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10] 최후의 헌상 (마 21:1-9, 막 14:3-9,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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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0
마 21:1-9, 막 14:3-9, 13-16
최후의 헌상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4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6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8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3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1)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4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5 이 향유를 삼백 2)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7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8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13 예수께서 제자 중의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서
14 어디든지 그가 들어가는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15 그리하면 자리를 펴고 준비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라 하시니
16 제자들이 나가 성내로 들어가서 예수께서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 음식을 준비하니라
제가 봉독해드린 이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이야기들은 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이 고난주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주님 생애 마지막 주간에 이루어진 그야말로 최후의 헌상, 최후의 봉사에 관한 미담입니다.
먼저 이 마태복음 21장은 어떤 사람이 주님께 나귀 새끼 한 마리를 바친 얘기이고, 또 이 마가복음 14장 3절 이하는 한 여인이 주님께 옥합을 깨뜨려서 향유를 부은 사건입니다. 또 13절 이하는 어떤 사람이 주님께 기꺼이 최후에 만찬장을 제공한 얘기죠.
잘 아시는 대로 주님의 공생의 말기는 참 외로우셨습니다. 더구나 생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오늘, 이 종려주일부터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에 오르신 성 금요일까지의 한 주간은 더욱 그랬습니다. 사람들이 다 등을 돌렸고 배신했고 음모했고 하나같이 비겁하게 달아났고, 그래서 누구도 주님을 돕거나 변호하거나 구명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주님의 곁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 세 사람, 나귀를 바치고, 또 옥합을 깨뜨려서 향유를 붓고, 또 다락방을 제공했던 사람들만큼은 정말 주님께 큰 위안이 됐습니다. 주님께 많은 도움이 됐고 큰 힘이 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이야말로 주님이 가시는 마지막 길에 가장 아름다운, 가장 향기로운 헌상을 한 진정한 헌신자들, 봉사자들이었습니다.
부디 이들의 행적, 이들의 고귀한 봉사가 오늘 우리에게도 큰 도전이 되고, 많은 깨달음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제 이들의 얘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우선 이들은 다 이름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왜 이름이 없었겠습니까마는 성경은 끝내 이들의 이름을 안 밝힙니다. 무명의 봉사자들이었다는 사실만 강조합니다. 그렇다고 이들의 헌상이나 봉사가 하찮았다거나 대수롭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나귀를 헌상한 사람을 보십시오. 그게 결코 우연이 아니고 이미 스가랴 선지자가 500년 전에 예언한 구속사적 사건이었습니다. 본문인 마태복음 21장 4절 이하를 보십시오.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매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이미 스가랴 선지자가 500년 전에 이렇게 예언한 말씀의 성취였다는 거예요. 그런 놀라운 구속사적 사건이었음에도 나귀 주인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완전히 숨깁니다.
마가복음 본문에 나오는 나드 향유를 바친 여인도 보십시오. 제자들은 어찌하여 이 값비싼 향유를 허비하느냐며 여자를 책망했지만, 주님은 뭐라고 하셨죠? 가만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히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도다 하시며 그가 힘을 다해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준비했다. 그렇게 해석하셨습니다. 그야말로 최고의 찬사입니다. 그럼에도 보십시오. 그 위대한 여인의 이름이 없습니다. 그냥 한 여자입니다. 한 여자가 누구도 감히 생각하지 못하고 있을 때 옥합을 깨뜨려 값비싼 향유로 홀로 주님의 장례를 준비했던 참으로 놀라운 여인이었음에도 끝까지 그냥 한 이름 없는 여자로 남을 뿐입니다.
다락방 주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최후의 만찬이란 주님이 제자들과 함께 이 고난주간 목요일 저녁, 그러니까 잡히시던 날 저녁에 이 땅에서 드신 마지막 식사 한 끼, 그게 최후의 만찬이잖아요. 그런데 그걸 도운 사람이니까 얼마나 고맙습니까. 더구나 주님은 그 만찬 석상에서 지금도 우리가 계속하고 있는 성찬식도 제정하셨잖아요. 내가 다시 올 때까지, 재림할 때까지 계속 해라. 그래서 우리가 요즘도 성찬식을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결정적인 봉사를 한 사람인데도 이름이 없습니다. 무명입니다. 오직 나귀를 타신 주님, 또 전신에 나드 향유를 흠뻑 뒤집어쓰신 주님, 그리고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함께 만찬을 들고 계시는 주님의 모습만 보이지 어디에도 나귀 주인이나 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모습이나 다락방 주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게 진정한 봉사자의 태도입니다. 이게 아름다운 헌상이고, 헌신자의 참 모습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이름, 주님의 모습, 주님의 영광만 드러나야 합니다. 그럼에도 요즘은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의 이름을 내고, 자기의 얼굴을 선전하고, 자기의 공적을 과시하느라 주님을 드러낼 겨를이 없습니다. 언제나 자기를 시위하고 생색내느라 주님은 늘 뒷전이죠. 그게 사실입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모두 여기 나귀 주인, 향유 주인, 다락방 주인처럼 끝까지 이름 없는 봉사자, 겸손한 얼굴 없는 헌신자로 남아야 합니다. 여기 나오는 이름 없는 최후의 헌상자들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며 그들을 본받고 그들에게서 소중한 덕목을 배워야 합니다.
다음 이들은 하나같이 깨끗한 것 또 사전에 준비된 것을 헌상했습니다.
