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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 class="p1"><span>20220515</span></p>
<!-- paragraph:p0002 -->
<p class="p1"><span>전 11:9-12:8</span></p>
<!-- paragraph:p0003 -->
<p class="p1"><span>영원한 청년</span></p>
<!-- paragraph:p0004 -->
<p class="p2"><br></p>
<!-- paragraph:p0005 -->
<p class="p1"><span>11:9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span><br><span>10 그런즉 근심이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이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검은 머리의 시절이 다 헛되니라</span></p>
<!-- paragraph:p0006 -->
<p class="p2"><br></p>
<!-- paragraph:p0007 -->
<p class="p1"><span>12:1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span><br><span>2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span><br><span>3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다 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span><br><span>4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로 말미암아 일어날 것이며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span><br><span>5 또한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정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니라</span><br><span>6 은 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지고</span><br><span>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span><br><span>8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span></p>
<!-- paragraph:p0008 -->
<p class="p2"><br></p>
<!-- paragraph:p0009 -->
<p class="p2"><br></p>
<!-- paragraph:p0010 -->
<p class="p1"><span>여러분 올해 하나님의 연세가 어떻게 되시죠? 굳이 올해가 아니어도 하나님의 연세는 언제나 무한이시죠 영원이십니다. 하나님의 연세는 무한, 영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연수를 자랑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백 살이 아니라 천 살 만 살을 먹었다고 해도, 영원하시고 무한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가 다 어린 나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60이 되고 70이 돼도 부모님 앞에서는 우리가 여전히 다 어린 자식이고 철없는 자식이잖아요. 연세가 무한이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다 영원한 어린 아이일 뿐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11 -->
<p class="p2"><br></p>
<!-- paragraph:p0012 -->
<p class="p1"><span>오늘이 청년 주일이고 또 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청년 세대가 가장 힘들다고 합니다. 여러분, 청년이 누굽니까? 우리 사회에 이삼십 대가 청년이죠. 우리 사회와 교회의 내일이자 희망인 이삼십 대가 청년입니다.</span></p>
<!-- paragraph:p0013 -->
<p class="p2"><br></p>
<!-- paragraph:p0014 -->
<p class="p1"><span>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러한 청년 개념조차도 무색해집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연세가 영원이신 하나님 앞에서는 이삼십 대만이 아니라 팔십 대, 구십 대도 만년 청년일 뿐이라는 겁니다. 연세가 무한이신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가 다 영원한 청춘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로, 청년으로 살아가는 거예요. 더구나 우리는 내 중심에 늘 주님을 모시고 살잖아요. 주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33세에 십자가를 지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사, 지금도 승천하셔서 청년으로 계시잖아요. 주님은 영원히 33세입니다. 장차 재림하실 때도 너희가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시리라 그랬죠. 재림 때도 주님은 청년으로 오십니다. 33세로 오십니다. 그런 주님을 우리가 우리 중심에 늘 모시고 살기 때문에, 믿는 자들은 영원한 청춘입니다. 영원한 청년입니다. 그분을 믿고, 그분을 내 안에 모시고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물학적인 연령과는 상관없이 언제나 청춘으로 사는 겁니다. 그게 성경적입니다.</span></p>
<!-- paragraph:p0015 -->
<p class="p2"><br></p>
<!-- paragraph:p0016 -->
<p class="p1"><span>제가 오늘 소개해드린 이 본문 말씀은 솔로몬의 말씀인데,열왕기상 3장 7절을 보면,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저는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모릅니다. 그러니 도와주십시오. 그래도 일국의 왕인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출입할 줄을 모르는 어린아이라고 합니다. 이게 얼마나 지당하고 정직한 고백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60세 된 작은 아이 70세 80세 90세 된 만년 청년들만 있을 뿐 노인은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마음으로, 그런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17 -->
