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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지절(立春之節)

어제가 <입춘>이었습니다.

온 세상이 추위에 얼어붙고 나무마다 빈 가지 뿐인데 뜬금없이 봄이라니...

저는 전에 <입춘>이 왜 매년 동장군의 기세가 여전한 2월 초일까 하고 으아스러워 했더랬습니다. 

올해만 해도 설날 새벽 폭설이 내려 길이 아직도 미끄러운데 벌써 봄?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게 굳이 시간 개념이라기보다는 <소한>과 <대한> 추위가 지나면 결국 봄은 다시 온다는  강렬한 희망의 표현이라는 것을. 

아직 훈훈한 봄바람이 부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대한>보다 더 모진 추위는 없다는 안도와 확신으로 봄의 시작점을 앞당겨 설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입춘>의 <입>은 <들 入>이 아니라 봄을 향해 희망을 세운다는 뜻의 <설 立>입니다.

<입춘>은 이미 봄이라거나 벌써 봄에 들어섰다는 뜻이 아니라 봄이라는 희망의 이정표를  세우는 절기입니다. 정초인 지금도 차가운 바람이 불고, 두꺼운 옷에 마스크를 끼고 있지만 <입춘>을 지나지 않고서는 결코 봄이 올 수 없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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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본디 겨울이 지나야 봄이 오는 게 아니라 겨울 속에 이미 봄이 있습니다.

슬픔 너머에서 기쁨이 오는 게 아니라 슬픔 속에 이미 기쁨이 있고, 아픔 너머에 평안이 아니라 아픔 속에 이미 평안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이 <입춘지절>에 다시 한 번 깊이 깨달을 일입니다. 

 

 우리는 지금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코로나>의 시름에 겨워 한 치의 마음의 여유도 없이 꽁꽁 얼어붙은 시린 세월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의 봄도 어쩌면 꽃 피는 춘삼월보다는 맨 밑바닥을 치고 이제 올라갈 일만 남은 그 가장 깊은 순간이 아닐까요. 세상을 살며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바닥에 발을 디디고 이제는 오직 박차고 오를 일만 남았다며 절망보다는 오히려 희망을 품는 순간이 바로 우리 인생의 진정한 봄의 시작점이 아닐까요? 

 

그럼에도 희망은 든든히 붙잡되 아직 방심은 금물입니다. 

입춘에 김칫독 깨진다는 말도 있고, <소한>과 맞먹는다는 꽃샘추위도 남았습니다. 

행여 매화꽃 피었다는 남녘 소식에 긴장 풀지 마십시오. 

산수유가 노랗게 피고 벚꽃 만발할 때까지는 모퉁이 빙판길을 걷듯 늘 조심하고 또 조심하셔야 합니다. 

 

<목민심서>(牧民心書)의 저자인 다산 정약용이 16세 때 자신이 살던 집 벽에 써 붙인 <입춘 단상>이란 시의 전문입니다. 

 

 

사람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것이

그 본분이거늘

어리석은 자는 본래의 선함을 잊고

평생을 오직 입고 먹는 데만 바친다네

 

효성과 우애가 인(仁)과 신(信)의 근본이요

학문은 그 남은 힘으로 하는 것이니

힘겹게 노력하지 않는다면 

세월 따라 그 덕을 잃어가리

 

 

소년의 올곧고 결연한 의지가 느껴지는 이 시 말미에는 다음과 같은 <입춘> 격문 하나가 적혀 있습니다.

<재종춘설소 복축하운흥>(災從春雪消 福逐夏雲興, 재난은 봄눈처럼 사라지고, 행복은 여름 구름처럼 일어나길!)

 

부디 다산의 이 <입춘> 기원이 어느덧 <코로나> 세상 3년차에 갇혀 지내는 오늘 우리들에게 큰 희망의 축원이 되길 간절히 빌어봅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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