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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23]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사 43:18-21)

20220123m

사 43:18-21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신약 요한복음 8장에 나오는 얘기죠. 주님이 간음하다 그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에게 돌을 던지는 대신 뭐라고 하셨죠?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그러셨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다른 사람들은 다 흥분해서 그 여인을 정죄하며 고소하며 손의 손에 돌을 들고 던지려 하고 있는데, 주님은 어째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치라고 하시며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고 하셨을까요?


여러분, 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가 뭡니까? 사람이 죽지 않고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은 뭘 뜻할까요? 내일이 있다는 거죠. 살아있다는 것은 아직 기회가 있고 희망이 있다는 뜻입니다. 아직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주님도 당시 그 여인의 죄를 부정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아직은 희망이 있고, 내일이 있는 가능성의 존재이기 때문에 가서 다시는 죄를 품지 말라며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신 겁니다. 비록 오늘은 돌에 맞아 마땅한 죄를 지었지만, 그러나 앞으로는 또 누구보다도 경건하게 순결하게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돌아가서 그렇게 살라는 겁니다.


실제 당시 그 여인이 어거스틴의 해석처럼 막달라 마리아가 맞다면, 보십시오 주님의 기대와 바람대로 나중에는 얼마나 위대한 성녀가 됐습니까. 그 순간부터 주님을 좇았고 마지막에는 가장 가까이에서 주님의 십자가를 지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이 장사되신 후에는 안식 후 첫날 주님 시신에 바를 향유를 가지고 무덤을 찾아갔다가 그 빈 무덤 앞에서 최초로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부활의 첫 증인이 됐지 않습니까? 인류 가운데서 부활의 첫 증인은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그러니까 간음한 여인에게서 성령의 가능성과 희망을 보셨던 주님이 얼마나 옳으셨습니까. 주님의 눈이 얼마나 바르고 정확하셨습니까. 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그렇게 보십니다. 우리의 현재의 모습이 전부라고 보시지 않습니다. 가능성의 눈으로, 희망의 눈으로 내일이 있는 존재로 보십니다. 항상 미래에 근거해서 오늘 우리의 모습을 조명하십니다. 이 점이 가장 고맙고 감사한 부분 아닙니까? 보통 우리는 다 과거를 잣대로 오늘을 판단하고 평가하잖아요. 항상 과거로 오늘과 현재를 심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닙니다. 과거에는, 어제는 비록 이런저런 죄와 실수와 과오를 범했지만, 그러나 너는 아직 살아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내일은, 미래에는 더 이상 그런 죄를 짓지 않고 누구보다도 훌륭하게 아름답게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다. 따라서 나도 너를 돌로 치지 않을 테니 다시는 가서 그런 죄와 그런 잘못을 범하지 말고 정직하게 살아라, 경건하게 살아라, 새 출발해라, 언제나 그렇게 격려하십니다. 그렇게 용서하십니다. 그렇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십니다.


그게 맞지 않아요. 그게 옳지 않습니까? 산 사람에 대해 어떤 고정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아직 살아있는 자를 죽여서 보는 죄를 범하는 거잖아요. 죽을 사람은 더 이상 내일이 없습니다. 희망이 없고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래서 단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습니다. 고정된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죽은 자에 대해서는 그러나 아직 살아있는 자는 희망이 있고 내일이 있잖아요. 주님은 사람을 보실 때 언제나 그 점을 인정하십니다. 그랬기 때문에 세리와 창녀 같은 공인된 죄인들과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상종하시며 함께 먹고 마시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가능성이 있다는 거예요. 내일이 있다는 것이죠. 희망을 존중해주신 거예요.


그러니 우리가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 따라서 우리에게도 내일이 있고, 희망이 있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하고 복된 일입니까. 또 누구보다도 주님이 그 사실을 인정하시고 언제나 미래의 빛, 희망의 빛 아래에서 우리를 보시고 용서하시고, 지금도 그리고 이 새해에도 큰 기대와 바람을 가지고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맙습니까.


