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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08] 이것이 옳으니라! (엡 6:1-3)

20220508

엡 6:1-3

이것이 옳으니라!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전에 제가 그랬죠. 우리 푸른교회 성도들은 다 효자효녀여야 된다구요. 왜요? 우리 교회가 효자촌에 있으니까요. 서울에도 청와대 옆에 효자동 있잖아요. 그 동네가 왜 효자동이 됐을까요? 조선시대 그 마을에 살던 한 노인이 아직 걷지도 못하는 손자를 그렇게 사랑했는데, 하루는 시원한 대청에서 손주와 같이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잠결에 그만 그 손자를 덮어 눌러서 손자가 질식을 하고 말았습니다. 부엌에서 남편의 새참을 준비하던 며느리가 그 죽은 아이를 둘러업고 울며불며 가까운 밭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에게로 뛰어가서 자초지종을 얘기했습니다. 


아내의 말을 듣던 남편이 됐든 그 죽은 아기의 뺨을 때리면서 이 놈, 어린 것이 감히 할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해? 그러면서 또 한 차례 세차게 때렸습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질식해서 죽었던 아기가 두 번째 뺨을 맞고는 막혔던 숨이 트여서 기침을 하며 살아나서 울더라는 거예요. 기적같이 회생을 한 겁니다. 그 소문이 온 장안에 퍼져 나가서 나라에서는 후한 상을 내리고, 그 동네에는 효자비를 세워 그의 효심을 기렸는데, 그때부터 그 마을을 효자촌이라고 불렀다는 게 태조실록에 나옵니다. 우리 사회가 효를 최고의 가치와 덕목으로 꼽는 유교 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설화가 나왔겠죠.


그런데 성경이 말씀하는 효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아니 우리의 전통 문화나 동양적인 가치관보다도 오히려 더 셉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유가에서 아무리 효를 으뜸으로 친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자님이 가르친 윤리고 도덕이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성경이 말씀하는 내 부모를 공경하라는 이 효는 윤리나 도덕의 차원의 것이 아닙니다. 미풍양속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하늘에서 떨어진 겁니다. 하나님이 직접 돌판에 새기셔서 모세에게 준 준엄한 계명입니다.


더구나 성경은 이 계명이 다른 계명보다 좀 특별하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 2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다”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전제된, 하나님의 특별한 약속이 담보된 첫 계명이라는 것인데, 이게 무슨 뜻일까요? 


