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220501] 디도에게 (딛 2:4-5)

20220501

딛 2:4-5

디도에게


4 그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5 신중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늘 이 본문은 사도 바울이 디도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디도는 유대인이 아니고 헬라 사람입니다. 그리스 사람인데 바울의 전도를 받아서 기독교 신자가 됐고 또 바울의 신실한 제자, 신실한 동역자가 된 사람이죠. 바울은 자신의 믿음의 아들이었던 디모데 이상으로 이 디도를 사랑하고 깊이 신뢰했습니다. 디도는 바울의 당부를 받들어 평생 에게해의 남쪽 끝에 있는 그리스 최대 섬이죠. 크레타 섬에서 목회를 했는데, 이 디도의 유해는 지금 베네치아에 있습니다. 베네치아의 유명한 산마르코 대성당 지하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개신교보다도 가톨릭 쪽에서 이 디도를 더 많이 기리고 있는데, 가톨릭에서는 디도를 높은 서열의 성자로 숭배하고 있습니다. 


이 디도서는 디도가 크레타 섬에서 목회할 때 바울이 보낸 목회 서신인데, 본문 사절을 보십시오 뭐라고 했습니까? 당시 크레타 섬에 있는 교회에, 디도가 목회하고 있는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젊은 여성들, 즉 젊은 엄마들에게 남편과 자녀들을 바르게 사랑하도록 교육하고 잘 훈련시켜라. 그렇게 당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여기서 왜 젊은 엄마들의 남편 사랑과 자녀 사랑을 강조하면서 그걸 디도에게 당부하고 있을까요? 크레타 섬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젊은 엄마들에게 사랑을 잘 가르쳐라, 잘 교육하라고 바울이 왜 그랬을까요? 




사실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고, 엄마가 자녀를 사랑하는 일이야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잘하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바울이 여기서 굳이 젊은 엄마들에게 사랑을 가르치라고 디도에게 각별히 당부한 이유는 엄마의 사랑이 갖는 특별한 신앙적인 의미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게 뭘까요? 


먼저 엄마의 사랑이야말로 하나님 사랑의 진정한 모상이라는 거예요. 엄마의 사랑이 하나님 사랑의 참 모형이다. 그걸 깨우쳐라, 그걸 가르쳐라. 맞습니다. 엄마의 사랑은 하나님 사랑의 그림자,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하나님 사랑의 최대 근사치, 하나님 사랑의 가장 유사한 형태의 사랑이 바로 엄마의 사랑이라는 거예요.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은 다 상대적이잖아요. 조건 반사적이잖아요. 심하게 얘기하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은 다 장삿속입니다.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어야 사랑하잖아요. 남이 나를 사랑해야 나도 남을 사랑하잖아요. 내게 이익이 돼야 사랑하고, 명분이 있어야 사랑하고, 생색이 나야 사랑합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랑은 철저하게 계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고 상대적입니다. 나라 사랑도 그렇고 이성 간의 사랑도 그렇고 심지어는 부부 간의 사랑도 그렇습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다 내게 이익이 안 되고, 덕이 안 되고, 도리어 손해가 되고 해가 되고 짐이 되고 부담이 되면, 사랑하다가도 그 사랑을 철회합니다. 사랑하는 대신 미워합니다. 사랑하다가도 하루아침에 상대를 저주하기도 하고 철천지원수가 되기도 하고 이혼을 하기도 하고 의절을 하기도 합니다. 부담이 되고 짐이 되고 거추장스럽다며 제 부모를 살해하는 자식도 있잖아요. 


그러나 오직 하나, 엄마의 사랑만큼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막장으로 가도, 엄마의 자식 사랑만큼은 여전히 무조건적이고 희생적이고 맹목적이고 일방적이고 한도 끝도 없습니다. 그것은 엄마의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을 닮아서 그렇습니다. 엄마는 정말 자식을 위해 다 내주고 자식에게 다 바칩니다. 그러고도 더 주지 못해서, 더 줄게 없어서 안타까워하죠. 그런데 그게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고,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겁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랑하시되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그렇게 극단적으로 사랑하신 이 세상은 어떤 곳이죠.? 놀랍게도 하나님과 원수된 세상입니다. 하나님을 배신한 세상이고, 하나님을 대적한 세상일 뿐, 어디를 봐도 예쁜 구석이라고는 한 곳도 없는 사악한 세상, 아주 고약하고 나쁜 세상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그토록 사랑하셨다는 거예요. 말도 안 되게 사랑하셨다는 거죠. 