<p class="p2"><br></p>
<!-- paragraph:p0018 -->
<p class="p1"><span>그런데 바로 여기서,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게 있습니다. 놓쳐서는 안 될 게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우리가 다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출입할 줄을 모르는 어린아이이고 또 혈기 왕성한 만년 청년이라고 해서, 그것이 결코 세상을 함부로 살거나 무책임하게 살아도 좋다는 뜻은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어떻게 살든, 철부지한 어린아이니까, 아직은 미숙한 청년이니까 하나님이 다 이해하시고 용서하시겠지.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겁니다. 그건 착각이라는 거예요. 어린아이고 청년인 것은 맞는데 그래도 진지하게 살아야 된다고, 절대 무책임하게 살면 안 된다고 합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어리석다는 거예요.</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19 -->
<p class="p2"><br></p>
<!-- paragraph:p0020 -->
<p class="p1"><span>오히려 성경은 청년의 때가 값지고 소중한 만큼 그 책임도 크고 무겁다고 합니다. 본문 11장 9절을 보십시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에 보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인생의 황금기인 청년의 때를 마음껏 즐기고 모든 것을 다 행하며 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은 훗날 하나님이 반드시 그 삶을 결산하시고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청년의 때라고 어린아이 시절이라고 안 봐주신다고 합니다. 정작 나는 다 잊어버려도 하나님은 절대 그간의 내 삶의 행보를 놓치지 않으시고 생생한 동영상으로 다 녹화를 해두셨다가 심판 때 그것을 내 눈 앞에서 재생하시면서 엄중하게 내 삶을 심판하신다고 합니다.</span></p>
<!-- paragraph:p0021 -->
<p class="p2"><br></p>
<!-- paragraph:p0022 -->
<p class="p1"><span>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만년 어린아이로 혹은 미숙한 청년으로 산다고 함부로 처신해서는 안 되고, 훗날 반드시 내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준엄한 정산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늘 바르고 경건하게 정직하게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솔로몬이 이 시대의 모든 청년들에게 남긴 특별한 당부고 교훈이라는 겁니다.</span></p>
<!-- paragraph:p0023 -->
<p class="p2"><br></p>
<!-- paragraph:p0024 -->
<p class="p1"><span>자 그러면 솔로몬이 청년들에게, 또한 하나님 앞에서는 언제나 어린아이일 수밖에 없는 오늘 우리들에게 보이는 구체적인 교훈을, 그가 우리에게 던진 인생 메시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해보겠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25 -->
<p class="p2"><br></p>
<!-- paragraph:p0026 -->
<p class="p1"><span>먼저 뭐라고 했습니까? 청년의 때에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본문 12장 1절 상반절입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솔로몬은 청년의 때에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미션이 바로 창조주를 기억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기억하라는 말씀은 절대 소극적인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정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대단히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창조주를 알라. 배우라. 창조주에 대한 지식을 축적하라. 그런 뜻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27 -->
<p class="p2"><br></p>
<!-- paragraph:p0028 -->
<p class="p1"><span>그런데 우리는 그 반대죠. 청년의 때는 그냥 설렁설렁 교회를 다녀도, 신앙생활을 해도 그저 설렁설렁할 생각을 하고 있잖아요. 설렁설렁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잖아요. 대개 청년들은 어릴 때부터 습관적으로 교회를 다니거나 또 부모의 강요로 마지못해 교회에 나오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주체적으로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의지가 약한 게 사실이에요. 그러나 자신의 종교가 어쨌든 기독교니까 최소한 한 주에 한 번 주일예배만큼은 참석을 해줘야 된다고 생각하고 마치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듯이 그렇게 교회를 오가잖아요. 그러면서 절대 그 이상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주일날 한번 교회 나와주는 것 외에는 절대 허용을 하지 않죠.</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29 -->
<p class="p2"><br></p>
<!-- paragraph:p0030 -->
<p class="p1"><span>그렇습니다. 청년의 때란 여러 가지로 신앙생활을 하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혈기 충천하지요. 오만 방자하지요. 또 권위에 저항할 때고, 방황하고 회의하고 무한 자유를 갈망하면 될 때입니다. 또 여러 가지 죄와 유혹에도 가장 많이 가장 쉽게 노출되는 때입니다. 또 그렇기 때문에 그만큼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이 절실하고 소중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청년들의 신앙생활은 지극히 소극적이고 수동적이죠. 피동적이죠. 왜 그럴까요?</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31 -->