잘 아시는 대로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십계명은 두 개의 돌판에 각인이 돼 있죠. 그래서 모세가 40일 만에 그 시내산에서 내려왔는데 내려올 때 그 두 개의 돌판을 양팔에 하나씩 안고 하산했습니다. 그런데 그 두 개 돌판의 구성을 보면, 그 편집을 보면, 우선 한쪽 돌판에는 하나님에 관한 계명인 제1계명에서 제4계명까지 기록이 돼 있고, 각인이 돼 있고, 또 다른 한 돌판에는 사람에 관한 계명인 제5계명에서 제10계명까지가 기록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두 번째 돌판, 즉 사람에 관한 계명의 첫째가 뭡니까? 살인하지 말랍니까? 아닙니다. 그건 제6계명입니다. 간음하지 말랍니까? 아닙니다. 그건 제7계명입니다. 도적질하지 말랍니까? 아닙니다. 그건 제8계명입니다. 그러면 사람에 관한 계명인 두 번째 돌판의 첫 계명이 뭡니까? 바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가 두 번째 돌판의 첫 계명인 제5계명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이 이 제5계명을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라고 했는데, 그러면 그 약속이라는 건 뭡니까? 어떤 약속이 담보돼 있다는 겁니까 두 번째 돌판 첫 개명에? 다른 계명은 다 일방적인 명령으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우상을 만들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안식일을 지켜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 하지 말라. 네 이웃의 것을 탐하지 말라. 다 이렇게 외마디 명령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 두 번째 돌판의 첫 계명만큼은 그냥 네 부모를 공경하라가 아니라, 오늘 본문 3절에도 나와 있듯이 그리하면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한다, 모든 일이 다 잘 풀리고 땅에서 장수하는 복을 내가 주마. 그런 하나님의 약속이 전제돼 있다는 거예요. 담보돼 있다는 겁니다. 네가 잘 되고 장수한다. 어떻습니까? 이게 이 땅에서 우리가 늘 바라고 원하는 가장 일반적인 축복 아닙니까? 모든 일이 다 잘 되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는 것, 여기서 뭘 더 바라겠습니까? 이게 바로 전 인류가 추구하는 가장 보편적인 축복 아닙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우리가, 전 인류가 그토록 바라고 염원하는 만사형통과 무병장수의 꿈과 축복이 본문 1절 부모에게 순종하고, 본문 2절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는 효 계명에 달렸다니, 어떻습니까? 전혀 뜻밖이라는 생각 안 드십니까? 만사형통과 무병장수가 효와 연동이 돼 있습니다. 맞물려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그러니까 이 말씀, 제5계명 두 번째 돌판의 첫 번째 계명은 잘 지키면 약속된 이런 만사형통과 무병장수의 복을 누리게 되지만, 안 지키면 결국 이런 복을 못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보면 실제가 그렇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를 보십시오. 만고의 불효자요 부랑자였습니다. 어떻게 됐습니까? 전쟁에 나가 블레셋 군대에 패해서 가지고 나갔던 하나님의 법궤도 빼앗기고 자신들도 그 전장에서 전사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놀라 뒤로 나자빠진 아버지 엘리 제사장도 비명에 갔습니다. 그 가문이 거기서 끝났습니다. 대가 거기서 끊겼습니다. 


다윗의 셋째 아들인 압살롬을 보십시오. 악명 높은 패륜아인 형을 살해하고 아버지마저 죽이고 자기가 왕위를 차지하려고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결국은 비참한 최후를 맞잖아요. 노새를 타고 달아나다 자신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던 금발이 상수리나무 가지에 걸려서 공중에 매달렸는데, 그 뒤를 쫓아가던 진압군 대장 요압이 그 심장에 단창을 무려 세 개나 꽂았습니다. 그게 아비를 대적하던 아들의 최후였습니다. 


노아의 둘째 아들인 함도 보십시오. 포도주에 취해서 벌거벗은 채 자고 있던 아버지 노아의 치부를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며 선전하고 조롱했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그의 자자손손이 다른 형제들의 종이 되고 노예가 됐잖아요.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효자들은 계명의 약속 그대로 다 만사가 형통했고 또 장수했습니다. 누구보다도 효성이 지극했던 요셉을 보세요. 형들의 시기를 사 애굽의 노예로 팔려가고, 애굽에서 또 억울한 옥살이까지 하지만 결국은 대국 애굽의 총리가 되어 110세까지 장수하는 큰 축복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이야기가 나오는 창세기 39장 이하를 보면 마치 후렴처럼 반복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뭡니까? 노예로 졸지에 애굽에 팔려갔는데도 성경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시므로 그의 범사가 형통하더라. 또 만리 타국 애굽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는데 성경은 뭐라고 하느냐 하면,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를 형통케 하셨더라. 계속 그의 범사가 형통했다는 거예요. 현실적으로는 계속 고난인데. 


여러분, 부모를 공경하는 자의 범사는 어떤 경우에도 형통합니다. 결국 노예가 일국의 국무총리가 되잖아요. 2인자가 되잖아요. 그게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입니다. 절세의 효부였던 룻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방 여인인데다가 남편까지 죽었는데도 끝끝내 시어머니를 포기하지 않고 자기가 모시겠다며 뭐라고 합니까?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고,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님 가시는 곳에는 나도 반드시 함께 가며, 언제까지든지 어머니와 함께 살겠나이다. 세상에 이런 며느리가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십시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따라 만리 타향이요 타국인 유대 땅 베들레헴까지 와서 지극 정성으로 시어머니를 받듭니다. 그러다가 보아스를 만나 재혼을 해서 다윗의 증조모가 되잖아요. 이방인 여인인 룻이 다윗의 증조모가 되고, 따라서 주님의 조상이 되어 메시아의 족보에까지 올라갑니다. 아니 유대인 여성도 족보에는 못 올라가는데 이방 여성인 룻이 주님의 조상이 되어 메시아의 족보에까지 등재가 됩니다.


