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의 자화상
읽기 설정
미리보기 인용
복사되는 내용은 인용 정보와 미리보기 주소다.
현재 미리보기 주소:
저는 오래전 프랑스 파리의 센 강변에 자리한 <오르세 미술관> 5층 35번 전시실에서 처음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과 마주쳤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그가 1889년에 그린 자화상이 전시된 방에 들어서자 다른 그림들은 눈앞에서 다 사라지고 오직 그 작품만이 제게로 돌진해 꿈틀대는 거친 붓질로 저의 내면을 마구 헤집는 듯해 어지러운 감동과 함께 그의 고통, 혼란, 외로움과 절망까지도 느껴져 몹시 가슴이 저리고 먹먹했던 순간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늘은(5월 29일) 고흐가 1890년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의 생레미 정신병원에서 권총으로 37세의 생을 마감한 날입니다.
반 고흐는 1853년 3월 네덜란드 준데르트에서 개혁교회 목회자의 6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도 목사여서 그의 집안은 오랜 장로교 전통의 성직자 가풍이었고 고흐 역시도 엄격하면서도 온화했던 아버지의 영향 아래 3대 목회자를 꿈꾸며 유수한 암스테르담 대학 신학부에 진학하여 성직자 수업을 받습니다. 그러나 작은 교회 목회자인 아버지의 경제적인 지원이 여의치 않아 더 이상 학업을 계속하기가 어려워지자 영국으로 건너가 평신도 설교가로 사역하다 다시 벨기에의 탄광촌 선교사로, 전도사로 자리를 옮기지만 가는 곳마다 교회 당국과의 마찰로 심한 어려움을 겪습니다.
스크린샷 2022-05-27 오전 8.45.49.jpg
1880년 고흐는 결국 설교가의 길과 열렬히 바라던 목사 지망생의 꿈을 접고 목회보다는 그림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믿으며 27세의 늦깎이로 화단에 입문합니다. 그러나 불과 10년간의 짧은 그의 화가 인생은 이전보다 오히려 더 열악하고 처절한 막장이었습니다. 극단적인 가난과 고통과 소외와 멸시뿐인 최악의 밑바닥 인생이었습니다. 6개월간 함께 생활하며 작업했던 폴 고갱과의 불화로 자신의 귀마저 자르고, 수시로 찾아오는 발작증으로 정신과 영혼은 나날이 더 피폐해져 갔는데 그의 그런 모습이 세인들에게는 <붉은 수염의 미치광이 화가>로 깊이 각인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무려 8백여 점의 유화와 7백 점 이상의 데생을 남겼습니다. 그의 생전에 팔린 작품은 오직 데생 한 점뿐이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30년이 지난 지금은 그의 작품이 매번 그림 경매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정신사에 족적을 남긴 수많은 예술가들 중에서도 빈센트 반 고흐만큼 우리의 삶에 큰 울림을 준 화가가 또 있을까요? 그것은 비록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그의 인생 여정이 슬픔과 기쁨, 가난과 좌절, 고통과 인내, 모멸과 천대, 열정과 분노, 고독과 비극적인 최후까지 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온갖 삶의 경험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의 삶과 그림이 시대를 초월해 우리 모두의 가슴에 시리도록 와 닿고 우리의 영혼을 이토록 뒤흔드는 것도 그의 작품이야말로 화가의 손이 만들어낸 단순한 색의 조합이 아니라 가장 외롭고 아팠던 한 인간의 고뇌를 가감 없이 그대로 화폭에 담아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에서 고흐처럼 처절한 인생이 또 있을까요? 고흐처럼 고독한 예술혼이 또 있을까요? 고흐처럼 광기와 미망에서 헤어나지 못한 영혼이 또 있을까요? 누구보다 주님을 사랑하면서도 끝내 권총으로 자신의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삶을 직면하는 일은 확실히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고흐의 그 모진 아픔과 이 시대 우리들의 상처가 만나는 그 공감의 자리에서 우리는 또 한 번 주님이 베푸시는 참된 치유의 신비를 경험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기일인 오늘 그의 자화상 앞에 삼가 보라색 아이리스 한 송이를 바칩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 이미지: 원래 주소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