그런데 엄마의 사랑도 그렇잖아요. 웬수 아닌 자식이 있습니까? 며칠 전에 그런 보도가 있었죠. 지난해 원주에서 있었던 사건입니다. 40대 아들이 칠십대 부모에게 술을 가지고 오지 않는다고 머리를 벽에다 찧고 얼굴을 때리고 뒤통수를 가격하고 어머니를 밀쳐서 넘어뜨리고 엄마의 휴대폰을 발로 짓밟아서 완전히 망가뜨려 부수고, 그것도 모자라서 끓는 물을 아버지 머리에 부어서 머리며 목, 각막과 결막에 화상까지 입혔습니다.


그런데도 그 부모는 법정에서 끝까지 아들의 그 모든 범죄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용서해달라고 정말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습니다. 그래서 1심 재판부는 그 부모를 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는데,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을 파기했습니다. 반인륜적 범죄라며 더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여러분, 엄마의 사랑이 없었다면 이 세상이 과연 어떻게 됐을까요? 벌써 아비규환의 생지옥이 되고도 남았을 겁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사랑을 닮은 엄마의 사랑이 있었기에 인간들의 악한 마음, 파괴적인 정서가 조금이라도 순화되어 이 정도로 나마 사회 질서가 유지되고 있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엄마들은 다 하나님 사랑의 진정한 중보자들입니다. 엄마들은 다 하나님이 주신 모성애를 통해 자식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증거하고 있는 하나님 사랑의 홍보대사들입니다. 따라서 자녀들은 엄마의 사랑을 통해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깨닫고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자녀들은 엄마의 그 사랑을 통해 하나님 앞에 좀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아빠는 뭡니까? 엄마가 하나님의 사랑의 중보자요 홍보대사라면, 아빠는 하나님의 권위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가정의 질서와 기강을 세우는 일은 아빠 몫입니다. 엄마는 아무리 소리 지르고 매를 들어봐야 위엄이 안 서죠. 그런데도 요즘 아빠들은 시간이 없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또 지금은 권위주의 시대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 소임을 포기한 지가 오래됐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다 개판입니다. 아빠의 권위가 무너지면서 어른들에 대한 권위, 선생님에 대한 권위, 지도자들에 대한 권위, 심지어는 하나님에 대한 권위도 다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게 모두 어떤 이유로든 아빠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권위를 포기한 데서 온 필연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엄마들만큼은 시대가 아무리 변하고 문화가 달라져도 절대 하나님 사랑의 중보자의 역할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건 곧 최악의 재앙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엄마의 사랑이 이 세상에 최후의 보루입니다. 부디 바울의 당부처럼 모든 엄마들이 자식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바르게 깨우치고 또 실천하는 사랑의 전도사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당부드립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오늘 본문이 말씀하는 젊은 엄마의 그 사랑은 아가페나 스톨게가 아니라 필레오라는 겁니다. 대단히 의미심장하죠. 본문 4절 하반절에 나오는 엄마의 사랑이란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필레오의 동사형인 필리아입니다. 여러분, 이것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왜 엄마의 자녀 사랑이 절대적인 사랑이요 영원한 사랑인 아가페가 아니고, 또 혈육 간의 사랑, 가족 간의 사랑인 스톨게가 아니고, 굳이 친구지간의 사랑 친구들 간의 우정 같은 사랑인 필레오일까요?


