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19] 네 이름이 무엇이냐? (창 32: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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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9
창 32:22-32
네 이름이 무엇이냐?
22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23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1)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2)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32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여러분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 누구를 가장 좋아하십니까? 누구의 팬클럽 회원이십니까? 사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인물들이 다 다르죠. 어떤 분들은 이삭을 좋아하고, 또 어떤 분들은 요셉을 좋아하고, 또 어떤 분들은 사무엘, 다니엘, 엘리야, 다윗, 솔로몬 같은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저는 신앙생활에 좀 철이 들면서부터 가장 좋아한 게 아니라 가장 부담스러워하고 가장 힘들어했던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왜 그런 노래 있잖아요.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저에게는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이 바로 그랬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명하시죠. 아브라함은 아무런 미련도 없이 고민도 안 해보고 본토와 아비 집을 전격 떠났습니다. 그때는 고향을 떠나고 아비 집을 떠난다는 것은 곧 죽음을 뜻했습니다. 나무가 뿌리째 뽑히는 것과 똑같았던 고대 종족 시대였잖아요. 그럼에도 그는 그렇게 망설임 없이 고향을 떠났습니다. 아비 집을 떠났습니다. 또 하나님이 백세에 얻은 외아들 이삭을 잡아 번제로 바치라고 했을 때도 저항 한 번 하지 않고 반문 한 마디 없이 이삭의 목에 칼을 들이 댔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브라함만 생각하면 늘 기가 죽고, 맥이 풀리고, 믿는다는 게 그런 거라면 나는 틀렸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아니죠. 저는 아브라함이나 모세를 생각하면 자신이 없다가도 야곱을 떠올리면 한번 해볼 만하다. 믿어볼 만하다. 그런 생각을 곧잘 했습니다. 신앙생활을 나도 한번 해볼 수 있겠구나 하는 용기를 가졌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유대인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자기들의 뿌리라고 생각합니다. 유대인들의 조상 그러면 언제나 그 세 사람을 꼽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물론 그 셋 중에 가장 큰 인물은 아브라함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못지않게 중요한 사람이 누굽니까? 야곱이죠. 유대민족은 지금도 야곱의 새 이름인 이스라엘을 그들의 나라 이름으로 쓰고 있잖아요. 한 개인의 이름이 한 나라의 국호가 된 겁니다. 그것은 우리가 다 야곱의 분신이다. 야곱의 후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야곱이다. 그런 뜻입니다. 그런 고백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지금도 열두 지파잖아요. 열두 계보입니다. 그것도 야곱의 열두 아들을 각 지파의 원조로, 족장으로 삼아서 그렇습니다.
보십시오. 야곱이라는 인물이 실제 유대 민족사에 얼마나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그런데도 놀라운 것은 그런 야곱이라는 존재를 유대인들이 남에게 소개하는 그 정신적인 자세, 자기들의 조상으로 떠받드는 인물인데도 야곱의 생애나 야곱의 인간성을 미화하거나 두둔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그의 약점, 그의 한계, 인간적인 모순을 지나칠 정도로 적나라하게 혹독하게 다 폭로하고 있다는 거예요. 대개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들의 역사나 조상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약점이나 과오 같은 것은 숨기고 좋은 면만, 잘하는 것만 부각시키고 또 때로는 과장하면서 선전하잖아요. 우리 조상이 이렇게 훌륭했다. 이런 분이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는 절대 그런 수고가 없습니다. 그게 다른 민족사와 유대인들의 역사를 뜻하는 구약성경의 가장 큰 차이입니다. 성경에는 야곱의 생애가 아무런 각색 없이 있는 그대로 원색적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어째서 하나님이 야곱같이 교활하고 영악한 인간을 이스라엘의 조상으로 삼으셨을까? 참 불가사이하다. 인간성이 훌륭하고 덕망이 높은 아브라함이나 이삭 같은 사람은 좋은데, 야곱의 경우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 야곱의 그 교활한 인간성과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에는 참으로 소중하고도 깊은 하나님의 메시지가 깃들어 있습니다. 특히 오늘 제가 소개해드린 이 본문은 유명한 야곱의 기도 장면인데, 세상에서 야곱의 이 기도만큼 충격적인 기도가 또 있을까요. 야곱의 이 기도보다 더 전투적이고 더 공격적인 기도가 또 있을까요. 야곱의 이 얍복 나루터의 기도보다 더 처절하고 더 호전적인 기도가 또 있을까요. 아니 오죽하면 성경이 그의 기도를 하나님과의 씨름, 하나님과의 싸움이라고 했겠습니까. 도대체 기도가 얼마나 치열했으면 성경이 그걸 두고 하나님과의 한 판이라고 했겠습니까. 우리가 야곱을 기도의 조상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 얍복 강가에서 보듯, 야곱이야말로 진정한 기도의 명불허전, 기도의 끝판 왕이었습니다.