그런데 성도 개개인뿐 아니라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뭘까요. 교회도 생물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조직이 아닙니다. 예배당, 무슨 교회당이 곧 교회는 아닙니다. 예배당은 교회가 모여서 예배 드리는 장소고, 예배당은 교회의 회합이 이루어지는 공간입니다. 교회는 주님을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죠. 살아있는 유기체입니다. 신약성경은 교회를 에클레시아라고 하는데, 그 뜻은 부름 받은 자들, 구원받은 자들의 연합입니다. 연대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의 집합, 그러니까 구원받은 사람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교회예요. 


교회는 사회학자들이 말하는 Gemeinschaft, 유기적 자발적 공동체이지 사회 조직을 뜻하는 Gesellschaft가 아닙니다. Gesellschaft는 법적인, 제도적인 그런 강제적 조직을 말해요. 사회는 Gesellschaft입니다. 사회라는 게 법적으로 강제된 조직이잖아요. 공권력으로 통제되는 조직이잖아요. 그런 것은 Gesellschaft, 교회는 Gemeinschaft, 자발적이고 고백적이고 유기적인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이 개체 교회, 개별 교회, 개 교회를 교회라고 하지 않고 Gemeinde라고 합니다. Gemeinde를 공동체라고 해요. 그 개체 교회, 개 교회의 집단을 명명할 때 Kirche, 교회라고 해요. 개별 교회는 Gemeinde, 공동체입니다. 그 전체를 아우를 때 Kirche, 교회라고 합니다. 이것이 정확합니다. 이게 맞습니다. 교회는 조직이나 시스템이나 건물이 아니고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살아 있는 영적 유기체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교회가 그 고유의 정체성과 생명력을 많이 잃었습니다. 그래서 Gemeinschaft가 Gesellschaft, 조직이나 시스템으로 갑니다. 교회가 역동성을 잃고, 생명력을 잃고 경직돼서 그냥 사회, 무슨 집단이나 단체나 조직처럼 그렇게 Gesellschaft로 가버렸어요. Gemeinschaft여야 하는데, 영적인 유기체여야 하는데, 경직되고 생명력을 상실하고 고식화 돼가지고 그냥 조직으로 가버린 거예요.


교회가 조직화되어 생명력을 잃으면 결국은 죽은 교회가 될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죽은 교회는 죽은 사람에게 희망이 없듯이 더 이상 희망이 없습니다. 내일이 없습니다. 미래가 없습니다. 주님이 계시록에서 사데교회에 대해 뭐라고 하셨죠? 네가 살았다고 하는 이름은 있지만 실상은 죽었다. 놀랍게도 사데교회는 당시 계시록의 일곱 교회 가운데서 가장 컸고 가장 부유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너는 죽었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사람이나 교회나 살아있을 때 희망이 있습니다. 살아 있어야 내일이 있고 가능성이 있습니다. 살아 있어야 주님과의 영적인 교감이 발생합니다. 


그러면 이제 여러 가지로 부족하고 또 지난해에도 많은 과오와 허물을 드러냈음에도 주님이 새해를 맞아 우리 각 개인과 또 가정과 교회를 향해 당부하시고 약속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을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우선 뭐라고 하셨죠?


이전 일,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소개해드린 본문 18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여러분, 지난 일, 과거지사는 누구나 다 부끄럽습니다. 여기 과거에 죄 짓지 않으신 분 계십니까? 지난해만 해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사신 분 계십니까? 자신의 과거에 대해 돌 맞지 않을 자신이 있으신 분 계십니까? 과거로 오늘의 나를 심판한다면 우리 중에 과연 몇이나 무사할까요. 돌 맞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런데 천만 다행으로 주님은 우리를 과거가 아니라 미래의 빚 앞에서 희망과 가능성의 눈으로 바라보고 계실 뿐 아니라, 이전에 그 모든 부끄러운 일, 치부한 일, 온갖 과오와 죄악으로 얼룩진 일들을 다 용서하신다며 더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거나 기억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전의 일은 이미 다 지나갔습니다. 해가 바뀌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노예가 되지 마십시오.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해 달려가노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살라는 거예요.


