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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20220403] 주님의 흔적을 지고 (갈 6: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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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 class="p1"><span>20220403</span></p>
<!-- paragraph:p0002 -->
<p class="p1"><span>갈 6:17-18</span></p>
<!-- paragraph:p0003 -->
<p class="p1"><span>주님의 흔적을 지고</span></p>
<!-- paragraph:p0004 -->
<p class="p2"><br></p>
<!-- paragraph:p0005 -->
<p class="p1"><span>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span><br><span>18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span></p>
<!-- paragraph:p0006 -->
<p class="p2"><br></p>
<!-- paragraph:p0007 -->
<p class="p1"><span>본문 17절입니다.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이게 바울의 고백인데 자기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녔다고 합니다. 예수의 흔적, 헬라말로는 예수의 스티그마, 예수의 흔적, 예수의 스티그마입니다. 스티그마라는 말은 요즘 우리가 쓰는 스티커라는 말인데, 스티커가 스티그마에서 왔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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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09 -->
<p class="p1"><span>헬라말 스티그마라는 말은 원래 쇠도장, 쇠인장을 불에 달궈서 소나 말 같은 짐승의 엉덩이에 찍었던 화인을 가리킵니다. 로마 문화권에서는 로마 사람들은 짐승들뿐만 아니라 노예들, 전쟁 포로들에게도 어깨 등에 이 스티그마를 찍었습니다. 쇠인장을 찍었습니다. 또 신전의 물건을 훔친 파렴치범들, 그런 사람들 그런 죄인들에게도 평생 지워지지 않는 화인, 스티그마를 찍었습니다.</span></p>
<!-- paragraph:p0010 -->
<p class="p2"><br></p>
<!-- paragraph:p0011 -->
<p class="p1"><span>요즘 불법 주차를 하면 스티커를 붙이듯이 17세기 미국에서는 간통을 하면, 간통죄를 범하면 평생 가슴에 주홍글씨를 달았죠. 나다니엘 호손의 주홍글씨가 바로 그런 내용의 소설이잖아요. 유부녀인 헤스터가 젊고 유능한 목사 팀즈 데일과 사랑에 빠져서 아기를 낳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평생 지울 수 없는 낙인인 주홍글씨를 가슴에 달고 살잖아요. 그런데 바로 여기서 말씀하는 스티그마가 그런 겁니다. 요즘도 상습 성범죄자들에게 전자발찌를 채우잖아요. 전자화된 스티그마, 현대판 스티그마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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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3 -->
<p class="p1"><span>그렇다면 바울이 여기서 내 몸에 지니고 있다고 한 그 예수의 흔적이란, 예수의 스티그마란 구체적으로 뭘 가리킬까요? 학자들 가운데는 바울이 정말 자기 몸 어디엔가 예수라고 새긴 쇠인장을 불에 달궈서 짖었을 것이다고 합니다. 실제 중세 수도사들 중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쇠도장을 불에 달궈서 예수라고 판, 예수라고 쓴 쇠도장을 자기 몸에 찍었어요. 가슴에도 찍고 허벅지에도 찍었습니다. 그래서 그 흔적을 문신이나 타투 헤나처럼 자기 몸에 평생 지니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울이 대체 어떤 의미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이 예수의 흔적, 예수의 스티그마라는 말을 사용했느냐 하는 겁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14 -->
<p class="p2"><br></p>
<!-- paragraph:p0015 -->
<p class="p1"><span>우선 스티그마란 소유를 뜻하는 낙인이었죠. 희랍 사람들이 혹은 로마 사람들이 소나 말이나 양 또는 노예들에게 화인을 찍은 것은 무엇보다도 그 짐승이나 노예가 자기의 소유라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화가나 서예가들도 자신의 그림이나 자신의 글씨 마지막에 항상 낙인을 찍잖아요. 낙관을 찍잖아요. 혹은 서명을 하지 않습니까. 이 그림, 이 글씨가 내 작품이라는 거죠. 내 소유라는 겁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16 -->
