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27] 하나님 나라 체험 (눅 9: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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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기도문]
주님,
저희들 벌써 한 달째 이렇게 각 가정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다>고 하시고, 또 <너희 중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무엇이든 너희를 위하여 이루시리라>고 하셨사오니 오늘 저희가 드리는 이 가정예배가 복되게 하시고, 또 기도하는 바도 이루어지는 큰 역사가 있게 해주시옵소서.
주님,
지금 오미크론 변이가 저희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크게 확산되고 있사오니 부디 이 사태와 재앙을 막아주시고 다스려주시옵소서. 하루 속이 이 혼란스런 상황을 극복하고 모든 것이 정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오늘도 환자들을 찾아가사 안수해주시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가정예배조차 여의치 않은 성도들의 사정을 헤아리사 위로하시며 큰 믿음을 허락해주시옵소서.
주님,
올해도 벌써 금주 수요일부터 주님의 고난을 기리며 묵상하는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저희들 더욱 사랑하고 순종하고 절제하므로 주님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도록 성령으로 이끌어주시옵소서.
저희 가정을 축복하사 가족들 모두 주 안에서 늘 평안하고 안전하게 하시고, 항상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게 해주시옵소서. 올해도 각자 기도하며 바라는 것들을 다 이루고 응답 받는 큰 은혜가 있게 해주시옵소서.
주님,
이 시간도 저희들 말씀을 상고할 때 감동을 느끼고 떡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저희를 살리는 참 생명의 양식임을 깊이 깨닫는 복된 시간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20227m
눅 9:28-36
하나님 나라 체험
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31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32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33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34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더니
35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36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
교회력에 의하면 오늘이 바로 산상에서 주님의 용모가 변화되셨던 사건을 기념하는 산상변모주일입니다. 요즘은 교회들이 이 날을 그리 관심 있게 지키는 것 같지 않습니다만, 초대교회 시대 때는 대단히 성대하게 지켰던 오랜 전통의 교회 기념주일입니다.
먼저 본문 28팔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이 말씀을 하신 후 팔일쯤 되어” 그랬습니다. 여기 나오는 이 말씀이 뭡니까? 이 말씀을 하신 후 팔일쯤 되어 주님이 제자들을 데리시고 산에 오르사 용모가 변화되셨다는 건데, 어떤 말씀을 하신 후 팔일쯤 되어 이 산상 변모 사건이 발생했다는 겁니까?
당연히 28절 앞에 나오는 27절 말씀이겠죠.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그 앞에 26절도 보십시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다 주님의 재림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특히 이 27절은 그동안 참 탈도 많고 오해도 많았던 말씀 아닙니까.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신 여기 서 있는 사람들은 누구죠? 제자들이죠. 20절을 보면 주님이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때 베드로가 저 유명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는 신앙고백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바로 그 자리, 그 현장에서 주님이 “너희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는 27절 말씀을 하신 겁니다. 따라서 당시 제자들은 주님의 그 말씀을 자기들 생전에 주님의 재림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씀으로 이해를 했고, 그래서 실제 사도들도 또한 그들이 이끌었던 초대교회도 다 굉장히 종말론적이었던 게 사실이잖아요. 사도행전 4장, 5장, 6장을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이 자기 집이며 토지며 전 재산을 다 팔아 교회에 바치고, 또 사도들은 집사들을 세워 그 헌금을 관리하며 가난한 자, 고아, 과부들을 구제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게 다 사도들 죽기 전에 주님이 재림하실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고, 또 초대교회에 그런 종말론적 신앙의 근거가 바로 오늘 이 누가복음 9장 27절 말씀이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중에 살아 생전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도 있느니라 하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정말 오직 재림만을 뜻하는 말씀이었을까요? 다시 오늘 본문인 28절 상반절로 갑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 팔일쯤 되어”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경이 지금 27절 말씀과 오늘 본문인 28절 이하의 이 변화산 사건을 서로 굳이 연결시키고 있다는 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27절 말씀을 하신 후 팔일쯤 되어 변화산 사건이 있었다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뭘까요?
