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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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은 주님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고 합니다. 지난 2천년 동안 빌라도가 바로 주님 십자가 사건의 주범으로 고백되어 온 것입니다.
본디오 빌라도는 주후 26년 제5대 총독으로 유다에 부임해 10년간 재임했던 로마제국의 관리였습니다. 헤롯 아그립바가 로마 황제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는 절대 굽힐 줄 모르는 사람으로 앞뒤를 가리지 않으며 폭정으로 사람들을 억압하고 재판도 없이 죄수들을 처형하는 등 끝없이 잔인하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고발장이기 때문에 순수 객관적인 평가라고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누가복음 13장에 나오는 엽기적 사건, 즉 빌라도가 무력 봉기를 일삼는 갈릴리 사람 몇을 처단하여 그들의 피를 예루살렘 성전의 제물에 섞었다는 기록을 보면 전혀 근거 없는 모함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유대인들의 종교적 감정을 고려해 예루살렘 성내에는 군대 주둔을 피했던 전임 총독들과는 달리 빌라도는 처음 부임 때부터 군대를 아예 성내에 진주시키려다 유대인들이 반대 시위를 벌이자 발포 명령까지 내려가며 진압했으나 실패해 결국은 성 밖으로 철수했다는 기록이 있는가 하면 예루살렘의 상수도 건설을 위해 성전 예산을 유용하도록 강요하다 유대인들이 몰려가 항의하자 군대까지 동원해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많은 사상자를 냈다는 기록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주님의 재판 과정도 그렇습니다. 유대인들이 주님을 끌고 와 고소하자 빌라도는 일단 주님의 행위를 법에 비춰보지만 이렇다 할 혐의점이 없자 기각합니다. 유대인들이 반발하며 거센 공세를 취하고, 그 기세가 자칫 폭동이라도 일어날 조짐을 보이자 빌라도가 한 발 물러나 다시 주님을 심문하기 시작합니다. 뭔가 작은 꼬투리라도 잡자는 심사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실패합니다. 그래서 또 한 번 <나는 그에게서 아무런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며 무죄 선언을 합니다. 유대인들의 저항이 더욱 격렬해지자 빌라도가 마침내 비장의 협상 카드를 꺼내듭니다. 즉 유대인들의 참소대로 주님을 일단 죄인으로 간주하고 유월절 특사로 방면하겠다는 일종의 정치적 타협안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것마저도 거부하며 <차라리 살인강도인 바라바를 석방하고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습니다.
그 와중에도 빌라도는 또 한 번의 융화책을 시도합니다.
주님께 왕복을 입히고 가시로 만든 왕관을 씌운 후 군중들 앞에 끌고 나와 희롱과 모욕의 대상을 만듦으로써 상황을 반전시켜보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곧 유대인들의 최후 그물에 걸립니다. <이 사람을 석방하면 황제의 충신이 아니다. 자기를 왕이라 한 자를 놓으면 황제에게 반역하는 것이다>(요 19:12).
빌라도는 이제 자신이 황제의 충신임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주님을 십자가형에 내주는데, 실은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정치 생명을 위해 유대 군중들의 꼭두각시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반면 빌라도의 아내는 익명의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성경에도 그녀가 남편에게 <내가 오늘 꿈에 그 사람으로 인해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마 27:19)하며 주님을 정죄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말씀이 나오는데, 실제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빌라도의 아내 <프로클라>를 성인의 반열에 세우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빌라도는 주님을 심판하며 오히려 자신의 비겁한 양심을 심판했고, 주님은 빌라도의 심판을 받으시며 도리어 정치권력의 허구를 심판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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