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03] 맏물 신앙 (신 26: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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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3
신 26:10-11
맏물 신앙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으로 말미암아 너는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에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이 본문은 유대인들의 3대 절기 가운데 하나인 맥추절을 지키는 방식에 관한 말씀인데, 뭐라고 했죠? “여호와께서 제게 주신 토지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하고 그 수확물을 바치고 온 가족과 함께 감사하고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 맏물을 바치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이죠? 우리는 서열상, 순서상 제일 위 혹은 첫째를 맏이라고 하죠. 그래서 장남을 맏아들이라고 합니다. 곡식이나 과일도 그해 맨 처음에 수확하는 것을 맏물이라고 합니다. 제일 마지막에 수확하는 것은요? 끝물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도 그렇고 이스라엘의 경우도 한 해 밭농사의 첫 열매가 바로 보리입니다. 보리는 가을걷이 때 수확하는 게 아니고 초여름에 하잖아요. 그래서 우리나라나 이스라엘이나 밭농사의 맏물은 보리입니다. 그래서 보리는 보리 그 자체보다도 한 해 농사의 맏물이라고 하는 사실 때문에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게 이스라엘의 문화의 오랜 전통입니다. 보리 자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보리가 맏물이라는 것 때문에 그 의미가 각별합니다.
성경은 무엇이나 첫 열매, 첫 수확인 맏물을 중시하잖아요. 사람도 장자, 짐승도 초태생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성경은 왜 그럴까요? 맏물이 갖는 대표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맏물이 갖는 상징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맏물은 이를테면 그 이후에 생산되는 모든 수확과 소출을 대표합니다. 맏물 이후에 발생하는 모든 수확과 소출을 상징합니다. 다시 말해서 보리는 한 해 밭농사의 맏물이기 때문에 그 해 내가 수확할 모든 밭작물을 대표한다는 거예요.
따라서 오늘 우리가 여기 토지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하고 맥추절을 지키면, 실은 보리만 드리는 게 아니라 뭐라구요? 올해 밭농사의 모든 수확물을 다 하나님께 바치는 효과가 발생한다는 거예요. 보리가 맏물이어서 그렇습니다. 엄밀하게 얘기하면 우리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다 드려야 합니다. 순수 내 것은 없고 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세상 만물, 이 세상 모든 재화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다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데, 실제로는 현실적으로는 그게 불가능하잖아요. 다 하나님께 드릴 수는 없잖아요. 나도 먹어야 되니까, 나도 써야 하니까. 나도 살아야 하니까. 그래서 맏물을 드리는 겁니다. 그래서 맏물을 드리라고 하는 겁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나는 지금 올 농사의 첫 열매, 첫 수확인 보리를 바치지만 정작 하나님은 그 보리만 받으시는 게 아니라 내가 짓는 올 농사의 모든 수확물을 미리 다 받으신다는 거예요. 그런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에 맏물을 구별하라는 거예요. 맏물을 바치라는 거예요. 나는 보리만 드리지만 하나님은 내 농사의 모든 수확물을 다 받으십니다. 그게 바로 맏물 효과입니다.
여러분, 모든 맏물은 그래서 반드시 성별하여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그게 바로 성경이 가르치는 맏물 정신이고 맏물 신앙입니다. 하나님, 저의 모든 것, 저의 모든 수확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제 이 맏물을 드리오니 저의 모든 것을 받아주십시오. 그러면서 바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그것을 열납하시며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베푸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맏물이라면 반드시 밭작물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죠. 시간의 맏물도 있습니다. 시간의 맏물이 뭡니까? 주일이죠. 한 주간의 첫날이 일요일이잖아요. 어떤 분은 월요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월요일은 한 주간의 첫날이 아닙니다. 일요일입니다. 캘린더도 보십시오. 일 월 화 수 목 금 토입니다. 한 주간의 첫날은 일요일이에요. 우리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주일이 한 주간의 첫날입니다. 한 주간의 맏물입니다. 시간의 맏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일은 반드시 성수해야, 주일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주일은 온전히 성별해서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일만 드리지만, 하나님은 한 주간을 다 접수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일이 시간의 맏물이기 때문에, 한 주간을 대표하기 때문에, 한 주간의 모든 시간을 상징하기 때문에, 나는 주일만 드리지만, 하나님은 한 주간을 다 받으시는 거예요.
