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청포도의 계절

올해도 손님처럼 7월이 왔습니다.

세월의 헛헛함과 본격적인 폭염 그리고 오락가락하는 장맛비의 눅눅함이 사람들을 지치게 할 때 저는 곧잘 이육사의 <청포도>를 떠올립니다.

 

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 주절이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두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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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큼한 청포도 향에 침이 고이고 시리도록 아름다우면서도 슬프기까지 한 이 시는 가슴에 사무치는 그리움의 노래이자 조국의 해방을 염원하는 가장 서정적인 기도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도 햇보리를 수확해 목숨을 부지하던 사람들에게는 청포도가 익어갈 때쯤 온 동네에 진동하던 청보리 내음이 그야말로 삶의 희망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일찍부터 맥추절을 참 감격적으로 지켜왔고, 이육사의 고향인 안동시 도산면에서는 오늘날까지도 청보리 축제를 열며 그 시절을 추억하고 있습니다.

 

금년도 벌써 절반을 보냈습니다. 지난 반년을 돌아보는 여러분들의 심경은 어떻습니까? 진심어린 감사가 있습니까? 물론 살다보면 모든 게 짜증스러울 때도 있고, 혼자 있고 싶거나 세상에는 오직 나 하나뿐이고 모두가 낯선 타인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더구나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더 막막하고 생각할수록 허망할 수도 있습니다. 

 

이달 말이면 우리는 이 예배당을 떠나야 합니다. 그러나 슬퍼하기보다는 감사합시다. 

예배당을 떠나는 것이지 교회를 떠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 자리를 떠나는 것이지 주님을 떠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어디에 있든 주님은 늘 곁에 계시며 더욱 풍성한 초장으로 날 이끌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오늘도 이렇게 살아 있음을, 걸을 수 있고, 커피 한 잔에 빵 한 조각이라도 먹을 수 있음을 진심으로 감사합시다. 

가족이 있고,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친구며 이웃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합시다. 

언젠가 제가 그랬잖습니까? 

아무리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무심코 지나치지 않고 크게 감사하면 주님이 송구스러워 결국 더 많은 은혜로 갚아주신다고... 때로는 사랑스럽게, 때로는 사무치도록 아프게, 때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을 만큼의 공허함으로 삶을 계속 이어가게 하신다고... 

 

저는 올 여름 청포도 넝쿨이 멋들어진 안동 이육사의 태화동 고택에서 하룻밤 잘 수 있다면 청량한 감사가 절로 나올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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