성경에는 또 한 사람 유명한 효자가 있죠. 지혜의 왕이요 영화와 축복의 화신으로 명성이 높은 솔로몬입니다. 그는 아버지를 반역하다 비참하게 죽은 이복형 압살롬과는 달리 참 대단한 효자였습니다. 솔로몬이 필생의 숙원 사업으로 건축한 예루살렘 성전도 실은 자기 부친 다윗의 절절한 소원이었잖아요. 다시 말해서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여,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봉헌한 게 바로 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다는 예루살렘의 솔로몬 성전이었습니다. 또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이 세상을 떠나자마자 자기 어머니인 밧세바 앞에서 효를 맹세합니다. 효를 서약합니다. 열왕기상 2장 20절을 보면, “내가 무엇이든지 어머니의 청을 거절하지 않겠나이다” 하며 서원합니다. 그런 솔로몬을 하나님이 얼마나 축복하셨습니까. 솔로몬이야말로 부귀영화의 화신이잖아요.


이처럼 성경의 효사상은 철저하다 못해 극단적이고 과격하기까지 합니다. 신명기 21장 18절 이하입니다. “부모의 말씀에 청종하지 않는 완악하고 패역한 자식이 있거든 성읍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라” 출애굽기 21장 17절입니다.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잠언 3장 17절입니다.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에게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게 할지어다” 


성경의 효에 대한 가르침이 왜 이렇게 강경하고 과격할까요? 왜 이렇게 극단적일까요? 그것은 부모 공경의 연장이 곧 하나님 공경이라고 보기 때문에, 부모에 대한 순종의 연장이 곧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라고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는 절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공경할 수 없다는 거예요. 눈에 보이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만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도 순종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육신의 어버이이신 부모님에 대한 효와 영혼의 어버이이신 하나님에 대한 공경이 본질상 서로 다르지 않고 같다는 거예요.


따라서 기독교의 효사상은 유교를 비롯한 동양의 그 어떤 전통 사상보다 더 엄격하고 절대적입니다. 주님을 보십시오. 죽음을 앞에 놓고도, 죽음 앞에서도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그러셨습니다. 주님 같은 효자는 없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지금 숨이 넘어가는 순간인데도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하잖아요. 그래서 요한이 마리아를 평생 모신 거예요. 정말 주님 같은 효자는 없습니다. 주님은 진정한 효의 모범을 보이신 분이십니다. 죽으라고 해도 그게 아버지의 뜻이면 제가 절대 순종하겠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무서워하셨잖아요. 지기 싫어하셨잖아요. 그러나 아버지 뜻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아버지 뜻에 복종하신 거예요.


성경에는 여러 가지 말세적 현상을 예언하는 말씀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어디서나 그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 게 있죠. 뭡니까? 바로 부모 거역입니다. 로마서 1장이나 디모데후서 3장을 비롯해서 어디서나 그 예언은 꼭 나옵니다. 종말로 갈수록 자식들이 점점 더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고 거역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불효가 중요한 말세적 징후 가운데 하나라는 겁니다. 이제는 가면 갈수록 부모 거역, 부모 학대, 부모 살해 같은 흉칙한 불효, 범죄 사건들이 점점 더 많아질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도 돌에 맞아 마땅한 불효자가 저 말고 또 있을지도 모릅니다. 반드시 회개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저주받지 않고 내 인생이 복됩니다. 모두 부모님께 효를 다하는 자녀들이 되셔서 하나님이 십계명에서 약속하신 이 만사형통과 무병장수의 축복을 다 풍성하게 누리며 사시는 성도들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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