오늘 본문에 소개되고 있는 이 변화산 사건이 바로 주님이 여드레 전 살아 생전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도 있느니라고 하신 바로 그 하나님 나라를 제자들에게 실제 체험하게 한 사건이고 또 훗날 있을 주님 재림 사건의 모형이기도 한 사건이라는 뜻입니다.
여기 보십시오. 당시 그 산상에서 주님의 용모가 변화되고 옷에서 광채가 났다고 하지 않습니까. 또 영광이라는 말이며 구름이라는 말도 여러 번 나오는데, 이게 다 주님의 재림을 묘사할 때 쓰는 언어들 아닙니까. 재림 때 주님이 영광 중에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변화산에서 주님이 바로 그러한 모습으로 변모하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여기에 또 누가 소환됩니까? 구약의 두 전설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왜 모세와 엘리아일까요? 물론 모세는 율법을 상징하고, 엘리아는 선지자를 대표하기 때문에 복음 시대의 주인공이신 주님이 구약 시대를 대변하는 그 두 인물과 만나서 산상에서 회담을 벌이셨다는 뜻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계시적인 의미는 뭡니까? 장차 주님이 재림하시면 죽은 자는 신비한 부활체로 다시 살아나서 주님을 영접하게 되고, 또 그때까지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은 그 살아있는 상태에서 신비한 부활의 몸으로 변화되어 주님을 맞게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따라서 모세는 주님 재림 시 변화된 몸으로 되살아서 주님을 영접하게 될 모든 죽은 자들을 대표하고, 엘리아는 본래 죽지 않고 불수레를 타고 곧장 천국으로 간 사람이기 때문에 훗날 살아 생전에 주님의 재림을 맞을 모든 산 자들을 상징하는 인물로 그 산상에서 주님과 만난 겁니다.
따라서 당시 그 변화산 체험이야말로 장차 있을 주님의 재림 사건,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제자들 앞에서 주님이 미리 연출해 보이신 종말론적인 계시 사건이었다는 겁니다. 훗날 광채 나는 용모로 영광 중에 오실 주님의 재림의 모습을 그 변화산에서 미리 맛보기로, 예고편으로 제자들에게 좀 보여주셨다는 거죠. 당시 그 광경이 얼마나 황홀했으면 베드로가 주님께 이런 제안을 다 했겠습니까. 본문 33절입니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아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그럼 이 정도의 이해를 전제로 이제 본문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주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서도 오늘 본문에 나오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특히 핵심적인 인물이었죠. 주님은 무슨 중요한 일이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꼭 이 세 사람을 당신 가장 가까이에 두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유독 이들만을 편해하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이 트리오의 믿음이 다른 제자들보다 앞섰기 때문에 그들을 좀 더 집중적으로 훈련시키시고 교육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 5장 37절을 보면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시기 위해 가실 때도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외에는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셨다. 그랬습니다. 또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마가복음 14장 32절 이하를 보면 이렇습니다. “저희가 겟세마네라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나의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만 데리시고 높은 산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여드레 전, 즉 26절과 27절에서 말씀하신 재림과 하나님 나라의 신비를 체험하게 하시며 몇 가지 중요한 훈련을 시키십니다.
우선 기도 훈련입니다. 28절을 다시 보십시오.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그랬습니다. 29절도 그렇습니다. “기도하실 때에 그 용모가 변화되고” 그랬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베드로, 요한, 야고보에게 기도하면 용모도 변하고 그 얼굴에서 광채도 나고 그 사람의 삶도 인생도 신비하게 밝게 변화된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체험하고 깊이 깨닫게 하시기 위해 그들을 그 변화산상으로 데려가신 겁니다.
