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네가 간 길을 지금 내가 간다.

그곳은 아마도 너도 나도 모르는 영혼의 길일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지 우리의 것이 아니다.>

 

단 세 문장으로 된 이어령의 유고 시집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의 서문입니다. 

지난 달 26일 89세를 일기로 이 세상을 떠나기 불과 나흘 전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불러준 단아하고도 짧은 머리말. 

 

원래 이 시집은 먼저 천국으로 떠난 딸 이민아 목사의 10주기인 3월 15일에 맞춰 출간을 준비했던 것으로 그동안 표지와 구성 등 책의 엮음새를 고인이 스스로 다 챙길 만큼 공을 들여왔는데, 결국은 세상을 떠난 후에야 나오게 되어 유고집이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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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지성이자 스승이었던 이어령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별의 마침표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어령은 날카롭고도 단호한 시선으로 세계와 시대를 꿰뚫어 본 명쾌한 비평가였지만 또 이 세상과 사람을 긍정하며 진정으로 사랑했던 시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원래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딸 이민아 목사의 간곡한 권유로 70이 훌쩍 넘은 나이에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됐는데, 1년 만에 판매부수 30만 권을 넘긴 <지성에서 영성으로>(2010)는 그런 그의 기독교 신앙 입문기로 지식인 이어령이 그리스도인 이어령으로 거듭나는 참회론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 책에서도 이어령은 <사랑하는 내 딸아 너의 기도가 나로 하여금 높은 불신의 문지방을 넘게 했구나>라고 고백했는데, 장녀인 이민아 목사는 이대 영문과를 3년 만에 조기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헤이스팅스 로스쿨에서 학위와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캘리포니아주 검사로 임용돼 2002년까지 재직합니다. 그러나 2009년 목사 안수를 받은 후에는 미국, 아프리카, 남미, 중국 등지를 다니며 마약과 술에 빠진 청소년들을 구제하는 사역에 헌신하는데 그 사이 그녀는 실로 모진 시련을 겪습니다. 버클리대를 졸업한 꽃다운 25세의 첫째 아들의 돌연사와 본인의 실명 위기, 갑상선암 진단, 암 재발, 둘째 아들의 자폐증, 그러다 다시 위암 진단으로 투병하다 결국 2012년 53세로 세상을 떠나는데 정말이지 그녀의 삶과 생애는 한 편의 슬픈 영화이자 극적인 드라마와도 같습니다. 

 

 이어령의 유고 시집 제4부는 10년 전 그렇게 세상을 먼저 떠난 딸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모든 시편에서 딸을 잃은 <아버지 이어령>의 고통과 사랑이 절절히 묻어납니다.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살던 집이 있을까

네가 돌아와 차고 문을 열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네가 운전하며 달리던 가로수 길이 거기 있을까

...

헌팅턴비치에 가면 네가 있을까

아침마다 작은 갯벌에 오던 바닷새들이 거기 있을까>

 

<헌팅턴비치>는 생전 딸이 살던 미국 캘리포니아의 작은 바닷가 도시입니다. 

죽도록 보고 싶지만 고통 없는 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 딸이기에 이젠 그리움을 내려놔야지 하면서도 끝내 놓지 못하는 아버지의 마음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

네가 혼자 긴 겨울밤을 그리도 아파하는데

나는 코를 골며 잤나보다

내 살 내 뼈를 나눠준 몸이라지만

어떻게 하나 허파에 물이 차 답답하다는데

한 호흡의 입김도 널 위해 나눠줄 수 없으니

널 위해 눈물을 흘려도

저 유리창에 흐르는 빗방울과 무엇이 다르랴

민아야,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내가 살아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 것이

미안하다 민아야  

너무 미안하다>(살아 있는 게 정말 미안하다)

 

자식을 먼저 보낸 아비의 심정을 누가 감히 다 헤아릴 수 있을까요?

 

딸과 아버지, 

이제는 헌팅턴비치보다 더 아름다운 천국의 생명수 강가에서 함께 산책하고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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