<p class="p2"><br></p>
<!-- paragraph:p0017 -->
<p class="p1"><span>요한계시록 13장에 보면 짐승의 표가 나옵니다. 짐승의 표 뭡니까? 666이죠. 마귀가 자기 백성들 이마에 마귀의 고유한 숫자인 666이라는 스티그마를 찍는다는 거예요. 왜 666이라고요? 마귀도 삼위일체니까, 그래서 마귀 숫자인 6이 아니라 666입니다. 사탄 마귀 적그리스도 삼위일체잖아요.</span><br></p>
<!-- paragraph:p0018 -->
<p class="p1"><span>그러면 하나님 백성들의 이마에는 어떤 스티커, 어떤 스티그마가 찍힙니까 하나님의 고유한 수인 777이죠. 하나님도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이시기 때문에 그냥 7이 아니라 777입니다. 하나님의 고유한 숫자, 하나님도 당신의 백성들 이마에 이렇게 777이라는 스티그마를 찍습니다. 스티커를 붙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그 이마에 777 아니면 666입니다. 완충지대는 없습니다. 중도는 없습니다. 777 아니면 666입니다. 777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자녀, 666은 마귀에 속한 마귀의 백성, 사탄의 소유라는 뜻입니다.</span></p>
<!-- paragraph:p0019 -->
<p class="p2"><br></p>
<!-- paragraph:p0020 -->
<p class="p1"><span>이처럼 스티그마는 무엇보다도 그 사람의 소속을 가리키는 사인입니다. 따라서 바울이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는 것은 내가 내 이마에 777이라는 스티그마를 가졌으니 나야말로 진정한 주님의 소유라는 고백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21 -->
<p class="p2"><br></p>
<!-- paragraph:p0022 -->
<p class="p1"><span>그런데 여러분 중요한 것은 바울뿐 아니라 오늘 우리들의 이마에도 다 이 777이라는 이라는 주님의 스티커, 주님의 스티그마가 찍혔다는 겁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요? 물론 우리 눈에는 안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는 주님의 보혈로 찍혀 있는 777이라는 붉은 스티그마가 언제나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냥은 볼 수 없지만 적외선 안경을 낀다거나 엑스선 카메라로는 다 보이잖아요. 주님은 늘 우리 몸의 흔적, 우리 이마의 스티그마를 보시고 당신의 소유로 관리하십니다. 부디 그 사실을 확신하시며 우리도 바울처럼 내가 내 몸에 내 이마에 주님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담대하게 고백하시며 늘 감사하게 살아가시는 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span></p>
<!-- paragraph:p0023 -->
<p class="p2"><br></p>
<!-- paragraph:p0024 -->
<p class="p1"><span>다음은 바울이 말한 이 예수의 흔적, 예수의 스티그마는 곧 내가 주님을 위해 혹은 주님 때문에 당한 고난의 흔적을 의미합니다. 그야말로 주님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웠다는 고백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흔적이 지금 내 몸 어디엔가 있다는 거예요.</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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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26 -->
<p class="p1"><span>성 프랜시스가 높은 산에 올라가 고행하며 여러 날 금식기도를 하다가 어느 날 놀라운 체험을 하잖아요. 온몸에 엄청난 전율과 함께 고통이 오면서 갑자기 양손과 양발에 소위 성흔이 나타난 겁니다. 주님이 당하신 십자가의 못자국이 자신의 양손과 양발에 나타나는 고난의 신비 체험을 했다는 겁니다. 프랜시스 전기에 이렇게 자신이 고백을 하는데, 이 프랜시스는 그 거룩한 신비 체험 후에 주님의 십자가를 비로소 깊이 온몸으로 깨닫게 됐다고 했습니다.</span></p>
<!-- paragraph:p0027 -->
<p class="p2"><br></p>
<!-- paragraph:p0028 -->
