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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20220529] 하나님의 존재 양식 (창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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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 class="p1"><span>20220529</span></p>
<!-- paragraph:p0002 -->
<p class="p1"><span>창 1:1-2</span></p>
<!-- paragraph:p0003 -->
<p class="p1"><span>하나님의 존재 양식</span></p>
<!-- paragraph:p0004 -->
<p class="p2"><br></p>
<!-- paragraph:p0005 -->
<p class="p1"><span>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span></p>
<!-- paragraph:p0006 -->
<p class="p1"><span>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span></p>
<!-- paragraph:p0007 -->
<p class="p2"><br></p>
<!-- paragraph:p0008 -->
<p class="p2"><br></p>
<!-- paragraph:p0009 -->
<p class="p1"><span>어쩌면 삼위일체에 관한 설교는 오늘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삼일일체 주일을 지키는 교회도 잘 없지만 삼위일체를 주제로 설교하는 목회자도 드뭅니다. 그럼에도 삼위일체는 기독교 교리의 핵심인 신론의 가장 중요한 주제이기 때문에 기독교 신자라면 누구나 반드시 알아야 하고 또 확신해야 합니다. 삼위일체는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의 정체성과 그 존재 방식에 관한 교리이기 때문에 난해한 고구마라고 치부해서 외면하거나 회피해서는 절대 안 되는 기독교 진리의 진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최소한 하나님의 정체성은 알아야 되잖아요. 그 하나님이 어떤 신인지는 알아야 될 거 아닙니까.</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10 -->
<p class="p2"><br></p>
<!-- paragraph:p0011 -->
<p class="p1"><span>물론 삼위일체라는 용어나 개념도 완전하거나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신비 중에 신비요 비밀 중에 비밀이요 수수께기 중에 수수께끼인 하나님의 존재 양식을 삼위일체라는 용어 하나로, 삼위일체라는 교리 하나로 다 정의하고, 다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시고 초월적인 분이시고 초자연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어떤 규정이나 개념의 틀에 가둘 수 있는 분이 아니잖아요. 다만 인간 차원에서 최선을 다해 해석하고 교리적으로 개념화하고 정의해본 게 바로 삼위일체라는 것이고, 그런 측면에서 삼위일체 교리는 충분히 의미가 큽니다.</span></p>
<!-- paragraph:p0012 -->
<p class="p2"><br></p>
<!-- paragraph:p0013 -->
<p class="p1"><span>사실 우리 한국 교회 성도들은 아직도 자신이 믿는 하나님이 몇 분인지 모르죠. 올해가 최초로 우리말 성경이 나온 지 140년이 되는 해입니다. 존 로스 번역이 나온 지가 140년이 되는 해입니다. 우리는 처음 한글로 성경을 번역할 때 구약에 나오는 히브리어 칭호인 엘로힘과 신약에 나오는 헬라어 칭호인 theos를 다 하나님이라고 인격화했죠. 하나님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숫자 하나에 존칭인 ~님을 붙여서 인격화했습니다. 하나님 엘로힘과 theos를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 칭호로,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사실과 유일신 사상을 강조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무리하게 그렇게 번역을 한 겁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14 -->
<p class="p2"><br></p>
<!-- paragraph:p0015 -->
<p class="p1"><span>극단적으로 말하면 지금 우리는 숫자 1을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 덕분에 우리는 으레 하나님을 한 분으로 알고 한 분이라고 믿습니다. 신학생들에게 물어봐도 하나님은 한 분, 목회자들에게 물어봐도 하나님은 한 분입니다. 한 분이 아니라고 하면 큰일 납니다. 그러면 이단이 됩니다. 그 정도로 한 분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에서는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 성령 하나님, 성자 하나님은 뭐냐고 하면, 그것은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하면서 좌우지간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합니다.</span></p>
<!-- paragraph:p0016 -->
<p class="p2"><br></p>
<!-- paragraph:p0017 -->
<p class="p1"><span>어떻습니까?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이 정말 수적으로 한 분이십니까? 성경 66권 가운데 제일 먼저 나오는 이 창세기, 또한 창세기 중에서도 제일 앞에 나오는 오늘 본문인 이 1장 1절을 한번 다시 보십시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여기 1장 1절에 나오는 하나님이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 칭호 가운데서 가장 먼저 나오는 대목입니다. 하나님 칭호가, 하나님이라는 말이 성경 66권 가운데서 가장 먼저 나오는 곳이 바로 이 창세기 1장 1절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할 때, 하나님은 히브리어 원어로는 엘로힘입니다. 여기 나오는 하나님이 엘로힘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 1절을 히브리어로 읽으면 이렇습니다. ‘베레쉬트 바라 엘로힘’ 하나님이 태초에 창조하셨다. ‘베레쉬트 바라 엘로힘’</span></p>
