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220206m] 새벽 빛 (호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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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기도문

 

주님,

전파율이 가장 높다는 오미크론 변이 확산이 연일 기록을 갱신하고 있어 저희들 다시금 다음 주일까지 비대면 가정예배로 주일을 지키고자 하오니 진리의 영, 예배의 영이신 성령으로 함께해 주시옵소서.

 

정말 사람은 어떻게 할 수가 없음을 깨닫습니다.

 부디 주께서 하루 속히 이 재앙을 통제하사 저희로 하여금 본래의 평안한 일상으로 돌아가게  해주시옵소서.

우선 사태가 악화되어 예정한 2주에서 더 연장되지 않도록 지켜주시고, 오늘도 성도들 가운데 환자들을 찾아가사 위로하시며 안수해 주시옵소서.

또 이런저런 사정으로 주일 가정예배조차 쉽지 않은 성도들을 기억하사 주일예배만큼은 꼭 드릴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허락하실 뿐 아니라 주일 성수의 소중함도 깊이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주님, 

저희 푸른교회를 기억하사 가장 아름답고 선하신 길로 인도해주시옵소서. 

늘 한마음으로 기도하는 저희의 간구가 헛되지 않게 하사 주님의 뜻을 이루는 교회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게 해주시옵소서.

 

주님,

저희 가정을 축복하사 창궐하는 오미크론 변이로부터 보호해주시고, 가족 모두가 주 안에서 늘 안전하고 강건하도록 성령으로 지켜주시옵소서.

새해 저희 가정과 가족 각자의 기도 제목을 기억하사 헛되지 않게 하시며 꼭 응답하사 바라고 원하는 바를 모두 풍성하게 이루어 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말씀을 상고할 때 깨달음을 주시고 또 결단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20206m

호 6:1-3

새벽 빛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본문 3절입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빛같이 어김이 없나니” 우리가 여호와를 알되 새벽빛같이 언제나 변함이 없으시고 어김이 없으신 분으로 제대로 바르게 깨닫자는 것인데, 여기서 말씀하는 새벽빛이란 새벽 여명, 일출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는 어김이 없으시다 라고 돼 있는데 이전의 개역성경은 새벽빛같이 일정하시다고 했습니다. 또 신약 히브리서 13장 8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했죠. 다 같은 뜻입니다.

 

여러분, 새벽빛, 새벽 일출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어김이 없고 일정하고 동일합니까. 유사 이래 아침에 해가 뜨지 않은 날이 있었습니까? 여호수아 시대 때 중천에 수 시간 해가 머무른 적은 있었어도 아예 해가 뜨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해가 일정하지 않고,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지 않고 아주 조금씩이라도 더 뜨거워지거나, 조금씩이라도 식어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지구 생태계는, 우주가 벌써 다 다 없어졌거나 꽁꽁 얼어붙지 않았겠습니까?

 

요즘 지구 온난화로 남북극의 빙산이 급속도로 녹고, 그것 때문에 여러 가지 자연재해가 많이 발생해서 온 지구촌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햇볕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라든가 프레온 가스라든가 메탄가스 같은 온실가스가 지구 온도를 높여서 나타나는 인재일 뿐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새벽빛은 언제나 일정하고 동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바로 그 새벽빛같이 언제나 동일하시고 일정하시고 어김이 없으십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런 하나님을 우리가 더욱 힘써 알자고 합니다. 자 그러면 이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새벽빛 같으신 하나님의 은총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한번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뭘 꼽을 수 있을까요. 구원의 은총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 본문 1절 이하를 보십시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오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이니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우리를 낫게 하시고 싸매시고 살리시고 일으키시는 그 구원의 은총이 바로 새벽빛같이 어김이 없으시고 언제나 일정하시고 또 영원토록 동일하시다는 것입니다.

