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13] 주님의 눈물 (눅 19:4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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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기도문]
주님,
주님의 고난을 기리는 사순절 둘째 주일입니다.
하오나 저희는 오늘도 교회가 아닌 가정에서 저희 가족끼리 비대면 예배를 드리며 주일을 지키고 있사오니 예배의 영이신 성령으로 함께 하사 이 조촐한 예배가 주님 받으시기에 합당한 산제사가 되게 해주시옵소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여전히 폭증하고 있고, 그 정점조차 가늠하기가 어려워 국민 모두가 힘들어 하며 불안해하고 있사오니 이 답답한 국면을 하루 속히 벗어날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오늘도 환자들을 찾아가사 위로하시며 안수해주시고, 가정예배조차 쉽지 않은 성도들을 기억하사 그 사정을 헤아려 주시옵소서.
주님,
전쟁으로 죽어가고 있고, 또 피난길에 나서며 고통당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강원도 산불도 하루 속히 진화하여 모든 것을 잃고 지금도 대피소에서 지내고 있는 이재민들이 평안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저희 가족들을 지키사 늘 안전하고 건강하게 생활하게 하시고, 어려운 이웃들도 생각하며 더욱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경건하게 사순절을 보내게 해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말씀을 상고할 때 은혜를 더하시고, 자신을 살피며 말씀에 바르게 응답하는 복된 시간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20313m
눅 19:41-44
주님의 눈물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우리는 흔히 웃으면 복이 온다고 하죠. 그런데 성경은 오히려 우는 자가 복되다고 합니다. 산상수훈에 나오는 유명한 팔복에도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요” 그랬습니다. 실제 성경에는 주님이 웃으셨다거나 남을 웃기셨다는 기록은 없지만 대신 우셨다는 말씀은 있습니다.
그것도 여러 번 우신 것으로 돼 있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 41절을 보십시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십자가를 앞두신 주님이 예루살렘으로 상경하시다가 감람산에서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시며 우셨다는 겁니다.
왜 우셨습니까? 이때 흘리신 주님의 눈물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민족의 현실, 조국의 운명이 안타까워 우신 애국의 눈물, 애족의 눈물이었습니다. 이어지는 42절도 보십시오.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우리나라도 그렇습니다마는 이스라엘 역사도 참 파란만장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지금 남북으로 분단된 것처럼 이스라엘도 이미 주전 931년에 남북으로 분단이 되는데, 그 분단된 남북이 다시 바벨론과 앗수르에 각각 망하지 않습니까. 그러고 나서는 사실상 단 한 번도 독립 국가를 이뤄보지 못한 채 바사와 헬라 그리고 로마 식민지를 거쳐 마침내는 주님 시대에까지 이르는데, 그 기간이 무려 1,000년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43절 이하도 보십시오. “날이 이를지라 내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이것은 주후 70년 로마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완전히 초토화될 것을 예언하신 말씀인데 보십시오. 예루살렘 성이 적들에게 포위를 당하고, 어린 자식들이 땅에 패대기쳐지고 마침내는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을 만큼 완벽하게 붕괴될 것이라는 건데, 그런 비극적인 예루살렘의 멸망을 주님이 미리 내다보시며 지금 울고 계신 겁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국경이 없지만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엄연히 조국이 있습니다. 주님도 당신의 조국인 이스라엘을 생각하시며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면서 이렇게 우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마태복음 23장에서 보면 더 처참합니다. 주님이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하고 우시며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닭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과 같이 내가 너희를 모은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로 살면서도 사회 지도층의 부정과 부패와 타락이 극에 달했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로마에 빌붙어 권력을 유지하며 나라를 야금야금 팔아먹고, 종교 지도자들은 돈으로 성직을 사고 팔며 바른 말 하는 선지자들을 박해하고 죽이면서 오로지 자신들의 기득권 수호에 미쳐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지금 도탄에 빠져 신음하고 있는데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사두개파니 바리새파니 해롯당이니 하며 날마다 서로 싸우고 또 고의로 지역감정까지 부추겨서 북부인 갈릴리 지방, 중부인 사마리아 지방, 그리고 남부인 유다 지방 사람들이 서로 왕래도 못하고 무슨 철천지 원수처럼 반목하며 살아가게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헤롯을 향해서는 여우라고 하셨고,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서는 다 독사의 자식들이고 회칠한 무덤이라며 분노하셨던 겁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만약 주님이 지금 우리나라를 바라보신다면 뭐라고 하실까요? 어떻게 하실까요? 웃으실까요? 우실까요? 지금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들이나 교계 지도자들에게 대해서는 뭐라고 하실까요? 칭찬할까요? 책망을 하실까요? 저는 대한민국아 대한민국아 하시며 우실 것 같고, 또 화있을진저 너희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하시며 책망하시고 크게 진노하실 것 같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나라를 바라보시며 울고 계실지도 모르는 주님을 생각합시다. 그리고 이 사순절에 우리나라의 평화를 위해 정치 지도자, 종교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그들이 변화되고 새로워져야 나라가 변하고, 교회가 변하고 또 이 세상이 변합니다. 주님은 그렇게 나라를 위해, 민족을 위해, 지도자들을 위해 울며 기도하셨습니다.
다음은 또 언제 어디서 주님이 눈물을 흘리셨습니까?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였습니다. 요한복음 11장으로 갑니다. 요한복음 11장 32절이하입니다.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었고 그 발 앞에 엎드려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제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이것은 형제에 대한 동정의 눈물, 불행당한 이웃에 대한 연민의 눈물, 남을 불쌍히 여기는 사랑의 눈물입니다. 따라서 이것 또한 우리 믿는 자들에게 꼭 필요한 소중한 눈물이고 또 값진 눈물입니다.
