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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span>오래전 독일 뮌헨에서 알프스 기슭 퓌센에 있는 백조의 성 &lt;노이슈반슈타인&gt;을 가다 본 풍경입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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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어느 작은 마을 어귀에 서 있는 십자가상 아래서 한 쌍의 젊은 남녀가 열정적인 키스신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만약 그때 그 십자가가 실제였다면 아마도 그들 머리 위에 주님의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을 겁니다. 함께 자동차를 타고 가던 독일인 친구는 아무런 감동도 없는 눈치였지만 제게는 참 충격적이었습니다. </span></p>

<!-- paragraph:p0003 -->
<p><span>그래서 &lt;저건 대체 뭐냐? 십자가를 비웃는 거냐? 아니면 ‘당신이 거기 달린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즐길 수 있어 감사하다’는 뜻이냐?&gt; 하고 물었더니 어깨를 한 번 들썩이며 입만 삐죽거릴 뿐 대답이 없었습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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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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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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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 href="http://thegreen.or.kr/./files/attach/images/64/331/060/c36871086e63eedf2e8783cbc8822e76.jpeg" class="image-placeholder">jesus-christ-4676641_1280.jpeg</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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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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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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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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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신학교에 있을 때 한국 교회 100주년 기념행사에 초대된 독일인 목사님 몇 분의 안내를 맡은 적이 있습니다. 하루는 그분들이 굳이 사찰을 보고 싶다고 해 경주 불국사를 갔습니다. 그들은 잔뜩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승려들의 동작과 복장, 사찰 안에 있는 그림, 글씨 등 눈에 띄는 것마다 저건 무엇이며 무슨 뜻이냐고 꼬치꼬치 물어 정말 진땀을 뺐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난감했던 것은 대웅전에 좌정한 불상을 가리키며 &lt;저 부처님이 여자냐 남자냐&gt;하고 물었을 때였습니다. 제가 어이가 없어서 &lt;당신들 눈에는 어떻게 보이느냐&gt;고 반문했더니 &lt;여자 같기도 하고 남자 같기도 해서 잘 모르겠다&gt;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lt;맞다, 원래 여자인 듯 하면서도 남자고, 남자인 듯 하면서도 여자 같은 분이 바로 부처&gt;라고 하자 묘한 표정을 지으며 이번에는 다시 부처님의 손 모양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며 왜 이런 걸 사전에 좀 알아두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와 함께 또 엉뚱한 대답을 했습니다. </span></p>

<!-- paragraph:p0011 -->
<p><span>&lt;어느 날 부처님과 예수님이 도박을 했는데 예수님이 져서 부처님이 돈을 달라며 한 손으로는 동그라미를 그리고 다른 한 손은 펴고 있는 것이고, 예수님은 돈이 없다는 시늉으로 두 팔을 벌리고 있는 거라&gt;며 신성모독을 했는데 모두가 제 농담에 크게 웃으며 그럴듯한 해석이라고 맞장구를 쳤던 기억이 납니다. </span></p>

<!-- paragraph:p0012 -->
<p> </p>

<!-- paragraph:p0013 -->
<p><span>십자가와 불상은 참 대조적입니다. 십자가는 종과 횡이 교차된 그 한복판에 주님이 달려 꼼짝도 못한 채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인간이 당할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이요 모순의 극치입니다. 이에 반해 불상은 그 어떤 모순이나 아픔도 다 초월한 너무나도 평온한 대자대비한 모습입니다. 그래서 불상을 한참 보고 있노라면 정말 인생의 백팔번뇌가 다 눈 녹듯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span></p>

<!-- paragraph:p0014 -->
<p><span>그러나 거기서 눈을 돌리는 순간 &lt;아차, 속았구나!&gt; 하는 느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현실은 결코 그런 초연함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상은 세상을 피해 산으로 들어가고 기독교는 치열한 세상 한복판으로 나섰는지 모릅니다. 또 불상 밑에서 자란 동양은 정적이고 십자가 아래서 자란 서양은 동적이며, 동양은 조화와 타협을 좋아하고 서양은 분석과 대결을 즐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span></p>

<!-- paragraph:p0015 -->
<p><span> </span></p>

<!-- paragraph:p0016 -->
<p><span>그런데 그 참혹한 십자가에 달리셨던 주님이 마치 무덤의 돌문을 열 듯 캄캄한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헤치시고 오늘 새벽 새롭게 부활하셨습니다. </span></p>

<!-- paragraph:p0017 -->
<p><span>부디 빈 무덤 앞에서 울고 있던 여인을 향해 &lt;마리아야!&gt; 하고 부르셨듯, 다락방에 숨어 떨고 있는 제자들을 향해 &lt;평화가 있으라!&gt; 하셨듯 오늘 우리를 향해서도 그렇게 평안을 빌어주시길, </span></p>

<!-- paragraph:p0018 -->
<p><span>모진 상처로 덧난 마음들이 &lt;아아, 이제는 살아야겠구나!&gt; 하고 희망을 노래하는 부활의 새아침이 되게 해주시길 진심으로  빌어 봅니다. </span></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