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13] 여호수아와 갈렙 (민 1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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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기도문]
주님,
저희들 오늘도 이렇게 가정에서 주일예배를 드리며 기도합니다.
예배의 영이신 성령으로 함께 하사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기에 부족함이 없게 해주시옵소서.
오미크론 변이가 날마다 무섭게 확산하고 있습니다.
방역 당국도 더는 통제하지 못하고 사실상 국민 각자에게 관리를 일임한 것 같습니다.
주님, 저희를 지키사 감염을 막아주시고, 하루 속히 이 혼란과 재앙을 이기게 하사 안전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저희 가족들의 평안과 건강을 책임져 주시고, 늘 몸과 마음과 영혼이 주 안에서 강건하도록 보호해 주시옵소서.
오늘도 환자들을 찾아 가사 위로하시며 안수해 주시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주일 가정예배 조차 쉽지 않은 성도들을 기억하사 어디서든 주일예배만큼은 꼭 드릴 수 있는 여건과 믿음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주님,
저희 푸른교회를 기억하시고 사랑하사 가장 선하신 길로 인도해 주시옵소서.
또 이를 위해 늘 합심하여 기도하는 저희 성도들 되게 해주시옵소서.
주님,
새해에도 저희 가정의 간절한 바람과 기도제목들 있습니다.
저희 식구들의 새해 소망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기도하는 바를 꼭 이루어주시고, 확신을 가지고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도록 기도의 영이신 성령으로 격려해 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말씀을 상고할 때 깨달음을 주시고 주님의 뜨거운 육성을 듣게 해주시옵소서.
이 복된 주님의 날, 온누리에 주님의 따뜻한 은혜와 사랑의 빛을 허락하사 저희가 서로를 위하고 용서하며 더불어 살아갈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민 14:1-10
여호수아와 갈렙
1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4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5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6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10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오늘 본문이 민수기인데, 모세 5경 중 하나인 이 민수기라는 성경은 백성들의 수를 기록한 책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영어로는 이 민수기를 Numbers, 숫자들이라고 부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여기에는 모세가 광야에서 실시한 두 차례 인구조사, 호구조사 결과가 기록돼 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30년 만에 탈출할 때, 20세 이상 청장년이 모두 몇 명이었을까요? 출애굽 직후 광야에서 실시한 첫 번째 인구조사에 의하면, 여성과 20세 이하 미성년자들을 뺀 장년의 수가 60만이었습니다. 이 민수기 1장 44절 이하를 한번 보십시오. “모세와 아론과 각기 이스라엘 조상의 가문을 대표한 열두 지휘관이 계수하였더라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그 조상의 가문을 따라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이스라엘 자손이 다 계수되었으니 계수된 자의 총계는 60만 3,550명이었더라” 정확히 육십만 삼천오백오십 명이었습니다. 이 숫자가 바로 출애굽 제1세대입니다. 그리고 여기다 여성과 20세 이하인 탈출 1.5세대까지 합하면 당시 이스라엘 전체 인구가 약 200만 가량이 됐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렇게 극적으로 애굽을 탈출한 출애굽 1세대 60만 명이 결국은 다 광야에서 죽지 않습니까. 그토록 염원하던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두가 객사해서 광야에 그 뼈를 묻었다는 겁니다. 물론 개중에는 천수를 다해 자연사한 사람도 있었겠습니다만, 대다수는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벌을 받고 징계를 받아 죽었고, 그래서 마지막에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들은 다 출애굽 1.5세대와 광야에서 태어나고 자란 출애굽 2세대, 신세대들이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탈락한 60만 출애굽 1세대 가운데서 딱 두 사람, 그 두 사람은 예외였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모세도 아론도 못 들어갔는데, 출애굽 1.5세대와 광야에서 태어난 제2세대를 이끌고 가나안에 들어간 두 사람이 누굽니까?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자 그렇다면 1세대 60만은 어째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못 들어갔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또 어째서 같은 1세대였음에도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오늘 본문을 한번 보겠습니다. 오늘 이 본문, 무슨 내용이죠? 모세가 가나안의 문턱인 가데스바네아에서 각 지파로부터 한 명씩 차출해 12명의 정탐꾼을 만들어서 그들을 가나안에 밀파하잖아요. 현지 사정과 원주민들의 동태를 염탐하고 돌아오라고 몰래 들여보낸 겁니다. 이제 그들이 40일간의 정탐을 모두 마치고 돌아와서 모세와 백성들 앞에서 보고회를 갖는데 문제가 발생한 겁니다.