아빠들은 대개 아이들 위에 군림하려고 하지 친구가 되어 진지하게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또 아이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그들의 문제를 공유하며 같이 씨름하려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정서를 깊이 공감하면서 서로 우정 같은 격이 없는 사랑을 나누지는 못합니다. 엄마들도 자칫하면 맹목적인 사랑, 일방적인 사랑으로만 빠질 수 있습니다. 실은 그게 바로 혈육 간의 사랑인 스톨게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는 특별히 필레오를 주문하고 있습니다. 엄마가 자녀들의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되라는 겁니다. 자녀들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그들의 문제를 함께 나누라는 겁니다. 그게 바로 성경이 엄마들에게 주문하는 구체적인 자녀 사랑의 모범입니다. 자녀들을 맹목적인 스톨게 말고 친구처럼 대하며 우정 같은 필레오로 사랑하십시오. 그래야 여러분의 자녀들이 더 밝고 건강하게 자라고, 그 정서에 흠집이나 그늘이 안 생깁니다. 아빠도 엄격하고 엄마마저도 일방적이면 아이들은 더 이상 숨 쉴 공간이 없어집니다. 


그런데 본문은 엄마의 자녀 사랑뿐 아니라 남편 사랑도 에로스가 아니라 필레오라고 합니다. 남편들과 자녀들을 다 필레오로 사랑하라는 거예요. 남편 사랑도 에로스가 아니라 필레오라는 사실이 참 뜻밖이잖아요. 연애 시절에는 이성적인 사랑인 에로스라고 해도, 결혼한 다음에는 가장 가까운 친구, 남편의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되어 필레오로 사랑하라는 게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게 진정한 남편 사랑이라는 거예요. 꼭 기억하십시오. 부부 간의 사랑도 초월적인 아가페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육체적인 에로스도 아닙니다. 우정 같은 필레오, 친구 같은 아내가 남편에게 얼마나 신선하고 평안하겠습니까? 자녀들뿐 아니라 남편도 꼭 그렇게 필레오로 사랑하는 엄마가 다 되시고, 아내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 더 있습니다. 엄마 사랑의 최고의 실천은 뭐니 뭐니 해도 자식을 위한 기도라고 합니다. 그걸 가르치라는 거예요. 엄마의 자식 사랑의 최고봉은 기도입니다. 기도 없는 자식 사랑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자식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어떻게 자식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도 모르고 하나님도 몰랐던 우리 선조들, 조상들도 다 새벽마다 목욕재계하고 정화수 떠놓고 자식들을 위해 천지신명님께 빌었는데, 어떻게 주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자식을 사랑한다는 엄마가 자식들을 위해 기도를 안 할 수 있습니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독교나 이교를 막론하고 부모들의 자식 사랑의 최대 실천은 언제나 기도였습니다. 


그래서 부모의 죄 가운데 가장 큰 죄는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 죄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자녀는 엄마의 기도 없이 자라는 자식입니다. 우리는 한나의 기도를 떠나 사무엘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유니게의 기도를 떠나 디모데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모니카의 기도 없는 어거스틴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수잔나의 기도 없는 웨슬레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기도로 키운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말은 굳이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의 좌우명이 아니고 이 시대의 모든 엄마들이 다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할 성경의 확실한 가르침입니다.


여러분은 자녀들을 위해 얼마나 기도하십니까? 자녀가 수험생이나 되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거의 기도하지 않죠. 목회자에게만 맡겨놓고 정작 부모들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게 잘못됐다는 겁니다. 제발 자녀 사랑을 돈이나 입으로 하지 마시고, 기도로 실천하십시오. 돈으로 하는 자녀 사랑은 편하기는 할지 몰라도 결국 자식을 망칩니다. 아침저녁으로 내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보다 더 아름답고 더 숭고한 엄마의 사랑은 없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십시오. 바울이 지금 디도에게 그 사실을 엄마들에게 깨우치고 가르치라는 거예요.


여러 해 전에 여자는 남자의 미래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물론 저도 안 봤고 그저 제목만 기억하고 있을 뿐인데 사실은 엄마가 자녀들의 미래입니다. 엄마의 기도가 자식들의 미래고 희망입니다. 엄마가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면, 그게 가장 밝고 아름다운 자녀들의 미래와 희망이 됩니다. 엄마의 사랑의 기도가 여러분 자녀들의 장래를 결정합니다. 좀 더 많이 사랑하시고, 좀 더 많이 기도하셔서 여러분의 자녀들이 다 엄마의 사랑과 기도로 복되고 그 장래가 아름답고 건강하고 풍성해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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