마가복음 11장 2절입니다. “맞은편 마을로 가라 곧 아직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아직 누구도 탄 적이 없는 순수하고 깨끗하고 흠 없고 티 없는 나귀를 주님께 헌상했다는 거예요. 이게 중요합니다. 주님께 바치는 허물은 다 이렇게 깨끗해야 합니다. 남이 타던 것은 안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는 첫 새끼를 드리고, 첫 열매, 첫 소득을 드리는 겁니다. 또 온전한 것과 흠과 티가 없는 것을 드려야 합니다. 그게 헌물과 헌상에 가장 중요한 조건이고 원칙입니다.
향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가복음 14장 3절입니다.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여기서 순전하다는 것은 순수하고 깨끗하다는 뜻입니다. 일체 물을 타거나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도 100%의 원액이었다는 뜻입니다. 순전한 나드 향유, 그것을 주님 머리에 부었다는 거예요.
다락방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주님의 최후만찬을 위해 없던 방을 새로 만들거나 꾸민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전에 준비한 방이었지 쓰던 방을 그냥 불쑥 내놓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가복음 14장 14절 이하입니다.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니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그리하면 준비한 큰 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라” 준비한 큰 다락방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로서는 그 사람이 어떻게 주님의 최후 만찬장을 사전에 준비할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게 급조된 방이 아니라 주님의 최후만찬을 위해 미리 예비한 방이었다는 거예요. 주님께는 반드시 이렇게 준비되고 예비된 객실을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을 기쁘게 연납하십니다. 아무런 사전 준비도 없이, 아무런 사전 예비도 없이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임기응변으로 내가 지금까지 쓰던 것을 내놓는 것,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부디 나귀 새끼를 바친 사람처럼, 순전한 향유를 바친 여인처럼, 준비한 만찬장을 제공한 다락방 주인처럼 깨끗한 것, 순전한 것, 사전에 예비된 것을 드리십시오. 바치십시오. 헌상하십시오. 그래야 우리의 헌신이나 우리의 봉사나 헌상을 주님이 기쁘게 받으사 열납하시고 축복하십니다.
또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주님이 쓰시겠다고 하자 즉시, 기꺼이, 아낌없이 드렸습니다.
이 또한 헌신과 봉사의 중요한 원칙입니다. 본문인 마태복음 21장 3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여러분, 나귀 주인은 결코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시험에 들어 괴로워하지 않았습니다. 즉시 보냈습니다. 즉시 헌상했습니다.
향유를 헌상한 여인도 보십시오.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 그 옥합을 깨뜨려 주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여인이 굳이 옥합을 깨뜨렸다는 것은 그 값진 것을 아낌없이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주님께 다 바쳤다는 뜻입니다. 누구나 옥합에 가득한 향유를 조금은 바칠 수 있습니다. 조금은 덜어서 바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예 옥합을 깨뜨려서 몽땅 바치기는 쉽지 않죠. 그런데 이 여인을 보십시오. 주저하지 않고, 망설이지 않고 실제 그렇게 했다는 거예요. 제자들마저도 흥분하며 그 광경을 보고 놀라서 화를 냈다고 했습니다. 화를 내면서 말하되 어찌하여 이 많은 향유를 허비하는가 그러면서 여자를 책망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전해져 그를 기념하게 되리라. 주님의 이 예언대로 우리가 지금 이 여인 얘기를 하고 있잖아요. 이 여인을 얘기하면서 기념하고 있잖아요.
다락방 주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생님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드실 방이 필요하다고 하자 일언반구도 없이 예비한 큰 다락방을 내줬다고 합니다. 좀 생각을 해보겠다거나 하루 이틀 뒤에 확답을 주겠다고 하지 않고 즉각 기꺼이 그 준비한 방을 제공했다는 거예요. 어떻습니까? 오늘 우리와는 많이 다르잖아요. 솔직히 우리는 아직도 주님께 인색하잖아요. 주님이 뭘 좀 쓰시겠다거나 뭐가 좀 필요하다고 하시면 우리는 당장 난감해야 합니다. 낯색이 변합니다. 고민하고 갈등하고 상처받고 시험에 듭니다. 아무리 생애 마지막 고난주간이라고 해도 평소처럼 그냥 걸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다고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굳이 나귀를 타고 들어가야겠다고 하면 그때부터 우리는 시험에 빠집니다.
향유도 그렇습니다. 누구든 옥합에 담긴 향유를 좀 덜어서 드리면 그건 이해가 됩니다.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굳이 옥합까지 깨뜨려서 몽땅 부어드리면 다 미쳤다고 하죠. 저 여자 미쳤다고. 자기가 그렇게 한 것도 아닌데 생각할수록 아까워서 그날 밤에는 잠을 못 이룹니다. 다락방도 그렇지 않습니까? 아무리 주님이 쓰신다고 해도 그렇지 그 큰 방을 그렇게 선뜻 내줄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 생애 마지막 봉사자들, 최후의 헌신자들은 다 그렇게 헌상했습니다. 그래서 그게 주님께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됐다는 거예요. 주님은 그런 자들을 절대 잊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그들의 값진 헌상을 기억하시며 은혜를 베푸십니다. 만 배로 갚아주십니다. 남에게 신세지고 입 닦으실 분이 아닙니다.
이 최후의 헌상자들을 본 받읍시다. 늘 이들과 같은 태도, 이들과 같은 자세로 헌신하고 봉사하며 주님을 위해 삽시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과 또 여러분들의 봉사와 희생이 늘 주님 받으시기에 합당한 값진 헌상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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