그게 뭐죠? 각 지파를 대표하는 그 12명의 정탐꾼 보고가 다 똑같지 않고 둘로 갈렸다는 거예요. 먼저 12명 중 절대다수인 10명은 자기들이 정탐해본 결과, 한마디로 가나안 정복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왜요? 13장 28절입니다. “그 땅 거민들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이 클 뿐 아니라 우리가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다”고 합니다. 또 13장 31절입니다.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또 13장 32 이하입니다.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그야말로 절망적입니다. 그들의 이런 부정적이고도 회의적인 보고를 듣고 낙심천만한 백성들이 어떻게 했죠? 이어지는 본문 14장 1절 이하입니다.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이렇게 밤새도록 울며불며 하나님과 모세를 싸잡아 원망하며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생난리를 쳤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은 또 어떻게 보고했습니까? 13장 30절입니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또 본문인 14장 7절 이하입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아니 똑같은 장소를 똑같은 기간 동안 정탐하고 온 사람들의 얘기가 어쩌면 이렇게 서로 다룰 수 있을까요. 어째서 한 팀은, 10명은 그토록 부정적으로 비관적으로 절망적으로 보고하고, 또 어째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렇게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낙관적으로 희망적으로 보고했을까요?
이게 대체 어디서 온 차이일까요. 우선 믿음에서 온 차이였습니다. 여러분, 당시 그 정탐꾼들은 다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13장 2절을 보면, 각 지파의 지휘관들이었습니다. 또 13장 3절은 그들이 다 이스라엘 자손의 수령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다 각 지파의 지도자급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결코 신앙적이지 못했습니다. 분명 이스라엘 공동체의 리더들이었지만, 믿음은 없었습니다. 당시 그들이 한 부정적인 보고, 비관적인 절망적인 보고를 한번 보십시오. 그들의 언어에는 어디에도 하나님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의 긍정적인 보고, 희망적인 보고를 보십시오. 어디든 하나님입니다. 14장 8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과연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이어지는 9절도 보십시오.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셨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렇게 구구절절이 여호와 신앙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수아와 갈렙의 그 긍정적인 보고, 적극적인 보고는 단순히 그들의 만용이나 허세가 아니라, 그들의 믿음의 산물이고, 믿음의 확신이고, 믿음의 담력과 용기의 결과였다는 겁니다.
이 14장 11절을 보시면 백성들이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치려 하자,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타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음에도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그러니까 보십시오. 백성들의 리더라는 10명의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보고, 패배주의적인 보고도 다 불신앙의 소치고, 또 그들의 그 회의적인 보고를 듣고 밤새 울며불며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고 출애굽을 후회하며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난리를 친 백성들의 태도도 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데서 온 불신앙의 결과였다는 지적입니다. 무늬만 신자고 명색만 하나님의 백성이지 생각이나 판단이나 행동은 전혀 아니었다는 거예요.