뒤돌아보지 마십시오. 뒤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를 기억하십시오. 날마다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며 작당하고 선동하다 하나님의 진노의 불에 희생된 아간과 그의 추종자들을 반면교사로 삼으십시오. 사람들이 과거에 붙잡혀 사는 것은 더 이상 미래가 없기 때문입니다. 희망이 없는 사람들, 더 이상 내일이 없는 사람들은 오로지 과거에만 삽니다.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옛날 얘기만 합니다.


올해는 부끄럽고 아쉽고 허물 많고 치부했던 지난해나 온갖 과거사는 다 잊고 오로지 앞만 바라보고 나아갑시다. 다 잊으십시오. 지난날의 모진 아픔도 잊으시고, 상처도 눈물도 더는 기억하거나 생각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당부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올해는 오직 앞만 보고, 희망만 보고, 기대와 가능성과 내일만 보며 사는 겁니다. 본문 19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주님이 우리 앞에 새 일을 펼치신다고 합니다. 주님이 이 새해에는 우리 앞에 더욱 복되고 아름다운 일을 나타내신다고 하십니다. 따라서 그걸 보라는 거예요. 그걸 보고 살라는 거예요. 그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살라는 거죠. 자꾸만 뒤돌아보지 말고, 옛날 얘기하지 말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새 일, 주님이 우리 앞에, 우리 가정과 우리 교회 앞에서 행하시겠다는 그 큰 일이 대체 뭘까요? 19절 하반절입니다. “반드시”, 이게 중요해 반드시라고 했죠.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겠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올해 우리 앞에 행하실 새 일은 바로 길 없는 광야에 대로를 내시고, 물 없는 사막에 대하가 흐르게 하시겠다는 거예요. 새로운 길을 트고, 척박한 사막에 강이 흐르게 하는 일, 그보다 더 크고 더 복된 일이 또 있을까요. 올해 주님이 우리 앞에서, 우리 교회 앞에서 바로 그 일을 행하시겠다고 합니다. 그걸 보라는 거예요. 그러니 기대와 희망을 품고 주님이 행하실 그 새 일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용감하게 씩씩하게 살아라. 20절입니다.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들에게 주어 마시게 할 것이니라”


여러분, 올해 주님이 이렇게 광야에 길을 트시고, 사막에 강을 내시면 그동안 길이 없어서 방황하고 마실 물이 없어서 고통당하던 사람들이 다 길을 찾고 해갈을 얻어 앞으로는 누구보다도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 우리 모두가 건강하게,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우리 교회도 그동안 길이 잘 안 보여서 답답했는데, 이제 길이 트이고, 그동안 여러 가지로 목말라 힘들었는데, 이제 사막의 강이 흐르면 지금까지 곤란했던 그 모든 사정이 다 해소되어 앞으로는 좀 더 복되고 풍성한 교회로 발돋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지난 세월, 지난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이제 새해에는 주님이 행하실 새 일, 주님이 이루실 그 큰 역사를 주목하며 더욱 기대와 희망을 품고 살라는 거예요.


이제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마지막 21절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라” 이 백성은 어떤 백성입니까? 20절 하반절에 나오는 내 백성, 내가 택한 자를 가리킵니다. 오늘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 주님이 부르사 하나의 공동체로 엮어주신 우리 교회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찬송하게 하겠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승리의 개가를 부르게 하겠다. 그런 다짐이십니다. 


여러분, 올해 이 새해에는 우리 모두 과거를 깨끗이 잊고 우리 앞에 펼쳐질 주님의 새 일, 큰 일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삽시다. 반드시 주님이 광야에 길을 트시고, 사막에 강을 내실 것을 확신하며 큰 기대와 희망을 품고 삽시다. 여러분 개인도, 여러분 가정도 다 그렇게 사십시오. 그러면 주님이 반드시 그 새 일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찬송을 부르며 감사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부디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 우리 교회가 다 주님이 이루실 그 새 일을 통해 더욱 복되고 희망찬 새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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