주일을 안 지키면 그 반대 효과가 발생합니다. 주일 하루만 안 드린 게 아니라 그 한 주간을 다 안 드린 것이 됩니다. 주일이 한 주간의 맏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주일을 성수해야 된다는 거예요. 필사적으로 주일을 지켜야 된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이어지는 12절 이하를 보면 십일조가 나옵니다. 내 모든 소산, 내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치라. 십일조가 뭡니까? 십일조도 내 소득, 내 수입의 첫 열매 맏물 아닙니까? 보리는 밭 소출의 맏물이고, 십일조는 내 소득의, 내 노동의 맏물입니다. 내 노동의 대가의 맏물입니다. 우리 교회는 모두 십일조 생활을 잘 하시죠. 제가 십일조를 강조하는 것도 아닌데, 우리 교회만큼 십일조 비율이 높은 교회도 없습니다. 원래 어느 교회든 십일조를 하는 신자들보다 십일조를 못하는 신자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많은 분들이 하고는 싶어도 사정이 여의치가 않아서 못한다고 합니다. 수입은 적고 쓸 데는 많으니까 그렇습니다. 마음은 있지만, 뜻은 있지만 하게 되지가 않는다는 거죠.
맞습니다. 그건 사실이고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습니다. 그럼에도 그런 분들의 결정적인 문제가 뭘까요? 아직도 십일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소득의 맏물로 보지 않고 끝물쯤으로 생각한다는 겁니다. 십일조는 내 소득의 첫 열매이기 때문에 제일 먼저 구별해서 바쳐야 하는데 보통은 그렇게 하지 않죠. 일단은 다른 데 다 쓰고 남는 돈으로 제일 마지막 순위로 십일조를 떼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언제나 십일조 할 돈이 없어요. 어느 가정이나 쓰고 남는 돈은 없습니다. 따라서 십일조를 내 수입의 맏물로 믿고 제일 먼저 구별해야지 끝물 취급해서 제일 마지막에 떼려는 사람은 평생 십일조 한 번 못해보고 죽습니다.
십일조는 그런 게 아닙니다. 최우선 순위로 하나님께 드려야 할 맏물입니다. 내 소득의 맏물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문제지, 십일조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문제이지 실제 돈이 없어서, 돈이 부족해서 혹은 가난해서 십일조를 못 낼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십일조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 돈이 없는 사람도 할 수 있습니다. 돈이 없어서 외식을 못하고, 좋은 옷을 못 사고, 외제차를 못 타고, 해외여행을 못 갈 수는 있어도 십일조를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십일조란 단순히 내 수입의 10분의 1을 뜻하는 게 아니거든요.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십일조는 그냥 내 수입의 10분의 1이다. 그렇지 않아요. 그거 아니예요. 가장 먼저 10분의 1을 구별해야 할 내 소득, 내 수입의 맏물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어떤 것보다도 제일 먼저 구별해야 됩니다. 십일조를 그렇게 끝물이 아닌 맏물로 바칠 때만, 하나님이 내 십일조를 십일조로 받지 않으시고 십의 십조로 받으신다는 겁니다. 여러분, 나는 십일조를 바치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10의 10조를 받으셔야 그게 진정한 십일조입니다. 십일조는 맏물이기 때문에, 맏물은 내 모든 수입을 대표하기 때문에, 맏물로 십일조를 바치면 하나님은 십분의 일을 받으시는 게 아니라 내 소득의 10의 10을 받으십니다. 이것이 십일조입니다.