 

제가 자주 여쭤봅니다마는 지금 여러분들의 구원은 대체 어떤 기반 위에 서 있습니까? 우리 구원의 베이직이 뭐냐는 뜻입니다. 제가 이렇게 물으면, 많은 분들이 당연히 믿음이라고 답합니다. 어떻습니까. 정답입니까? 굉장히 옳고 지당한 말씀 같아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게 바로 함정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구원이 왜 자꾸만 흔들릴까요. 왜 어떤 때는 구원받은 것 같다가도 또 어떤 때는 전혀 아닌 것 같을까요. 무엇보다도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믿음에 기초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잘 믿을 때는 누구나 확신이 넘칩니다. 그러나 잘 아시다시피 우리의 믿음이란 결코 새벽빛 같지가 않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지가 않습니다. 조석으로 변하고, 순간순간 흔들리고, 때로는 걷잡을 수 없이 저 밑바닥까지 추락하기도 합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게 우리의 믿음입니다. 어떤 때는 불같이 뜨겁다가도 또 어떤 때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냉랭하고 싸늘하게 식습니다. 그러니 구원도 덩달아 춤을 춥니다. 믿음이 흔들리면 구원도 흔들리고, 믿음이 추락하면 구원도 같이 추락합니다. 믿음이 식으면 받은 것 같은 믿음도 다시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결코 그런 게 아닙니다. 구원은 새벽빛같이 어김이 없으시고 일정하신 하나님의 존재 자체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의 그 절대적인 은총에 근거된 것이지, 결코 변덕스러운 우리의 믿음에 연동된 게 아닙니다. 

 

에베소서 1장에 의하면, 믿음은 커녕 이미 창세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사 당신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고 했고, 로마서 5장은 열심히 믿을 때가 아니라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우리가 아직 경건하지 않을 때,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아직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되었을 때,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를 일방적으로 구원하셨다고 했습니다. 

 

이게 무슨 얘기죠? 우리가 잘 믿고 회개하고 기도하고 착하고 의롭게 살 때가 아니라, 엉망으로 살면서 전혀 안 믿을 때, 이미 하나님이 당신의 주권적인 은총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는 겁니다. 

 

따라서 구원은 왔다 갔다 하는 내 믿음이 아니라 전적으로 새벽빛 같으신 어김이 없으신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절대적인 은총에 근거된 것이기 때문에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우리가 힘써 알자는 겁니다. 제대로 알자는 겁니다. 구원은 내가 잘 믿어서 쟁취한 전리품이 아닙니다. 믿음의 대가나 보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주권적인 선물이고 은총입니다. 은사입니다. 새벽빛 같으신 하나님이 내 구원의 근거요 원인이요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늘 뭐라고 했습니까.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은 과장이고 허풍이지만,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말은 사실이고 진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영원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새벽빛같이 일정하시고 어김이 없으신 것처럼 그분이 이룩하신 우리의 구원 또한 그렇게 절대 변함이 없고 영원토록 동일하다는 겁니다. 따라서 이 사실을 우리가 힘써 알고 보다 깊이 깨닫자는 겁니다.

 

다음은 사랑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 주님의 사랑이 새벽빛같이 변함이 없으시고 일정하시다는 거예요. 요한복음 13장 1절입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제가 좋아하는 찬송가 393장입니다. “오 신실하신 주, 내 아버지여, 늘 함께 계시니 두렴 없네. 그 사랑 변치 않고 날 지키시며, 어제나 오늘이 한결같네.” 

 

또 히브리서 13장 5절 이하입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결코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절대 버리시지 않고, 떠나시지 않고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사랑하시겠다는 약속이신데,  무슨 얘기를 하다가 이 말씀을 하신 겁니까? 돈을 사랑하지 말고 돈 얘기를 하다가 하신 말씀입니다. 

 

여러분, 돈은 우리를 결코 사랑하지 않습니다. 돈은 가장 잔인한 폭군입니다. 사람들을 모조리 노예로 삼아 죽을 때까지 하수인으로 부릅니다. 2002년엔가 나온 ‘공공의 적’이라는 영화 보셨죠. 그 영화가 말하는 공공의 적이 누굽니까. 뭡니까? 자기 부모를 살해하고 자기하고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해친 이성재가 공공의 적입니까? 

 

아닙니다. 그 영화는 설경구가 집요하게 쫓는 이성재가 아니라 돈이 공공의 적이라고 합니다. 이성재가 왜 제 부모를 그렇게 잔혹하게 칼로 살해했습니까? 돈 때문이었습니다. 돈이 공공의 적입니다. 돈이 사람을 비굴하게 만들고 비겁하게 하고 남을 속이게 하고 배신하게 하고 사기치고 원수 맺고 강도짓 하게 하고 부모 형제나 자식까지도 살해하게 하는 주범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평생 돈을 짝사랑하며, 돈을 숭배하며 목숨을 걸고 물불을 안 가리고 돈을 쫓으며 맘몬이즘의 광신도로 살다가 죽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돈이 아니라 주님만을 사랑해야 합니다. 끝까지 영원히 동일하게 일정하게 새벽빛같이 나를 사랑하시는 분은 오직 한 분 주님 뿐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부모의 사랑도 자식의 사랑도 부부의 사랑도 절대 영원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다 변하고 그 시효가 끝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 주님의 사랑만큼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고 새벽빛처럼 변함이 없으시고 또 절대적이십니다. 