<p class="p2"><br></p>
<!-- paragraph:p0032 -->
<p class="p1"><span>뜻밖에도 젊어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그 자체에 대해 억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거예요. 그래서 피해의식도 갖고 있고 본전 생각도 많이 한다는 거죠. 젊을 때는 그저 아무런 제약 없이 자기 마음대로 자기 하고 싶은 것 무엇이나 다 하며 마음껏 살다가 늙어서 죽을 때쯤 돼서 잠시 믿다가 천국 가면 그게 가장 이상적이다. 그게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젊어서 예수 믿으면 나만 손해라고 생각하는 청년들이 의외로 많다고 합니다. 우리 한국 교회 안에 말입니다. 그러나 그건 어리석은 생각이고 너무도 잘못된 인간적인 발상이라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33 -->
<p class="p2"><br></p>
<!-- paragraph:p0034 -->
<p class="p1"><span>제가 자주 말씀드렸죠. 믿는 사람들도 죽으면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섭니다. 그러나 믿는 자의 심판은 천국이냐 지옥이냐가 아니라, 우리 각자가 천국에 가서 누릴 영광을 결정하는 심판이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천국에 무슨 차별이 있고 차등이 있느냐고 합니다. 천국이면 천국이지 거기에 무슨 등급이 있고 수준이 있느냐고 합니다. 맞습니다. 천국은 가장 정의롭고 가장 공정하고 가장 공평한 세계입니다. 그래서 절대 평준화가 아닌 그동안 믿음만큼, 그동안 희생하고 사랑하고 양보한 만큼 그동안 이 땅에서 뿌리고 심은 만큼 정확하게 거두고 보상받는 세계입니다. 그래서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천국에 가서 누릴 영광이 다 다릅니다. 공정한 세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span></p>
<!-- paragraph:p0035 -->
<p class="p2"><br></p>
<!-- paragraph:p0036 -->
<p class="p1"><span>바울은 천국의 영광을 말하며, 해의 영광, 달의 영광, 별의 영광, 별 중에서도 북두칠성의 영광, 은하수의 영광, 샛별의 영광이 각각 다 다르다고 했죠. 부디 못해서 혹은 어려서 혹은 청년의 때에 주님 만난 사실을 억울해 하지 마시고, 도리어 내 인생 최고의 축복으로 믿으시며 더욱 열심히 하나님을 알고, 더욱 바르게 그분을 섬기셔서 훗날 그 누구보다도 풍성한 천국의 영화를 누리는 복된 청년들, 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진심으로 빌어마지 않습니다.</span></p>
<!-- paragraph:p0037 -->
<p class="p2"><br></p>
<!-- paragraph:p0038 -->
<p class="p1"><span>다음은 청년의 때에 꼭 하나님께 헌신하라는 것이 솔로몬의 당부입니다. 청년들에 대한, 청년들을 향한 본문 3절 이하 7절까지는 우리가 왜 청년의 때를 절대 놓치면 안 되는지, 청년의 때가 지나면, 우리가 왜 주님을 위해 일하고 싶어도 더는 할 수 없는지를 밝히는 말씀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39 -->
<p class="p2"><br></p>
<!-- paragraph:p0040 -->
<p class="p1"><span>3절을 보십시오.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나이가 들면 다리가 흔들린다는 뜻입니다.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이것은 나이가 들면 허리가 굽는다는 뜻이에요.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음으로 그칠 것이며” 이것은 치아가 다 빠진다는 겁니다. “창들로 내어다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눈이 어두워진다는 뜻이죠. 이처럼 나이가 들면 아무리 마음으로는 하고 싶어도 실제로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그러니 청년의 때에 주의 일에 보다 더 관심하고 조금이라도 더 열심을 내라는 거예요.</span></p>
<!-- paragraph:p0041 -->
<p class="p2"><br></p>
<!-- paragraph:p0042 -->
<p class="p1"><span>실제 그렇잖아요.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다 그런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내가 왜 젊을 때 좀 더 주를 위해 일하지 않았을까. 그런 후회가 있습니다. 그때는 내가 원하면 얼마든지 시간을 낼 수도 있었는데, 주의 사역에 내 힘을 보탤 수도 있었는데, 왜 그때 내가 좀 더 그렇게 살지 못했을까. 이제는 하고 싶어도 아무것도 못하는데.</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43 -->
<p class="p2"><br></p>
<!-- paragraph:p0044 -->
<p class="p1"><span>그러니 젊을 때는 미처 깨닫지 못해서, 또 나이가 들면 이제는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못하는 게 주의 일인 것 같습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젊을 때 하면 그게 어디 가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어떻게든 주를 위해 봉사 희생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주님을 보십시오. 사십대나 오십대가 아니라 삼십대 초반, 청년 때 인간 구속이라는 가장 위대한 사역에 투신하셨잖아요. 그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때가 가장 값진 때이기 때문에 청년의 때가 그만큼 아름답고 복되기 때문에 주님이 그때 십자가에 달리신 거예요. 제물이 되신 거예요.</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45 -->
<p class="p2"><br></p>
<!-- paragraph:p0046 -->
