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31송구영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창 35: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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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예배 기도문
주님,
막 묵은해가 가고 2022년 새해가 왔습니다.
<코로나19> 2년 차였던 지난해도 참으로 힘들고 고단한 한 해였습니다.
그러나 그 혼란스런 와중에도 저희 가정과 가족들을 돌봐 주사
큰 탈 없이 연말에 이르게 하시고,
또 오늘 이렇게 주 안에서 새해를 맞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2022년 첫 시간에 드리는 저희 가정의 첫 예배가 복되게 하사
새해야 말로 그간의 위험하고 답답했던 팬데믹 상황을 극복하고
잃었던 많은 것들을 되찾고 정상화하며
새 출발하는 소중한 해가 되게 해주시옵소서.
무엇보다 저희 가족이 다 안전하고 건강하게 하시고,
경제적으로 곤란당하지 않게 하시고, 생업을 지키사
늘 자족하며 감사할 수 있도록 일용할 양식을 보장해주시옵소서.
주님의 뜨거운 손으로 안수하사 환자들을 온전케 해주시고,
가족 모두 주 안에서 늘 몸도 마음도 영혼도 강건하도록 보호해주시옵소서.
주님,
저희 가정도 새해의 간절한 바람이 있고, 가족 모두 각자의 소망도 있습니다.
꼭 헤아리사 다 이루어주시고 응답해주시옵소서.
주님,
새해에는 자녀들의 학업을 지키사 더 이상의 파행을 막아주시고,
사회생활, 해외생활하는 자녀들을 격려하사 도약하게 하시고,
발전하게 하셔서 모두가 성장하게 하시옵소서.
새해에는 더욱 믿음으로 살고, 기도하며 사랑하며 용서하며 사는 부부되게 하시고,
가족 모두 지금보다 영성이 더욱 깊어지게 해주시옵소서.
해롭고 이롭지 못한 악습은 다 끊고,
늘 감사하며 기뻐하며 주님을 찬양하며
말씀을 좀 더 가까이 하며 살게 해주시옵소서.
주일을 성수하고 예배의 소중함을 깨닫고
주변 사람들과 이웃들에게 주님을 증거하는 일도 잊지 않게 하시고,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에도 소홀함이 없게 해주시옵소서.
주님,
이 송구영신의 시간이 저희 가족과 가정에
참으로 소중한 은혜와 축복의 순간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창 35:9-15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 야곱이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여러분들은 성경의 여러 인물 가운데서 누가 가장 축복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까? 누가 하나님의 축복을 가장 많이 누렸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를 수 있겠죠. 저는 단연 이 야곱입니다. 정말 인류 역사에서 야곱만큼 복되고, 또 야곱만큼 자기가 원하는 바를 다 이룬 사람은 다시없을 것 같습니다.
야곱은 원래 에서와 쌍둥이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에서가 먼저 나왔기 때문에 형이 됐고, 야곱은 동생이 됐습니다. 그럼에도 야곱은 그 사실에 승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장자를 통해 승계되는 하나님의 축복을 자신이 받고자 했는데, 결국은 그 기상천외한 꿈을 기어이 이루지 않습니까.
허기진 형에게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사고, 또 눈 먼 아버지를 속여 장자에게 베푸는 마지막 축복기도까지 훔칩니다. 그래서 마침내는 하나님마저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에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되시잖아요. 하나님도 야곱의 그 억지 장자권을 승인하신 겁니다.
또 야곱은 자기가 너무너무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했습니다. 비록 14년 만에 성사되긴 했어도 첫사랑 라헬과 결혼합니다. 또 그는 부자가 되기를 몹시 소원했는데, 정말 그 큰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객지생활 20년 만에 수많은 짐승과 여러 종들을 거느리고 큰 부자가 되어 귀향길에 오릅니다. 이처럼 야곱은 자기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다 얻고 이룬 사람입니다.
그런데 야곱의 축복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진정한 축복은 사실 지금부터입니다. 오늘 본문을 한번 보십시오. 11절 이하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내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여러분, 유대인들이 왜 나라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명명했을까요? 왜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국호를 이스라엘이라고 붙였을까요? 이스라엘이란 원래 나라 이름이 아니고, 하나님이 직접 지어주신 야곱의 새 이름 아닙니까. 본문 1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만은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또 이 창세기 32장 28절도 보십시오. “그가 이르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이렇게 하나님이 주신 야곱의 새 이름이 바로 이스라엘인데, 이걸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나라 이름으로, 국호로 삼은 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신들이야말로 진정한 완벽한 명실상부한 이스라엘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무슨 얘깁니까? 여러분, 유대인들이 430년간 애굽에서 살았는데 왜 그렇게 오랜 세월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을까요? 애굽과의 전쟁에서 패해 포로로 잡혀 갔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야곱의 12아들 가운데서 11번째 아들인 요셉이 17세 때 형들의 배신으로 애굽에 팔려가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다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가잖아요. 그런데 그 감옥에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아무도 풀지 못한 애굽 왕 바로의 난해한 꿈을 탁월하게 해석해서 일약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발탁되잖아요. 그리고 곧 요셉이 해몽한 대로 천하의 최악의 흉년이 들면서 양식을 구하기 위해 애국까지 온 형들을 극적으로 만납니다. 그야말로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격인데, 그러나 요셉은 형들을 다 용서합니다. 그간의 모든 것은 우리 가족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이 친히 행하신 일이라며 지금까지의 아픔을 다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님의 섭리로 돌립니다.