<p class="p1"><span>마태복음 7장 22절 이하에 최후 심판에 관한 얘기가 나오죠. “그날에 많은 사람들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라” 여기 나오는 사람들은 다 저 같은 직업적인 종교인들입니다. 그들의 이력을 보십시오 다들 얼마나 화려하고 그 스펙이 대단한지 모릅니다. 유명한 목회자 노릇을 하고, 기도원 원장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고치며, 숱한 기적과 이적을 다 행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사실이었을 겁니다. 어느 면전이라고 거짓말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최후 심판대 앞인데요.</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29 -->
<p class="p2"><br></p>
<!-- paragraph:p0030 -->
<p class="p1"><span>그럼에도 주님의 반응이 뜻밖입니다. 주님이 뭐라고 하셨죠?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한 자들아 다 내게서 떠나라” 이게 무슨 청천병력입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큰 교회에서 목사 노릇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수천수만 명이 모이는 기도원에서 귀신을 쫓아내고, 주님의 이름으로 온갖 기적을 다 행했는데, 나를 모른다니, 내가 불법을 행했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씀입니까?</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31 -->
<p class="p2"><br></p>
<!-- paragraph:p0032 -->
<p class="p1"><span>주님의 이름을 팔아 그렇게 큰일을 하며 오직 자기의 이름만 빛내고, 오직 자신의 영광만 추구하고 누렸지 누구도 자기를 부인하며 십자가를 지다 온 사람은 없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의 몸에는 어디에도 주님의 고난의 흔적이 안 보였기 때문에,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 내게서 떠나라 너희는 다 불법을 행했다고 하신 것입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33 -->
<p class="p2"><br></p>
<!-- paragraph:p0034 -->
<p class="p1"><span>여러분, 자기 몸에 십자가의 흔적, 고난의 스티그마가 없으면 그건 다 가짜입니다. 불법입니다. 사이비이고 유사 기독교입니다. 주님이 그러셨잖아요.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겠노라 불법을 행한 자들아 다 내게서 떠나라” 주님의 흔적이란 곧 고난의 흔적, 십자가의 흔적을 말하는데, 그들은 다 예수를 팔고 복음을 팔며 호의호식하고 영광만 누리다가 왔지 그 어떤 고난도 희생도 손해도 본 게 없기 때문에, 주님이 너희는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노라. 내게 속한 사람들이 아니니 다 내게서 떠나라고 하신 것입니다.</span></p>
<!-- paragraph:p0035 -->
<p class="p2"><br></p>
<!-- paragraph:p0036 -->
<p class="p1"><span>반면에 바울은 주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참 고난을 많이 겪고 당한 사람이죠. 고린도후서 11장에 나오는 그의 간증을 보면, 수도 없는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고, 돌에 맞아 기절하기도 하고, 항해를 하다가 몇 번이나 파선을 당하기도 하고, 강도에게 동족에게 이방인들에게 온갖 박해와 위협을 다 당했습니다. 그래서 실제 그의 몸은 성한 데가 없었을 겁니다. 육신뿐 아니라 마음도 영혼에도 모진 상처와 많은 흉터가 남아 있었을 겁니다. 그런 게 다 지금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예수의 흔적이고 십자가의 흔적이라는 거예요.</span></p>
<!-- paragraph:p0037 -->
<p class="p2"><br></p>
<!-- paragraph:p0038 -->
<p class="p1"><span>아무리 큰일을 하고 대단한 실적을 내고 명성이 높다 해도 그 몸에 그 마음에 그 영혼에 그리스도의 흔적, 고난의 흔적, 아픔의 흉터가 없으면 그 사람은 아닙니다. 그 사람은 사이비입니다. 괜히 심판 때 왜 나를 모른다고 하느냐며, 왜 나를 떠나라고 하느냐며 주님께 항의하지 마시고 바울처럼 늘 자기 몸에 고난의 흔적, 십자가의 스티커를 지니고 사시기 바랍니다. 문신처럼 주님의 고난의 흔적을 마음에 깊이 품고 사시기 바랍니다.</span></p>
<!-- paragraph:p0039 -->
<p class="p2"><br></p>
<!-- paragraph:p0040 -->
<p class="p1"><span>지금도 주님 때문에, 교회 때문에, 믿음 때문에, 마음에 모은 상처를 입으셨거나 평생 지워지지 않을 영혼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시는 분이 계시다면 그게 바로 주님의 스티그마요, 십자가의 흔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으시고 더 이상 억울해하시거나 피해 의식으로 힘들어하시기보다는 오히려 감사하시고 자랑스러워 하시며 그 트라우마를 잘 극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게 영광입니다. 게 주님 앞에서 자랑입니다. 값진 겁니다.</span></p>