<p class="p1"><span>존 칼빈이 그의 불후의 명작인 기독교 강요를 저작했을 때, 이십육 세 때였습니다. 마르텐 루터가 비텐베르그 교회 정문에 95개 조항의 항의문을 내걸고 로마 가톨릭을 향해 종교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때도 26세였습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선교사들이 다 이십대 초중반이었습니다. 언더우드, 토마스, 아펜셀러, 모두 20대 초중반이었어요.</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47 -->
<p class="p2"><br></p>
<!-- paragraph:p0048 -->
<p class="p1"><span>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입으로 믿거나 머리로 믿거나 가슴으로 믿는 게 아니고, 나의 온몸으로 내 삶 전체로 내 존재 전부로 믿는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가장 혈기 왕성할 때 내 인생에서 가장 활력이 넘칠 때, 주님을 위해 수고하고 봉사해야 그 사역이 그만큼 값진 것이 됩니다. 주님 받으시기에 합당한 향기로운 제물이 됩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49 -->
<p class="p2"><br></p>
<!-- paragraph:p0050 -->
<p class="p1"><span>기억하십시오.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집니다. 이 땅에서는 그들이 최고의 권력가들일지 몰라도 천국 가면 다 별 볼 일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은 이미 이 땅에서 그들이 받을 영광을 다 누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미 이 땅에서 온갖 특권으로, 권력으로, 또 많은 부로 최고의 보상을 받은 사람들이기에 천국 가서 더 이상 받을 게 없어요. 여러분도 훗날 천국 가셔서 괜히 잘난 체 하면서 저 은행장 하다가 왔는데요. 사장하다 왔습니다. 대학 교수하다 왔습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이 땅에서야 그런 직업과 직함들이 다 대단하지만, 천국 가면 다 쓸 데 없습니다. 주님이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신다구요? 너는 땅에서 이미 내 상을 다 받았느니라. 그러니까 차라리 집사 하다가 왔습니다. 집사로 교회 재정 관리하다가 왔습니다. 교회 주방에서 봉사하다 왔습니다.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하다 왔습니다. 성가대 봉사하다 왔습니다. 교회 청소하다 왔습니다. 청년부 회장하다 총무하다 왔습니다. 그러십시오. 이 세상 직분은 다 이 세상에서 그 대가와 보상을 받지만, 하다못해 한 시간 알바를 해도 시급을 받지만, 교회 직분, 신앙 직분은 천국에 가야 그 보상을 받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는 그게 값진 것입니다.</span></p>
<!-- paragraph:p0051 -->
<p class="p2"><br></p>
<!-- paragraph:p0052 -->
<p class="p1"><span>따라서 청년 시절에 하나님의 일을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조금이라도 더 많이 해둬야 그게 어디 가지 않고 다 내 천국 마일리지에 차곡차곡 적립이 돼서 훗날 가장 아름다운 보상으로 내 영원한 천국의 영화를 보장해준다는 거예요.</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53 -->
<p class="p2"><br></p>
<!-- paragraph:p0054 -->
<p class="p1"><span>그러면 이제 오늘 말씀의 결론이자, 이 전도서의 결론을 다시 한 번 확인해보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전도서 12장 마지막 절이면서, 전도서의 제일 마지막 절인 14절 말씀을 한번 보십시오. 12장 14절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이겁니다. 이게 바로 오늘 청년들에게 주시는 최후의 메시지이자 이 전도서의 결론이요, 우리 모든 인생들의 결론입니다. 아까 11장 9절 하반절 말씀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그랬잖아요.</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55 -->
<p class="p2"><br></p>
<!-- paragraph:p0056 -->
<p class="p1"><span>사실 아무렇게나 살고 함부로 살아도 죽음과 함께 그 모든 것이 끝난다면, 그냥 그때그때 어떤 식으로든 최대한 즐기며 사는 게 가장 실속 있는 인생일 겁니다. 그러나 어림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준엄한 결산이 있고, 최후 정산이 있고, 내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이 있습니다. 특히 인생의 황금기인 청년의 때에 대한 하나님의 엄정한 판결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 솔로몬의 경고입니다. 늘 이걸 기억하며 살라는 겁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57 -->
<p class="p2"><br></p>
<!-- paragraph:p0058 -->
<p class="p1"><span>따라서 좀 더 책임적으로 사십시오. 이 세상 누구도 하나님의 최후 심판만큼은 결코 피해갈 수 없습니다. 청년의 때라고 하나님이 좀 관대한 잣대로 심판하실 것이라는 기대는 아예 하지 마십시오. 12장 14절 말씀처럼 하나님은 똑같은 기준과 똑같은 잣대로 우리의 모든 행위와 은밀한 일들을 다 칼같이 심판하십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59 -->
<p class="p2"><br></p>
<!-- paragraph:p0060 -->
<p class="p1"><span>부디 늘 창조주를 기억하고 언제나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 우리 청년들 되시고, 또 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61 -->
<p class="p1"><span class="Apple-converted-space"><br></span></p>
<!-- paragraph:p0062 -->
<p class="p1"><span class="Apple-converted-space"><br></span></p>
<!-- paragraph:p0063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a href="https://www.youtube.com/embed/MCTbiKgkKo4" title="미디어 원본"></a></sp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