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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군의 여호와 (왕상 18-1-15)

만군의 여호와
왕상 18-1-15

<아합이 왕궁 맡은 자 오바댜를 불렀으니 이 오바댜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자라>(3절).
<오바댜>란 이름은 <여호와를 섬기다>는 뜻입니다. 특히 이 이름 속에 담긴 동사 <아바드>는 <노예처럼, 종처럼 섬기다>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바댜는 실제 그 이름대로 지극한 열심과 성실로 여호와를 섬겼습니다.
 보십시오. 바알 숭배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아합 궁중의 고위직에 있으면서도 죽음의 위협에 처한 여호와의 선지자 일백 명을 숨겨주었다(4절)고 하지 않습니까! 가히 그의 신앙과 열성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 오바댜가 선지자 백 명을 가지고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더라>(4절). 뿐만 아니라 오바댜는 엘리야 선지자에 대한 경외심도 컸습니다. <오바댜가 길에 있을 때에 엘리야가 그를 만난지라 그가 알아보고 엎드려 말하되 내 주 엘리야여 당신이시니이까>(7절).

오바댜는 당대 고관이었고, 엘리야는 일개 야인에 불과했음에도 오바댜가 선지자에 대해 최대한의 경의를 표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특히 그가 엘리야에게 사용한 <주>, 히브리어 <아도나이>는 인간과 만물의 소유주이신 하나님을 부를 때 사용하는 칭호인데 그걸 엘리야에게 적용한 것은 그에 대한 존경심은 물론이고 이스라엘의 운명이 오직 하나님의 사자인 엘리야 선지자의 손에 달려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가 이르되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오늘 아합에게 보이리라>(15절).
<섬기는>을 뜻하는 히브리어 <아바드>는 그 문자적 의미가 <앞에 서다>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① 중보기도를 위해 서다와 ② 헌신과 충성의 표시로 서다 그 두 가지 의미를 가지는데 여기서는 엘리야가 그 두 가지 의미를 다 염두에 두고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라고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흔히 접하는 <만군의 여호와>의 <만군>(체바오트)이란 <군대들>을 가리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을 <만군의 여호와>로 명명한 횟수는 무려 261회나 된다고 합니다. 
 본래 이 명칭은 <이스라엘의 군대를 지휘하시는 하나님(삼상 17:45)>을 뜻했으나 나중에는 점차 온 세계에 대한 여호와의 통치권을 의미하는 칭호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 우주와 역사의 진정한 주권자시라는 고백입니다. 

<적용>
-<아합의 왕궁 맡은 자 오바댜>(3절)의 믿음과 용기에 대해 적어보십시오.
-이사야 1:9, 2:12, 8:13, 예레미야 6:6, 20:12, 32:14 등에서 <만군의 여호와> 호칭을 찾아보십시오.
-본문 5절 말씀을 보고 백성들보다는 자신의 짐승을 더 걱정하는 아합의 인성에 대해 말씀해보십시오.

<기도>
주님, 오랜 가뭄으로 기근 속에서 허덕이는 백성들보다 자신의 말과 노새가 더 소중했던 아합 왕 치하의 백성들이 얼마나 딱하고 처절했던가는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그러나 그런 암울한 시대에도 오바댜와 같은 <남은 자>를 통해 수많은 선지자들의 목숨을 지켜주시고, 엘리야와 같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그 시대를 간섭하시고 또 필요한 이적을 허락하사 살아 역사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이심을 체험하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지금도 세계가 오직 여호만이 역사의 진정한 주권자이심을 깨닫게 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