반면 똑같은 장소를 탐지하고 왔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능히 이기리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예전 개역성경은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가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래야죠. 적어도 믿음의 사람이라면 말입니다. 당연히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보고해야 맞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10명의 정탐꾼들은 완전히 불신앙적인 비관주의 회의주의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적들은 다 거인들이고 우리는 다 메뚜기들이라며 자신을 스스로 폄훼하고, 또 백성들은 그들의 그런 부정적인 보고를 듣고 오히려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희망적인 보고를 한 여호수아와 갈렙을 돌로 치려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믿음이 뭡니까? 여기 여호수아와 갈렙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확신 신념 아닙니까? 십자가를 보십시오. 더하기표 아닙니까. 쉽게 말해서 내 인생, 내 존재, 내 가정, 내 운명에 하나님을 플러스 하는 게 바로 믿음입니다. 나 혼자면 안 되죠. 어림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나보다 더 약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약해도 나라는 존재에 하나님이 더해지면 이제 반전이 일어납니다. 세상에서 내가 이기지 못할 적은 아무도 없습니다. 내 인생에 하나님이 플러스 되면 그 시너지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본문 14장 9절에서 “여호와가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가 능히 이긴다”고 한 것은 공허한 큰 소리가 아니라 바로 그런 뜻입니다. 그런 믿음에서 온 확신입니다. 주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죠. 바울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는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오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에, 여러분의 삶에 부디 확실하게 하나님을 플러스 하십시오. 원 플러스 원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래서 매사를 부정이 아니라, 긍정으로 적극적으로, 보다 희망적으로 해석하고 전망하고 기대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야 성공하고 낙오하지 않고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 더 있습니다. 부정적인 보고와 긍정적인 보고를 한 그 두 팀의 차이는 과거 지향적이냐 미래 지향적이냐의 차이에서 온 겁니다. 개인이나 공동체는 언제나 미래를 지향해야 합니다. 그래야 변화하고 발전하고 진보합니다. 그럼에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미래보다는 늘 과거에 살죠. 여기 12명의 정탐꾼들도 10 대 2로 갈리잖아요. 그만큼 과거 지향적인 사람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집착하고, 과거에 연연하고, 자꾸만 과거를 돌아보며, 늘 과거에 붙잡혀 살죠.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랬다는 겁니다. 그들은 늘 애굽의 옛 생활을 잊지 못했습니다. 본문 3절 하반절입니다.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또 4절입니다.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애굽으로 돌아가자. 과거로 돌아가자. 옛날로 돌아가자. 그게 그들의 구호고, 밤낮 입에 달고 살았던 그들의 노래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미래가 없습니다. 주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않다. 바울도 나는 과거를 다 해로 여긴다. 아니 그 화려했던 과거의 모든 이력을 배설물처럼 내버린다. 그랬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어서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오직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해 좇아가노라 그랬습니다.
바로 이겁니다. 이게 성서적 실존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오직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해 열심히 달음질하는 존재가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뒤돌아보지 마십시오. 과거로 회귀하지 마십시오. 애굽을 그리워하지 마십시오. 오직 미래를 바라보고 가나안을 대망하며 날마다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을 보십시오. 언제나 이스라엘 맨 앞에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진두지휘하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앞에서 가시는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초등학교 다닐 때 반장한 얘기며, 유치원 졸업할 때 수석한 얘기만 합니다. 출애굽을 했으면, 이제는 가나안을 향해 앞으로 앞으로 진군하십시오. 왜 아직까지도 애굽의 문턱에 앉아 공기놀이만 하고 계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가난한 문턱까지 와서 10명의 정탐꾼들과 함께 다시 과거로, 애굽으로 돌아가자며 작당하고 선동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어떻게 했습니까? 앞으로 나아가자. 가나안으로 진군하자. 미래로 희망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자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저 원주민들이야말로 우리의 밥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느냐. 그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오늘, 어느 쪽에 속하시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지금 아주 중요한 시험대에 섰습니다. 우리 사회, 우리 한국교회는 지금 아주 중요한 기로에 섰습니다. 향후 우리 사회, 우리 한국교회의 진로와 운명은 지금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선택하고 결단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과거를 고집하며 하나님이 예비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을 사양한 대가가 얼마나 혹독했습니까. 이 14장 29절 이하입니다.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려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또 35절 이하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였거니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반드시 이 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 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이 모세를 원망하게 한 사람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 그 땅을 정탐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서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
이렇게 해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든 출애굽 제1세대, 60만이 다 광야에 그들의 뼈를 묻어야 했던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결코 그들의 전철을 밟지 맙시다. 우리는 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후예들이 됩시다. 매사를 신앙적으로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희망적으로 보고 해석하고 실천하고 결단합시다. 부정적이고 불신앙적이고 비관적인 사고는 우리 사회와 교회를 망하게 합니다. 언제나 미래 지향적이어야 합니다. 현실 안주형이나 과거 지향적인 사람, 회귀적인 사람은 결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부디 여러분은 모두가 이 시대에 여호수아와 갈렙이 되셔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가나안 땅의 진정한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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