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109m] 마음을 지키라! (잠 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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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9m
잠 4:23
마음을 지키라!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우리는 살아가면서 지키고 보호해야 할 게 참 많습니다. 2022년 새해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우리가 지켜야 할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자신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23절 상반절,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어떻습니까. 공감이 가십니까? 마음을 지키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왜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일이 가장 중요할까요? 23절 하반절,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이 말씀의 원어적인 의미는 죽고 사는 일이 다 네 마음에 달렸다. 그런 뜻입니다. 죽고 사는 일이 다 내 마음에 달렸기 때문에 마음을 지키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세상사람 모두, 심지어는 죽고 사는 일까지도 자기 마음에 달렸잖아요. 우리의 모든 행동과 결단이 다 자기 마음의 결정 아닙니까. 주님은 누가복음 6장 45절에서 “어떤 사람은 그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또 어떤 사람은 그 마음에 쌓은 악에서 악을 내느니라”고 했습니다. 자기의 의지를 그때그때 선한 쪽으로 혹은 악한 쪽으로 발동하도록 부리는 게 바로 그 사람의 마음이라는 겁니다. 내 마음이, 내 자유의지를 어느 쪽으로,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서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결국은 내 삶이 좌우되고, 내 운명이 결정되잖아요. 심지어 주님은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하셨습니다.
그게 무슨 뜻일까요?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마음을 비운다는 뜻이죠.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뜻입니다. 온갖 세상적인 생각과 탐욕과 세속적인 모든 가치들을 다 내려놓고 마음을 비워야 비로소 그 마음에 믿음을 담을 수 있고, 성령을 모실 수 있고, 그래서 마침내는 내 심령에 천국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잡다한 모든 것을 깨끗이 비운 가난한 마음이야말로 진정으로 복되다는 거예요. 온갖 세상적인 것으로 가득 차서 잔뜩 부유해진 마음에는 더 이상 믿음도 성령도 천국도 임할 수 없다는 겁니다.
주님은 또한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마음이 온갖 죄악으로 온갖 더러운 생각과 추한 탐욕으로 얼룩지지 않도록 늘 깨끗하게 잘 관리하면 그 청렬한 마음, 그 투명한 마음에 하나님의 모습이 비친다는 겁니다. 그러니 마음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합니까. 천국도 임하고 하나님의 모습도 비치는 게 마음 아닙니까.
그래서 성령도 늘 감동과 깨달음으로 우리 마음에 역사하시는데 성령만 역사하시는 게 아닙니다. 마귀도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을 미혹하고 헤치려고 합니다. 어떻게든 우리가 주님 뜻에 합당한 모습으로 마음을 관리하지 못하도록 가진 훼방을 다합니다. 마음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우리의 마음에 모든 것이 달렸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에 마귀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노립니다. 우리의 마음을 타겟으로 공격합니다. 끊임없이 우리 마음에 나쁜 생각을 주입하고, 악하고 헛된 생각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 6장 4절 이하에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그 위에 의의 호심경을 붙이라고 했습니다. 호신경이 뭡니까? 호심경, 가슴 보호대, 방탄조끼입니다. 마귀가 늘 우리의 가슴, 성도들의 마음을 훔치려고 노리기 때문에 반드시 가슴 보호대인 호심경을 갑옷 위에 대라는 겁니다. 마음을 빼앗기면 다 빼앗기는 것이니까 호심경을 붙여서 무엇보다도 가슴을 안전하게 지키라는 겁니다. 요한복음 13장 2절입니다. “마귀가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마귀 사탄은 이렇게 우리의 마음에 먼저 악한 생각을 심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의 생각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도록 계속 부추기고 꼬드기고 또 여러 가지 조건과 환경과 기회를 조성해줍니다.
가룟 유다를 보십시오 그렇게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기자 결국은 주님을 팔고 심지어는 자기의 생명까지도 스스로 살해하잖아요. 마귀는 늘 그렇게 우리의 가슴을 녹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훔치기 위해 호심탐탐 기회를 엿봅니다. 그러다 틈이 나면 지체하지 않고 악한 생각, 괴롭고 슬프고 불안하고 우울하고 절망적인 생각을 뿌립니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 비관적인 생각, 회의적인 생각,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증오하고 저주하는 마음과 허무한 마음을 심습니다. 우리의 마음 밭에 말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가라지 비유를 보면 종들이 주인에게 묻습니다. 주인이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 악한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주인이 뭐라고 대답했죠? 너희가 잘 때 원수들이 와서 알곡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그런데 그 비유에 대한 주님의 해설을 보면,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라고 했습니다. 마귀가 우리의 마음 밭에 가라지를 뿌립니다. 그래서 바울이 악한 마귀의 그런 공격으로부터 가슴, 마음을 지키기 위해 전신 갑주를 입고, 다시 그 위에 가슴 보호대인 호심경을 붙이라고 한 겁니다. 특별히 마음을 지켜라, 가슴을 지키라는 말입니다. 저격수는 항상 가슴을 노립니다. 항상 killer는 우리의 심장을 노립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가슴을 잘 보호해야 합니다.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둘째, 모세의 후계자가 된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계속 뭐라고 하셨죠?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 1장을 보면,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잔뜩 겁을 먹고 떨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여러 번 반복해서 똑같은 말씀으로 격려하십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버리지 아니하리라. 내가 모세와 함께 한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하시며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고 합니다. 왜요? 마음이 흔들리면, 마음이 약해지거나 무너지면 모든 게 무너지고 인생이 무너지고 따라서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항상 우리의 마음을 살피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면서 판단하십니다. 주님은 언제나 겉으로 나타난 어떤 결과보다는 그 동기, 그 중심, 마음의 생각을 보시고 우리를 평가하십니다. 마음에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이미 마음에 살인한 자요. 이웃의 물건을 탐하는 자는 이미 그 마음에 도적질한 자니라. 마음을 보십니다. 마음으로 평가하십니다. 세상은 언제나 결과만 보잖아요. 그 속마음이야 어쨌든 모든 걸 겉으로 나타나는 결과로 판단하고 심판하지만, 주님은 결과보다는 오히려 그 동기, 그 마음을 보아 판단하시고 평가하십니다. 실제 행동으로는 도적질 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물건을 탐했으면 그 사람은 도적질 한 사람입니다. 주님 앞에서 말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면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더라도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굉장히 극단적이고 과격하신데, 여러분, 이게 무슨 뜻일까요? 눈이 범죄할 때마다 정말 눈을 뽑고, 손이 범죄할 때마다 정말 손을 찍으라는 말씀입니까? 그러면 저 같은 사람은 하루도 못 삽니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두 눈 다 뽑히고 양팔 양다리를 다 잘라야 합니다. 그러나 그게 어찌 저만이겠습니까. 여러분들인들 저보다 얼마나 더 낫겠습니까.