<!-- paragraph:p0018 -->
<p class="p2"><br></p>
<!-- paragraph:p0019 -->
<p class="p1"><span>그런데 신구약 성경 중 최초로 언급된 이 창세기 1장 1절의 하나님 칭호인 엘로힘은 단수형이 아니라 복수형입니다. 단수형은 엘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1장 1절에 나오는 하나님은 엘이 아니라 엘로힘으로 복수입니다. 그래서 이 창세기 1장 1절을 엄밀하게 직역하면, ‘태초에 하나님들이, 태초에 복수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20 -->
<p class="p2"><br></p>
<!-- paragraph:p0021 -->
<p class="p1"><span>그렇다면 정말 우리가 믿는 성경의 하나님이 단수 하나님이 아니라 복수 하나님, 곧 엘이 아니라 엘로힘인지 한 번 더 확인해보겠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22 -->
<p class="p1"><span>오늘 본문 1절에 이어지는 2절을 한번 보십시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심이라” 여기 하반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영이 뭡니까? 원어로는 루아흐입니다. 성령입니다. 히브리어로 성령을 루아흐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보십시오 창세기 1장에서 이미 성령의 존재가 나오잖아요. 확인되고 있잖아요. 다시 말해서 성령 하나님도 이미 처음부터 성부 하나님의 천지 창조 사역에 함께 동참하셨다는 겁니다. 창조사역은 성부 하나님의 사역이지만, 성부 하나님이 주체시지만, 혼자서 하신 게 아니라 이미 창조사역에 성령 하나님 루아흐가 참여했다는 것이에요.</span></p>
<!-- paragraph:p0023 -->
<p class="p2"><br></p>
<!-- paragraph:p0024 -->
<p class="p1"><span>다음은 신약 요한복음으로 한번 가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 이하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세상 모든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아,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지어졌다고 합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25 -->
<p class="p2"><br></p>
<!-- paragraph:p0026 -->
<p class="p1"><span>그런데 그 말씀, 그 로고스, 헬라어로 로고스가 누구시라구요? 요한복음 1장 14절을 보십시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시고,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로고스,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로고스입니다. 그러니까 보십시오. 그냥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들이잖아요. 엘이 아니라 엘로힘 맞잖아요. 루아흐, 성령만 성부 하나님과 함께 태초에 계셨던 게 아니라 요한복음 1장에 의하면 로고스도 하나님과 함께 계셨잖아요. 하나님이 로고스를 통해서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했잖아요. “지은 바 된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27 -->
<p class="p2"><br></p>
<!-- paragraph:p0028 -->
<p class="p1"><span>그러니까 창세기 1장에서 이미 성령의 존재가 확인됐고, 또 성자인 로고스도, 예수 그리스도인 로고스도 태초부터 성부 하나님과 함께 이 우주를 창조하셨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창조된 것 중에, 지음 받은 것 중에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 그러니까 엘이 아니라 엘로힘이 맞지 않습니까. 태초부터 이렇게 성부 성자 성령이 함께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함께 존재하셨다는 거예요.</span></p>
<!-- paragraph:p0029 -->
<p class="p2"><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30 -->
<p class="p1"><span>여러분, 우리 기독교의 하나님, 신구약이 말씀하는 성경의 하나님은 절대 단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엘로힘, 복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들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십니다. 하나님이 유일신이라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 참 신, 진정한 신이라는 뜻이지 수적으로 한 분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엄연히 성부 성자 성령 세 분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31 -->
<p class="p2"><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32 -->
<p class="p1"><span>그래도 여전히 미심쩍고 못 믿으시겠다면 이번에는 다시 창세기 1장 26절로 가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온 땅에 기는 모든 것들을 다스리게 하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마지막 여섯째 날 사람을 창조하시기 위해서 깊이 숙고하시는 대목인데 뭐라고 하셨죠?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내가 아니고 우리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33 -->
<p class="p2"><br></p>
<!-- paragraph:p0034 -->