야곱의 이 얍복 강가의 기도에는 숨은 진실이 있습니다. 그걸 알아야 우리가 야곱의 기도의 진수를 제대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선 여러분, 이 얍복 나루터의 씨름은 그 주체가 누굽니까? 누가 누구에게 도전장을 낸 겁니까? 본문 24절을 보십시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라고 합니다. 야곱이 어떤 사람과 씨름한 게 아니라, 어떤 사람이 야곱과 밤새도록 씨름했다고 그럽니다. 씨름의 주체가 야곱이 아니라, 그 어떤 사람입니다. 아니 어떤 사람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입니다. 이어지는 25절 상반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역시 주어가 그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재산과 사랑하는 가족을 다 얍복강 건너로 먼저 보내고 홀로 그 나루터에 남아 절망하고 있는 야곱을 찾아오셔서 처음 씨름을 거신 분은 분명 하나님이셨습니다.
왜요? 왜 하나님이 야곱을 찾아오셔서 씨름을 거셨을까요? 그것은 야곱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야곱에게 져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이 지기 위해서 야곱에게 도전장을 낸 씨름이 바로 얍복 나루터의 한 판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니 하나님과 야곱이 씨름해서 하나님이 지고 야곱이 이겼다는 게 말이 됩니까? 세상에서 하나님과 겨루어서, 하나님과 씨름해서, 하나님과 싸워서 이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 얍복 나루터의 씨름에서는 분명히 야곱이 이겼습니다. 하나님이 씨름을 거시고 고의로 져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100kg 이상인 백두장사와 100kg 이하인 한라장사가 붙으면 누가 이길까요? 당연히 체급이 높은 백두장사가 이깁니다. 그럼 모래판의 최강자인 천하장사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백두장사를 이길 사람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누가 이길까요? 놀랍게도 천하장사의 세 살 먹은 아들입니다. 아무리 백두급 천하장사라고 해도 세 살 먹은 자기 아들에게는 집니다. 왜 그럴까요? 아버지가 일부러 져주기 때문입니다. 왜 져줄까요? 아들의 기를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세 살 먹은 어린 아들이 천하장사인 자기 아빠를 한 번 쓰러뜨리고 나면 어떻게 됩니까? 기가 나서 자꾸 더 하자고 합니다.
얍복 나루터 모래밭에서 낙심천만해 하는 야곱에게 져주신 하나님이 야곱에게 주신 새 이름이 뭐라구요? 이스라엘 아닙니까. 야곱과의 씨름에서 하나님이 지시고 나서 야곱에게 준 새 이름인 이스라엘이 무슨 뜻이라구요? 하나님과 싸워서, 하나님과 겨루어서 이겼다. 그런 뜻입니다. 네가 이겼다. 훈장으로 주신 것이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이 하나님과 겨루어서, 하나님과 씨름해서 이겼다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도 이겼는데, 하나님과 겨루어서, 하나님과 씨름해서 이겨서 이스라엘이라는 훈장까지 받았는데 이제 세상에서 뭐가 무섭겠습니까? 이제부터는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인데요. 그러니 얼마나 하나님이 낙심한 자식 하나 구하려는 부모의 심정과 꼭 같은 분입니까? 낙심천만해서 지금 깊은 좌절에 빠져 있는 야곱을 찾아오셔서 씨름을 거시고, 고의적으로 져주시고, 야곱이 이기니까, 네가 이겼다. 네 이름은 이제부터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의 이스라엘이다. 나는 아무래도 괜찮다. 나는 져도 괜찮고, 남에게 욕을 먹어도 괜찮고, 무시당해도 아무렇지도 않다. 너나 다시 일어나라. 너나 빨리 기운을 차리고 용기를 얻어 새 출발해라. 나의 바람은 자나 깨나 오직 하나 그것밖에 없다. 네가 나를 이겼는데 이 세상에서 뭐가 무서울 게 있냐. 맞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씨름을 거시고 또 그 씨름에서 기꺼이 져주시고 새 이름을 주신 것은 순전히 야곱으로 하여금 재기하게 하기 위해서, 야곱으로 하여금 새 출발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그의 앞에 새로운 인생의 장을 열어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네 앞에는 이제 적이 없다. 너는 하나님도 이겼다.