그러면서 내가 잘 모실 테니 빨리 가서 아버지 야곱까지 모시고 와서 함께 살자고 했습니다. 애굽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그때 애굽으로 이주한, 이민간 야곱의 12아들의 전체 가족이 70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70명이 그곳에서 430년을 지내는 동안 출애굽 때는 장정만 60만, 어린 아이들과 여성까지 합쳐서 약 200만이 된 겁니다.
그러므로 애굽에서 430년간 종살이하다 모세의 영도로 출에굽한 유대인들은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야곱의 12아들을 족장으로 하는 야곱의 직계들이었습니다. 야곱의 12아들의 자손들이 430년을 지나 출애굽할 때는 육십만이 되고 이백만이 된 겁니다. 그러니 지금도 그 12계파로 이루어진 유대인들의 민족 공동체야말로 얼마나 철저한 이스라엘입니까. 다 이스라엘입니다. 다 야곱의 분신들입니다. 야곱의 12아들의 자손들 아닙니까? 그래서 그들은 지금도 너무나도 당연하게 나라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쓰고 있는 겁니다.
본문 11절과 12절의 축복 그대로잖아요. “생육하고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따라서 이스라엘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곧 야곱의 나라요, 야곱의 민족, 야곱의 12아들의 공동체라는 말이 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이게 얼마나 복되고 경의로운 일입니까. 주전 1,800년대 사람, 지금으로부터 3,800년 전에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로, 한 민족 공동체로 지금도 저렇게 건재하잖아요.
그렇다면 여러분, 야곱이 이렇게 남다른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된 비결이 뭘까요?
우선 야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하나님의 축복을 간절히 사모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야곱은 차남으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장자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축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그 운명에 결코 승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는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열망이 너무나도 강했습니다. 그래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형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아 장자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축복을 자기가 받아야겠다며 기회를 엿보다 결국 형의 약점을 이용해 그 장자권을 가로챈 겁니다.
그런 야곱에 비해 에서는 장작권이니 하나님의 축복이니 하는 것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었습니다. 지금 배가 고파 죽게 생겼는데, 장자권이 무슨 대수냐며 냉큼 팥죽 한 그릇에 그걸 팔아버린 걸 보십시오. 그래서 차남인 야곱이 그 장자의 복을 받고 대신 장자인 에서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를 받았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도 에서의 하나님에서 야곱의 하나님으로 갈아타시지 않습니까. 이처럼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건 모험도, 도박도 마다하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을 간절히 바라고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축복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목숨을 걸만큼 값지게 여기는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에 위대한 진가를 깨닫고 진심으로 사모하는 자, 온몸을 던져 결단하고 모험하는 자에게 베푸십니다.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에 무섭도록 집중하는 자에게는 그가 비록 차남일지라도 장자가 받을 은혜와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새해는 힘들고 어려운 코로나 정국에도 불구하고 더욱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야곱처럼 열망하십시오 그래서 다 복되시기를 빕니다.
다음은 예배 생활 때문이었습니다. 예배 생활에 철저해서 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의 생애를 추적해보면 가장 눈에 띄는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예배 생활입니다. 그는 어디서나 예배를 드렸습니다. 형의 분노를 피해 외가가 있는 하란으로 도망가다 벧엘에서 노숙을 하던 중 하늘에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신 하나님을 뵙고 그 자리에 제단을 쌓기 시작한 때부터 20년 객지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에 돌아와 다시 그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재단을 쌓기까지 그의 생애는 언제나 또 어디서나 예배드리는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14절도 보십시오. 야곱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야곱이 늘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남다른 은혜와 축복을 입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인생에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고, 또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최선의 행위는 바로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라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늘 예배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면 하나님도 우리의 삶과 우리의 존재를 복되고 영화롭게 하십니다. 부디 새해는 야곱처럼 언제 어디서나 예배에 더욱 충실하셔서 그야말로 야곱의 삶과 생애처럼 크게 복되시길 빕니다.
마지막으로 또 하나 있습니다. 야곱은 기도 때문에 성공했습니다. 기도 때문에 남다른 축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집념과 야심 못지않게 기도도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공격적이고 투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이 그의 기도를 하나님과의 씨름이라고 표현할 만큼 전투적이고 호전적이었습니다. 그의 유명한 얍복 강가의 기도를 보십시오. 나를 축복해주시지 않으면 절대 그냥 가게 하지 않겠다며 필사적으로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래서 밤이 새도록, 허벅지뼈가 부러지도록 하나님을 붙잡고 늘어져서 기어이 항복을 받아내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내가 졌다. 이제 네 이름을 야곱이라고 하지 말고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의 이스라엘이라 하라 하셨고, 그렇게 해서 야곱이 이스라엘로 거듭나잖아요.
야곱은 그 생의 모든 위기를 다 기도로 극복했고 기도로 승리한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을 이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 야곱은 뭡니까? 하나님을 이겼다고 했는데 말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져주신 거죠.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가 기도로 씨름을 걸면 우리에게 져주사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고 또 축복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럼에도 문제는 야곱처럼 하나님께 씨름을 거는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요즘은, 이 시대에는 말입니다.
부디 호랑이해라는 2022년 임인년 새해에는 야곱처럼 마치 씨름을 하듯이 호랑이처럼 보다 공격적으로 기도하셔서 하나님의 큰 은혜를 누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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