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id": "xe-6024",
  "title": "20110814m: 자유(갈 5:1)",
  "authors": [],
  "category": "sermon",
  "dates": {
    "registered_at": "2011-08-14T21:03:27",
    "original_updated_at": "2011-08-14T21:04:01",
    "published_on": null,
    "delivered_on": null
  },
  "tags": []
}
---
<!-- paragraph:p0001 -->
<div>2011년 8월 14일 주일낮예배/광복기념주일</div>

<!-- paragraph:p0002 -->
<div>본문: 갈 5:1</div>

<!-- paragraph:p0003 -->
<div>제목: 자유</div>

<!-- paragraph:p0004 -->
<div><br></div>

<!-- paragraph:p0005 -->
<div>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div>

<!-- paragraph:p0006 -->
<div><br></div>

<!-- paragraph:p0007 -->
<div>66년 전에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광복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5장 13절도 보십시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무슨 뜻입니까? 자유를 누리게 하기 위해, 자유인으로 살아가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자유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자유라는 개념을 설명하려고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를 시킵니다. 어린아이와 성인을 비교합니다. 자유, 평화는 다 관계적인 개념이고 추상적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유를 설명하며 어린아이와 성인을 비교하는 겁니다. </div>

<!-- paragraph:p0008 -->
<div><br></div>

<!-- paragraph:p0009 -->
<div>갈라디아서 4장 1절 이하입니다. “[1]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어린아이는 종은 아닙니다. 그러나 완전한 자유인도 아닙니다. 유대 전통에서는 12세 어린아이는 완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부모가 정해주는 후견인의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12세 이후 성인식을 거치면 한 사람의 어엿한 자유인이 됩니다. 성인이 되기 전에는 종은 아니지만 종과 비슷한 존재입니다. 후견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에게 자유인이라 하셨을 때 그 자유인은 어린아이가 아니라 성인된 자유인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보장하신 자유는 완전한 자유입니다. </div>

<!-- paragraph:p0010 -->
<div><br></div>

<!-- paragraph:p0011 -->
<div>바울은 다시 한 번 종과 아들을 비교합니다. 종과 아들은 어떻게 다릅니까? 아들은 아무리 못나도 끝까지 아들입니다. 종은 아무리 착하고 부지런해도 끝까지 종입니다. 종이 아들 되는 법도 없고, 아들이 개망나니라고 종 되는 법도 없습니다. 신분이 다릅니다. 우리는 아들 같은 자유인입니다. 이것을 주님이 우리에게 보장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다고 할 때 그 자유는 성인된 아들의 완전하고 완벽한 자유입니다. </div>

<!-- paragraph:p0012 -->
<div><br></div>

<!-- paragraph:p0013 -->
<div>그러면 주님이 우리를 자유인 되게 하셨다고 했는데, 무엇으로부터 자유하게 했다는 뜻입니까? 우리나라는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광복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이 우리를 무엇으로부터 해방해 주셨습니까? 첫째, 율법입니다. 당시 갈라디아교회의 문제는 교회 안에 이단이 있었습니다. 율법주의입니다. 율법주의는 복음도 믿어야 하지만 율법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주의는 가장 유수한 겁니다. 유대인으로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복음도 믿어야 하나 율법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할례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지금 이 율법주의에 대해 분노한 겁니다. 바울은 이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갈라디아 5장 2절 이하입니다. “[2]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3]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바울의 이 말은 너무도 원색적이고 격한 표현입니다. 실제 갈라디아교회 교인들은 할례도 받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 바울은 할례뿐 아니라 율법 전체도 다 지키라고 합니다. 그리고 율법으로 구원을 받겠다는 사람들이야말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사람이라고 합니다. 율법으로 구원 받겠다는데 그리스도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율법으로부터 해방된 사람들입니다. 율법으로부터 우리를 자유하게 하려고 주님이 우리를 부르셨고, 주님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율법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은 이미 검증되었습니다. 구약이 바로 그것을 말해줍니다. 믿음으로 구원 얻고, 믿음으로 의로워집니다. 아무리 완전하고 완벽한 사람도 도덕이나 율법으로 구원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율법으로부터 자유한 사람들입니다. 지금도 유대교도나 고행이나 수도생활을 장려하고 공덕을 쌓아야 된다는 사람들은 다 율법주의자들입니다. 그들만이 아닙니다. 도덕이나 윤리를 강조하는 사상이나 종교는 다 율법주의입니다. 도를 닦아서는 절대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게 성경의 진단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오셔서 율법시대를 폐막하고 복음의 시대를 개막하신 겁니다. 우리는 흔히 저 사람은 예수 안 믿어도 천당 갈 사람이라고 합니다. 예수 안 믿고 천국 갈 사람은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나보다 좀 더 착하다는 것이지, 하나님의 절대 기준을 통과해서 천국 갈 만큼 착하거나 의로운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상대적인 선함이나 착함일 뿐입니다. 여의도의 63빌딩이나 남산타워나 2층 상가건물은 하늘에서 보면 다 똑같습니다. 도토리 키재기일 뿐입니다. 그래서 율법이나 도덕으로는 안 되는 겁니다. 도덕 군자도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절대 기준에는 그들이 못 미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율법으로는 안 되고 오직 믿음으로만 의로워질 수 있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율법으로부터 해방시키셨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이 얼마나 정확한 말씀입니까? 율법의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는 없습니다. </div>