따라서 이 말씀은 결코 그런 문자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오른손이 범죄했다고 오른손을 찍고, 왼손이 범죄했다고 왼손을 찍고, 눈이 범죄했다고 눈을 뽑는다면, 아마 이 세상에서 사지 멀쩡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주님의 이 말씀은 범죄한 손발을 실제 찍으라기보다는 나의 손과 발을 범죄하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과 동기, 즉 마음의 악한 생각, 마음의 나쁜 생각을 단호하게 가차 없이 제거하라는 뜻입니다. 마치 도끼로 범죄한 손발을 자르듯이 그렇게 나로 죄짓게 하는 악한 마음, 악한 생각을 단호하게 척결하라는 뜻입니다. 결국은 내 마음을 단단히 지키고 칼처럼 단속하라는 뜻입니다.
요즘 벌써 3년째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또 이게 장기화되면서 다들 마음이 극도로 약해졌습니다. 여러분, 담대하십시오. 용감하십시오. 마음을 지키고 잘 단속하십시오. 디모데후서 1장 7절은 두려워하는 마음은 분명 하나님이 주시는 게 아니고 마귀가 뿌린 것, 마귀가 준 것이라고 했습니다. 두려워하는 마음, 불안해하는 마음, 우울한 마음, 절망스러워 하는 마음, 허무해하는 마음, 부정적인 생각, 비관적인 생각, 회의적인 생각, 이것 다 마귀가 우리의 마음 밭에 몰래 뿌리고 간 가라지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마음이 아니라 오히려 무슨 마음을 주신다구요?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능력의 마음, 사랑의 마음, 절제하는 마음을 주신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 능력이라는 말은 무슨 뜻이라고 했죠? “두나미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다이나마이트의 어원인 두나미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는 마음, 나약한 마음이 아니라 두나미스, 다이나마이트처럼 강력한 마음, 강인한 마음, 담대한 마음, 여호수아에게 주셨던 그런 용감한 마음을 주신다고 합니다.
또한 사랑으로 충만한 마음, 자제하고 절제할 줄 아는 마음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두려워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형벌이 따른다고 했죠.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는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이 주신 두나미스 같은 담대한 마음, 용감한 마음으로 살지 않고 마귀가 주는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늘 떨며 비겁하게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훗날 하나님의 형벌을 면치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으로 살아야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과연 하나님이 주시는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용감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늘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의 마음, 따뜻한 사랑의 마음, 자제하고 절제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잘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하신 바로 그 주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우리가 흔들리거나 약해지거나 무너지지 않고 자기의 마음을 든든히 지키며 꼭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했습니다. 빌립보서 4장 6절 이하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기도와 간구가 그 답입니다. 우리는 다른 기도는 해도 내 마음을 위해서는 기도할 줄을 모르죠. 내 재산이나 건강이나 자식들을 위해서는 기도할 줄 알아도 내 마음을 지켜달라고 기도할 줄은 미처 모릅니다. 모든 죄를 다 마음으로 생각으로 짓는데도, 모든 행동이며 선택을 다 마음으로 결정하는데도, 자신의 마음을 위해서는 잘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을 보십시오. 마음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고 아뢰라고 합니다. 그러면 평강의 하나님이 반드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고 합니다.
여러분, 올해는 꼭 여러분의 마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보다 강한 마음, 관대한 마음,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사랑의 마음, 절제하고 자제하고 인내하는 마음을 주시고, 또 그런 마음을 늘 잘 지키고 잘 관리하며 살아가게 해주시기를 열심히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에게 두나미스처럼 강한 마음, 담대한 마음을 주사 올해도 이 위기의 때를 누구보다도 용감하게 또 크게 흔들리거나 무너지는 일 없이 잘 지키며 살아가도록 축복해 주실 줄 믿습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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