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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20220417] 홀연히 변화하리라 (고전 15: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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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 class="p1"><span>20220417</span></p>
<!-- paragraph:p0002 -->
<p class="p1"><span>고전 15:51-58</span></p>
<!-- paragraph:p0003 -->
<p class="p1"><span>홀연히 변화하리라</span></p>
<!-- paragraph:p0004 -->
<p class="p2"><br></p>
<!-- paragraph:p0005 -->
<p class="p1"><span>51 </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span></p>
<!-- paragraph:p0006 -->
<p class="p1"><span>52 </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span></p>
<!-- paragraph:p0007 -->
<p class="p1"><span>53 </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span></p>
<!-- paragraph:p0008 -->
<p class="p1"><span>54 </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span></p>
<!-- paragraph:p0009 -->
<p class="p1"><span>55 </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span></p>
<!-- paragraph:p0010 -->
<p class="p1"><span>56 </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span></p>
<!-- paragraph:p0011 -->
<p class="p1"><span>57 </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span></p>
<!-- paragraph:p0012 -->
<p class="p1"><span>58 </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span>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span></p>
<!-- paragraph:p0013 -->
<p class="p2"><br></p>
<!-- paragraph:p0014 -->
<p class="p2"><br></p>
<!-- paragraph:p0015 -->
<p class="p1"><span>여러분 가정마다 주님 부활의 놀라운 생명력이 충만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span></p>
<!-- paragraph:p0016 -->
<p class="p2"><br></p>
<!-- paragraph:p0017 -->
<p class="p1"><span>이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의 진수를 전하고 가르치는 사도 바울의 위대한 부활 논문이자 부활의 대서사시입니다. 앞으로 제가 부활에 관해서 여러분께 자주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 같지 않아서 오늘 부활장인 이 고린도전서 15장을 다시 들고 나왔습니다. 인류의 가장 위대한 종말론적 진리, 가장 심오한 종말론적 신비를 전하는 말씀은 어쩌면 말세지말(末世之末)을 향해 가고 있는 이 시대의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텍스트, 가장 중요한 주제가 부활이고, 오늘 이 말씀이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뭐 다른 게 없잖아요. 주님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 그것밖에는 더 남은 게 없잖아요. 가장 심오한 종말론적 신비를 전하는 말씀인 고린도전서 15장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18 -->
<p class="p2"><br></p>
<!-- paragraph:p0019 -->
<p class="p1"><span>제가 오늘 봉독해드린 51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무슨 비밀입니까? 당연히 부활의 비밀입니다. 바울이 지금 내가 너희에게 부활의 비밀, 부활의 숨겨진 진실, 부활의 신비를 공개하겠다. 그렇게 선언하고 있는 겁니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이 부활의 신비가 이 고린도전서에서 아주 구체적으로 공개되고 있습니다. 정말 이보다 더 소중한 종말론적 유산은 우리에게 없다. 그렇게 생각하시고 좀 더 이 부활이라는 주제에 여러분이 많은 관심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span></p>