그런데 이 맏물의 원리, 맏물의 원칙은 작물의 소출이나 주일 성수나 소득의 십일조뿐 아니라 짐승의 새끼나 사람의 장자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그것이 성경의 전통이고, 이스라엘의 전통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짐승의 첫 새끼인 초태생을 바치면, 그 이후의 모든 짐승의 새끼를 다 하나님께 바치는 효과가 발생하고, 장자나 장녀를 바치면 내 모든 자녀를 다 하나님께 바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오랜 전통의 서구 기독교 국가들을 보십시오. 신부, 목사, 수녀들이 다 장남이고 장녀들입니다. 여러분, 그건 아마 미처 모르셨을 거예요. 저 유럽의 목사나 신부나 수녀들은 다 장남 장녀들이예요. 이 맏물 신앙 때문에, 맏물 사상 때문에, 맏물 전통 때문에 그렇습니다. 장남 하나를 바치지만 장남을 바침으로써 내 자식을 다 하나님께 바치는 겁니다.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믿었습니다.
끝으로 이 맏물 신앙, 맏물 중심과 관련해서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 맏물을 드릴 때는 반드시 흠과 티가 없는 온전한 것을 바쳐야 한다는 겁니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레위기 2장 23절을 보면 맥추절에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에는 절대 누룩이 들어가면 안 됩니다. 가루나 떡이나 전병에 누룩을 넣지 않은 무교병만을 바치게 돼 있습니다. 누룩 대신에 소금을 치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누룩을 부패의 상징으로 봅니다. 따라서 맏물을 드리되 흠 없는 순수하고 정결한, 부정이 타지 않은 것을 드려야 합니다. 레위기 22장 20절을 보면, 짐승도 흠이 있는 것은 드리지 말지니 그것은 결코 연납되지 못할 것임이니라. 눈 먼 것, 상한 것, 베임 당한 것, 종기 있는 것, 괴혈병 걸린 것, 치였거나 터진 것, 하자가 있는 C급은 절대 바치지 말라는 거예요. A급만 바치라는 거예요. 하자 있는 것을 바치면, 흠이 있는 것이나 완전하지 못한 것을 바치면, 그것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맏물은 무흠하고 정결하고 온전한 것을 반드시 드려야 합니다. 흠이 있거나 티가 있으면 하나님이 안 받으신다는 겁니다. 왜요?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온전하시고 절대적으로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에 만약 하나님께 바치는 맏물에 흠이 있거나 티가 있으면 그건 곧 하나님의 절대적인 신성을 모독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라는 거죠. 하나님의 완전성, 하나님의 거룩성을 해친다는 거예요. 따라서 우리는 소출의 맏물을 드리고, 소득의 맏물인 십일조를 드리고, 또 시간의 맏물인 주일을 성수할 때, 절대 내 임의로 에누리를 한다거나 완전치 못한 부실한 B급, C급을 드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완전한 영광을 해치는 짓이에요.
생각해 보십시오. 어렵게 어렵게 고민하다 결단한 맏물인데, 그게 흠과 티가 있어서 온전치 못해서 내가 바쳤음에도 열납되지 않는다면, 얼마나 억울한 노릇입니까. 내 나름대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감사함으로 드린 것인데, 그게 도리어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하나님께 누가 된다면 얼마나 큰 유감입니까. 얼마나 큰 불행입니까. 그래서 맏물은 정결해야 된다. 나름 부정이 없어야 한다. 부정 타지 않아야 한다. 깨끗해야 한다. A급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많은 분들이 요즘은 율법 시대도 아니고 더구나 도시에 살면서 농사 지을 일도 없는데 특히 보리농사 보리 수확 같은 얘기는 낯선 옛날 얘기인데, 새삼스럽게 무슨 맥추감사절이냐 그럽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 없지 않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보리농사는 짓지 않을지라도 맥추감사절 정신인 이 맏물 사상, 맏물 신앙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고 중요합니다. 맥추감사절 전통인 맏물 정신은 이 시대에도 여전히 우리가 잘 계승하고 전수해야 할 성서적 신앙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그게 밭작물이든 노동의 소득이든 아니면 시간이든 늘 맏물을 온전히 구별하여 바침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셔서 더욱 강건하고 풍성하시고 복되게 사는 성도들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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