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27] 억지 십자가 (막 15: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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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기도문]
주님,
오늘이 벌써 사순절 넷째 주일이자 3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하오나 저희는 이 아침에도 이렇게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며 주일을 지키고 있사오니 저희의 이 예배가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주님,
지금은 주님의 고난을 기리며, 저희도 그 고난에 동참하고자 근신하고 자제하는 숙연한 성찰의 기간이오니 저희로 하여금 더욱 기도하며 이웃을 사랑하며 용서하며 지내는 은혜로운 절기가 될 수 있도록 성령으로 역사해주시옵소서.
무엇보다 속히 <코로나19>를 제어하사 저희 모두가 본래의 자리로,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시고, 환자들을 안수하사 쾌차하게 하시고, 저 강원도 산불 이재민들을 불쌍히 여기사 따뜻한 거처를 허락해주시옵소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난민들은 물론 양국 군인들의 희생도 크게 늘고 있사오니 역사의 주인이신 주께서 하루 빨리 종전을 허락하사 더 이상의 비극이 없도록 은혜 베풀어주시옵소서.
주님,
오늘도 주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각 가정의 주일예배를 축복하시고, 이런저런 일로 이 비대면 예배마저도 여의치 않은 가정들의 사정도 헤아려주시옵소서.
이 시간 함께 고개 숙인 저희 가족들을 축복하사 늘 안전하고 건강하고 형통하게 하시고, 올해도 저희 가족들의 간절한 바람과 소망들을 이루어 주사 저희 가정 온 가족이 더욱 감사하며 기뻐하며 승리하도록 친히 이끌어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말씀을 상고할 때 깊은 깨달음과 은혜를 체험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20327m
막 15:16-23
억지 십자가
16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18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19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20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22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23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억지춘향이라는 말이 있죠. 변사또가 춘향이를 끌고 와서 억지로 자기 수청을 들게 한 데서 유래된 말입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좋아서 자기 의지로 하는 게 아니라 남이 억지로 시켜서 본의 아니게 뭔가를 하게 될 때 쓰는 말이죠.
그런데 십자가도 그런 억지 십자가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구레네 사람 시몬이 지고 갔던 십자가가 바로 그런 겁니다. 본문 21절을 보십시오.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원래 구레네 사람 시몬은 죄수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십자가를 지고 형장인 골고다를 향해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를 오르고 계신 주님과 또 두 강도의 십자가의 행진을 구경하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주님이 쓰러져 더 이상 일어나시지 못하자, 백부장이 건장한 그를 불러 졸지에 주님 대신 그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까지 가게 한 사람입니다. 그야말로 억지춘향이고 자기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지고 가야 했던 억지 십자가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억지로 주님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갔던 그 구레네 사람 시몬,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우선 구레네가 어디입니까? 북아프리카에 있는 지금의 리비아를 가리킵니다. 리비아의 옛 이름이 구레네입니다. 리비아 하면 우리는 40년간이나 그 나라를 통치했던 독재자 가다피를 떠올리고, 또 한때 우리나라 건설업체들이 많이 진출해서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였던 나라로도 기억합니다.
그렇다면 그 북아프리카 사람이 어째서 당시 예루살렘에 있었을까요? 우선 그의 이름을 보십시오. 전형적인 유대식 이름인 시몬입니다. 따라서 그는 일찍부터 아프리카 쪽에 나가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영향으로 하나님을 믿었던 이방인 유대교 신자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가 바로 유월절 시즌이었기 때문에 다른 순례객들과 함께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마침 주님의 십자가 행진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걸 구경하다가 그만 주님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가는 강제 부역을 당하게 된 겁니다.
처음에는 그도 너무 황당하고 억울하고 기분도 아주 고약했을 겁니다. 그렇지 않았겠습니까? 졸지에 사형수의 십자가 형틀을 대신 지고 가게 됐으니 얼마나 죽을 맛이었겠습니까. 그러니까 당시 그가 진 그 십자가는 오늘 본문의 표현 그대로 억지 십자가고, 억지춘향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실 십자가는 누구에게나 다 그런 겁니다. 십자가는 누구나 다 억지로 지는 겁니다. 세상에서 십자가를 즐거운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십자가는 십자가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가혹하고 고통스럽고 수치스럽습니다. 주님 역시도 십자가를 결코 기꺼이 지신 게 아닙니다. 주님도 어떻게든 그걸 피하고 싶어 하셨고, 끝까지 힘들어하시며 괴로워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장인 14장 33절 이하를 보십시오. “놀라시며 슬퍼하사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있으라” 또 36절입니다.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처럼 주님도 억지로 지셨습니다. 심지어는 십자가에 달리신 후에도 주님이 뭐라고 하셨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하며 아쉬워하시고 고통스러워하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그렇게 억지로라도 지면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를 입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흉내만 내도 그건 귀한 것이고 값지고 아름다운 겁니다. 조선왕조 제 17대 왕이었던 효종은 부모에 대한 효란 남의 흉내만 내도 소중하다며 상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십자가가 바로 그렇습니다. 억지로라도 지면 귀한 겁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흉내만 내도 값지고 아름다운 겁니다.