사실 요즘은 믿는 자들도 마음이 많이 강퍅해졌습니다. 얼마나 무심해졌는지 불행한 이웃을 봐도 동정의 눈물이나 연민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드뭅니다. 디모데 후서 3장 1절 이하입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교만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리라” 여기 나오는 여러 가지 말세적 현상 가운데 특히 무정하다는 말씀, 이 말의 문자적인 의미가 바로 눈물이 없다. 눈물이 마른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말세로 가면 갈수록 사람들이 무정해져서 이웃들의 불행을 보고도 전혀 눈물을 흘릴 줄 모르는 비정한 세상이 된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 강도를 만나 가진 것을 다 빼앗기고 거의 죽은 상태로 그냥
그런데 성전에서 일하는 직업적인 종교인인 레위인도 또 성직자인 제사장도 그 길을 지나가다가 그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는 그냥 피해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마리아인 하나는 그를 불쌍히 여겨 응급처치를 하고 또 자기의 나귀에 태워서 주막까지 데려가 돌봐주며 치료해 주었다고 합니다. 주님이 그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다 말씀하시고 나서 마지막에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도 가서 이 같이 하라”
여러분,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강도 만난 이웃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그들을 피해 달아나기 바쁘고,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며 외면하기 바쁘지 주님이 당부하신 대로 그들을 정말 불쌍히 여기며 연민의 눈물을 흘리며 사랑과 동정을 베푸는 사람은 점점 더 보기가 힘들어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주님처럼 이웃에 대한 가장 순수한 동정의 눈물, 뜨거운 사랑의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영적인 감성이 풍부해야 그 심령이 메마르지 않습니다. 이 사순절 기간 동안 졸지에 러시아의 침공을 당해 수많은 희생자와 난민이 발생한 우크라이나를 위해서도 진심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또 강원도 산불 이재민을 위해서도 기도하십시오. 그들이 다 이를테면 강도 만난 우리의 소중한 이웃들입니다.
다음은 또 주님이 언제 눈물을 흘리셨습니까?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실 때 우셨습니다. 복음서는 그냥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그랬지만, 히브리서 5장 7절을 보면 주님이 이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셨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겟세마네에서 이렇게 통곡하시며 흘리신 주님의 눈물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십자가를 앞두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흘리신 속죄의 눈물, 대속의 눈물이셨습니다. 구속의 눈물이셨습니다. 여러분, 사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눈물, 가장 절실한 눈물은 바로 이겁니다. 속죄의 눈물, 회개의 눈물, 참회의 눈물, 자신의 영혼과 영원한 운명을 위한 눈물, 이것이 가장 소중한 눈물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은 자신의 죄를 생각하며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서 울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께 사죄를 빌며 울어보신 지가 얼마나 되셨습니까? 요즘은 회개하며 우는 사람들을 보기가 참 힘들어졌습니다. 전에 비해 사람들이 죄를 덜 지어서 그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요즘도 우리는 여전히 많은 죄를 지으며 삽니다. 아니 오히려 옛날보다 더 기름진 죄, 더 세련되고 고급진 죄를 더 많이 지으며 삽니다.
그럼에도 회개의 눈물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더 강퍅해지고 더 뻔뻔스러워지고 더 철면피해졌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더 타락하고, 더 세속화되고 신앙 양심이 더 둔감해지고 더 무감각해졌다는 뜻입니다. 다윗은 너무너무 많이 울어서 눈이 쇠하기까지 했고, 회개의 눈물을 너무 많이 흘려 침상이 썩기까지 했고 이불을 적시기까지 했다고 했습니다. 또한 시편 56편에서는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하며 끝없이 눈물로 자신의 영혼을 정화했다고 했습니다.
당장 죽을 수밖에 없는 중병에 걸린 히스기아 왕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는데, 그때 하나님이 뭐라고 응답하셨습니까?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생명을 15년을 더 연장하리라” 히스기아의 눈물의 기도가 하나님의 심금을 울린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의 운명을 바꿔주셨어요.
여러분, 하나님도 감성을 가지신 인격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눈물에 약하십니다. 우리가 울면, 우리가 눈물을 흘리면 그 모습을 오래 두고 보시지 못합니다. 그래서 눈물의 기도가 그만큼 호소력이 있다는 겁니다. 눈물의 선지자라는 예레미아 선지자는 “시온아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의 구원을 위한, 자신의 영혼을 위한 회개의 눈물도 흘려야 되지만 내 가족 내 자녀 내 부모의 구원을 위해서도 많은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를 오르실 때, 울며 그 뒤를 따라가던 여인들을 향해 뭐라고 하셨습니까?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 울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곧 너희와 너희 자녀들의 구원을 위해 울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코가 석 자입니다. 사실 우리는 지금 주님의 십자가를 슬퍼해 드리기보다는 우리 자녀들의 구원을 위해 우는 일이 더 시급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자녀들은 다 어디에 있습니까? 신앙생활은 제대로 하고 있습니까? 다 세례는 받았습니까? 혹 코로나를 핑계로 주일조차 안 지키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또 여러분들은 그런 여러분들의 자녀들의 구원과 영혼을 위해 얼마나 눈물로 기도하셨습니까? 주님이 지금 십자가를 지고 가시면서 그 정신이 혼미한 상황에서도 여인들을 향해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 자녀들을 위해 울라고 하신 말씀의 엄중함을 결코 허투루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도 눈물의 기도로 키운 자식은 결코망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부디 자식들의 영혼을 위해 자식들의 구원을 위해 자식들의 행복을 위해 더 많이 눈물로 기도하십시오. 부모님의 영혼을 위해서도 남편 혹은 아내의 구원을 위해서도 더욱 눈물로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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