사실 늘 산 아래에서만, 분주한 일상 속에서만 살다 보면 기도를 하려고 해도, 때로 기도가 하고 싶어도 집중이 잘 안 되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일상을 벗어나서 기도할 필요가 있는데 바로 그 점을 깨닫게 하기 위해, 또 그렇게 기도하면 하나님과의 교감이 훨씬 더 긴밀하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하시기 위해 그들을 굳이 산상으로 이끄셨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게 꼭 필요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가끔은 일상을 벗어나 좀 더 집중해서 기도함으로 주님과의 깊은 교감을 체험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야 내가 변화되고 내 모습에서, 내 인격에서, 내 삶에서 빛이 난다는 거예요. 또 그래야 소진된 내 영성도 회복이 되고, 또 그만큼 내가 보다 더 용감하게 씩씩하게 담대하게 세상을 살 수 있다는 겁니다. 올해도 금주 수요일이 벌써 재의 수요일입니다. 사순절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부디 이번 사순절에는 그야말로 변화산에 오르는 심정으로 좀 더 깊이 기도하시며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시는 성도들 되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다음은 신비 체험을 위해서 주님이 그들을 산상으로 이끄셨습니다. 본문 30절 이하를 보십시오.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아라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제자들은 그 산상에서 주님의 변화되신 용모와 광채 나는 모습뿐만 아니라 옛사람인 모세와 엘리아가 나타나서 주님과 대화하고 회담하는 광경도 목격했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실로 놀라운 영적 체험이고 일생일대의 신비 체험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전설 같은 존재들인 엘리아와 모세가 지금 자기들 눈앞에 나타나서 주님과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얼마나 경이로웠겠습니까. 여러분, 신앙세계에는 분명 이런 초자연적인 신비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가끔은 그런 신비 체험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신앙이 더 깊어지고 덜 흔들립니다. 주님도 그 점을 인정하셨기 때문에 제자들을 그 변화산상으로 인도하사 그런 생생한 영적 체험, 신비 체험을 맛보게 하신 겁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님은 제자들이 그런 영적인 황홀경의 신비 체험 속에 오래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은 허락하시지 않았다는 겁니다. 보십시오. 주님은 분명 초막 셋을 지어 아예 거기서 살자는 베드로의 제안을 받아들이시지 않고, 다시금 제자들을 데리시고 산 아래로, 세상으로, 일상 속으로 내려오셨다는 겁니다. 우리는 어떤 신비 체험을 하면 여기가 좋사오니 하며 그냥 거기에 눌러앉으려고 합니다. 거기다 초막 셋을 짓고 기도원 간판을 걸고 그냥 그 산상에서 살려고 하지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 인간적인 욕심일 뿐 결코 주님의 뜻은 아니라는 겁니다.
마태복음 17장 9절에서 이 장면을 보면, 주님이 제자들에게 이런 당부까지 하십니다. “오늘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무슨 뜻입니까? 영적인 신앙적인 신비 체험은 하되, 그걸 함부로 발설하거나 자랑하거나 선전하거나 달아 먹거나 무슨 예언을 한다 어쩐다 하며 점쟁이 노릇은 하지 말라는 겁니다. 올해는 여러분들도 꼭 이런 변화산 체험, 신비한 영적 체험을 좀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이 많이 달라지고 또 새로워지고 영성도 그만큼 더 깊어질 줄 믿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말씀입니다. 말씀 훈련을 위해서 주님이 그들을 그 산상으로 이끄셨다는 겁니다. 본문 35절입니다.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제자들은 저 산 아래 복잡한 일상 속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하나님의 육성을 그 산상에서 들었습니다. 생생하게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당시 제자들로서는 그 변화산이 평소에는 들을 수 없었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던 특별한 자리요 거룩한 성소였던 겁니다. 지금도 세상은 너무 시끄럽습니다. 너무 소란합니다.
사실은 우리가 세상 한복판에서 살 때도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음성은 세밀하기 때문에 언제나 요란한 세상 소리에 파묻혀 잘 안 들립니다. 따라서 우리도 가끔은 주님처럼, 여기 제자들처럼 산에 올라가거나 기도의 골방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갈급해하며 간절히 말씀을 사모하면 이 시대에 우리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육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 55장 3절입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와 들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부디 여러분도 다 변화산에 오르셔서 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뜨거운 체험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후에 베드로는 베드로후서 1장에서 변화산 체험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오 내 기뻐하는 자라 하셨느니라”
여러분도 다 너희야말로 내 사랑하는 자식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음으로 더욱 빛나는 모습으로, 더욱 건강하고 더욱 밝은 모습으로 늘 감사하며 사시는 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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