함을 보이는 반면 또 어떤 이들은 더 몰염치해지고 어디에 가 붙더라도 살아남으려고 예의 그 다알리아처럼 온갖 추한 꼴과 치사한 냄새를 다 피웁니다. 

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 하나가 복막염 수술 후 염증이 가라앉지 않아 여러 합병증에 시달리다 2주만에 죽었습니다. 제가 병원을 찾았을 때 그는 제 손을 아프도록 틀어쥐고 <날 살려줘! 난 죽기 싫어! 무서워!>하며 애원했습니다. 평소 누구보다 열심히 교회를 다니던 친구라 제가 <하나님을 찾아! 주님을 불러! 기도해!>라고 하자 그 친구는 거의 발악을 하듯 <하나님이 다 뭐야! 그런 건 없어!> 하며 막 눈물을 흘리다 아파 죽겠다며 빨리 의사를 불러달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날 밤 저는 그 숨진 친구의 시신 곁에서 참 많은 혼란을 겪으며 소중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마지막이 중요하구나. 사람은 태어날 때보다도 죽는 순간이 더 중요하구나!>

 

성경은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신 34:7)고 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의 지난 40년의 여정은 극심한 마음 고생, 몸 고생의 연속이었습니다. 따라서 옹고집 막무가내에 기력은 완전히 소진되어 사랑은커녕 편견과 오만으로 가득 찬 괴팍한 늙은이가 되어 있었을 법 한데도 그는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눈빛이 총총하고 기력 짱짱한 청년으로 살다 죽었습니다.

모세의 이런 모습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꼭 본받아야 할 <유종의 미>이자 가장 아름다운 인생 <피날레>입니다. 제 인생 최후의 로망도 바로 이 모세의 최후입니다. 허영인 줄은 알지만 모세처럼 인생을 마무리 하고 싶다는 욕심은 결코 부인하고 싶지 않습니다.

 

<피날레>란 교향곡이나 오페라 같은 연주곡의 마지막 악장을 뜻합니다. 

모차르트의 교향곡인 <주피터>나 베토벤의 <영웅>, 브람스의 4번 교향곡의 <피날레>가 특히 유명합니다. 음악은 <피날레>를 잘 장식해야 그 곡이나 연주가 돋보이고 감동이 오래 갑니다. 

우리 푸른교회 공동체도 이제 마지막 악장인 <피날레> 앞에 섰습니다. 

작품의 완성도는 클라이막스인 남은 5개월에 달렸습니다.

 

<엔데 굿 알레스 굿> (Ende gut Alles gut)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뜻의 독일 격언입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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