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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베가와 요담  (왕하 15:2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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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 class="p1"><span>베가와 요담</span></p>
<!-- paragraph:p0002 -->
<p class="p1"><span>왕하 15:27-38</span></p>
<!-- paragraph:p0003 -->
<p class="p2"><br></p>
<!-- paragraph:p0004 -->
<p class="p1"><span>&lt;그 장관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반역하여 사마리아 왕궁 호위소에서 왕과 아르곱과 아리에를 죽이되 길르앗 사람 오십 명과 더불어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었더라&gt;(25절).</span></p>
<!-- paragraph:p0005 -->
<p class="p1"><span>브가히야를 죽이고 왕이 된 베가 역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못했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06 -->
<p class="p1"><span>이처럼 북이스라엘의 역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상을 섬김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쌓았고, 거듭해서 왕을 죽이는 반역 행위가 되풀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으므로 그들 자신의 죗값을 면할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07 -->
<p class="p2"><br></p>
<!-- paragraph:p0008 -->
<p class="p1"><span>한편 베가가 왕위에 오른 지 1년 뒤 유다 왕 웃시야가 나병으로 죽습니다. 그리고 유다는 반 앗수르 동맹 체결을 거절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침공을 당합니다. 그러나 몇 달 뒤에 있었던 이스라엘의 두 번째 유다 침략은 앗수르의 디글랏 발레셀 3세가 B.C. 733년경 북이스라엘을 공격함으로써 성공하지 못했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09 -->
<p class="p2"><br></p>
<!-- paragraph:p0010 -->
<p class="p1"><span>이로써 북왕국의 종말이 시작된 것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11 -->
<p class="p1"><span>북이스라엘 최후의 왕이었던 호세아는 애굽과의 동맹을 시도하였으나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있던 앗시리아 군대에 의해 투옥당합니다. 결국 사마리아가 B.C 722년 점령됨으로써 북왕국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것으로 끝을 맺습니다.</span></p>
<!-- paragraph:p0012 -->
<p class="p2"><br></p>
<!-- paragraph:p0013 -->
<p class="p1"><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인간사 속에서 악의 뿌리를 깨끗하게 잘라내 버린다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인가 하는 상념이 오늘 우리들을 곤혹스럽게 합니다. 결국 그 영혼 속에 있는 사탄의 세력들을 근본적으로 몰아내지 않고서는 잘못된 역사는 또 다시 되풀이 됩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14 -->
<p class="p1"><span>스페인 출신의 철학자 산타야나가 갈파했듯이 역사는 어떤 법칙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교훈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세대에 의해서 계속 반복되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기록된 옛 히브리 민족의 역사도 그런 어리석고 고집스러운 &lt;죄의 반복&gt;을 여과 없이 증언해주고 있습니다.</span></p>
<!-- paragraph:p0015 -->
<p class="p2"><br></p>
<!-- paragraph:p0016 -->
<p class="p1"><span>그것은 한 개인의 삶 속에서도 그대로 증명됩니다. 그 마음과 심령 속에 전격적인 청산과 결단이 있지 않는 한 과거의 잘못된 습성은 놀랍게도 끈질긴 관성을 가지고 생존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메시지는 언제나 그 악의 뿌리를 향해 가차 없이 진격해 들어갑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17 -->
<p class="p2"><br></p>
<!-- paragraph:p0018 -->
<p class="p1"><span>부디 현실과의 적극적인 대결을 피하는 신앙은 결국 사탄의 힘에 굴복하고 만다는 교훈을 가슴에 깊이 새깁시다. 주님의 십자가는 바로 그 대결의 끝에서 이루어진 승리의 증언이요 깃발이라는 사실을 정녕 잊지 맙시다.</span></p>
<!-- paragraph:p0019 -->
<p class="p2"><br></p>
<!-- paragraph:p0020 -->
<p class="p1"><span>&lt;적용&gt;</span></p>
<!-- paragraph:p0021 -->
<p class="p1"><span>-29절에 나오는 &lt;야노아&gt;와 &lt;게데스&gt;는 그 위치가 어디쯤일까요(수 12:22, 19:37)?</span></p>
<!-- paragraph:p0022 -->
<p class="p1"><span>-&lt;납달리 온 땅&gt;(29절)을 이사야 9:1과 연계해 해석해 보십시오.</span></p>
<!-- paragraph:p0023 -->
<p class="p1"><span>-&lt;여호와의 성전의 윗문&gt;(35절)이란 어떤 문을 가리킬까요(렘 20:2)?</span></p>
<!-- paragraph:p0024 -->
<p class="p2"><br></p>
<!-- paragraph:p0025 -->
<p class="p1"><span>&lt;기도&gt;</span></p>
<!-- paragraph:p0026 -->
<p class="p1"><span>주님, 제도가 바뀌고 왕권이 바뀌고 권력이 재편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먼저 각 개인의 영혼이 맑아지고 그 인성에 변화가 일어나야 가정도 사회도 나라도 시대도 새로워지고 또 희망이</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27 -->
<p class="p1"><span>옛 이스라엘의 남북 왕조는 사람의 변화 없이 모반으로 인한 권력의 변화만이 거듭되면서 결국 끝까지 그 사회와 역사의 변혁에는 실패한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28 -->
<p class="p1"><span>저희로 하여금 과거의 역사에서 배우고 현실의 고난에서 그 해법과 지혜의 빛을 보게 해주시옵소서.</span></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