<!-- paragraph:p0020 -->
<p class="p2"><br></p>
<!-- paragraph:p0021 -->
<p class="p1"><span>바울에게서 부활 세계의 그 실체가 우리 앞에 확연하게 드러난 겁니다. 제가 말씀드렸죠. 우리 기독교의 기원은 성탄절이 아니라 뭐라고요? 부활절. 성탄절은 모든 종교에 다 있어요. 이제 얼마 안 남았잖아요. 4월 초파일, 음력 4월 8일은 불교의 성탄절이고, 또 공자님 생신인 9월 28일은 유교의 성탄절이죠. 성탄절은 모든 종교에 다 있어요. 부활절은 우리 기독교만이 있습니다. 오직 주님만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만 부활절이 아니죠. 매 주일이 부활절이잖아요.</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22 -->
<p class="p1"><span>우리가 왜 주일을 지키는데요. 주일 새벽에 주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 부활을 기리기 위해서 원래는 토요일날 안식일을 지켰는데 그게 주일로 이행이 된 거잖아요. 매 주일이 부활절이에요. 오늘만 부활절이 아닙니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부활절이 전부입니다. 부활이 가장 소중합니다. 주님의 부활은 기독교의 시작이고 또 훗날 있을 우리 성도들의 부활은 기독교의 마지막입니다. 부활이 기독교의 시작이자 마지막이에요.</span></p>
<!-- paragraph:p0023 -->
<p class="p2"><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24 -->
<p class="p1"><span>여러분, 부활이 뭡니까? 부활이 그렇게 소중하다는데, 그렇게 중요하다는데, 기독교 최대의 주제라는데, 부활이 뭡니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게 부활입니까? 그렇다면 굳이 주님이 아니어도 죽었다 산 사람들 많잖아요. 성경에도 많이 나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도 있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도 있고, 주님은 사흘 만에 부활하셨지만 나흘 만에 부활한 사람, 나사로도 있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25 -->
<p class="p2"><br></p>
<!-- paragraph:p0026 -->
<p class="p1"><span>그 사람들도 다 부활한 사람들입니까?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아요. 그런 사람들을 부활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뭐라고 하죠? 주님을 부활의 첫 열매라고 합니다. 주님이 최초로 부활한 케이스다 이런 뜻입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나 회당장 야이로의 딸 같은 사람들은 다 그냥 죽었다가 소생한 겁니다. 회생한 겁니다. 죽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의 기적으로 그냥 되살아난 것뿐입니다. 그런 건 부활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부생이라고 합니다.</span></p>
<!-- paragraph:p0027 -->
<p class="p2"><br></p>
<!-- paragraph:p0028 -->
<p class="p1"><span>그럼 부활이 뭡니까? 무엇이 부활의 진수고 부활의 진정한 비밀일까요? 본문 51절을 다시 보십시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오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되리니” 여기서 마지막 나팔이라는 말은 무슨 뜻이죠? 이 세상 종말을 고하는 천사들의 최후의 나팔, 즉 주님의 재림을 가리킵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천사들이 나팔을 불고 다녀 천지가 진동하는 나팔 소리를 울립니다. 그 천사들의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우리가 어떻게 된다구요?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됩니다. 변화가 부활의 핵심입니다. 다시 살아나는 게 아니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게 부활이 아니라,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우리가 다 홀연히 변화된다. 그게 부활의 진수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29 -->
<p class="p2"><br></p>
<!-- paragraph:p0030 -->
