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자들을 위하여 (왕하 19: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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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자들을 위하여
왕하 19:1-13
이 19장은 ① 앗수르 왕 산헤립의 공격이 단순한 국제적 전쟁이라기보다 하나의 거대한 영적 투쟁이라는 사실을 말씀합니다. 산헤립의 공격적인 발언 대부분이 히스기야를 포함한 유다 백성들의 신앙에 대한 공격이었기 때문입니다.
② 하나님 안에 있는 위정자들에게 통치 원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방 세계에서는 약육강식의 원리가 지배하지만 신앙을 가진 통치자는 기도함으로써 이 세상 그 누구보다 강하신 분,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방법을 사용해야 옳다고 합니다.
③ 천하만국에서 유일하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가 종국적인 승리를 쟁취한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 그들이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이 오늘은 환난과 징벌과 모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1, 3절).
여인이 임신하여 해산할 능력이 없다면 아기도 산모도 모두 극히 위태롭게 됩니다. 이것은 곧 유다 민족이 최악의 환난을 당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헤쳐 나갈 능력이 없음을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랍사게가 그의 주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와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였으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의 말을 들으셨을지라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들으신 말 때문에 꾸짖으실 듯하여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소서 하더이다>(4절).
이 말은 자신과 백성들의 죄악은 랍사게의 말대로 삼판받아 마땅하지만 그리할지라도 하나님을 모독하는 랍사게의 말을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이 탄원에 응답하시기를 간절히 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처럼 히스기야는 원수들의 막강함과 희롱의 말에 좌절하지 않고 오직 여호와의 공의에 호소하는 길만이 살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남아 있는 자들을 위하여>
<남은 자> 사상은 바벨론 포로기 이후 등장한 것입니다. 당시의 시대 상황으로 볼 때 남은 자란 구체적으로 북이스라엘 10개 지파와 산헤립의 1차 침공 시에 멸망한 46개 이상의 성읍 사람들을 제외한 예루살렘의 백성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는 히스기야와 같이 오직 믿음으로 여호와께만 의지했던 신앙인들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봐야 옳을 것입니다.
이처럼 국가적 위기에 처한 히스기야는 선지자 이사야에게 기도 요청을 했을 뿐 아니라 자신도 하나님 앞에 깊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적용>
본문 4절의 <살아 계신 하나님>이란 칭호의 또 다른 용례인 신 5:26, 수 3:10, 삼상 17:26, 시 42:2, 렘 10:10, 단 6:26, 호 1:10 등과 비교해보십시오.
<립나>(8절)의 위치는 어디쯤이었을까요(8:22)?
<하란>(12절)이 어떤 곳인지 아브라함과 관련해 설명해보십시오(창 11:31).
<기도>
앗수르의 침략 앞에서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에게도 기도 부탁을 했지만 자신도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야말로 천지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니 당신의 영광을 위해 유다를 구해달라고 했습니다.
주님, 히스기야는 인간은 구원 받을 아무런 자격이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구원의 근거가 됨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희도 그렇게 기도하므로 히스기야처럼 응답 받게 해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