여러분, 우리도 지금 우리 인생에, 우리의 삶과 신앙생활에 중요한 기로인 이 얍복 나루터까지 왔습니다. 싫든 좋든 이제 우리는 저 앞에 보이는 얍복강을 건너 새로운 길로 가야 합니다. 기대보다는 불안과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큰 게 사실입니다. 더구나 우리는 지금 많이 지쳤고 열정도 많이 소진됐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저 강을 건너기 전에 이 얍복 나루터에서 씨름하듯 치열하게 뜨겁게 주님을 체험하는 일이 꼭 필요합니다. 내게 기꺼이 져주시고, 새 이름을 주시고, 그래서 용기를 가지고 새 힘을 충전해서 새 출발하도록 축복해 주시는 주님을 꼭 만나야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본문 27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이 야곱을 축복하기 전에 야곱에게 새 이름을 주시기 전에, 네 이름이 뭐냐 하고 묻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왜 하나님이 새삼 야곱의 이름을 물으셨을까요? 몰라서 물으셨을까요? 천만에요. 네가 어떤 사람이고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너 스스로 고백하라, 진술하라는 겁니다. 그간의 삶의 내용을 스스로 자백하고 회개하라는 겁니다. 이 얍복 나루터에서 너의 지난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고 이제 저 강을 건너서부터는 전혀 새로운 삶을 살라는 겁니다.
야곱이 무슨 뜻입니까? 네 이름이 뭐냐 라고 물으니까 야곱이니라. 야곱이 무슨 뜻입니까? 히브리어 야곱은 동사 아카에서 온 말인데, 발목을 잡은 자, 사기꾼, 약탈자, 강도라는 뜻입니다. 실제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형의 발목을 잡고 태어나서 결국은 그의 등을 쳐 장자권을 빼앗았고, 눈 먼 아버지의 발목을 잡아 장자에게 내리는 최후의 축복을 훔쳤습니다. 또 외삼촌 라반의 발목을 잡아 그의 두 딸과 두 여종 그리고 많은 소떼와 양떼를 다 제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얍복이 무슨 뜻입니까? 히브리어로 야보크는 자신을 다 비우다, 자기의 속을 다 털어놓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보십시오. 하나님은 바로 그 얍복 나루터에서 야곱으로 하여금 그동안에 모든 삶의 치부를 다 털어놓고 자신의 속을 다 비우게 하셨습니다. 물론 야곱도 순순히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밤새도록 씨름하며 하나님이 촉구했지만 야곱은 자기의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벌써 날이 새려고 하는데 여전히 야곱은 회개하지 않고 버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최후의 일격을 가하시잖아요. 이단 옆차기로 야곱의 환도뼈, 허벅지 뼈를 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끝까지 완고하게 굴면, 끝까지 고집을 피우며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의 허벅지 관절을 치셔서 치명상을 입히시기도 합니다. 이 허벅지 뼈는 고관절인데, 이게 나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날이 새려고 해도 여전히 버티며 저항하자 결국 하나님이 야곱에게 결정타를 날리십니다. 야곱도 보십시오. 그제서야 네 제가 야곱 맞습니다. 저야말로 사기꾼이고 협잡꾼이고 강도입니다. 오늘까지도 제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제가 야곱입니다 하는 고백은 그런 뜻입니다.
그러자 비로소 하나님이 그를 축복하시며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신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반드시 제가 야곱입니다 하고 솔직하게 정직하게 용감하게 고백하는 사람에게 다시는 네 이름을 야곱이라고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라며 새 이름을 주십니다. 무슨 뜻이죠? 다시는 야곱으로 살지 말고 이제는 야곱을 깨끗이 청산하고 앞으로는 오직 이스라엘로 살라는 겁니다. 더 이상 잔머리 굴리며 살지 말고, 교활하게 살지 말고, 사기꾼으로 협잡꾼으로 살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상대하며 하나님과 씨름하며 살라는 뜻입니다. 내가 언제나 너에게 져줄 태세가 돼 있으니까 나와 씨름하며 살아라. 세상과 씨름하지 마라.
오늘 우리도 주님과 씨름하다 허벅지 뼈가 나가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이 얍복 나루터에서 야곱을 청산하고 갑시다. 어떻게든 이 얍복 나루 모래밭에 나의 모든 과거와 옛 사람을 깨끗이 묻고 새 출발 합시다. 야곱을 보십시오. 31절입니다. 마지막 부분입니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처절한 밤이 지나고 새 아침이 밝았습니다. 그는 이제 두려움과 불안 대신 감사와 감격과 용기와 희망으로 확신으로 충만했습니다. 비록 고관절이 골절되어 절룩거렸지만 얍복 나루터를 떠나는 야곱 앞에는 저 멀리서 떠오르는 아침 해가 환한 빛을 비추었습니다.
부디 야곱의 이 얍복 나루터의 체험과 새 출발이 그대로 오늘 여러분의 새 이름이 되고, 새 출발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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