<p class="p1"><span>그렇다면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홀연히 어떻게 변화됩니까? 이어지는 52절입니다. “죽은 자들은 더 이상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는 지금 살다가 죽으면 어떻게 되죠? 육신이 썩어서 다시 흙으로 티끌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훗날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부활하게 되면 그때는 절대 썩지도 않고, 더 이상 죽지도 않는 신비한 몸, 신령한 몸, 즉 부활체로 변화된다는 겁니다. 지금의 이 육체로 다시 회생한다는 게 아니라, 부활체, 신비한 몸으로 변화된다는 것, 초자연적인 몸으로 변화된다는 것, 홀연히 순식간에 나팔 소리와 함께 변화됩니다.</span></p>
<!-- paragraph:p0031 -->
<p class="p2"><br></p>
<!-- paragraph:p0032 -->
<p class="p1"><span>이어지는 53절도 보십시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게 바로 더 이상 썩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신비한 몸으로 변화되는 사건이 바로 부활이라는 거예요. 죽었다가 살아나는 게 부활이 아닙니다.</span></p>
<!-- paragraph:p0033 -->
<p class="p2"><br></p>
<!-- paragraph:p0034 -->
<p class="p1"><span>여기서 여러분께 하나 여쭤보겠습니다. 부활은 반드시 죽은 사람에게만 해당이 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것 역시도 대단히 중요한 부활의 비밀이고 숨은 진실입니다. 본문 52절을 다시 보십시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우리는 누구입니까? 주님 재림하실 때, 아직 이 땅에 살아 있는 자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마지막 날 주님이 재림하실 때 이미 죽은 자들도 있지만 아직 살아있는 자들도 있겠죠. 죽어서 주님의 재림을 맞을 사람도 있겠지만, 이 세상에서 이 우주의 종말을 맞을 사람도 있겠지만, 생전에 주님 재림을 맞을 사람도 있고, 생전에 이 세상 종말을 맞을 사람도 있겠죠. 그러니까 부활이란 반드시 죽은 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닙니다.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리는 순간, 이미 죽은 자들은 그 죽은 상태에서 신비한 부활의 몸으로 다시 살아나고, 그때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들은 산 채로 살아있는 상태에서 홀연히 부활체로 변화되는 사건이 부활입니다. 따라서 부활은 절대 죽은 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거죠.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죽은 자와 산 자가 다 신비한 영의 몸인 부활체로 변화되는 사건, 그게 부활입니다.</span></p>
<!-- paragraph:p0035 -->
<p class="p2"><br></p>
<!-- paragraph:p0036 -->
<p class="p1"><span>그러면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죽은 자와 산 자가 다 홀연히 변화된다고 했는데 그 신비한 몸, 그 신령한 부활체란 대체 어떤 것일까요? 53절을 보십시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게 부활의 진수입니다. 이어지는 54절도 보십시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 사망을 삼킨다, 사망을 이긴다. 여러분, 이게 신비한 몸인 부활체의 비밀입니다. 우리는 늙고 죽고 썩는 것을 가장 허무해하고 또 두려워하는데, 우리가 훗날 부활의 몸으로 변화가 되면 더 이상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썩지도 않는다는 겁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37 -->
<p class="p2"><br></p>
<!-- paragraph:p0038 -->
<p class="p1"><span>그래서 나사로나 야이로의 딸이나 나인성 과부의 아들은 부활한 게 아닙니다. 그들은 다시 살아났지만 부활체로 변화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부활체로 변화되어서 이렇게 살아난 게 아니었기 때문에, 각각 몇 년을 더 살다가 죽었는지는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만 일정 기간 살다가 그 사람들은 다 죽었어요. 그건 부활이 아닙니다. 한 번 부활하면 죽지 않습니다. 영원히 삽니다.</span></p>
<!-- paragraph:p0039 -->
<p class="p2"><br></p>
<!-- paragraph:p0040 -->
