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이전투구(泥田鬪狗)

子曰 君子無所爭 必也射乎 揖讓而升 下而飮 其爭也君子

자왈 군자무소쟁 필야사호 읍양이승 하이음 기쟁야군자

 

<공자 말씀하되

군자는 다투지 않는다. 

피치 못할 다툼이 있다면 그것은 곧 활겨루기 뿐이다.

활쏘기를 할 때면 두 손을 모아 절하고 서로 양보하며 사대를 오르내리고

진 사람은 이긴 사람이 권하는 술을 받아 마신다.

그런 다툼이야 말로 군자다워라!>(논어 팔일 7장)

 

공자는 춘추시대 사람입니다.

때는 백여 개의 나라가 저마다 영토를 넓히기 위해 전쟁을 일삼던 극도로 불안정한 전국시대, 그럼에도 공자는 혹 다툼을 벌이더라도 끝까지 <군자>의 예를 다하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공자가 가르친 <군자도>에는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인>(仁)의 정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나라를 통치하는 권력가들은 그의 이런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무려 14년 동안이나 천하를 주유하며 <도덕 정치>, <윤리 정치>를 설파했지만 누구도 그의 말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권모술수에 능한 자들만이 권력을 누리고, 등을 보이면 여지없이 누군가가 내 등에 칼을 꽂는 약육강식의 시대요, 약자들은 눈치를 보며 여기저기 줄을 서야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루한 시절이었기에 공자처럼 <인의>를 말하는 군자보다는 <손자병법>을 쓴 <손무> 같은 전략가나 교활한 책사가 훨씬 더 각광을 받고 출세를 할 수 있었던 세상 이었습니다. 

 

checkmate-gc929f702b_1920.jpeg

 

 

 

그렇다면 공자로부터 2,500년이 지난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진흙탕 개싸움>이란 뜻의 <이전투구>라는 말이 지금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20대 대선전이 아닐까 싶을 만큼 온통 아수라장입니다. 

오죽하면 미국의 <워싱턴포스트>가 <역대 최악의 선거>라고 혹평한데 이어 영국의 <더타임스>까지 <한국 역사상 가장 역겨운(most distasteful) 선거>라고 보도했겠습니까?

 

어디에도 나라를 이끌 큰 그릇은 안 보이고 오로지 상대방의 약점과 신상 털기에 혈안인 쫌생이들 뿐입니다. 국민들은 다 코로나에 지쳐 하루하루가 벅차고 힘든데 대권 주자들은 날마다 징글징글한 멱살잡이 막장극으로 시간을 다 허비하고 있습니다. 비전은 눈 닦고 봐도 없고 아무런 대책도 없는 퍼주기 선심 공약만 쏟아내고 있습니다. 

 

<페어 플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공자의 <군자도>처럼 운동 경기나 혹은 이해관계의 충돌이 불가피할 때 누구나 반드시 지켜야 할 신사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싸움의 양상이 너무도 부끄럽고 추악합니다. 

특히 정치판의 싸움은 저 거리의 난투극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런 룰도, 원칙도, 염치도 없는 엽기적 치킨 게임이고, 너 죽고 나 살자는 오징어 게임입니다. 

무조건 이기면 그만이고, 오로지 꿩 잡는 게 매일 뿐입니다. 

진 쪽도 마찬가집니다. 

절대 승복하는 법이 없고, 두고두고 보복하며 끝까지 발목을 잡습니다. 

 

유럽 사람들은 거의 거리에서 싸우는 경우가 드물지만 그래도 저는 그곳에서 10여 년을 살며 몇 차례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역시 권투식입니다. 먼저 웃옷을 벗고 몇 차례 주먹이 오가다 한 쪽이 쓰러지면 반드시 상대가 다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계속 하지, 쓰러진 사람을 덮치거나 또 한 쪽이 더 이상 싸울 의사가 없어 보이면 그것으로 끝나지 우리처럼 가는 사람을 붙잡고 늘어진다거나 무지막지한 언어폭력으로 상대를 모욕하거나 저주하지는 않습니다. 

헐리우드의 서부 활극도 보십시오.  보안관은 물론이지만 악당들조차도 절대 등 뒤에서 총질하는 법은 없습니다. 

 

저는 그게 과거 서구인들의 <기사도> 정신의 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펜싱 경기가 유래된 중세 유럽의 <기사도> 정신의 핵심은 <명예롭고 예의 바른 행동>이었고, 그들의 최대 덕목은 <독실한 신앙, 겸손, 용맹, 사랑 그리고 여성과 사회적 약자들인 과부와 고아들의 보호>였습니다. 

부디 우리 사회도 공자의 <군자도>나 프랑스의 <기사도>, 영국의 <신사도> 같은 페어 플레이 정신을 비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놀랍게도 칼과 말이 생명이었던 10, 11 세기 기사들이 그들의 칼집과 말안장에 새긴 경구는 마태복음 26:52 말씀이었습니다.

<네 칼을 칼집에 꽂으라.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느니라> 

원문 자료와 첨부

  • 이미지: 원래 주소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