 

그 사실을 우리 모두가 힘써 알고, 새삼 깊이 깨닫자는 게 오늘 본문인데 하나가 더 있습니다.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새벽빛처럼 어김이 없으시다고 합니다. 이사야 40장 8절입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풀은 그게 어떤 것이든 다 마릅니다. 꽃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반드시 시들고 떨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영원합니다. 언제나 새벽빛처럼 어김이 없으십니다. 우리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만을 듣고 믿고 따라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불교의 가르침은 참 관대하고 포용력이 대단하죠.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불교에 비해 많이 배타적이고 독단적입니다. 우리는 사용하는 언어부터가 극단적이죠. 다 죄인이고, 안 믿으면 지옥 간다, 심판 받는다고 합니다. 툭 하면 사탄아 물러가라고 합니다. 정말 무시무시한 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게 다 사실이고 진실이고 진리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교는 다 똑같으니까, 서로 다 비슷하고 다 착하게 살자는 거니까 너나 나나 다 같다고 치자는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건 너그럽고 관대한 게 아니라, 평화주의가 아니라, 무책임한 것이고 사기성이 다분한 주장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현미경을 갖다 대서라도 진품과 모조품, 유사품을 제대로 가려야 옳지 않습니까? 어떻게 적당히 넘어가자는 게 관대하고 너그러운 겁니까? 마지막 한 문제까지도 정답과 오답을 정확하게 확실하게 가리자는 입장이 어떻게 독선이고 독단입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아무리 그럴 듯해도 진품은 딱 하나입니다. 다른 건 다 가짜고 짝퉁입니다. 너무 완벽해서 전문가가 봐도 구분이 잘 안 될 정도니까 그냥 다 진품으로 명품으로 칩시다. 감별기도 속을 만큼 완벽하니까 비록 위조 수표, 위조 달러지만 그냥 진짜 수표 진짜 돈으로 칩시다. 불교 기독교 유교 이슬람 힌두교가 다 선을 추구하고 남을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자는 거니까 더 이상 짝퉁이니 명품이니 하며 시비하지 말고 갈등하지 말고 그냥 종교다원주의로 갑시다. 이게 정말 옳은 겁니까? 절대 그럴 수는 없다는 게 바로 우리 기독교 신앙의 베타성입니다.

 

여러분, 이것도 저것도 다 좋다, 다 똑같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조심하십시오. 어차피 나도 가짜인데 남이 좀 가짜면 어때, 그래서 이것도 저것도 다 좋다 다 옳다 다 똑같다고 하는 것이지 결코 관대해서가 아닙니다. 마음이 하해처럼 넓어서가 아닙니다. 서로 속아주며 적당히 담합하고 공모하자는 수작입니다. 거기에 우리는 결코 타협할 수 없다는 겁니다. 우리는 정답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오답은 오답이라고 말하고 진리가 아닌 것은 진리가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왜 기독교만 굳이 진리고 진품이고 유일한 명품일까요. 그걸 몰라서 모르십니까? 오직 하나님의 말씀, 주님의 말씀만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교훈들은 다 풀이나 꽃처럼 시들고 마르고 떨어지는 가짜들입니다. 어째서 그러냐구요? 공자님도 부처님도 모하메드도 문선명도 안상홍도 다 풀처럼 꽃처럼 지고 죽고 떨어져 없지만 부활하신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고 듣는 이 성경 말씀은 지금도 살아계신 그 주님의 생생한 육성이잖아요. 그래서 진리의 말씀이고 유일한 생명의 말씀이라는 겁니다. 

 

부디 새벽빛 같으신 하나님의 이 구원과 사랑과 말씀이 늘 여러분과 함께 하심으로 올해도 이 본문 1절 하반절 말씀처럼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시고 우리를 치셨으나 도로 싸매주시는 은총이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충만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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