<!-- paragraph:p0014 -->
<div><br></div>

<!-- paragraph:p0015 -->
<div>그렇다면 우리에겐 의문이 하나 생깁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율법이 필요 없냐는 겁니다. 우리는 율법을 안 지켜도 되는 겁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이나 율법이 여전히 필요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 율법이 필요한 게 아니라, 우리의 성화(聖化)를 위해 율법이 필요합니다. 율법대로 살려고 애를 쓰면 우리의 삶이 거룩해집니다. 주님의 거룩한 모습으로 닮아가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주님도 율법을 완성하기 위해 오셨다고 했고,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율법으로 의로워지고 율법으로 구원받는다는 율법주의도 거부해야 하지만, 이제는 복음시대이기에 율법이 필요 없다는 율법무용론이나 율법폐기론도 거부해야 합니다. </div>

<!-- paragraph:p0016 -->
<div><br></div>

<!-- paragraph:p0017 -->
<div>둘째, 우리는 죄로부터의 해방을 받았습니다. 로마서 8장 1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 누구도 나를 죄인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법, 성령의 법이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이보다 놀라운 자유의 의미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죄에서 해방되셨습니까? 죄로부터 자유하십니까? 가장 중요한 얘기입니다. 기독교 진리의 정수입니다. 이것을 놓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죄로부터 해방된 사람들입니다.</div>

<!-- paragraph:p0018 -->
<div><br></div>

<!-- paragraph:p0019 -->
<div>그렇다면 이제 여러분은 죄를 안 짓습니까? 그러면 죄로부터 해방이란 말은 무슨 뜻입니까? 예수 안 믿어도 죄를 지었고 예수를 믿어도 죄를 짓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우리에게 너희는 죄로부터 해방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모순이 어디 있습니까? 오죽하면 바울까지 이렇게 말합니다.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3-24). 바울이 사도가 된 후 초기에 이런 탄식을 하는 게 아닙니다. 사도 생활이 오래 된 이후입니다. 도대체 이런 모순이 어떻게 발생합니까? 구원파 박옥수 같은 사람은 아직 완전히 구원을 받지 못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완전히 거듭나면 절대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게 구원파의 핵심입니다. 거기에 다 넘어가는 겁니다. 왜냐면 예수 믿으면서도 죄 짓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정말 완전히 거듭나지 못해 죄를 짓고 있는 겁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여전히 죄를 짓는 모순에 빠져 사는 이유는 옛 삶의 관성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리스도의 종이지만 어제까지 열심히 죄를 짓던 삶의 관성과 습성 때문에 여전히 죄를 짓고 있는 겁니다. 이미 우리의 신분이나 소속은 달라졌습니다. 더는 죄의 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우리 몸에는 여전히 죄의 습성이 배어 있습니다. 금단현상과도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300년 이상 애굽에서 종살이하다 하나님이 해방시켰습니다. 그래서 광야로 나왔습니다. 이제 자유인입니다. 애굽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들이 죄를 안 지었습니까? 날마다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신분이 완전히 달라졌는데도 비굴한 노예근성이 그들 몸에 남아있어서 자꾸만 애굽을 그리워한 겁니다. 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겁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로부터 해방시켰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죄에 대한 향수, 기호가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죄로부터 자유한 몸임에도 여전히 우리는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전에 짓던 죄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전에는 죄의 하수인으로 살면서 죄가 시키는 대로 악한 일을 범했으나, 지금은 자유인입니다. 다만 옛 삶의 습성이 내 몸에 잔재로 남아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율법으로부터도 죄로부터도 해방된 사람입니다.</div>

<!-- paragraph:p0020 -->
<div><br></div>

<!-- paragraph:p0021 -->
<div>셋째, 초등학문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했습니다. 갈라디아 4장 9절 이하입니다. “[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바울 당시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율법과 죄 문제 뿐 아니라 세상 초등학문으로부터도 자유하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천박한 초등학문은 당시 희랍문화권에서 유행하던 점성술을 가리킵니다. 요즘은 이게 미신이지만 당시는 학문이었습니다. 요즘도 예수 믿으면서도 날을 따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새번역 성경에는 초등학문을 원시종교로 번역했습니다. 미신이란 말입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사주보고 궁합보고, 정초에는 꼭 토정비결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문 받으면 꼭 오늘의 운세부터 읽습니다. 재미로 본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닙니다. 이게 다 원시종교요 미신입니다. 주님은 이런 것들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켰습니다. 믿는 사람은 이런 것을 따지면 안 됩니다. 모든 것으로부터 진정한 자유함을 누리십시오. 손자 이름 짓겠다고 철학관 찾아가지 마십시오. 아무리 용하고 점 잘 본다고 해도 찾아가지 마십시오. 차라리 손 있는 날 이사하십시오. 더 저렴하게 이사할 수 있습니다. 자유하십시오. 세상 초등학문에 매어 살지 마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그런 것들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셨습니다. 바울은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이여, 어찌하여 초등학문으로 돌아가 저희에게 종노릇하느냐’고 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다 해방시키셨는데 왜 다시 그 초등학문으로 돌아가느냐는 겁니다. </div>

<!-- paragraph:p0022 -->
<div><br></div>

<!-- paragraph:p0023 -->
<div>믿음에 굳게 서서 다시는 비굴한 종의 멍에를 매지 마십시오. 종이 아닌 어엿한 아들로 사십시오. 어린아이가 아닌 성인된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그래서 주님 기대에 부응하는 참된 자유인들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div>

<!-- paragraph:p0024 -->
<div><br></div>

<!-- paragraph:p0025 -->
<div>설교영상보기: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D6ClzbOELZw$</div>

<!-- paragraph:p0026 -->
<div><br></div>

<!-- paragraph:p0027 -->
<div><br><!-- paragraph:p0028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span></div>

<div class="archive-resource-links"><a href="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D6ClzbOELZw$" title="원문 미디어 링크 (이용 상태 미확인)"></a></di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