<p class="p1"><span>왜 우리일까요? 성부 성자 성령이시니까 당연히 우리입니다. 보십시오. 사람을 지으실 때도 이렇게 세 분 하나님이 서로 연대하시고 소통하시며 창조하시지 않았습니까. 사람을 창조하실 때도 혼자 창조하신 게 아닙니다. 세 분 하나님이 깊이 숙의해서 연대해서 함께 우리가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렇게 작업하셨습니다. 창조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 기독교의 하나님, 성경의 신관은 절대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의미의 단일신론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단일신론은 우리 기독교의 신관이 아니라, 야웨만을 믿는 유대교의 신관이고, 알라만을 믿는 이스마엘의 신관입니다. 유대교나 이슬람은 하나님이 한 분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신론은, 신관은 단일신론입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다.</span></p>
<!-- paragraph:p0035 -->
<p class="p2"><br></p>
<!-- paragraph:p0036 -->
<p class="p1"><span>그럼 우리 기독교는 단일신론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 분이니까, 하나님이 세 분이라는 뜻의 삼신론입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아니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 세 분이면 삼신론 맞잖아요. 그런데 안 맞다는 거예요. 삼신론은 틀렸다는 겁니다. 삼신론은 우리 기독교가 아니라 동양의 전통적인 신관이라고 했죠. 유교는 천지인이잖아요. 천지인, 삼재잖아요. 불교도 삼신입니다. 불보, 법보, 승보라고 하잖아요. 그걸 삼보라고 하지 않습니까. 삼보 삼신론이예요. 단군도 마찬가지로 환인 환웅 환검이잖아요. 우리의 전통적인 무속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신 산신 육신이라고 하잖아요. 그걸 삼신 할매라고 하잖아요. 삼신상제, 삼신입니다. 신이 세 분이에요.이게 다 삼신론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37 -->
<p class="p2"><br></p>
<!-- paragraph:p0038 -->
<p class="p1"><span>그렇다면 기독교의 성부 성자 성령은 왜 삼신론이 아닐까요? 엄연히 하나님이 세 분인데 세 분이면서 동시에 한 분이시고, 한 분이시면서 동시에 세 분이기 때문에 삼신론이 아닙니다. 참 난해한데, 이걸 교리적으로 뭐라고 한다구요? 이게 바로 헬라어로는 triada, 라틴어로는 trinitas, 영어로는 trinity, 독일말로는  Dreifaltigkeit, 우리말로는 삼위일체입니다. 엘로힘, 복수 하나님의 신비한 존재 양식인 삼위일체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39 -->
<p class="p2"><br></p>
<!-- paragraph:p0040 -->
<p class="p1"><span>그렇다면 세 분이면서 한 분이고, 한 분이면서 세 분이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어떤 존재 양태를 가리키는 말일까요? 수적으로는, 머리수는 분명 셋인데, 본질적으로는 존재론적으로는 완전하고도 완벽한 하나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한 몸에 머리가 셋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건 삼위일체가 아니라 요괴죠 괴물이죠. 빌립보서 2장 6절 이하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계셨다” 주님은 그 근본이 하나님의 본체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근본이 다 같은 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수적으로는 엄연히 셋이지만 본질적으로는 하나, 일체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41 -->
<p class="p2"><br></p>
<!-- paragraph:p0042 -->
<p class="p1"><span>그럼에도 그 세 분에게는 각자의 고유한 자리가 있고 역할이 있고 완전하고도 완벽한 위상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삼위라고 합니다. 완벽하게 세 분이 하나일 만큼 같지만, 또 고유한 위상이 있어요. 자리가 있어요. 고유한 사역이 있어요. 그걸 삼위일체라고 합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43 -->
<p class="p2"><br></p>
<!-- paragraph:p0044 -->
<p class="p1"><span>우리가 부부를 일심동체라고 하죠. 분명 수적으로는 아내와 남편 둘이잖아요. 그런데도 그 마음이, 그 몸이 하나라는 뜻 아닙니까. 부부 일심동체. 삼위일체라는 말도 3이 일심동체라는 말과 같습니다. 사실 부부 일심동체라는 말은 과장이지만, 그래야 한다는 당위이지만, 3이 일체, 3이 일심동체라는 말은 하나님의 존재 양식에 대한 완벽한 진실이자 객관적인 팩트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45 -->
<p class="p2"><br></p>
<!-- paragraph:p0046 -->
<p class="p1"><span>그런데 이런 삼위일체에 대한 오래된 몇 가지 오해와 해석상의 오류가 있다고 했습니다. 먼저 가장 흔한 게 뭐라구요? 양태론입니다. 양태론이란 하나님이 원래는 한 분인데 각 시대마다 필요에 따라 다른 양태로 변신해서 출현했다는 거예요. 이를테면 구약시대 때는 성부 하나님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신약시대 때는 성자 하나님으로 출현하셔서 인간을 구속하셨고, 지금 이 마지막 시대에는 성령 하나님으로 강림하셔서 우리를 지금 천국으로 견인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그럴 듯 합니까? 삼위일체를 제대로 이해한 겁니까?</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47 -->
<p class="p2"><br></p>
<!-- paragraph:p0048 -->