<p class="p1"><span>주님을 보십시오. 주님은 부활하셨는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실 때, 본래의 몸, 모친 마리아의 태에서 가지고 나오신 자연적인 몸으로 되살아나신 게 아니라 신비한 몸, 죽지 않고 썩지 않는 부활체로 되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문을 닫아놨는데, 문을 닫고 안으로 빗장을 질렀는데, 그 제자들 앞에 주님이 나타나셨잖아요. 짠하면서 나타나셨잖아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도 보십시오. 주님이 옆에 계셨는데 순식간에 또 사라지십니다. 그게 부활체입니다. 초자연적인 범위니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합니다. 우리도 훗날 부활하면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게 부활체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41 -->
<p class="p2"><br></p>
<!-- paragraph:p0042 -->
<p class="p1"><span>주님이 부활하셔서 40일간 이 땅에 계시다가 승천하셨죠. 다시 하늘로 가셨습니다. 영이 가신 게 아닙니다. 천국으로 영만 가신 게 아니에요. 부활체로 가신 겁니다. 지금 주님이 하늘에 계시는데 영으로 계시는 게 아닙니다. 부활체로 계시는 거예요. 그게 부활의 몸이에요. 이 부활 이후에는 그야말로 우리가 다 영생하죠. 더 이상 죽지도 않고 썩지도 않고 영원히 삽니다. 그런데 부활체가 아닌 지금의 이 육체 ,이 자연체로서는 영원히 못 살죠.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이 몸, 자연적인 몸은 유효기한이 그 100년 남짓밖에 안 되잖아요. 늙어가지고 더 이상 낡아가지고 더 이상 못 써요. 이 몸으로는 이 육체로는 영원히 못 삽니다. 반드시 갈아타야 돼요. 영원히 살려면 부활체로 갈아타야 됩니다. 부활체로 다시 갈아입어야 됩니다. 그래서 반드시 부활을 통해 영원히 썩지 않을 몸, 영원히 죽지 않을 몸으로 새롭게 갈아입어야 합니다. 그래야 영생할 수 있습니다. 마치 곤충들이 탈피를 하듯이 그래서 새로운 몸으로 변화되듯이 우리의 몸도 그동안 세상살이 하는 데 필요했던 이 자연적인 몸, 육적인 몸, 유한하고도 제한적인 몸을 벗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신령한 몸, 신비한 몸, 초월적인 몸, 부활의 몸, 부활체로 갈아입어야 돼요. 그래야 부활의 세계에서 영원히 삽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43 -->
<p class="p2"><br></p>
<!-- paragraph:p0044 -->
<p class="p1"><span>바울은 그것을 이 고린도전서 15장 35절 이하에서 꽃과 꽃씨에 비유했죠. 사실 꽃씨는 다 볼품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꽃씨는 없습니다. 꽃씨는 다 작고 초라합니다. 그러나 그걸 땅에 심어서 나중에 꽃이 피면 어떻게 되죠? 꽃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의 몸과 부활했을 때의 우리의 몸도 그렇게 변화한다는 겁니다. 마치 징그러운 배추벌레가 예쁜 노랑나비로 변신하듯이, 굼벵이가 매미가 되듯이, 모래 속에 있는 개미귀신이 명주잠자리로 변신하듯이 말입니다. 부활은 그렇게 우리의 몸과 존재를 아름답게 신비하게 온전하게 완전하게 완벽하게 아름답게 합니다. 신비하게 합니다. 완전하고 완벽하게 합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45 -->
<p class="p2"><br></p>
<!-- paragraph:p0046 -->
<p class="p1"><span>고린도전서 15장 42절 이하를 보십시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육의 몸에서 영의 몸으로 갈아타야 합니다. 그게 부활이에요. 따라서 부활 때는 누구나 가장 완전하고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새로워집니다. 그때는 더 이상 장애인도 없고 저처럼 키 작은 루저도 없습니다. 다 185cm 이상입니다. 그때는 더 이상 다이어트도 성형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도 더 이상 뱃살 때문에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또 전쟁터에서 혹은 사고로 팔다리를 잃은 장애인도, 화장을 하고 매장을 하고 골분을 산에 뿌리고 강에 뿌린 사람도, 수목장을 하고 납골당에 봉안된 사람도 다 그 분자와 원자가 이 우주 어디엔가 흩어져 있다가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홀연히 집합해서 가장 온전하고 가장 완벽한 모습으로 다 부활하게 된다는 거예요. 옛날에는 부활하지 못할까봐 믿는 사람들은 화장을 안 했잖아요. 중세 때는 그랬습니다. 그래서 다 교회 밑에다가 관을 보관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돼요. 태워 없애도 화장을 해도 이 우주에 어디엔가 원자와 분자는 다 흩어져 있으니까, 마지막 천사의 나팔 소리와 함께 그게 다 모여서 가장 개성 있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내가 부활하게 된다는 겁니다.</span></p>
<!-- paragraph:p0047 -->
<p class="p2"><br></p>
<!-- paragraph:p0048 -->