여러분,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최대 위기가 뭘까요? 놀랍게도 십자가를 보면 달아나기 바쁘지 억지로라도 그 십자가를 지겠다는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흉내라도 내겠다는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십자가의 종교라는 현대 기독교인들의 교회 선택의 기준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그게 뭘까요? 십자가 없는 교회, 모두가 아무런 부담도 없고, 아무런 희생도 없는, 그래서 그저 편하게 우아하게 예수 믿을 수 있는 교회만을 찾는다는 겁니다.
그러나 주님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나를 따라오려거든 누구든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고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넓어 그리로 가는 자가 많으니라” 그러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져야 하고, 사서라도 좁은 비아 돌로로사를 통해 저 골고다 언덕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주님의 은혜를 입는다는 겁니다.
그럼 실제 그런지 안 그런지 억지 십자가의 원조인 이 구레네 시몬의 경우를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본문 21절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구레네 시몬을 소개하면서 뭐라고 했죠?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이 없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을 소개할 때, 보통은 누구누구의 아들 누구누구 그럽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 사가리아의 아들 세례 요한 이런 식입니다. 그런데 이 구레네 시몬의 경우는 아버지의 이름이 아니라, 두 아들인 알렉산더와 루포의 이름을 대면서 그들의 아버지인 시몬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이게 무슨 뜻일까요? 구레네 시몬이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골고다까지 갔던 사건이 있은 후 약 30년이 지난 주후 65년경 오늘 본문인 이 마가복음이 기록이 됐는데 그때는 이미 구레네 시몬의 두 아들인 알렉산더와 루포가 어디에서나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알 만한 유명 인사가 돼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본문이 그 두 아들의 이름을 대면서 그들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고 한 겁니다.
또 로마서 16장 13절을 보면 이런 말씀도 나옵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이니라” 바울이 로마 교회에 편지를 하면서 특별히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고 당부하는 대목인데, 루포의 어머니, 즉 구레네 시몬의 아내를 내 어머니라고까지 합니다. 또 사도행전 13장 1절을 보면 안디옥 교회 재직 명단이 소개가 되는데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여기 나오는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이 바로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는 뜻입니다. 니게르란 Negro,
아프리카 흑인이라는 뜻이고, 시몬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식 이름인 시몬을 헬라식으로 표기한 겁니다.
자 그렇다면 보십시오. 이름 없는 아프리카 출신의 한 이방인 순례객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다가 졸지에 억지로 강제로 주님의 십자가를 경험하게 됐습니다. 그 황당한 사건을 계기로 그는 주님을 믿게 됐고, 그로부터 일생을 자기가 직접 체험하고 억지로 거들었던 주님의 그 십자가를 증거하며 살게 됐다는 거예요. 그리고 후에는 로마 교회에서도 또 안디옥 교회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초대교회의 훌륭한 지도자가 됐는데, 심지어는 그의 아내까지도 바울 같은 사람이 내 어머니라고 할 만큼 신실하고도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이 됐습니다. 더구나 두 아들인 알렉산더와 루포는 아버지 시몬보다도 더 훌륭한 지도자가 되어 마가복음의 저자가 이 마가복음을 쓰면서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시몬이라고 소개할 정도로 큰 인물이 됐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다 억지로나마 주님의 십자가를 돕고 잠시나마, 본의 아니게나마 그 험한 길, 처절한 고난의 길, 골고다로 가는 좁은 길을 주님과 함께 가 드린 수고의 결과요 보상이었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주님의 십자가를 한 귀퉁이라도 붙잡고 구레네 시몬처럼 묵묵히 주님과 함께 가면, 조금이라도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며 비아 돌로로사를 함께 걸어가 드리면 반드시 복 받습니다. 그게 비록 억지라고 해도, 힘들고 아프다며 투덜거렸다고 해도 주님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조금이라도 채웠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은혜를 입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또 우리를 향해 내 십자가, 즉 주님의 십자가가 아니라 각자 자기의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주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으니 이제 나는 주님의 공로로 영광만 누리면 된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오히려 이제부터는 자기의 십자가를 지라고 하십니다.
맞습니다. 우리에게는 다 나만의, 자기만의 고유한 십자가가 있습니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이 자기 십자가가 없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남편이 십자가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내가 십자가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식이 평생 십자가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모 집사가 십자가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모 권사가 십자가고, 놀랍게도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목사가 십자가입니다. 또 우리 푸른교회 자체가 십자가인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런 자기 십자가를 절대 회피하지 마십시오. 꼭 충실히 지고 가십시오. 그걸 피해 달아나다가는 오히려 더 혹독한, 더 고약한 십자가를 만납니다. 여러분, 우리가 다 이 자기의 고유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게 바로 주님의 십자가를 흉내 내는 겁니다.
그리고 내 몫의 십자가는 절대 누가 대신 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끝까지 내가 지고 가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평생 내가 지고 가야 하는 겁니다. 십자가 십자가 하며 노래만 부르지 마시고 억지로라도 반드시 지고 가십시오. 이 자기 십자가는 우리 믿는 자들의 피할 수 없는 숙명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일찍이 주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 골고다를 올랐던 구레네 시몬처럼 주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누리는, 특히 알렉산더와 루포처럼 자녀들이 그 아비보다 더 큰 복을 누리는 아름다운 주의 가정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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