<!-- paragraph:p0041 -->
<p class="p2"><br></p>
<!-- paragraph:p0042 -->
<p class="p1"><span>제가 죠스라는 영화를 자주 말씀 드렸죠. 받은 은혜가 많아서 그렇습니다. 계속 사람을 해치는 식인 상어를 잡기 위해서 상어잡이 전문 선장과 해안 경비대장 또 해양학자 이렇게 세 사람이 먼 바다로 나가잖아요. 식인상어를 찾아다니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가 하루는 상어잡이 무용담을 얘기하며 술판을 벌이는데, 저마다 상어에게 물린 상처를 자랑합니다. 그런데 해안 경비대장은 늘 뭍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상어하고 맞닥뜨려서 싸운 적이 없으니까 상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내 보일 상처가 없어서 쩔쩔매는 장면이 나오는데 제게는 그 장면이 너무 강렬했습니다.</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43 -->
<p class="p2"><br></p>
<!-- paragraph:p0044 -->
<p class="p1"><span>저는 훗날 우리가 주님 앞에 갔을 때도 그와 똑같은 상황이 연출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다들 자기 몸을 뒤지며 열심히 주님의 흔적, 십자가의 흔적, 고난의 흔적을 찾느라 아마 식은땀을 흘릴 겁니다. 상어와 싸운 적이 있어야죠. 믿음 때문에 상처받은 일이 있어야죠. 절대 아무런 흠집도 없이, 아무런 상처도 없이 예수 믿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요리조리 모든 고난을 다 피해가며 예수 믿는 것만이 축복이 아닙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내 몸에 주님의 흔적을 가져야 그게 복된 겁니다. 값진 겁니다. 내 영혼에 십자가의 흔적이 있어야, 그게 바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르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span></p>
<!-- paragraph:p0045 -->
<p class="p2"><br></p>
<!-- paragraph:p0046 -->
<p class="p1"><span>천로역정에 나오는 기독교도가 천신만고 끝에 그 긴 구원의 여정을 다 끝내고 뭐라고 고백합니까? 뭐라고 독백합니까? 상처투성이가 된 자신의 몸을 어루만지며 그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 모든 상처와 아픈 흔적들을 그대로 주님 앞까지 가져가리라.”</span><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p>
<!-- paragraph:p0047 -->
<p class="p2"><br></p>
<!-- paragraph:p0048 -->
<p class="p1"><span>여러분, 우리도 그렇게 주님 앞까지, 최후 심판대까지 주님의 흔적을 지고 가야 합니다.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치부가 아닙니다. 영광입니다. 자랑입니다. 그러면 그 고난의 스티그마가 곧 가장 아름다운 영광의 훈장이 되는 반전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몸에 무슨 호랑이 문신이나 승천하는 용의 문신이나 하트 문신 같은 것은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라면 반드시 주님의 흔적, 주님의 스티그만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부끄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법을 행한 자들아 내게서 떠나라는 주님의 준엄한 최후 선고를 듣지 않습니다.</span></p>
<!-- paragraph:p0049 -->
<p class="p2"><br></p>
<!-- paragraph:p0050 -->
<p class="p1"><span>부디 이 은혜로운 사순절에 모두 주님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는 일이며 또 늘 내 몸에 지니고 가야 할 십자가의 흔적에 대해 좀 더 깊이 묵상하시며 결단하는 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span></p>
<!-- paragraph:p0051 -->
<p class="p1"><span><br></span></p>
<!-- paragraph:p0052 -->
<p class="p1"><span><br></span></p>
<!-- paragraph:p0053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a href="https://www.youtube.com/embed/n-HI1VBSa3Q" title="미디어 원본"></a></sp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