<p class="p1"><span>누가복음 3장 21절 이하입니다. 주님이 세례 받으시는 장면인데 이렇습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이 그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여기 보십시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인데 성부 성자 성령이 동시에 출현하잖아요. 성자는 지금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은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 성자 위에 강림하시고, 성부는 하늘에서 세례를 받는 성자에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한다, 그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이것은 한 분이 시대에 따라 성부로 혹은 성자로 혹은 성령으로 변신한다는 양태론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양태론과는 다른 얘기입니다. 다른 말씀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49 -->
<p class="p2"><br></p>
<!-- paragraph:p0050 -->
<p class="p1"><span>또 어떤 사람들은 나무와 강을 예로 삼위일체를 설명합니다. 뿌리와 줄기와 가지가 한 그루의 나무를 이루고, 하류 중류 상류가 하나의 강을 이루듯이, 성자 성부 성령 이 세 분이 개별적으로는 완전한 하나님이 못 되지만 하나로 합쳐지면 비로소 한 분 하나님이 성립이 된다. 완전체 하나님이 된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각각 삼분의 일 하나님이 아니라, 이미 개별적으로도 독자적으로도 완전한 하나님이시고 완벽한 지체십니다. 삼위가 바로 그런 뜻입니다. 그 한 분 한 분도 완벽한 하나님이십니다. 3분의 1 하나님이 아닙니다. 다 모여야 완전체가 되는 게 아닙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완전한 세 분 하나님이면서 동시에 완전한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51 -->
<p class="p2"><br></p>
<!-- paragraph:p0052 -->
<p class="p1"><span>또 하나가 있습니다. 이것은 성부 성자 성령의 존재를 다 인정하면서도 그 권위와 신성에 있어서는 등급이 있고 서열이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을 대등하고 동등하게 보지 않고 위계적으로 계급적으로 이해하는 겁니다. 성부 하나님이 제일 높고, 그다음은 성자이고, 마지막은 심부름하고 돕는 하나님인 성령이다. 이런 식입니다. 그래서 계급이 가장 낮은 성령을 마치 무슨 종부리듯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건 크게 잘못된 겁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다 똑같은 권위와 똑같은 존엄을 가지고 계신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다 똑같기 때문에 하나라는 거예요. 어떤 하나님도 열등하지 않습니다. 각자가 고유한 자리, 고유한 사역이 있을 뿐 거기에 어떤 계급도, 서열도, 위계도, 차등도 있을 수 없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53 -->
<p class="p2"><br></p>
<!-- paragraph:p0054 -->
<p class="p1"><span>지금도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마 여러분도 그러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믿으면 되지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하냐. 중요합니다. 참 중요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우리가 그 하나님을 어떻게 알고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곧 우리의 신앙을 결정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55 -->
<p class="p2"><br></p>
<!-- paragraph:p0056 -->
<p class="p1"><span>여러분, 제가 늘 말씀 드리지만, 우리 기독교는 절대 자기 나름대로 혹은 옛날 우리 조상들이 우상 섬기던 방식으로 혹은 천지신명께 치성드리는 방식으로 믿으면 안 됩니다.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내게 뭘 원하시고, 내가 그분을 어떻게 경배하는 것이 최선인지 잘 헤아려서 그분 뜻에 합당하게 믿어야 그 믿음이 복됩니다. 또한 그런 믿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합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57 -->
<p class="p2"><br></p>
<!-- paragraph:p0058 -->
<p class="p1"><span>이 삼위일체라는 것은 우리가 믿는 엘로힘 하나님의 정체성, 존재 양식에 대한 우리의 신앙고백이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이 돼야 비로소 그 믿음이 바르고 또 우리의 신앙 인격도 성숙하고 깊어진다는 것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59 -->
<p class="p2"><br></p>
<!-- paragraph:p0060 -->
<p class="p1"><span>부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와 확신이 늘 여러분의 믿음과 삶을 더욱 강건하게 하고 복되게 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61 -->
<p class="p1"><span class="Apple-converted-space"><br></span></p>
<!-- paragraph:p0062 -->
<p class="p1"><span class="Apple-converted-space"><br></span></p>

<!-- paragraph:p0063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a href="https://www.youtube.com/embed/JnQ8Sra0YlM" title="미디어 원본"></a></sp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