<p class="p1"><span>그때는 우리의 병든 마음도, 혼미한 정신도, 뒤틀린 정서도 다 새롭게 변화됩니다. 인간관계도 가족관계도 다 변합니다. 사람뿐 아니라 자연도 우주도 다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합니다. 그때는 독사도 사람을 해치지 않습니다. 독사 구멍에 손을 넣어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사자가 어린 양과 함께 논다고 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세계, 가장 건강하고 아름다운 관계로 새로워집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49 -->
<p class="p2"><br></p>
<!-- paragraph:p0050 -->
<p class="p1"><span>물론 의식의 연속성은 있어요. 그래서 부활 후에도 아 저 사람이 내 남편이었지, 저 사람이 내 아내였지, 저 사람이 내 부모고 내 자식이었지, 내 첫사랑이었지, 내 이혼한 남편이고, 이혼한 아내였지 다 압니다. 그런 의식은 다 가지고 있어요. 그러나 그때는 더 이상 지금과 같은 인간적인 감정이나 이 땅에서의 가족 관계로 만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중심으로 모두가 한 가족 한 형제 한 자매가 되는 겁니다. 그때는 우리가 다 가장 아름다운 마음으로, 가장 신령한 생각으로 우리의 모든 의식이 변화되기 때문에, 누구도 무섭지 않고 누구도 더 이상 피할 이유가 없습니다. 저 사람 무섭다면서 달아날 이유가 없어요. 주님은 부활 때 우리가 다 하늘에 있는 천사와 같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다 천사와 같이 되는 것이 부활의 세계입니다. 아까도 말씀을 드렸듯이 사람만 부활하는 게 아닙니다. 환경도 자연도 이 우주가 다 부활해서 새 하늘과 새 땅이 됩니다. 호랑이도 사자도 독사도 코브라도 다 새로워집니다.</span></p>
<!-- paragraph:p0051 -->
<p class="p2"><br></p>
<!-- paragraph:p0052 -->
<p class="p1"><span>이제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확인해 보겠습니다. 오늘이 주님의 부활을 기리는 부활절인데, 2000년 전에 있었던 주림의 부활 사건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나에게 어떤 실존적인 의미가 있습니까?</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53 -->
<p class="p2"><br></p>
<!-- paragraph:p0054 -->
<p class="p1"><span>여러분, 우리가 왜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까요? 주님의 부활이 곧 장차 있을 내 부활의 진정한 보증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님의 부활이 곧 내 부활의 확증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여기서 주님이 부활의 첫 열매라는 것은 우리도 나도 장차 그 다음 열매로 부활한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뒤를 이어서, 첫 열매이신 주님의 뒤를 이어서 그 다음 열매로 나도 부활한다는 거예요. 과수 농사 짓는 분들은 묘목을 심어놓고 몇 년이고 지극 정성으로 키우잖아요. 그러면서 첫 열매가 달리기를 고대합니다. 왜요? 첫 열매 달림이 이제 다음 해부터 계속 줄줄이 달리니까 그렇습니다. 주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서 우리 앞에 부활 시대를 개막하셨습니다. 내가 첫 열매고 너는 다음 열매다. 다음 열매로 너도 부활한다. 그 사실을 보증해 주셨어요. 그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의 부활이야말로 소중합니다. 감사한 거예요.</span></p>
<!-- paragraph:p0055 -->
<p class="p2"><br></p>
<!-- paragraph:p0056 -->
<p class="p1"><span>이제 마지막 나팔이 울리기만 하면 우리도 다 부활의 첫 열매이신 주님처럼 꽃씨처럼 신령한 몸으로, 아름다운 꽃으로 부활합니다. 이 낡은 육신의 몸을 벗고 다 신령한 영의 몸으로 갈아입습니다. 갈아탑니다. 그리고 이제 영원히 사는 겁니다. 오늘 부활절을 맞아 다시 한 번 부활에 대한 깊은 확신을 가지시고 늘 부활의 산 소망을 가슴에 품고 승리하는 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span></p>
<!-- paragraph:p0057 -->
<p class="p1"><span><br></span></p>
<!-- paragraph:p0058 -->
<p class="p1"><span><br></span></p>
<!-- paragraph:p0059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a href="https://www.youtube.com/embed/UyW8lBRWF-k" title="미디어 원본"></a></sp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